[노인문제 긴급진단] 대한민국에서 노인으로 산다는 것

늙기도 서러운데…쪼들리고 병들고 외로워서 못 살겠네!


몇 해 전부터 노인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1960년 이후 국민소득 수준의 향상과 의학 발달, 보건위생의 개선 등으로 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노인인구가 크게 증가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1990년 214만4000명에서 2009년 526만7000명으로 두 배를 훌쩍 뛰어넘어 전인구의 10.6%에 이르게 됐다. 사회는 점점 고령화되고 있지만 이에 부합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은 노인들의 3고(三苦)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노인의 3대 문제로 빈곤·질병·고독을 들 수 있는데, ‘빈곤’은 노인 일자리문제, ‘질병’은 노인 성병 증가, ‘고독’은 학대로 인한 자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요시사>는 대한민국 노인으로 살아간다는 그 쓸쓸함에 대해 취재했다.

노인 고용 하락, 일하는 노인 그나마 비정규직 
자식 눈치 보느라 하루 종일 종묘 주변 ‘빙그르’


노인문제를 고민하는 전문가들은 노인문제 해결에 있어 ‘노인 일자리 창출’을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과제로 꼽는다. 존경받으며 편안한 노후를 보내야할 노인들이 눈치를 보고 괄시 속에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로 경제적 무능력을 들 수 있고, 혼자 사는 노인 역시 경제난에 고통 받는 이유에서다.

노인 일자리 창출
노인문제 해결의 기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이후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매우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55~64세 고령자의 경제활동참가율과 고용율은 선진국과 달리 갈수록 낮아지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50대 이상 중·고령자의 고용 현황은 다른 연령대보다 열악해 높은 노인 빈곤율로 연결되고 있다.

지난 1일 고용노동부가 분석해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고용지표에 따르면 국내 55~64세 고령자의 고용률은 1994년 62.9%에서 2009년 60.4%로 하락한 반면 OECD 평균치는 46.1%에서 54.5%로 상승했다.

국내 55~64세 경제활동 참가율도 1994년 63.3%에서 지난해 61.8%로 낮아졌으나 OECD 평균치는 48.7%에서 57.8%로 높아졌다.
OECD 평균치보다 높은 수치이긴 하지만 고령자의 고용률과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아지는 선진국과는 달리 낮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전문가들 역시 국내 고령자 고용지표가 OECD 평균치보다 상대적으로 좋은 이유는 일종의 착시현상에 불과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OECD 회원국과 비교했을 때 국내 사회보장제도는 턱없이 미흡하고, 노인인구 가운데 농림어업 종사자와 자영업주 비중이 높아 이들이 실업자로 전락할 확률이 낮은 이유에서다.

그런가 하면 한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고령화 속도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00년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에 달하는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데 이어 오는 2018년에는 노인인구 비중이 14%에 달하는 ‘고령사회’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어 2026년에는 그 비중이 20%에 이르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8년, 고령사회에서 초고령 사회로 바뀌는데 불과 8년밖에 걸리지 않는 셈이다.

국내 노인 고용의 문제는 또 있다. 그들의 고용 질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고용부가 지난해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등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50대 이상 취업자 2명 중 1명(48.2%) 정도가 비정규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경제적인 이유로 짧은 시간을 일한 노동자 중 추가 취업을 희망하는 ‘불완전 취업자’ 비율도 갈수록 늘고 있으며,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한 비임금근로자 비율 역시 48.6%로 모든 연령대 평균치 30%보다 높다.

노인 일자리는 단지 생계나 용돈벌이 욕구를 채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활동을 하다보면 정신적 안정과 신체적 건강에 도움이 되고, 집안의 어른으로서 가정 내 지위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은 매우 빠른 고령화 속도에도 불구하고 사회보장제도가 미흡하기 때문에 노인 일자리 창출은 고령화 사회의 어떤 당면과제보다 중요하고 시급하다.

종묘공원은 마땅한 일거리가 없는 노인들의 유일한 해방구다. 혼자 사는 노인들은 물론 가족과 함께 사는 노인들 역시 자식들의 눈치와 괄시를 피해 종묘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노년층에게 이곳은 ‘마지막 남은 사교 공간’인 셈이다. 2007년 탑골공원이 사적지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탑골공원으로 나오는 노인들이 많았지만 사적지 지정 이후 정부와 경찰의 단속·관리가 심해지면서 노인 대다수가 종묘공원으로 옮겨왔다.

종묘공원을 찾는 노인들의 하루 일과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단조롭다. 대부분 이른 아침 집을 나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종묘공원에 나온다. 벤치에 앉아서 햇볕을 쬐거나 신문을 읽으면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점심때가 다가오면 인근 무료급식소를 찾아 공짜 점심을 얻어먹는다. 그리고는 다시 종묘공원으로 돌아와 벤치를 채우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운동 삼아 산책을 한다.

자식 눈치만 ‘슬슬’
노인 학대 자살로 이어져

음주를 좋아하는 노인들은 잔 단위로 판매하는 막걸리나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여느 젊은이들이 그렇듯 이성에게 관심을 보이는 어르신도 있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돌아간 집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자식들의 눈치가 이만저만이 아닌 탓에 집에 돌아가면 오히려 더 외롭고 고독하다는 노인이 많다. 이런 심리적 불안감이 노인자살로 이어지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노인자살은 더 이상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노인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얻었다. 지난 10년 사이 노인 자살이 3배나 늘었고, 65세 이상 자살률이 65세 미만 자살률보다 4배가 높다.

지난해 통계청의 ‘2009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노인 자살의 가장 큰 이유는 질환·장애(40.8%)였고, 29.3%는 경제적 어려움이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외로움과 가정불화가 각각 14.2%, 10.4%를 차지했으며, 이성문제(0.7%)와 직장문제(0.6%)가 뒤를 이었다.

노인 학대 자살로 이어져 지난해 192명 극단적 선택
노인 50.2% 성생활 영위…3년간 성병 2만 건 급증


그런가 하면 노인학대가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 노인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다.
보건복지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현희 의원에게 제출한 ‘노인 학대 상담·신고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노인 학대 상담건수는 4만6885건, 신고건수는 2674건으로 집계됐다.

노인 학대 유형은 ‘정서적 학대’가 1853건으로 가장 많았고, ‘신체적 학대’가 1127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밖에도 방임(806건), 경제적 학대(554건), 자기방임(129건) 등의 유형이 있었다.


전 의원은 “노인 학대 행위가 노인자살 문제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61세 이상 노인자살자 4614명 중 192명이 ‘학대·폭력문제’로 자살했다”면서 “정부는 노인 학대 문제의 심각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노인 학대 예방 및 근절을 위한 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문제도 노인들의 또 다른 고민거리다. 최근 노인의 성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면서 ‘망측하다’고만 여겼던 어르신들조차 56.2%가 성생활의 중요성에 동감하고 있으며, 26.4%의 노인은 월 1~2회 성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석대학교 나임순 교수는 지난 1일 2009년 보건복지부 자료와 2008년 노인실태보고서 등을 인용해 이같이 밝혔다.
나 교수의 발표내용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들의 성생활 빈도를 조사한 결과 50.2%가 성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월 1~2회’ 성생활을 한다고 답한 노인이 26.4%로 가장 많았다. 이어 ‘3개월에 1~2회’ 11.3%, ‘6개월에 1~2회’ 7% 순이었고, ‘주 1회 이상’ 성생활을 한다는 노인도 5.6%를 차지했다.

스트레스 해소, 부부금실 회복 등 노인들의 성생활에 대한 긍정적인 점들이 부각되면서 실제 노부부들의 성생활이 활기를 띠고 있다.
반면, 배우자가 없는 노인의 경우 잘못된 경로로 성생활을 하게 되면서 성병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어 노인 성병 증가라는 또 다른 문제점을 양산하고 있다.

노인들의 아지트 종묘공원에는 일명 ‘박카스 아줌마’가 존재한다. 박카스를 들고 다니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그곳을 찾는 할아버지들에게 돈을 받고 성관계를 맺는다. 아줌마의 나이대별로 가격 또한 천차만별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인근 여인숙이나 박카스 아줌마의 거주지에서 성매매가 이뤄진다.
노인에게도 성욕이 있기에 무턱대고 비난할 일은 아니지만 최근 3년 사이 65세 이상 노인 성병이 2만 건 이상 급증했다는 사실은 이를 간과할 수 없게 만든다.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를 바탕으로 발표한 바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들의 성병 진료 건수는 2007년 4만4000건에서 2009년 6만4000건으로 2만여 건(43%) 증가했다. 또 전체 성병 진료 중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도 2007년 4.0%에서 2010년 3월 통계 5.5%로 증가했다.

2007년부터 2010년 10월까지 누적된 주요 노인 성병을 질환별로 살펴보면 요도염 및 요도 증후군이 10만3683건으로 다수를 차지했고, 단순 헤르페스 감염이 5만8797건으로 뒤를 이었다. 단일 병종으로는 클라미디아성 질환이 1인당 3건으로 가장 많았고, 1인당 진료비는 만기 매독이 1만원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노인도 성문제 고민
3년간 성병 2만건 급증

이와 관련 손 의원은 “지금까지 터부시 되어 왔던 노년기 성문제가 이제 개인적 차원을 벗어나 사회적 문제화 하고 있다”면서 “인간의 기본욕구인 성은 노년의 삶의 질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이므로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기 전에 시급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급속히 빨라지는 고령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을 위한 사회·제도적 장치가 미흡한 가운데 노인문제 해결을 위해 지방사회, 나아가 정부의 대책마련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가족들의 사랑과 관심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감히 묻는다. “당신의 아버지는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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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