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20)은밀한 계획

한국으로 밀입국 ‘성공할까’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젊은 친구가 능력도 좋네. 나이가 20대 초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게 말이에요.”

“그러면 한국으로 갔다는 말인데.”

“홍콩으로 갔다고 하던데.”

“홍콩. 허허 그 친구 완전히 홍콩 갔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 한국에서는 홍콩을 완전히 꿈의 세상 정도로 비유하여 말하고는 하거든. 그러니까 일종에 횡재한 경우를 두고 홍콩 간다고 하지.”

영자가 홍콩을 되뇌며 미소를 흘렸다.

“그러면 나도 오라버니 덕에 오늘 밤 홍콩 갈 수 있겠네.”

동일이 앙증맞게 웃고 있는 영자의 볼에 가볍게 키스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자가 이상한 눈초리로 동일을 주시했다.

“왜요?”

“왜는, 오늘 내친김에 영자 완전히 홍콩 보내주려 하지.”

“그런데 왜 일어나요?”

“오늘은 밤새 품으려고. 그러면 여기서는 곤란하고 호텔로 가야할 듯해서.”

호텔이라는 소리에 영자의 눈이 동그랗게 변해갔다.

“조금 기다렸다 같이 갈까?”

“그러면 좋겠지만 혹여 손님들이 함께 나가는 모습을 보면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다 단골손님도 떨어져 나갈 수 있고. 그러니 오라버니 먼저 가요.”

“그래서 내가 먼저 일어나는 거야. 여하튼 먼저 가서 목욕재개하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 가게 정리하고 곧바로 오도록 해.”

동일이 영자에게 호텔 이름과 룸 번호를 알려주고는 밖으로 나섰다. 음식점을 나서자마자 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석원이 홍콩으로 출국했다 하였지만 혹시나 모를 일이었다. 아무래도 박정희 대통령 암살과 관련되어 있을 수 있고, 그곳에서 다시 비자를 받고 한국으로 입국할 수도 있었다.


택시를 이용하여 영자와 만나기로 한 호텔에 도착했다. 그곳은 업무상 이용하기 위해 룸 하나를 전세 내 수시로 사용하는 호텔이었다. 마치 제 집 들어가듯 프런트로 다가가 영자에게 언급한 룸을 지목했다. 다행스럽게도 비어 있었다. 즉시 비용을 지불하고 정보부에서 사용하는 룸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공항에 근무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사람에게 어제 홍콩으로 출국한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점검했으나 문석원은 물론 난조 샤쿠겐이란 이름도 나타나지 않았다.

순간 불안한 마음이 일기 시작했다. 하여 어제 홍콩으로 출국한 사람들 중에 20대들의 이름을 모두 불러주기를 요청했다. 상대방이 친절하게도 아니 말투로 보아 동일과 긴밀한 관계로 짐작되는 사람이 차근차근 이름을 나열했다.

한순간 아베 기미코란 이름이 들려왔다.

“잠깐!”

동일이 그 대목에서 순간적으로 소리를 높였다. 문석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은 여자입니다만.”

“그 여인에게 동행은 없었는가?”

연인 남편 이름으로 여권 발급
암살 작전의 서막…작전 성공?

상대방이 잠시 사이를 두었다.

“선배님, 이 사람이 제 남편과 함께 홍콩으로 신혼여행 가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남편 이름은?”

“아베 고타로로 되어 있습니다.”

동일이 아베 고타로를 되뇌며 통화를 끝냈다. 잠시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문석원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즉 연인의 남편 이름으로 여권을 발급받아 그 연인과 함께 신혼여행을 빙자하여 홍콩에 들어간 꼴이 되었다.

다시 전화기를 들어 홍콩 주재 한국 영사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급하게 중정 요원을 찾았다. 어제 오늘 사이에 아베 고타로란 사람이 한국 비자를 받았는지 여부를 질문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 사람에게 혹시 그런 사람이 비자를 신청할 수 있으니 그런 일이 발생하면 급히 연락 달라는 부탁과 함께 통화를 끝냈다.

다시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연인을 대동하고 출국한 일로 보아 암살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면 단순한 여행이란 말인가. 성생활이 자유롭기로 소문난 일본 사회지만 부부를 빙자해서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 일이 쉽사리 납득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잠시 후 자신을 찾아올 영자를 생각해보았다. 그 생각에 이르자 ‘씨익’ 하고 미소를 머금었다.

“홍콩에 다녀온 소감은 어떤가?”

문석원이 홍콩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이호룡에게 전화를 걸었고, 오사카 시내 한적한 다방에서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난생 처음 타본 비행기도 그렇고 홍콩이란 나라 정말 대단하였습니다.”


“홍콩 입국 시 별 문제 없었는가?”

“그냥 여권만 살펴보고는 아무런 제지도 없던데요.”

“홍콩이란 나라가 그래. 그러나 남조선은 다르지.”

석원이 남조선을 되뇌며 슬그머니 이를 갈았다.

“그런데 여권은?”

“제가 보관하고 있습니다. 기미코 역시 그걸 원하고 있고요.”

“당연하겠지. 혹여나 기미코가 보관하고 있다 고타로에게 발각이라도 된다면 문제될 소지가 다분하거든.”
“다시 한 번 부장님의 아이디어에 찬사 보냅니다.”

“찬사라니 이 사람아. 자네 각오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지. 그나저나 이제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야지 않겠나.”


“당연합니다. 하루 빨리 남조선으로 건너가 박정희를 죽이고 말겠습니다.”

박정희라는 부분에 힘이 들어갔다. 순간 이호룡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어느 누구도 두 사람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있었다.

“자네 지금부터는 매사에 신중하게 처신하도록 하게.”

문석원이 자신의 경솔함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듯 슬그머니 뒤통수를 긁적였다.

“자네의 영웅적 계획이 조총련을 통해 북조선 김일성 수령께 보고되었다네. 그러니 이제 자네는 개인 문석원이 아니라 전 조선 인민의 영웅이란 말이야. 그러니 항상 영웅답게 진중하게 임하도록 하게나.”

말을 마침과 동시에 호룡이 봉투를 건넸다.

“집어넣어.”

“무엇입니까?”

“돈일세. 어차피 이제부터는 다른 일은 못할 게 아닌가. 그러니 향후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되는대로 자금을 대 주겠네.”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렇게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요긴하게 쓰도록 하게. 그리고 일이 마무리되면 영웅에 해당하는 대가를 지급받을 걸세.”

“반드시 성공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러면 자리에서 일어나세.”

석원이 무슨 말이냐는 듯 호룡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자네를 격려하기 위해 북조선과 조총련의 고위 인사가 기다리고 있네. 그러니 그리로 가서 인사드리고 함께 식사하도록 하세나.”

이호룡의 뜻밖의 제안에 고무된 석원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다 탁자를 건드렸다. 탁자 위에 있던 컵이 쓰러지면서 물이 흘러내렸다.

“죄송합니다, 너무나 흥분되어‥...”

“사람하고는, 그렇게 좋은가.”

“당연하지요.”

석원이 급히 호룡의 뒤를 따르며 목소리를 높였다. 두 사람이 다방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고급 횟집에 도착하자 안내원이 두 사람을 안내했다. 인도된 방에 들어서자 한눈에 보아도 중후한 맛이 풍기는 남자와 역시 귀티가 물씬 풍기는 여자가 나란히 앉아 들어서는 호룡 일행을 미소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인사드리게. 오면서 말했던 분들이시네.”

호룡의 제안에 석원이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 우왕좌왕했다.

“이 사람이 너무나 과분하여 그런 모양입니다.”  

“너무 그럴 것 없네. 편히 자리하게나.”

남자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석원을 바라보았다. 석원이 조신하게 자리 잡자 호룡이 밖으로 나가려 고개 돌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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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