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사유지 무단점유 진실게임

남의 가게 자리서 ‘배짱영업’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대기업의 갑질 횡포는 지겨울 정도로 많이 접했다. 이번에는 한 기업이 개인 소유의 점포를 마음대로 침범하고 멋대로 개조까지 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갑작스러게 봉변을 당한 점포소유자는 기업을 상대로 힘든 투쟁을 벌이고 있다. 기업은 ‘법대로 해라’ 라는 말을 남기고 영업을 계속 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상황과 양측 입장을 들어보았다.

2002년 노순자(74)씨는 2005년 준공된 성남시 성남동 ‘니즈몰’ 2개 구좌를 계약한 후 준공과 함께 상가를 취득했다. 최초 분양가는 1구좌당 7339만원이었다. 상가는 복잡하고 많은 이해관계로 인해 장기간 상권이 형성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0년 3월경 ‘니즈몰관리단’에서는 노씨에게 상가 전체를 이랜드그룹에 임대 하겠다며 동의를 구했다.

들어가려면
빙 둘러가야

노씨는 니즈몰관리단을 믿을 수 없어 임대에 동의하지 않았다. 임대계약에 반대하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니즈몰관리단은 2010년 10월경 1구좌당 월 임대료는 11만원, 10년간 장기임대계약을 다시 한 번 요구했다.

노씨는 무리한 요구라고 판단해 다시 한 번 이 같은 요구를 거절했다. 그 후 2010년 말 상가를 확인하러 간 노씨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상가 지하에 있는 자신의 점포 자리에 이랜드리테일이 오픈한 ‘애슐리’모란점이 들어서 있었던 것.

황당해진 노씨는 이랜드리테일의 무단점유 영업사실에 항의하며 대책을 요구했지만 ‘법대로 하라’는 답변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이랜드의 배째라식 대응에 노씨는 2011년 3월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 건물관리를 맡고 있는 이랜드리테일 등을 상대로 소장을 접수하기에 이른다. 선고는 2012년 10월26일 내려졌다. 재판부(민사5단독 박은영)는 점유 부분을 인도하고 1351만원을 물어주라며 노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와 함께 각 부동산을 인도할 때 까지 월 27만5000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노씨는 이 같은 법원 판결에 따라 2012년 11월경 애슐리 모란점이 점유하고 있던 자신의 점포를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건은 끝이 아니었다. 노씨의 점포는 애슐리 모란점 주방과 각종 시설물들에 막혀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에 노씨는 2012년 12월경 내용증명을 통해 이랜드리테일이 무단으로 점유하기 전 상태로의 원상복구를 요구했다.

노씨의 요청에도 이랜드리테일 측은 계속해서 조치를 미뤘다. 이에 노씨는 계속해서 국민신문고, 성남시청, 중원구청 등을 통해 강하게 항의했다.

개인점포에 애슐리 오픈하고 “상권 살렸다”
출입구 막혀 정상적인 영업 못해도 ‘나몰라’

계속된 갈등에 이랜드리테일은 2012년 12월26일 애슐리 모란점을 자진 폐업하기에 이른다. 노순자씨는 애슐리 모란점이 폐쇄되자 자산의 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다시 한 번 이랜드리테일에 자신의 점포를 가로막고 있는 칸막이를 철거해달라며 내용증명을 보냈고, 2013년 4월10일에는 청와대비서실에 대기업으로 인한 상가 미사용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랜드리테일은 이 같은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 또 다시 갈등이 고조됐다. 그러던 중 2013년 4월경 이랜드리테일은 담당직원을 통해 1구좌당 5500만원에 상가 매매의향을 물어왔다. 분양가보다 적은 금액에 노씨는 이를 동의하지 않았다. 이어 4월15일에는 이랜드리테일에 칸막이 철거 및 통로확보를 요청하는 세 번째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랜드리테일은 노씨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상식 이하의 방법으로 대응했다. 전용면적만큼 식당 일부를 철거한 후 벽을 쌓은 것이다. 공용부분인 통로는 자신들이 사용하고 대신해 전용부분을 통로로 만들었다.

거듭된 소송
커지는 대립

노씨의 점포 입구는 엉뚱한 곳으로 바뀌고, 상가로서는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두 구좌의 전용면적 각 3749㎡는 돌려줬기 때문에 형식상으로는 법원 판결에 따른 것처럼 보인다. 다만 점유하고 있는 점포들의 공용면적 부분을 자신들에게만 유리하게 활용했다는 점에서 노씨 측은 분노했다.

이에 따라 노씨의 점포로 가기 위해서는 지하 1층 내부의 문을 지난 후 가장 바깥쪽 벽을 따라 폭 1m 가량의 통로 십 수 미터를 지나야만 한다. 점포가 아닌 창고처럼 바뀌어 버린 것.

이랜드리테일은 적절한 조치도 없이 애슐리 영업점을 재개장 하려고 했다. 이에 반발한 노씨는 성남시와 관할 중원구청에 애슐리 영업 허가를 내주지 말 것을 강하게 요청했다.

노 씨는 2015년 8월18일 중원구청과 성남시청 민원게시판을 통해 “이랜드 영업이 재개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보더라도 권리행사를 할 수 없는 점포가 되고 만다. 전용면적을 찾기 위해서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면서 법원 판결을 받은 상가인데 권리행사를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면 힘 있는 기업은 살고 소시민은 장사도 못하게 된다”면서 영업을 허가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 같은 요구에 성남시청은 중원구청에 모든 책임을 떠 넘겼다. 또 중원구청은 2013년 4월9일 민원에 대한 답변을 통해 “모란 뉴코아아울렛 지하 1층에 식품접객업소 영업 신청 시, 건축법 등 타 법령 저촉여부를 검토하고 식품위생법에 의한 구비서류및 시설을 갖추었는지 확인하여 규정에 적합할 경우 영업신고 처리할 예정”이라고 모범답안만을 답했을 뿐이다.

원상복구 요구에 “법대로 하라”
치열한 신경전 상반된 주장 펼쳐

현재 노씨는 마포경찰서에 집회신고를 하고 이랜드리테일 본사 앞에서 집회를 진행중이다. 노씨 측은 “빨리 해결하고 싶어 이랜드리테일 측 담당자와 협의해 마무리 하려고 했지만 그것마저도 이랜드리테일에서 핑계를 대며 가격을 낮추고 있다”며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돈을 노리고 행패부리는 사람처럼 대하는 이랜드측의 대응이 매우 불쾌하다”고 말했다.

또 “정말 협의할 생각이 있다면 영업방해, 명예훼손 등으로 소송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이대로 나온다면 진짜 법대로 끝까지 가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랜드 측은 노씨와 상반되는 주장을 했다. 회사 관계자는 “건물자체도 구분소유자가 몇백명 몰려있던 것이고 그분들이 투자한 것에서 아무것도 못 건지는 상황이었는데 이랜드가 들어가서 상권을 살렸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노씨의 행위는 거액의 돈을 노린 알박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상식이하의 시위로 20억원 이상 손해를 본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매장에서 생선을 굽기도 하고 피뭍은 옷을입고 장사를 방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 측도 빠른시일 내에 해결이 되야 정상적인 영업을 할수 있어 적절한 금액을 제시하고 있지만 노씨 측에서 높은 금액을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거액 노리고…
일종의 알박기”

노씨 측은 이 같은 이랜드측의 입장에 대해 “처음부터 분양을 받았기 때문에 알박기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면서 “집합건물이라고 개인의 상가에 심하게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용도변경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상가를 완전 폐쇄하여 창고로 만들어 버린 대기업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씨는 “개방이 되고 통로도 확실하게 만들어짐과 동시에 수도 가스를 같이 사용할 수 있게끔 하여 상가로서의 권리행사가 가능하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ktikt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갑질’ 11개 공기업 어디?


지난 12월 15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공기업 불공정행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공정위 시장감시국은 국가공기업 2곳과 지방공기업 11곳의 각종 불공정거래행위를 적발, 총 33억원을 부과하고 시정명령 등 제재 조치를 내렸다.

공정위에 따르면 EBS는 자사 교재를 수학능력 시험과 연계하는 정부 정책의 결과로 얻은 고3 참고서 시장의 독점력을 이용해 2013년 1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총판 100여곳에 수능과 무관한 교재(초등ㆍ중학ㆍ고교 1~2학년용) 판매를 강제했다. 독립 사업자인 총판은 EBS와 민간 출판사에서 물건을 받아 학교나 서점, 학원 등에 판매한다.

EBS는 수능 비연계 교재의 판매실적에 수능 연계 교재의 최대 5배에 달하는 점수를 배정한 뒤, 총판이 수능 비연계 교재를 많이 팔지 못해 낮은 점수를 받으면 계약을 종료하는 식으로 총판을 압박했다. 실제 EBS는 평가 점수가 낮은 총판을 2013년에 5곳, 2014년에 3곳 퇴출했다. 공정위는 “총판은 수능 연계 교재 판매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EBS 수능 비연계 교재를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EBS는 또 총판 별로 판매지역을 설정한 뒤 총판이 다른 지역에 교재를 판매하는 것을 막았다. 이는 총판 간 경쟁을 막아 소비자 이익을 감소시킨다는 것이 공정위 판단이다. EBS는 2009년에도 비슷한 건으로 시정명령을 받은 바 있다. 공정위는 EBS에 과징금 3억5000만원을 부과했다.

국내 4대 발주기관 중 한 곳으로 지난해 발주 규모가 5조4700억원에 달하는 철도시설공단도 민간 건설사를 상대로 갑의 지위를 남용한 것으로 조사돼 과징금 7억3200만원을 물게 됐다. 철도시설공단은 2013년 4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수도권고속철도 수서~평택 제4공구 건설공사’등 턴키공사 3건에서 설계 계약을 바꾸면서 추가 비용을 임의로 하향 조정해 시공사 10곳에 총 27억7000만원의 공사대금을 부당 감액했다.

아울러 철도시설공단은 2013년 시공사 68곳을 상대로 ‘공사기간 연장에 따른 간접노무비, 임차료 등 간접비 지급을 발주처에 청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강제로 받아 냈고, 2010~2014년 자사 과실로 부과 받은 과태료 1976만원을 시공사에 전액 떠넘기기도 했다.

국가공기업뿐만 아닌 지방공기업들의 횡포도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방공기업은 경기도시공사·울산도시공사·경남개발공사·광주도시공사·전북개발공사·전남개발공사·제주개발공사·충남개발공사·경북개발공사 등으로 과징금 총 22억400만원이 처벌됐다. 우선 경기도시공사의 갑질 횡포(과징금 21억800만원 부과)가 가장 컸다.

경기도시공사는 지난 2009년 1월부터 2013년 5월까지 ‘광교신도시 물순환시스템 조성공사’ 등 12건의 턴키·대안공사에서 신규비목 단가를 일부 삭감하는 식으로 공사대금을 후려쳤다. 과징금 9600만원이 처벌된 충남개발공사는 2009년 5월부터 13년 5월 기간 동안 ‘충남도청 신도시 개발사업’ 등 6건의 공사와 관련해 공사대금을 부당하게 떠넘겼다.

광주도시공사와 경북개발공사도 각각 ‘진곡일반산업단지 부지조성공사(2012년)’ ‘세계유교선비문화공원 등 진입도로 개설공사(지난 11월)’ 등에 대한 공사대금 횡포를 저질렀다. 또 광주도시공사·전남개발공사·전북개발공사·제주개발공사의 경우는 발주자 책임사유로 공사·용역을 정지하고도 60일을 초과하는 일수에 대한 지연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아울러 경남개발공사·울산도시공사는 당초 계약상의 대금 지급기한보다 늦게 지급하면서 약정된 지연이자를 떼먹었다. 제주개발공사는 자신이 판매하는 제주삼다수의 제주도내 유통 대리점간 판매구역을 설정하는 등 거래지역 및 거래상대방 제한행위를 일삼았다. 제주개발공사는 대리점이 판매구역을 이탈해 생수를 팔 수 없도록 관련 계약해지를 계약서에 규정하는 등의 횡포로 시정명령이 조치됐다. <태>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