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12)역공

한국 정부에 책임 추궁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박 대통령의 유감 표명과 함께 귀국에서 책임있는 분이 직접 일본을 방문하여 이번 사건에 대해 사과해주었으면 하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면 진사 사절을 지칭합니까?”

“그렇습니다.”

고이즈미가 짤막하게 말을 받자 김 대사가 가볍게 신음을 내뱉었다.

“누구를 지칭하는 겁니까?”

조 참사관의 질문에 고이즈미가 답하지 않고 다시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면‥‥‥.”

“김운정 국무총리를 진사 사절로 보내주기를 요청하였습니다.”

김운정 총리를 지목하자 방안은 일순간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그렇게 해 주셔야만 그나마 양국 관계가 정상 궤도를 찾아갈 수 있다 봅니다. 아울러.”

모두의 시선이 고이즈미의 입으로 향했다.

“요구사항은 아니지만 폐쇄시킨 요미우리 서울 지국에 대해서도 아량을 베풀어 주시기 바라는 바입니다.”

“김운정 총리의 사과 건은 별개로 하더라도 그는 현재로서는 불가합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한번 역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조 참사관의 말에 고이즈미가 기어코 찻잔을 입으로 기울였다.

“요미우리는 그야말로 근거도 없이 아니 일부러 없는 사실을 만들어 대한민국을 악의적으로 보도하였는데 그를 인정하면 우리 입장은 어찌되겠습니까. 아울러 지금도 간혹 요미우리의 헬기가 대사관 상공을 배회하며 감시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우리가 그를 문제 삼지 않는 사유는 작금에 사건을 악화시키지 않으려 부드럽게 끌고 가고자함임을 밝힙니다.”

조 참사관에 이어 김효 대사가 거들고 나서자 찻잔을 내려놓은 고이즈미가 가볍게 한숨을 토해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도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조처 취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까지 가만히 정황을 살피던 유 영사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영사께서도 하실 말씀이 있는 모양입니다.”

“대사관도 물론 그렇겠지만 오사카 영사관은 그야말로 매일매일 위협과 공포 속에서 업무를 보지 못할 정도입니다.”

잠시 운을 뗀 유 영사가 작금에 발생하고 있는 협박에 대한 이야기를 곁들였다.

“난조 샤쿠겐이라 하였습니까?”

“분명히 언급하더이다. 한청 소속이라고.”

“한청이라면 재일 한국인일 터인데‥‥‥.”

고이즈미가 말하다 말고 양해를 구하고는 책상으로 다가가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자리로 돌아왔다.

“신원이 확인되었습니까?”

“오사카 경찰과 통화했는데 윤대중 씨가 일본에 체류할 때 열렬하게 따라다녔던 한청 이코노구 부지부장인 재일 한국인 문석원이라 합니다.”

“이코노구 부지부장, 문석원!”


박정희를 타깃으로

세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흘러나왔다.

“여러분, 모두 주목해주세요!”

낮고도 엄숙한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한청 주최 캠핑에 참여하여 풀밭에서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만치 연단 위에 한청 오사카 위원장인 김성남이 행사를 축하해주기 위해 참석한 중앙위원장 고영진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그 둘의 모습을 확인한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단 앞으로 몰려들었다. 문석원 역시 형인 문동원 그리고 한청 이코노구 지부 사무국장인 박상철과 다소 먼 지점에서 담소를 나누다 자리를 이동했다.

“우리 행사를 축하해주기 위해 고영진 중앙위원장께서 어렵게 이 자리에 참석해주었습니다. 하여 위원장님의 격려의 말씀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려 합니다. 그러니 모두 박수로 위원장님을 환영해주기 바랍니다.”

김성남의 소개 인사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일어났다. 그와는 달리 문석원은 박수 치기는커녕 고영진을 노려보았다. 물론 어두움에 덮여 석원의 눈빛은 보이지 않았으나 박수를 치지 않자 바로 곁에 있던 문동원이 석원의 옆구리를 슬그머니 찔렀다.

“박수 안치고 뭐하냐?”

박정희 유감표명 할까?
정치적 책임론 대두

문석원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단상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석원아, 왜 그래!”

“아니 형, 저것도 위원장이라고 박수까지 쳐 주어야 해!”

순간적으로 목소리가 올라가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석원에게 향했다. 동원이 느낌이 이상했는지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살피다 급하게 석원의 손을 잡아끌어 저만치 어둠 속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다행이 단상에서는 둘의 움직임 그리고 내막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

“갑자기 왜 그러냐!”

동원이 씩씩거리는 석원의 어깨를 잡고 풀밭에 앉혔다.

“저 새끼 생각만 하면 그냥 화가 솟구치는데 무슨 박수를 쳐!”

석원이 금방이라도 일어나 단상으로 뛰어나갈 기세를 보이자 동원이 급하게 팔을 잡았다.

“무슨 일인지 내게 이야기해주지 않을래.”

순간 슬그머니 다가온 박상철이 석원 옆에 자리 잡았다.

“석원아, 갑자기 왜 그래?”

“지금 우리가 생고생하는 게 바로 저 인간 때문인데. 저 인간 때문에 윤대중 선생께서 납치당하여 남조선으로 끌려간 거 아니냐!”

고영진이 윤대중이 일본에 체류할 당시 경호 책임을 맡았었던 일을 의미했다. 그제야 석원의 행동이 이해된다는 듯 동원과 상철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단지 그것 때문이냐?”

“단지라니, 형. 그게 작은 일이야. 그리고 지금 정부 쪽 이야기를 들어보면 윤대중 선생께서 일본에 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던데.”

“물론 희박하지. 그런데 그걸 전적으로 고 위원장의 책임만으로 몰아세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 장소도 그렇고 상대도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목숨이라도 내놓고 막을 각오를 하고 있어야지. 그저 생색만 내려 했으니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 아냐!”

“석원이 말도 일리 있는 거 아닌가요?”

잠자코 있던 박상철이 은근히 석원을 거들고 나섰다.

“박 국장은 또 무슨 소리냐?” 

“그렇게 큰일을 실기했으면 자숙하고 있어야지. 무슨 낯으로 이곳에 와서 또 대우 받으려 한다는 말입니까?”

“여하튼 지금은 너희들 감정을 그대로 노출시킬 자리가 아니야. 그리고 어차피 끝난 일인데 그를 두고 왈가왈부할 수는 없어.”

“석원이 생각 역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다만 인정하기 힘들다는 이야기지요.”

그 말에 동원이 차마 답하기 힘들었는지 그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형, 걱정하지 마. 더 이상 사건 확대시키지 않을 테니.”

석원이 말을 내뱉고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빛이‥‥‥.”

동원이 고개 돌려 저만치 떨어진 단상을 바라보았다.

“왜, 담뱃불을 보고 저쪽에서 우리 존재를 알아챌까 걱정돼서 그래.”

“다들 모여 있는데 우리만 떨어져 있으니 그게 조금 미안하다 그 말이지.”

석원이 담배를 만지작거리다가는 이내 케이스에 집어넣었다.

“이따가 피지 뭐. 어차피 조금 있으면 캠프파이어 겸 술 한잔 할 거 아니야.”

석원이 차분한 소리로 말을 이어가자 동원이 박 국장의 얼굴을 주시하다 다시 석원을 바라보았다.

“너 혹시 무슨 꿍꿍이속이 있어 그런 거 아니냐?”

석원이 답하지 않고 역시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석원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동자가 커져갔다.

“별 일은 아니고 이따가 단합시간에 위원장과 이야기 좀 해야겠다 생각 들어서.”

“무슨 이야기를!”

“빤한 거 아니야. 윤대중 선생에 관한 이야기지.”

“위원장에게 책임 추궁하겠다는 이야기냐?”

“아니.”

“그러면?”

석원이 심드렁하니 대답하자 동원의 목소리가 절로 올라갔다.



<다음호에 계속>

 

[저자는?]

▲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졸업
▲ 정당사무처 공채(13년 근무)
▲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중퇴
▲ 소설가

주요작품
단편소설 <해빙> <파괴의 역설>
장편소설 <삼국비사> <여제 정희왕후> <수락잔조> 등 다수
희    곡 <정희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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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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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논란과 문제가 끊이지 않던 퍼스트레이디가 결국 구속됐다. 김건희 여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부터 사사건건 발목을 잡던 의혹으로 최초로 구속된 영부인이 됐다. 김 여사의 구속 기간인 20일 동안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법원이 지난 13일, 김건희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 발부하면서 최초로 전직 대통령 부부가 모두 구속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대통령보다 힘이 세던 V0이 몰락한 셈이다. 주요 의혹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등으로 김 여사 구속에 성공한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의혹에 대한 수사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증거인멸 도주 우려”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김 여사는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정식 구치소 입소 절차를 거쳤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주소 등 인적 사항을 확인한 후 일반 수용자와 마찬가지로 정밀 신체검사를 진행한다. 이는 마약 등 반입 금지 물품을 지니고 들어왔는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다. 왼쪽 가슴 부분에 수용자 번호가 있는 미결수용 수용복으로 갈아 입고, 얼굴 사진인 ‘머그샷’을 촬영한다. 또 지문 채취와 구치소 내 규율 등 생활 안내, 건강 검진도 받게 된다. 이후 세면 도구와 모포, 식기 세트 등을 받아 본인 ‘감방’으로 향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영부인 신분이 아닌 만큼 일반 수용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게 법무부 측 설명이다. 김 여사는 앞서 수감된 윤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독거실에 수용될 전망이다. 크기는 구인 피의자 대기실과 비슷하며 매트리스와 책상 겸 밥상, 관물대, TV 등이 비치돼있다. 끼니도 구치소에서 제공하는 1700원짜리 음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식사와 목욕도 일반 수용자와 같은 절차에 따르지만, 보안상 다른 수용자와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은 지난 7일, 김 여사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은 법원에 22쪽 분량의 구속영장 청구서와 함께 848쪽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구속 의견서에는 ▲지난 4월4일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 김 여사가 휴대전화를 교체한 사실 ▲탄핵 인용 전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 있는 노트북을 포맷한 사실 ▲김 여사의 ‘문고리’로 불리던 유경옥·정지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 휴대전화를 초기화한 사실 등이 적시됐다. 특검은 ▲김 여사가 지난 6일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한 점 ▲김 여사의 진술이 계속 바뀌는 점 ▲압수된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점 ▲전 대통령실 행정관 등 최측근과 말 맞추기를 시도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여사가 건강상 이유로 입원할 경우 수사에 불응할 가능성이 있다며 구속 사유에 ‘도주 우려’를 포함했다. 영장실질심사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주도했던 한문혁 부장검사 등 8명이, 김 여사 측에선 유정화·채명성·최지우 변호사가 참여했다. 김 여사 측은 이날 약 80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준비했으며 특검도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약 3시간 분량의 프리젠테이션(PT)을 진행했으나 법원은 특검의 손을 들어줬다. 특검팀이 처음 주목한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로 불리는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 게이트로 불리는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이다. 특검팀은 이를 848쪽의 구속 의견서에 담았다. 최초 전직 대통령 부부 구속 의견서엔 구체적 사실 적시 구체적으로 김 여사가 지난 2010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범행에 가담한 공범이라고 판단하며 불법 거래 횟수가 총 3822회에 달한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으로 수익 8억1144만3596원을 얻어내기 위해 70만2512주를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과 공모해 통정매매 188회, 가장매매 12회를 했다고 판단했다. 또 같은 기간 주가를 올리려는 목적으로 높은 값에 사는 척하는 고가 매수 주문 1661회, 주가를 내리려는 목적으로 많은 양의 주식을 파는 척하는 물량 소진 주문 1432회, 허수 매수 주문 367회, 시가·종가 관여 주문 242회 등의 이상매매 주문을 김 여사가 권 전 회장 등과 공모해 제출했다고 봤다. 4년 넘게 김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0월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인식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 여사의 계좌가 주가조작에는 이용됐지만 범행을 알았다는 증거가 없었다는 취지라며 주가조작 공모와 방조 모두 무혐의로 판단했다. 하지만 특검은 보강 수사를 거쳐 방조 혐의를 넘어 공범 혐의를 적용했다. 특검은 2011년 1월경 김 여사가 미래에셋증권 직원과 통화하면서 “6대 4로 나누면 저쪽에 얼마를 줘야 하는 것이냐”며 “2억7000만원을 줘야 하는 것 같다”고 말한 통화 녹취록을 확보해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가 통화 당일 은행 계좌에서 2억7000만원을 수표로 인출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에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 주도 세력인 ‘저쪽’에 수익 40%를 떼어줬다고 판단하고 “시세조종이라는 교묘한 수법을 동원해 재산상 이득을 취했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관련 공천 개입 의혹과 건진법사 전성배씨 관련 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 등에 대해선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공적 지위를 사적으로 활용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특검은 “헌법적 가치가 훼손됐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명씨로부터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에 정치권력과 금권이 개입한 사건’으로 규정하며 “선거제도의 출발점인 공천의 공정성을 훼손하면서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침해했다”고 영장에 적시했다. 또 윤모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으로부터 샤넬 백 2개와 영국 그라프사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총 8000여만원의 금품을 전씨를 통해 전달받은 뒤 통일교 현안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선 김 여사 구속영장을 통해 “종교와 정치가 분리돼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규정했다. 848쪽 의견서 특검은 통일교의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등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지원 청탁에 대해선 “김 여사가 대한민국 정부의 조직과 예산에 대한 사적 개입으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밝혀낸 3가지 의혹의 주요한 사실과 더불어 제시한 ‘증거인멸 정황’이 김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검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매해 김 여사에게 교부한 혐의를 받는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으로부터 전날 제출받은 자수서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진품, 김 여사의 친오빠 진우씨의 장모 자택에서 압수한 목걸이 가품을 영장실질심사에서 제시했다. 이 회장은 자수서에서 “대선이 치러진 2022년 3월 직후 비서실장을 통해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입해 김 여사에게 전달했고 다시 돌려받았다”고 밝혔다. 특검에 따르면 김 여사가 이 회장 측에 진품을 돌려준 시기는 2022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순방 이후 재산 미등록 의혹 관련 고발장이 제출된 2022년 9월 이후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건희 특검팀이 수사하고 있는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사건 ▲명품 가방 수수 사건 ▲명태균·건진법사 등 민간인이 국정에 관여한 국정 농단 사건 ▲인사 개입 사건 ▲채해병 사건 및 세관 마약 사건 구명 로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제8회 전국동시지방 선거 개입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명태균 등을 통해 제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불법 여론조사 등 총 16가지다. 이 외에도 ▲무상 여론조사 제공 대가로 2022년 재보궐선거 공천 거래 등 선거 개입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및 양평 공흥지구 인허가 과정 개입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및 국가 계약에 개입 ▲국가기밀정보 유출 ▲제1호부터 제15호까지의 사건과 이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 및 특별검사의 수사에 대한 방해 행위 등이다. 특검팀은 의혹의 정점인 김 여사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최장 20일간의 구속 기간 동안 아직 풀리지 않은 사건들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대부분의 의혹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건진법사 게이트와 관련된 사건으로, 특검팀은 관련된 사실을 대부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들통난 거짓말 이에 특검팀은 출범 이후 인지한 사건인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베트남에서 귀국한 ‘김 여사 일가의 집사’ 김예성씨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향후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를 중심으로 IMS모빌리티(구 비마이카)에 대가·보험성 투자 혐의가 의심되는 기업들과 김 여사 일가의 사금고 의혹을 받는 신안저축은행, 그리고 김 여사가 운영해 온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전시회 뇌물 협찬 기업들로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우선 특검팀은 이번 김 여사의 구속영장 청구에서 배제됐던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의혹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6000만원대로 알려진 해당 목걸이는 2022년 6월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나토 정상회의 참석 차 유럽 순방 당시 착용했다가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바 있다. 목걸이의 행방을 추적해 왔던 특검팀은 최근 김 여사의 오빠인 김진우씨의 장모집에서 해당 목걸이를 확보했지만 감정 결과 모조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 여사 역시 해당 목걸이에 대해 모친인 최은순씨에게 선물하기 위해 2010년쯤 홍콩에서 구매한 200만원대 모조품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특검팀이 최근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김 여사에게 반클리프 스노 플레이크 목걸이의 진품을 직접 건넸다’는 취지의 자수서를 확보하면서 수사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해당 목걸이를 선물했으며, 몇 년 뒤 김 여사 측으로부터 돌려받아 보관해 왔다는 게 서희건설 측의 설명이다. 서희건설 측은 해당 목걸이 실물도 특검팀에 제출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김 여사는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목걸이 진품을 교부받아 나토 순방 당시 착용한 게 분명함에도 특검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착용한 제품이 20년 전 홍콩에서 구매한 가품이라고 진술하고 김 여사 오빠 인척집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와 동일한 모델인 가품이 발견된 경위에 대해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여사를 비롯한 모든 관련자를 수사 방해 및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 명확히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받은 귀중품 수사 확대 집사 게이트·관저 이전 의혹도 특검팀은 조만간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과 비서실장 최모씨 등을 소환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인척집에서 최소 3000만원 이상의 바셰론 콘스탄틴 여성용 시계 보증서가 발견된 것과 관련해서도 김 여사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수사 중이다. 해당 시계를 구매한 사업가 서모씨는 최근 특검팀 조사에서 지난 2022년, 윤 전 대통령 취임 뒤 김 여사의 부탁을 받아 같은 해 9월7일쯤 자신이 구매한 뒤 직접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시계 구매 자금 중 일부는 김 여사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입장이다. 같은 해 9월 대통령경호처와 1870만원 상당의 로봇개 경호 시범 사업 계약을 맺기도 했다.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서는 핵심 키맨인 김씨가 베트남 호찌민에서 귀국하자마자 특검팀은 인천공항에서 체포해 특검 사무실로 압송해 즉시 조사에 착수했다. 김씨의 체포 기한이 영장 집행 기준 48시간 이내이기 때문에 특검팀은 그 안에 수사를 마치고 구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김씨 역시 특검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특검팀은 김씨를 상대로 집사 게이트에 연루된 기업들의 184억원 투자 경위와 46억원의 행방 그리고 코바나콘텐츠 뇌물 협찬 의혹을 집중 추궁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씨가 운영한 렌터카 플랫폼 사이드스탭 ‘뿅카’는 비마이카와 함께 2015~2019년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4개 전시회 협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은 물론 신안저축은행을 대상으로 특검팀의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특검팀은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이 IMS모빌리티에 거액을 투자하기 전후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사받은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지난 11일, 관련 자료 제출 요구를 위한 정부세종청사 공정위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기도 했다. 김 여사 일가가 운영하는 이에스아이엔디(ESI&D) 등에 130억원이 넘는 대출을 해준 것으로 알려져 사금고 논란이 제기된 바 있는 신안저축은행은 코바나콘텐츠 전시회에도 협찬했다. 신안그룹 회장 차남인 박지호(개명 전 박상훈) 전 신안저축은행 대표는 2010년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EMBA)에서 김 여사와 김씨를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인연이 이어져 2013년 3월 신안저축은행의 각종 불법 대출 혐의가 불기소 처분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가 바로 윤 전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김씨는 박 전 대표의 집사 역할을 했다는 의혹도 있다. 박 전 대표는 신안저축은행이 2017년 김씨와 모친 최은순씨의 329억원대 허위 잔고 증명서 사건의 피해자였음에도 이듬해 김씨를 계열사인 바로투자증권(현 카카오페이증권) 임원으로 선임했다. 특검팀 과제는? 특검팀은 관저 이전 특혜 의혹에 관한 수사도 본격화했다. 이들은 지난 13일 “관저 이전과 관련해 21그램 등 관련 회사 및 관련자 주거지 등에 대해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등 혐의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관저 이전 문제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저 이전 특혜 의혹은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실과 관저 이전·증축 과정에서 21그램 등 무자격 업체가 공사에 참여하는 등 실정법 위반이 있었다는 게 핵심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