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인터뷰 -어떻게 지내십니까> ‘마지막 황손’ 이석

“어떤 사람이 될까? 지금도 고민해요”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승광재(承光齋)는 고종의 연호인 ‘광무를 이어간다’는 뜻의 이름으로 조선 26대 임금 고종의 손자이자 마지막 황손 이석 황실문화재단 총재가 사는 곳이다. 한때 국민가요로 불린 ‘비둘기 집’을 부른 가수이기도 하다. 지금은 승광재에 자리를 잡고 황실문화재단의 초대 총재로 대학의 역사 문화 교수로 해설사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를 만나본다.

스러진 대한제국 황실 종친 이석 총재. 이 총재는 고종황제의 둘째 아들 의친왕의 아들이다. 왕자로 태어난 그의 일생은 누구보다 파란만장하다. 궁에서 쫓겨나 식당을 열었고, 절집을 떠돌다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현재 기거 중인 전주 한옥마을에서 그를 만나 근황과 남은 포부를 들었다.

비운의 왕자

그는 자신의 유년시절과 부모의 관한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 의친왕께서는 당시 62세, 어머니께서는 창덕궁 전화 교환원이었습니다.”

딸 부잣집의 장녀였던 그의 어머니는 피부가 하얗고 선한 외모의 단아한 여성이었다. 외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간 궁에서 의친왕의 눈에 들어 1941년 왕자 이 총재가 태어나게 된다. 그는 어린시절을 만평정도의 규모와 십여 채의 한옥 공간이 있는 사동궁에서 보냈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던 그에게 첫 시련은 6·25 전쟁이었다.


“제가 9살 때 6·25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아버님은 저희가족들을 데리고 부산의 포교원으로 피난을 했습니다.” 전쟁 후 어려운 생활이 이어지다 1955년 8월15일 의친왕이 임종한다. 무더운 여름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명동성당에서 장례식을 치뤘다. 의친왕의 임종 후 가족의 생활은 어렵고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고달픈 인생의 서막이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신후 저는 가장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안해본 일이 없는 그는 타고난 목소리가 좋았다. 사회도 보고 음악다방에서 DJ활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중 한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우연하게 노래자랑 대회에 참가해 1등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룬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작은 돈을 벌어서 어머니께 가져다 드리곤 하면 어머니께서는 슬픈 표정을 지으시며 저를 안타까워하셨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었지만 그것마저도 쉽지 않은 길이었다. 큰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던 것이다. “‘나라가 망하더니 왕손이 광대가 되었구나’하시며 땅을 치며 통곡을 하시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는 차라리 젊은 몸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쳐야겠다는 생각으로 월남 파병에 자원입대 했다. 월남 파병중 부상을 입은 그는 상이용사가 되어 돌아와야만 했다. 어머니는 그 충격과 스트레스로 그가 고국에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생활고 때문에 가수로 활동
처지 비관해 극단적 선택도


“동생들과 저는 힘든 날을 보내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매일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중 그에게 한 작곡가가 찾아오게 되는데 월남에서 있었던 부대 이름을 따 ‘비둘기 집’ 이라는 노래를 들고와 그에게 가수가 되기를 권했다. ‘비둘기처럼 다정한∼’으로 시작하는 노래는 한번쯤 들어본 곡일 것이다. 하지만 가수 이석으로서의 삶도 오래가진 못했다. ‘외로운 조약돌’, ‘두마음’ 등 노래가 나왔지만 외로움과 힘든 부분을 채워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1979년 10·26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칠궁에서 살았습니다.”

사적 제149호인 칠궁은 조선 왕의 친모이지만 왕비에 오르지 못한 후궁 7인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신군부는 박정희 대통령의 배려로 청와대 인근인 이곳에 살고 있던 이석 황손을 헌병대를 동원해 내쫓았다. 조선왕실 재산환수나 품위유지 같은 것은 바랄 수도 없었다.

그 해 12월9일 그는 “다시는 이 나라에 돌아오지 않겠다”며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잔디깍기, 수영장청소, 술상자 나르기, 이삿짐 나르기 등 힘겨움에 잠시 고국도 잊고 살았다.

“1989년 이방자 숙모와 덕혜고모님께서 낙선재에서 돌아가시자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국을 방문하고보니 고국에 대한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신이 들었습니다.”
 

고국의 대한 사랑으로 다시 돌아온 그였지만, 미국이나 고국이나 힘든 삶은 여전했다. 빈곤한 생활이 이어지자 그는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약을 먹고 도봉산 절벽에 매달린 적도 있다고 했다.

“어느 찜질방에 머무르면서 유서를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복궁 대문에 부딪혀 생을 마감하려 했던 그는 찜질방에서 자신을 알아본 한 주간지 기자의 만류에 자살을 포기했다. 그 기자는 정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손이 찜질방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그렇게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이후 일간지·잡지·외신 할 것 없이 인터뷰 요청이 쇄도해 화제가 되곤 했다. 이를 계기로 전주와의 인연이 생겼다. 한 지인이 주선해 2003년 8월 전주의 한 식당에서 강연을 했다.

이후 당시 김완주 전주시장이 한옥 600채가 들어서는 대규모 한옥마을을 조성하기로 하고 그에게 150평짜리 한옥을 지어줬다. 고종황제의 뒤를 잇는다는 뜻으로 승광재(承光齋)라 이름 짓고 2004년 10월부터 이곳에서 살고 있다.

“당시 62세였는데 따뜻한 전주시민의 환대에 고마운 마음으로 정을 붙이며 살게 되었습니다. 13년간의 생활 동안 어려운 상황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현재 전주시민의 과한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제가 건강하게 지내는 동안 어떻게 보탬이 되는 황손으로 살까, 어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까? 늘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박정희, 노무현…
대통령 인연 눈길


이 총재는 ‘살아있는 역사’라는 별명에 맞게 역대 대통령들과의 일화도 많다. 

“모든 걸 말씀드리기 곤란하지만 기억에 남는 몇 분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강인에 보이지만 진실성이 있고 정이 많으신 분’이라고 첫인상을 설명했다. “‘황성옛터’를 불러드렸는데 늘 쓰고 다니시던 검정 선글라스 아래로 눈물이 흐르니까 슬그머니 훔치시며 노래를 들으셨습니다. 강인함 속에서 잔잔한 고향 같은 분으로 남아있습니다.”

다음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만남이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 후 이 총재가 살고 있는 전주에 내려온 적이 있다. 행사 후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황손께서는 무엇이 소원입니까?”하고 물었다. 이 총재는 서울 고궁박물관에 보관 중인 태조 이성계 할아버지의 어진을 전주의 경기전으로 보내 달라고 간청했고, 2008년 10월23일 어진 봉안행렬이 전주에 내려오게 됐다.

“약속을 지켜주신 것만으로도 노무현 대통령께 감사함을 느낍니다. 노 전 대통령은 오래전 만나왔던 친숙함이 배여 있어서 아주 편한 분으로 남아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내비췄다.

평범한 삶


“박근혜 대통령은 더 조심스럽습니다만 대통령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은 항상 측은지심입니다. 아마도 그 옛날 제가 부모님을 잃고 살았을 때의 기억이 작용한 거겠지요.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 당당하고 건강하게 정국(靖國)을 마무리 해 주실 거라 믿고 먼 발치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행사에서 여러번 뵈었기 때문에 직접 담소 나눌 기회는 없었지만 기억하실 것입니다. 어려운 경제문제, 국제적 관계에서의 대한민국의 위상을 잘 지켜주시리라 믿고 응원하겠습니다.”


<ktikt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석 부친 의친왕은?

의친왕은 1877년생으로 순종황제보다 세 살 많다. 62세에 이석을 낳았다. 의친왕은 1900년대 초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에 있는 대학을 5년 간 다녔다고 한다.

당시 조선 황족 중에서 유일하게 항일투쟁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 그는 일제 경찰의 감시를 피해 기차로 평양을 거쳐 신의주에서 압록강철교를 건너 만주 안둥[安東: 현 랴오닝성 단둥]에 도착했다. 하지만 의친왕이 자택에서 사라지자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전개한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다시 국내로 송환됐다.

그의 망명실패로 국내 항일 조직이었던 대동단 조직도 큰 타격을 입었다. 1927년 그 뒤 여러 번 일본 정부로부터 도일을 강요받았으나, 거부하고 끝까지 배일(排日)정신을 지켰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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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로 열린 윤영호 게이트

좌우로 열린 윤영호 게이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를 둘러싼 정치권 로비·금품 제공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이른바 ‘통일교 특검’이 본궤도에 올랐다. 여야는 통일교의 정치권 금품 지원 의혹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법을 각자 발의한 뒤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와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김은혜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지난 22일 국회에서 만나 이같이 합의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31일 “2차 종합특검, 통일교·신천지 특검(법의 국회 통과)을 설(내년 2월17일) 연휴 전에 반드시 마무리짓겠다”고 밝혔다. 정치인 줄줄이 특검 수사의 초점은 정치인 개개인의 비위 여부를 넘어, 통일교가 어떻게 조직적으로 정치권에 접근해 정책·인사·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살펴볼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 제공이 있었는지 여부도 핵심이다. 수사선상에는 통일교 지도부와 핵심 실무 라인은 물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실명이 거론된 정치권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포장된 정치 로비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특검은 출범과 동시에 통일교 내부 자금 흐름과 의사결정 구조를 정밀 추적하고 있다. 수사의 출발점은 통일교 고위 간부였던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의 진술과 관련된 자료다. 윤 전 본부장은 검찰·경찰 조사 과정에서 “정치권 인사들에게 현금과 고가 물품이 전달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이 진술의 신빙성을 가리기 위해 통일교 본부 및 산하 단체 회계, 자금 집행 내역, 내부 문건을 대거 확보해 분석 중이다. 통일교 측은 “조직 차원의 불법 지시는 없었다”며 일부 인사의 개인적 일탈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으나, 특검은 지도부 보고·승인이 있었는지 여부를 핵심 쟁점으로 보고 있다. 이번 특검이 주목받는 이유는 수사의 외연이 정치권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와 수사 과정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 전·현직 의원, 광역단체장, 정부 인사들의 이름이 잇따라 등장했다. 민주당에서는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임종성 전 의원, 강선우 의원,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이름이 언론 보도에서 거론됐다. 국민의힘 계열에서는 권성동 의원, 김규환 전 의원 등이 수사 관련 기사에 등장했다. 이들 대부분은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거나 “통일교와의 접촉은 공식 행사 차원이었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특검은 진술과 물증을 대조해 사실관계를 가려내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계열에서 가장 먼저 거론된 인물은 전 전 장관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2018년 전후 통일교 고위 인사로부터 현금 또는 고가 물품을 받았다는 취지의 진술이 수사 과정에서 나왔다. 여야 각자 특검법 발의 후 협의키로 여야 막론 정교 유착 전모 밝혀지나 해당 의혹은 윤 전 본부장의 진술을 통해 처음 알려졌고, 이후 경찰과 특검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핵심 쟁점은 실제 금품 전달 여부와 함께, 당시 전 전 장관의 직무와 관련된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다. 전 전 장관은 관련 보도 직후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해 오고 있다. 같은 당의 임 전 의원 역시 통일교 정치권 로비 의혹 명단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의 경우 구체적인 금액이나 전달 시점이 특정되지는 않았지만, 통일교 측이 “여야 정치인 다수에게 자금을 전달했다”는 취지로 진술하는 과정에서 실명이 언급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매체는 특검이 임 전 의원을 포함한 인사들에 대해 소환 조사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쟁점은 통일교와의 관계가 단순한 접촉 수준이었는지, 아니면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하는 금품수수로 이어졌는지다. 임 전 의원 역시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을 부인하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도됐다. 강 의원은 금품수수보다는 ‘접촉·관리 대상’ 의혹으로 이름이 거론됐다. 보도된 통일교 관계자 간 통화 녹취 또는 내부 언급에서 강 의원의 이름이 등장했다는 내용이 전해지면서다. 해당 보도들은 통일교 측이 정치권 인사들을 분류·관리하며 접근 전략을 세웠다는 의혹을 전하는 맥락에서 강 의원을 언급했다. 현재까지 강 의원과 관련해 현금이나 물품 제공 정황이 확인됐다는 보도는 없다. 그는 통일교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노 전 실장 역시 통일교 인사 간 통화 녹취 또는 내부 문건에서 이름이 언급됐다는 언론 보도로 연관 의혹이 제기됐다. 그의 경우도 금품수수 의혹보다는, 통일교가 ‘영향력 있는 정치·권력 인사’로 인식하고 접촉을 시도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노 전 실장 측은 통일교와의 불법적 관계나 금품수수는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계열에서는 권 의원이 통일교 특검 국면에서 가장 무겁게 거론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측이 권 의원에게 정치자금 또는 현금 성격의 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매체는 압수수색이나 계좌 추적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권력 과시 여야 통일? 쟁점은 자금이 실제로 전달됐는지, 전달됐다면 정치자금으로 신고됐는지, 그리고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다. 권 의원 측은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통일교 측이 관리·접촉 대상으로 삼았던 정치인 명단 관련 보도에서 이름이 등장했다. 그의 경우도 구체적인 금품 전달 사실이 확인됐다는 보도보다는, 통일교 내부에서 ‘정치권 접점 인사’로 분류됐다는 정황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수사기관은 통일교 자금과의 실질적 연결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 전 의원 역시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을 부인했다. 이들 사례를 시기별로 정리하면 공통적인 흐름이 드러난다. 2018년 전후 통일교 내부에서 정치권 로비를 담당하는 실무·재정 라인이 가동됐다는 진술이 나오고, 2022년 이후 통일교 지도부 관련 사건이 불거지면서 과거 정치권 접촉 내역이 재조명됐다. 2024~2025년에는 경찰 수사와 특검 출범을 계기로 통일교 고위 인사 진술, 녹취, 내부 문건 일부가 언론에 공개되며 정치인 실명 보도가 잇따랐다. 의혹의 유형을 나누면 세 가지로 첫째, 전재수·권성동처럼 현금 또는 정치자금 성격을 띤 자금 제공 의혹이 직접 제기된 경우다. 둘째, 임종성처럼 통일교 측 진술에서 ‘자금 전달 대상’으로 언급됐으나 구체성이 아직 부족한 경우다. 셋째, 강선우·노영민·김규환처럼 통일교 내부 녹취나 문건에서 ‘접촉·관리 대상’으로 거론된 경우다. 특검은 이 세 유형을 종합해 통일교의 정치권 접근이 우발적이었는지, 아니면 계획적·조직적이었는지를 판단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특검의 법적 판단은 몇 가지 체크 리스트에 따라 갈릴 가능성이 크다. 통일교 자금 또는 물품이 실제로 정치인 또는 그 측근에게 전달됐는지에 대한 물증(계좌 흐름, 현금 출처, 구매 내역)이 확보되는지 여부다. 줬다는데 안 받았다 또 해당 정치인의 직무와 관련된 청탁이나 편의 제공 요구가 있었는지, 즉 대가성이 입증되는지다. 이어 자금이 개인 차원의 일탈이 아니라 통일교 지도부 또는 조직의 승인·묵인 아래 이뤄졌는지 여부다. 또 정치자금으로 볼 경우 신고 누락이 있었는지, 뇌물로 볼 경우, 공소시효와 구성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다. 현재까지 통일교 특검에서 거론된 정치인들과 관련한 보도는 모두 ‘의혹 제기’ 또는 ‘수사 진행 상황’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특검이 이 사안을 개별 정치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종교단체가 정치권을 상대로 벌인 장기적 로비 구조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가 소환과 기소 여부에 따라 파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통일교 특검이 향하는 끝이 어디인지, 그리고 정치권 전반의 신뢰 문제로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특검 수사의 또 다른 축은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씨를 둘러싼 고가 선물 수수 의혹이다. 통일교 측이 명품 가방과 귀금속 등을 전달하며 각종 편의를 기대했다는 의혹이다. 이 사안은 정치인 대상 로비와는 별도의 트랙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다만 특검은 통일교 지도부가 동일한 자금·조직 라인을 활용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며, 두 사건을 구조적으로 연결해 보고 있다. 특검이 들여다보는 ‘로비 방식’은 전통적인 봉투 전달에 국한되지 않는다. 통일교 및 연계 단체들은 국제회의, 평화 포럼, ‘평화대사’ 위촉 행사 등을 통해 정치인과의 접점을 넓혀 왔다. 문제는 이 같은 공식 행사 뒤편에서 현금·물품 제공이나 정치적 대가성 요구가 있었는지다. 특검은 행사 전후 일정, 면담 기록, 수행 인력 동선, 통신 기록 등을 종합 분석해 접촉의 성격을 규명하고 있다. 특히 정치자금법상 신고되지 않은 후원이거나, 직무 관련성이 인정될 경우 청탁금지법·뇌물죄 적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린다. 여야 모두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파장 관리에 고심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하나같이 “접촉은 공식 행사 차원” 레퍼토리 반복···한 입서 나온 증언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불법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원칙론을 내세웠다. 여권과 야권 일각에서는 “특검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경계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특검 수사 대상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확대되면서, ‘편파 수사’ 논란은 힘을 잃는 분위기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특검의 성패가 ‘대가성 입증’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한 친분 관계나 종교 행사 참석만으로는 처벌이 어렵고, 금품 제공과 구체적 직무 행위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자금법 위반의 경우 공소시효 문제도 변수로 작용한다. 특검이 초기부터 강제수사에 나선 배경에는 이 같은 시간적 제약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통일교 특검은 한국 정치사에서 반복돼온 ‘종교-정치 유착’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종교의 자유와 정치의 독립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어디에서 충돌하는지, 그 경계선을 명확히 그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수사가 개인 처벌에 그칠지, 아니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통일교 특검이 던진 질문은 “정치가 누구의 돈과 조직에 의해 움직였느냐?”다. 특검의 칼끝이 어디까지 향할지, 그 결과가 한국 정치의 신뢰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핵심 피고인·피의자로는 통일교 지도부(한학자 총재)와 통일교 고위 간부(윤영호 전 세계본부장) 등이 거론된다. 한 언론은 특별검사팀 발표를 인용해 한 총재가 통일교 자금의 유용 및 증거인멸 지시, 정치자금법 위반·뇌물 등 혐의로 기소됐고, 김건희(전 영부인)씨 및 권 의원(국민의힘) 등에게 전달된 것으로 의심되는 금품·자금이 수사의 초점이라고 전했다. 특히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측은 2022년 1월 권 의원에게 1억원을 제공했다는 의혹, 2022년 7월 김씨에게 명품 등을 제공했다는 의혹 등이 ‘수사기관 주장’으로 적시돼있으며, 당사자들은 부인 취지 입장을 밝혀왔다. 로비 자금의 ‘규모’ 논란을 키운 장면은 통일교 핵심 시설(가평 천정궁) 압수수색 과정에서 거액 현금이 발견됐다는 보도였다. <MBC>는 특검 압수수색 당시 한학자 총재 개인 금고에서 외화 포함 약 280억원 상당 현금이 확인됐다며, 이 돈이 통일교 회계와 별개로 관리된 자금이라는 점 때문에 ‘정치권 로비 자금’ 의심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2022년 지방선거 전후 ‘정치 후원금’ 형태의 지원 의혹으로는, 법정 진술을 인용해 유상범 의원(국민의힘), 백경현(경기 구리시장), 김진태(강원도지사) 등의 이름과 액수가 거론됐다고 알려졌다. 또 나온 김건희 통일교 로비 의혹의 ‘작동 방식’으로 자주 지목되는 것은 산하·연계 조직의 외피를 통한 접점 확보다. 예컨대 UPF(천주평화연합) 같은 NGO 성격 단체가 각종 국제 행사(월드서밋 등)를 주최하고, ‘평화대사’ 위촉 등으로 정치인·지자체 관계자·지역 인사들과의 네트워크를 확장해 왔다는 설명이 반복된다. UPF가 권역을 나눠 주요 인사를 접촉·관리하는 구조였다는 의혹을 전하며, 자금 집행과 조직적 접촉이 실제 정치자금 제공이나 청탁과 연결됐는지가 수사의 핵심이라고 짚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