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인터뷰 -어떻게 지내십니까> ‘마지막 황손’ 이석

“어떤 사람이 될까? 지금도 고민해요”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승광재(承光齋)는 고종의 연호인 ‘광무를 이어간다’는 뜻의 이름으로 조선 26대 임금 고종의 손자이자 마지막 황손 이석 황실문화재단 총재가 사는 곳이다. 한때 국민가요로 불린 ‘비둘기 집’을 부른 가수이기도 하다. 지금은 승광재에 자리를 잡고 황실문화재단의 초대 총재로 대학의 역사 문화 교수로 해설사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를 만나본다.

스러진 대한제국 황실 종친 이석 총재. 이 총재는 고종황제의 둘째 아들 의친왕의 아들이다. 왕자로 태어난 그의 일생은 누구보다 파란만장하다. 궁에서 쫓겨나 식당을 열었고, 절집을 떠돌다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현재 기거 중인 전주 한옥마을에서 그를 만나 근황과 남은 포부를 들었다.

비운의 왕자

그는 자신의 유년시절과 부모의 관한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 의친왕께서는 당시 62세, 어머니께서는 창덕궁 전화 교환원이었습니다.”

딸 부잣집의 장녀였던 그의 어머니는 피부가 하얗고 선한 외모의 단아한 여성이었다. 외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간 궁에서 의친왕의 눈에 들어 1941년 왕자 이 총재가 태어나게 된다. 그는 어린시절을 만평정도의 규모와 십여 채의 한옥 공간이 있는 사동궁에서 보냈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던 그에게 첫 시련은 6·25 전쟁이었다.

“제가 9살 때 6·25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아버님은 저희가족들을 데리고 부산의 포교원으로 피난을 했습니다.” 전쟁 후 어려운 생활이 이어지다 1955년 8월15일 의친왕이 임종한다. 무더운 여름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명동성당에서 장례식을 치뤘다. 의친왕의 임종 후 가족의 생활은 어렵고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고달픈 인생의 서막이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신후 저는 가장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안해본 일이 없는 그는 타고난 목소리가 좋았다. 사회도 보고 음악다방에서 DJ활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중 한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우연하게 노래자랑 대회에 참가해 1등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룬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작은 돈을 벌어서 어머니께 가져다 드리곤 하면 어머니께서는 슬픈 표정을 지으시며 저를 안타까워하셨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었지만 그것마저도 쉽지 않은 길이었다. 큰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던 것이다. “‘나라가 망하더니 왕손이 광대가 되었구나’하시며 땅을 치며 통곡을 하시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는 차라리 젊은 몸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쳐야겠다는 생각으로 월남 파병에 자원입대 했다. 월남 파병중 부상을 입은 그는 상이용사가 되어 돌아와야만 했다. 어머니는 그 충격과 스트레스로 그가 고국에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생활고 때문에 가수로 활동
처지 비관해 극단적 선택도

“동생들과 저는 힘든 날을 보내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매일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중 그에게 한 작곡가가 찾아오게 되는데 월남에서 있었던 부대 이름을 따 ‘비둘기 집’ 이라는 노래를 들고와 그에게 가수가 되기를 권했다. ‘비둘기처럼 다정한∼’으로 시작하는 노래는 한번쯤 들어본 곡일 것이다. 하지만 가수 이석으로서의 삶도 오래가진 못했다. ‘외로운 조약돌’, ‘두마음’ 등 노래가 나왔지만 외로움과 힘든 부분을 채워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1979년 10·26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칠궁에서 살았습니다.”

사적 제149호인 칠궁은 조선 왕의 친모이지만 왕비에 오르지 못한 후궁 7인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신군부는 박정희 대통령의 배려로 청와대 인근인 이곳에 살고 있던 이석 황손을 헌병대를 동원해 내쫓았다. 조선왕실 재산환수나 품위유지 같은 것은 바랄 수도 없었다.

그 해 12월9일 그는 “다시는 이 나라에 돌아오지 않겠다”며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잔디깍기, 수영장청소, 술상자 나르기, 이삿짐 나르기 등 힘겨움에 잠시 고국도 잊고 살았다.

“1989년 이방자 숙모와 덕혜고모님께서 낙선재에서 돌아가시자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국을 방문하고보니 고국에 대한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신이 들었습니다.”
 

고국의 대한 사랑으로 다시 돌아온 그였지만, 미국이나 고국이나 힘든 삶은 여전했다. 빈곤한 생활이 이어지자 그는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약을 먹고 도봉산 절벽에 매달린 적도 있다고 했다.

“어느 찜질방에 머무르면서 유서를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복궁 대문에 부딪혀 생을 마감하려 했던 그는 찜질방에서 자신을 알아본 한 주간지 기자의 만류에 자살을 포기했다. 그 기자는 정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손이 찜질방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그렇게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이후 일간지·잡지·외신 할 것 없이 인터뷰 요청이 쇄도해 화제가 되곤 했다. 이를 계기로 전주와의 인연이 생겼다. 한 지인이 주선해 2003년 8월 전주의 한 식당에서 강연을 했다.

이후 당시 김완주 전주시장이 한옥 600채가 들어서는 대규모 한옥마을을 조성하기로 하고 그에게 150평짜리 한옥을 지어줬다. 고종황제의 뒤를 잇는다는 뜻으로 승광재(承光齋)라 이름 짓고 2004년 10월부터 이곳에서 살고 있다.

“당시 62세였는데 따뜻한 전주시민의 환대에 고마운 마음으로 정을 붙이며 살게 되었습니다. 13년간의 생활 동안 어려운 상황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현재 전주시민의 과한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제가 건강하게 지내는 동안 어떻게 보탬이 되는 황손으로 살까, 어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까? 늘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박정희, 노무현…
대통령 인연 눈길

이 총재는 ‘살아있는 역사’라는 별명에 맞게 역대 대통령들과의 일화도 많다. 

“모든 걸 말씀드리기 곤란하지만 기억에 남는 몇 분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강인에 보이지만 진실성이 있고 정이 많으신 분’이라고 첫인상을 설명했다. “‘황성옛터’를 불러드렸는데 늘 쓰고 다니시던 검정 선글라스 아래로 눈물이 흐르니까 슬그머니 훔치시며 노래를 들으셨습니다. 강인함 속에서 잔잔한 고향 같은 분으로 남아있습니다.”

다음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만남이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 후 이 총재가 살고 있는 전주에 내려온 적이 있다. 행사 후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황손께서는 무엇이 소원입니까?”하고 물었다. 이 총재는 서울 고궁박물관에 보관 중인 태조 이성계 할아버지의 어진을 전주의 경기전으로 보내 달라고 간청했고, 2008년 10월23일 어진 봉안행렬이 전주에 내려오게 됐다.

“약속을 지켜주신 것만으로도 노무현 대통령께 감사함을 느낍니다. 노 전 대통령은 오래전 만나왔던 친숙함이 배여 있어서 아주 편한 분으로 남아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내비췄다.

평범한 삶

“박근혜 대통령은 더 조심스럽습니다만 대통령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은 항상 측은지심입니다. 아마도 그 옛날 제가 부모님을 잃고 살았을 때의 기억이 작용한 거겠지요.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 당당하고 건강하게 정국(靖國)을 마무리 해 주실 거라 믿고 먼 발치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행사에서 여러번 뵈었기 때문에 직접 담소 나눌 기회는 없었지만 기억하실 것입니다. 어려운 경제문제, 국제적 관계에서의 대한민국의 위상을 잘 지켜주시리라 믿고 응원하겠습니다.”


<ktikt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석 부친 의친왕은?

의친왕은 1877년생으로 순종황제보다 세 살 많다. 62세에 이석을 낳았다. 의친왕은 1900년대 초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에 있는 대학을 5년 간 다녔다고 한다.

당시 조선 황족 중에서 유일하게 항일투쟁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 그는 일제 경찰의 감시를 피해 기차로 평양을 거쳐 신의주에서 압록강철교를 건너 만주 안둥[安東: 현 랴오닝성 단둥]에 도착했다. 하지만 의친왕이 자택에서 사라지자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전개한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다시 국내로 송환됐다.

그의 망명실패로 국내 항일 조직이었던 대동단 조직도 큰 타격을 입었다. 1927년 그 뒤 여러 번 일본 정부로부터 도일을 강요받았으나, 거부하고 끝까지 배일(排日)정신을 지켰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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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6·3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여당 강세 지역인 만큼 민심은 물론 당심까지 한번에 훑어볼 절호의 기회다. 1차 예비경선도 ‘기승전 이재명’으로 막을 내렸다. ‘찐명’ 타이틀을 거머쥘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여당의 이목이 경기도에 쏠리는 이유다.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경기도지사 예비경선을 실시했다. ▲김동연 현 경기도지사 ▲추미애 의원 ▲한준호 의원 등으로 후보가 압축되면서 3강 체제가 굳어졌다. 권칠승·양기대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100% 권리당원 투표로 진행된 만큼 오직 당심으로만 결정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현역인 김동연 후보는 행정력을, 추미애 후보는 검찰개혁 선봉자와 6선의 중량감을, 한준호 후보는 친명(친 이재명)계 조직력을 바탕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평을 받는다. 당심 100% 첫 관문 본경선은 다음 달 5~7일 진행되며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2명이 15~17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본경선 투표는 권리당원 50%와 국민 여론조사 50%가 반영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 검찰개혁에 앞장선 추 후보는 강성 지지층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추 후보 역시 이를 동력 삼아 사법 3법(법 왜곡죄, 재판소원법, 대법관 증원법)과 중수청·공소청 설치 법안 강행 처리를 주도했다. 추 후보는 출마 선언을 통해 선명한 개혁과 강인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난지원금과 청년기본소득을 적극 추진하며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수십 년간 지지부진했던 불법 계곡을 정비해 경기도가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던 것처럼 경기도에도 도민을 행정 중심에 놓는 사고의 전환과 강한 결단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 추미애는 개혁이 필요하면 정면으로 돌파했다. 원칙 앞에서 물러선 적이 없었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한 적이 없었다”며 “책임지는 행정, 실천하는 행정으로 경기도정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한 후보는 “경기도가 성공해야 이재명정부가 성공한다”며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 후보는 “이정부의 실용주의를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가장 분명하게 성과로 완성하겠다. 지금 경기도에 필요한 것은 망설임이 아니라 실행, 말이 아니라 결단, 계획이 아니라 책임지는 도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 후보는 정부를 이끌 리더십을 강조했다면 한 후보는 보조하는 조력자 역할에 방점을 찍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명심을 내세웠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른 셈”이라며 “민주 당원도 어떤 역할이 이정부 성공에 도움이 될지 저울질하면서 선거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역인 김 후보는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 대통령에게는 일잘러 도지사가 필요하다”며 행정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를 지내던 당시 추진하던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등의 정책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사례를 성과로 제시했다. 김 후보는 “지금 이 대통령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속도와 체감’이다. 좌충우돌, 시행착오로 낭비할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며 자신이 이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국정 제1동반자’임을 거듭 강조했다. ‘강경’ 추 ‘친명’ 한 ‘비명’ 김 앞다퉈 “내가 국정 파트너 적임자” 정치권은 세 사람의 성향이 모두 다른 점에 주목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강성 추미애’ ‘친명 한준호’ ‘비명(비 이재명)이었던 김동연’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기도지사 선거를 빙자한 ‘친명 선발 토너먼트’인 격”이라며 “최종 후보가 선정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민주당 권력이 어디를 향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끼어들 틈이 없다 보니 민주당만의 리그가 됐다. 민주당 최종 후보는 경기도지사직뿐만이 아니라 ‘이재명의 복심’이라는 타이틀까지 얻는 효과를 본다. 민심과 당심의 향배를 모두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세 사람 모두 네거티브 경쟁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예비경선 득표율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후보 측이 “(예비경선) 2위를 확신한다”고 주장하며 불을 지핀 것. 득표율은 후보 본인에게만 공개되지만 본선 진출을 위해 각자 유리한 여론 조성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예비경선이 치러진 다음 날인 23일, 민주당 염태영 의원은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한준호 후보 본경선 전략 브리핑’을 갖고 “당이 후보별 전체 순위와 득표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추정치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서도 “한 후보가 상당히 약진했고,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2위를 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중요한 것은 현재 수치보다 추세와 흐름”이라며 “경기도민과 권리당원들이 경기도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의 기준을 바꾸기 시작한 결과가 이번 예비경선에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이에 김 후보는 “순위 발표도 안 됐는데 각자 자기주장 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는 권리당원의 당심과 경기도민의 민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의 승리다. 김 후보는 당심이, 나머지 두 후보는 민심에 취약한 만큼 각각 절반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민심과 당심이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만큼 후보들은 전략 수정에 나섰다. 그동안 추 후보는 각종 개혁에 앞장서는 등 강성 이미지를 굳혀왔다. 하지만 강성 이미지는 양날의 검이 돼 2024년 하반기 국회의장 선거 당시 낙선 원인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강성 당심은 추 후보를 밀었지만, 의원 투표 결과 온건파인 우원식 후보가 당선되면서 급제동이 걸린 것. 추 후보는 6선의 중진이지만 이번 경기도지사까지 패배하게 되면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역풍 불라” 완급 조절 이를 의식한 듯 최근 추 후보는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내려놓고 행정가로서의 면모와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추 후보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입법·사법·행정을 골고루 경험한 유일 후보”라며 “입법을 통해 큰 틀 아이디어를 냈다면 이제는 현장에 뛰어들어 성과를 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완수를 본인의 최대 성과로 내세운 추 후보가 법사위원장을 내려놓고 선거에 뛰어든 것 역시 중도를 설득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권리당원 100%로 치러진 예비경선과 달리 본경선은 일반 여론조사와 당원 조사가 각각 50%씩 반영된다. 결국 줄어든 강성 당원의 영향력 만큼 중도층을 최대한 끌어오는 것이 관건이다. 추 후보는 사퇴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7개월간 법사위원장으로서 총 682건의 개혁법안과 민생법안을 처리했다”며 “법 왜곡죄를 도입하는 ‘형법’,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헌법재판소법’, 대법관 증원안이 담긴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 사법개혁 3법과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법안까지 검찰개혁 과제를 완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언제나 제 중심에는 국민이 있었고, 어떠한 가시밭길도 외면하지 않았다”며 “2021년 검찰개혁을 완수하지 못한 채 법무부 장관 자리를 떠나야 했던 무거운 발걸음이 아니라 이처럼 뜻깊은 결과를 여러분께 보고드릴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힘이 되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대한민국의 중심 경기도를 승리로 이끌고 이정부와 함께 국민주권시대를 만들어 내겠다”고 덧붙였다. 한 후보는 오히려 ‘이재명 픽’을 앞세웠다. 이정부를 흔드는 세력을 향해 각을 세우면서 전투력을 강조하는 등 기존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최근 한 후보는 ‘이재명 공소 취소설’의 근원지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대통령의 생각을 자꾸 언급하는 것 자체가 당을 지휘하고 있는 당 대표로서 맞냐는 생각이 있다”며 김어준씨와 정청래 대표 등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여권 갈등의 뇌관이 된 유시민 작가의 ‘ABC론’을 놓고 설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유 작가는 민주당 지지층을 A(가치 중시), B(본인 이익 추구), C(A, B의 교집합) 등 세가지 그룹으로 분류했으며 특히 B그룹은 “이익과 생존을 위해 친명을 자처하는 이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 후보는 “갈라쳐서 얻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반응했고 유 작가가 재반박에 나섰다. 이후 한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작가님의 말씀, 무겁게 듣고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며 “저를 향한 비판과 비난은 기꺼이 감당하겠다. 하지만 이 대통령님과 정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의 모습은 불안한 외줄타기 같다”며 “선은 분명하다. 그 선은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끊지 못한 명 꼬리표 한 후보는 “53% 싸움”을 내세우며 본경선 승리를 위한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 오는 6월 선출되는 경기도지사의 임기는 4년으로 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맞물린다. 따라서 이정부와 합을 잘 맞추는, 명심을 잘 꿰뚫는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어야 한다는 게 한 후보 측 지지층의 핵심 메시지다. 한 후보 역시 “‘이재명 지사였다면 벌써 해결했을 일들’을 한준호가 가장 스마트하고 빠르게 해결하겠다”며 “딱 세 표가 부족하다. 나의 한 표에 더해, 가장 가까운 두 분만 더 설득해 달라”고 밝혔다. 김 후보는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1위의 김 후보를 추 후보가 뒤쫓고, 한 후보가 마지막 뒤집기 기회를 엿보는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중부일보> 의뢰로 경기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는 6월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결과 김 후보는 25%, 추 후보는 22%, 한 후보는 11%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전화면접조사 방식(CATI)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p, 응답률은 12.7%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김 후보는 당심 100%라는 가장 어려운 관문을 뚫었지만 질긴 비명 꼬리표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의 최대 약점은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본인에게 도움을 줬던 민주당 핵심 지지층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다는 국민 인식이다. 유 작가는 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당시 이재명) 대표한테 붙어 지사가 된 사람이지 않나. 배은망덕”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2024년 임기 후반기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비명 프레임이 굳어졌다. 당시 김 후보는 민주당 전해철 전 의원 등 대표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영입했고, 친명계에서는 “유력 대권후보 주자인 이재명 당 대표에 맞서기 위한 결집 시도” 등 견제가 이어졌다. 김 후보는 표를 분산시키는 친비명 프레임을 깨고 인물론에 승부를 걸었지만 민주당 여론이 심상치 않다. 일부 친민주당 성향 커뮤니티에서 “친명계와 개딸(개혁의 딸)이 벼르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김 후보는 자세를 낮추고 당원에게 호소하는 메시지를 냈다. 2% 부족한 후보들…해법은? 이제 와서 고개 숙인 김동연 김 후보는 예비경선이 시작된 지난 21일 자신의 SNS에 “‘나는 동지들의 헌신에 보답했는가’ 되묻는다. 많이 부족했다”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김 후보는 “경기도의 저력도, 제가 여기에 서 있는 것 자체도, 당원 동지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갚을 길은 하나라고 믿는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저는 선택의 시간 앞에, 당원동지들 앞에 서 있다. 감히 청한다.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뛰어라, 당원의 마음을 명심하고 다시 한번 일하라.’ 저 김동연에게 그 기회를 주십시오. 당원 동지들의 뜻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호소했다. 김 후보는 친비명 논란에 거듭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대통령 중심으로 성공한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당의 친명(친 이재명)·비명은 의미가 없다”며 “경기도는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국정 제1파트너로서 충분히 뒷받침하면서, 필요하다면 앞에서 끌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한 후보와 마찬가지로 유 작가의 ABC론을 꼬집었다. 김 후보는 JTBC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가나다’론을 제시하며 “ABC 때문에 논쟁이 벌어진 거 같은데 저는 ‘가나다’로 얘기하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가’는 김대중 대통령을 좋아하는 민주당의 토대다. ‘나’는 그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하고 지지했던 분들, ‘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과 성과로 보여주는 리더십을 좋아하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BC론이 조선시대 노론이나 소론도 아니고 가나다로 한데 뭉치고 더하는 민주당이 됐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민주당은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가 계파 분열의 초입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이에 민주당 원조 친명 핵심으로 꼽히는 김영진 의원은 김 후보를 향한 ‘반명 공세’에 “이 대통령과 어려움을 함께했던 소중한 민주당의 멤버”라며 직접 엄호에 나섰다. 또 김 의원은 2022년 대선 당시 김동연 대선후보(새로운 물결)와의 단일화 과정을 회상하며 “안철수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갔지만 김 후보는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어려운 선거를 함께 뛰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분열은 ‘독’ 친명 지원전 한 민주당 관계자는 김 지사의 화합 메시지와 호소력에 주목했다. 이 관계자는 “골수 친명은 김 후보에 대한 반감이 크다. 김 후보에게 친문 표가 약 30% 정도 있다고 본다”며 “김 지사가 막판에 승리하려면 이 30%를 유지하면서 당원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친명을 적으로 돌리면 답이 없다. 등 돌린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그 사람이 원하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