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흐지부지 ‘수입차 봐주기’ 논란

큰소리치더니…외제차 눈치 보나

[일요시사 경제팀] 박민우 기자 = 정부가 수입차 업계의 눈치를 보는 형국이다. 탈세와 보험료 문제를 바로 잡겠다던 의지는 온 데 간 데 없다. 헛발질만 하는 모습. 이러다 흐지부지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수입차 판매가 사상 최대를 기록 중이다. 경기불황에도 수입차 비중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국내 수입차 판매량이 사상 처음 20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추산된다.
 
불티나는 수입차
사상 최대 판매

올해 들어 지난 10월까지 수입차 판매량은 19만6543대로, 이미 지난해 판매량을 넘어섰다. 올 수입차 판매량은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사태에도 불구하고 지난해(19만6359대)보다 20% 가까이 성장한 23만5000대로 역대 최대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수입차 점유율은 15.8%. 20%선까지 위협하는 상황이다. 내년엔 올해보다 8.5% 증가한 25만5000대를 돌파할 전망이다.

협회 측은 “다양한 차종, 뛰어난 성능, 매력적인 디자인, 비교적 저렴한 가격 등이 수입차의 인기요인으로 꼽힌다”며 “특히 주요 소비층이 20∼30대로 올라선 것도 수입차의 성장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잘나가는 수입차 시장. 앞으로의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비관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대형 악재가 돌출했기 때문이다. 바로 탈세 논란이다. 관련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등 정부와 정치권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 수입차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업무용 차량은 현행 소득세법과 법인세법에 따라 차량 가격은 물론 취득세 등 각종 세금과 보험료, 기름값 등 유지비를 5년간 무제한으로 사업자 경비로 처리할 수 있다. 문제는 오너나 그 일가, 또는 경영진이 고가 수입차를 회사 명의로 구입해 사적 용도로 사용하는데 있다. 대부분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사 명의로 수입차를 구매한 뒤 개인용도로 타는 것은 결국 세금 탈루란 지적이다.


정부는 서둘러 보완에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업무용 차량 관련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고가 업무용차의 무분별한 세금 탈루행위를 막기 위해 임직원 전용 자동차보험만 가입하면 저가차에서부터 수억원대의 고가차에 이르기까지 일괄적으로 경비처리를 허용하는 게 골자. 그러나 허술하기 짝이 없다. 개정안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내 실효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다음은 업계에서 논란 중인 업무용차 관련 정부수정안 문제점이다.

업무용차 과세강화 수정안 ‘허점투성이’
과세실효성 의문·조세형평성 문제 여전

▲수억원대 업무용차 방치 = 기획재정부가 국회 조세소위원회에 제출한 업무용차 관련 수정법안은 차값과 유지비 전액 경비처리가 가능한 현행법과 사실상 다른 점이 없다. 따라서 고가 업무용차를 악용한 세금탈루와 조세형평성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다른 점은 기존에 차량구입비에 대해 5년 만에 전액 경비처리가 가능했던 것을 연간 1000만원씩 차값 전액 공제하는 것에 불과하다. ‘무늬만 회사차’라고 불리는 수억원대의 업무용차는 여전히 수천만원의 세혜택을 기존과 동일하게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현행세법은 5년째 되는 해에 1억원 전액 경비처리가 되고 세감면은 매년 836만원씩 5년간 총 418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정부안대로 개정되더라도 매년 1000만원씩 경비산입이 허용되고, 10년째 되는 해엔 현행과 동일하게 418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수정안은 차량 가격에 따라 경비로 산입하는 기간만 추가로 늘어났기 때문에 무늬만 회사차로 불리는 수억 원대 회사차의 세감면 혜택은 기존과 동일해 서민납세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조세형평성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눈가리고 아웅
일단 내고 보자


▲너무 적은 한도설정 = 수정안은 매년 1000만원씩 경비처리가 허용되기 때문에 차량가격 5000만원까지 현행과 완전히 동일하게 세감면을 받을 수 있다. 과세 실효성이 거의 없어 국회의원들과 시민단체에서 주장했던 3000만원 한도설정 입법안을 무색케 할 정도다. 6000만원 차량은 6년, 7000만원 차량 7년, 8000만원 차량은 8년으로 연장돼 기존과 별반 차이 없이 세감면을 받을 수 있다.

정부 수정안은 고가의 무늬만 회사차에 대한 세감면 혜택은 그대로 둔 채 제공기간만 늘린 것이어서 ‘눈 가리고 아웅’식의 수정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특히 납세자 입장에서는 업무용차 1대에 대해 차값의 감가상각 종료시까지 장부상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과세실효성도 없이 납세자 부담만 증가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무늬만 회사차의 세금탈루를 해결하려면 업무용차 구입비와 유지비에 대해 일정금액을 한도로 비용인정 한도가 설정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비용처리를 제한하면 한도를 초과하는 비용에 대해선 자동적으로 소득·법인세가 부과되기 때문에 애초 취지대로 업무용으로 적합한 차량을 보호하는 동시에 업무용으로 부적합한 고가차에 대한 과세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7∼11월 발의된 5개의 업무용차 관련 입법안들은 별도 예외 규정 없이 업무용차 구입비에 대해 3000만∼4000만원의 비용인정 한도를 설정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종훈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김동철·윤호중 의원은 구입비에 대해 3000만원까지, 새누리당 함진규 의원은 4000만원까지,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 의원은 구입비와 유지를 합쳐 5000만원까지만 경비처리를 허용하는 소득·법인세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한 바 있다.

▲허위기재 뻔한 운행일지 = 정부 수정안은 현행법 대비 세감면 혜택을 받는 기간만 연장된 것에 불과하다. 사실상 무늬만 업무용차 규제를 위해 정부가 새로 추진하는 것은 운행일지 작성 밖에 없는 셈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운행일지는 업무용차의 사적사용 방지에 관한 규제”라며 “일반 서민들이 납득하기 힘든 수억원대 업무용차에 과도한 세제혜택이 제공되는 조세형평성 문제는 전혀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운행일지를 통한 과세 효과도 기대하기 힘들다. 과세당국이 수백만 대에 달하는 업무용차의 운행일지 허위기재를 적발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행정력과 비용이 필수적인데다, 더 큰 문제는 사업주가 작정하고 허위 기재한 것을 과세당국이 가려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인사업자의 경우 업무용차의 업무상 사용과 사적 사용의 구분이 모호하고, 우리나라는 주요 선진국들과 달리 출퇴근까지 업무로 간주하기 때문에 운행일지 허위기재가 매우 쉽다. 당연히 운행일지를 매일 기록하지 않고 주1회 또는 월1회 기록해도 인정해주는 운행일지는 유명무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사적 사용에만 초점 = 정부 수정안은 업무용차 문제를 사업주의 사적사용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핵심은 ‘도대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이 넘는 고가의 승용차가 필요한 업무가 무엇인가’라는 의혹과 함께 업무용으로 보기 힘든 억대 고급승용차의 구입비와 유지비를 전액 경비 처리해 세금을 탈루하는 것이다. 사적사용 여부보다 업무용차로 적합한 통상적인 가격 수준이 얼마냐가 더 중요한 대목이다.

규제 없는 규제
행정·비용 낭비

서민들을 분노케 한 이유는 사업주 또는 사업주 가족이 단순 출퇴근용이나 개인사용 목적으로 억대의 고급차를 사용하면서 거액의 세금감면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근로자를 비롯한 급여소득자들은 세감면 혜택 전혀 없이 전적으로 개인비용으로 자동차를 운행하고 있다. 납세 관계자는 “정부는 단지 업무용차의 사적사용 여부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업무용차 가격이 일반 서민납세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통상적인 수준으로 수렴될 수 있도록 경비인정 한도 설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통상마찰은 핑계 = 정부는 업무용차 구입비에 대해 경비산입 상한액 설정이 어렵다고 한다. 통상마찰이 우려된다는 게 그 이유인데, 이 논리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재임 당시 한·EU FTA 및 한·미 FTA 재협상을 주도한 새누리당 김종훈 의원은 업무용차 비용한도 설정과 관련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통상마찰 우려를 일축했다. 김 의원은 “배기량과 차량가액에 따른 손금산입 한도를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외산을 불문하고 모든 차량에 적용될 손금산입 한도를 설정하는 것은 정당한 조세정책으로서 기 발효된 FTA 협정의 위반 여부를 논할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국회입법조사처 역시 대당 비용한도 설정이 미국 및 EU와 체결한 FTA 협정 위반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시각과 관련해 “자동차 교역 자유화와 같은 취지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만 FTA 위반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통상전문가인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최근 WTO 판례 등을 종합하면 고가의 국산차가 많이 출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3000만원 상한선 설정이 국산차를 보호하기 위한 사실상의 차별조치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메르세데츠 벤츠코리아 디미트리스 실라카스 사장의 발언. 그는 지난 9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적으로 이용한 회사차에 한국 정부가 과세하려는 것은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국회 재수정 요구 ‘퇴짜’
“너무 복잡…다시 가져와”

▲다른 나라 사례는? = 주요 선진국 경우 업무용차 구입비에 대한 비용한도 설정과 운행일지 작성 의무화를 통해 탈세를 방지하고 있다. 캐나다와 호주는 예전부터 고가 업무용차의 세금탈루 문제가 사회이슈가 돼 업무용차 구입비에 대해 비용인정(경비처리) 상한액을 설정하고 있다.

캐나다는 합리적 기준을 벗어난 고가 업무용차량에 대한 경비처리를 제한하기 위해 1989년에 경비상한액 설정을 도입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제도 도입 당시 상한금액은 2만달러, 현재는 3만달러다. 호주 역시 1999년 도입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독일도 세무조사시 해당 업종의 평균적인 업무용차 가격수준과 자사 이익수준에 비해 과도하게 비싼 차를 업무용차로 구입하면 평균수준을 초과한 부분에 대해선 경비로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정부 수정안은 국회에서 퇴짜를 맞은 상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8월 여론에 밀려 내놓은 업무용차 과세강화 관련 법안을 수정해 지난 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 제출했지만, 조세소위는 재수정을 요구했다. 주요 이유는 고가의 업무용차에 부여되는 과도한 세제혜택을 방지할 수 있는 차량 1대당 구입비 및 유지비에 대한 비용한도 설정 없이 과세 실효성 없는 안을 가져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탈루 못 막아”
입법안서 후퇴

조세소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정부가 수정해서 가져온 안이 너무 복잡하다”며 “구입비와 유지비를 포함해 대당 비용인정 한도를 설정해 단순화시켜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또 대당 비용한도를 설정하면 통상마찰이 우려된다는 정부 의견에도 “통상마찰이 없는데 왜 통상마찰을 주장하느냐”며 수정안을 돌려보냈다.


<pmw@ilyosisa.co.kr>


<업무용차 과제관련 법안발의 현황> 입차 보험료 개선안 {허점}
고가차 할증만 있고 저가차 할인은 없다

금융당국의 수입차 보험료 개선안을 두고 저가차 역차별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보험가입자간 형평성을 도모하기 위해 고가차량의 자차보험료 인상 등의 내용을 담은 ‘고가차량 관련 자동차보험 합리화’방안을 발표했다.

방안엔 ‘고가차의 자차보험료 인상’도 포함됐다. 수입차를 비롯한 고가차량은 사고시 지급 받는 수리비가 많은 반면 납입하는 보험료는 이보다 적어, 고가 수입차 수리비를 저가차 운전자가 낸 보험료로 보전하는 식이었다.

개선안에 따르면 전체 차량 평균 수리비를 100%으로 보았을 때 차종별 수리비가 120%를 초과하면 ‘고가수리비 할증요율’을 신설·적용해 초과비율에 따라 자차보험료를 3∼15% 더 부과하도록 했다. 특별요율이 신설되는 고가차엔 수입차 40개 모델, 국산차 22개 모델이 포함됐다. 특별요율이 적용되지 않는 저가차에는 국산차모델만 280개가 포함됐다. 수리비가 비싼 고가차는 대부분 수입차, 수리비가 싼 저가차는 전부 국산차였다는 얘기다.

수리비 대신 부담…역차별 여전
“수입차주에 싼 보험료만 받아”

그러나 개선안은 평균수리비를 초과하는 고가차량에 대한 특별할증(3∼15%)만 있다. 평균보다 수리비가 적게 드는 저가차량에 대한 특별할인은 없다. 결국 자동차보험사 수익만 불리는 보험료 인상안에 불과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고가차와 저가차간 보험료 역차별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은 셈이다.

보험료 현실화를 통해 보험료 인하를 기대했던 저가차 운전자들의 불만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전체 국산차 운전자는 7조2398억원을 보험료로 납입하고, 차량 수리비와 렌트비로 4조4481억원의 보험금을 받았다. 수입차 운전자는 자동차 보험료로 9241억을 납입하고 보험금으로 1조2369억원을 받았다.

개인으로 따지면 국산차 운전자는 55만5000원을 보험사에 내고 34만1000원을 수리비로 지급받았다. 반면 수입차 운전자는 105만3000원을 내고 141만원을 지급받아 이익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회사 입장에서 보면 국산차 운전자 계정에선 1인당 최대 21만4000원의 흑자를 낸 반면 수입차 운전자 계정에서는 1인당 최대 무려 35만6000원의 적자를 본 것이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2013년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수입차 보유자는 국산차 보유자들로 하여금 더 비싼 보험료를 내게 만드는 ‘나쁜 외부성’을 가져다주는데 현행 보험료는 이 점을 무시하고 수입차 보유자에게 싼 보험료만을 받고 있다”며 “대물배상과 관련해 국산차와 수입차를 구별하지 않는 현행 보험료 구조는 불공평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수입차 비중이 높아질수록 사고 한 건당 지급되는 평균 보험금이 커지고, 보험회사는 그 비용을 소비자에게 부담시킬 것”이라며 “보험료 인상분은 전적으로 수입차 보유자가 져야 할 부담인데도 현행 보험료율 구조에서는 국산차 보유자도 보험료 부담이 늘어난다”고 현행 자동차보험료 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민>


<2014년 국산·수입차 납입보험료와 보험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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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