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불쾌지수’가 부른 사건·사고 백태

불볕더위 폭발… “나를 열 받게 하는 사람들”


장마가 끝나고 중복을 넘어 본격적인 무더위에 접어들었다. 30℃를 훌쩍 넘는 후덥지근한 불볕더위가 이어지자 순간적인 짜증이나 화를 참지 못하는 등 ‘불쾌지수’에 의한 우발적인 범죄가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홧김에 지나가는 행인을 폭행하고, 이웃에게 가스총을 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여름철 단골손님 ‘폭염 속 사건·사고’를 취재했다.

“쳐다 본다” “화장실 오래 쓴다” 남녀불문 무차별 폭행
신체리듬 조절하고 습도 줄이면 불쾌지수 내릴 수 있어


계속되는 폭염으로 인해 불쾌지수가 높아지면서 사소한 말다툼이나 시비로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른바 ‘짜증 폭력’이 잇따르고 있는 것. 신비의 섬 제주도에서는 최근 하루 평균 5건의 폭력사건이 접수되고 있다. 술집에서 말다툼을 벌이거나 택시요금 시비로 기사를 폭행하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순간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서로 주먹다짐을 벌여 경찰서로 연행되는 사건도 적지 않다.

지난 7월10일 새벽 제주시내 한 노래연습장이 난장판이 됐다. 손님으로 노래방을 찾은 김모(32)씨가 업주 백모(50·여)씨의 얼굴을 수차례 때리고 화분과 선풍기를 집어던진 것. 김씨가 불같이 화를 낸 이유는 백씨가 잠을 깨웠다는 것이었다.

“덥고 짜증나니까 건들지 마”

같은 날 제주시내 모 식당에서는 51세의 김모씨가 이유 없이 화장실에서 기물을 파손했고, 11일 술에 취한 고모(29)씨는 함께 술을 마시던 이모(25·여)씨와 언쟁을 벌이다가 이씨의 머리채를 잡고 얼굴에 주먹질을 했다. 충북 청주에서는 “화장실을 오래 쓴다”는 이유로 20대 여성 4명이 ‘난투극’을 벌였다. 지난 7월19일 충북 청주상당경찰서는 화장실 사용 문제고 시비가 붙어 폭력을 휘두른 A씨(26·여) 등 20대 여성 4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19일 새벽 1시30분께 청주시의 한 호프집 화장실에서 먼저 용변을 보던 B씨(28·여)와 말다툼을 벌이다 폭력을 휘둘렀다. B씨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A씨는 일행 2명과 함께 맥주잔을 던지고 의자를 발로 차며 계속 폭력을 휘둘렀고, B씨는 이에 대항해 A씨 일행과 엉켜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A씨는 “볼일이 급한데 화장실을 너무 오래 사용해 짜증이 나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이에 앞서 같은 달 6일, 청주 시내 한 아파트에서 난데없는 가스총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최고 기온이 30도를 웃돌며 여름 무더위의 시작을 알린 이날, 청주시내 한 아파트 위층 주민은 더워서 창문을 열었는데 아래층에서 담배를 펴 연기가 들어온다는 이유로 아래층을 향해 가스총을 쐈다. 경찰 관계자는 “더위에 창문을 열고 잠을 자는데 담배 연기가 올라와 잠을 못 잔다는 이유로 가스총을 난사했다”고 설명했다.

본격적인 열대야가 시작된 7월18일 대학가 근처 지구대에는 지나가는 사람을 무차별 폭행해 혼수상태에 빠뜨린 김모(22)씨가 붙잡혀 왔다. 김씨가 생면부지인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한 이유는 지나가는데 쳐다봤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경찰에서 “담배를 사러 가는 길이었는데 여자랑 남자가 앉아있었고 내가 슬쩍 봤다고 그쪽 남자가 먼저 시비를 걸어왔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7월23일 부산에서는 백주대낮에 묻지마 살인이 발생해 충격을 줬다. 30대 남성이 80대 노인들을 상대로 무차별 흉기를 휘두른 이유는 “낮잠을 자는데 시끄럽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날 오전 10시50분께 부산시 사하구 감천동에 거주하는 양모(89·여) 할머니 등 80대 노인 4명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동네 정자를 찾았다.

정자에는 30대 남성이 잠을 자고 있었고, 노인들은 평소처럼 담소를 나누며 화투장을 돌렸다. 하지만 화투장이 채 다 돌기도 전에 정자 한 켠에 누워있던 남성이 일어나 갑자기 노인들에게 다가왔다. 손에 흉기를 들고 있던 남성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양 할머니의 허리를 마구 찔렀다. 갑작스런 남성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양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함께 있던 할머니들은 남성과 몸싸움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방모(81·여) 할머니 등 두 명은 손과 팔목에 상처를 입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전기 충격기 등을 이용해 현장에서 이 남성을 긴급체포했다. 경찰에 붙잡힌 남성은 특별한 주거지가 없는 윤모(30)씨인 것으로 드러났으며, 윤씨는 이날 오전 절도 등의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인근 가게에서 구입한 흉기를 몸에 지니고 있었다. 경찰 조사에서 윤씨는 “낮잠을 자는데 할머니들이 시끄럽게 해서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한편, 찌는 듯한 폭염으로 인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사고도 연이어 발생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경북 동해안지역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7월20일 경북 포항에서 70대 노인이 폭염 속에서 일을 하다가 숨졌다. 포항시 북구 용흥동의 한 주택단지 인근 텃밭에서 일을 하던 A(74)씨가 갑자기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송 도중 숨지고 말았다.

경찰은 A씨가 평소 앓던 지병이 없었던 점으로 미뤄 30도를 훌쩍 넘는 무더위 속에서 오랜 시간 일하다 열사병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이날 포항지역 낮 최고기온은 34.4도에 이르렀다. 부산시 사하구에서는 집안의 에어컨이 고장 나는 바람에 승용차에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더위를 피해 낮잠을 자던 부부가 질식해 중태에 빠졌다.

백주대낮 묻지마 살인도

같은 달 25일 부산시 사하구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승용차 안에서 32세 이모씨 부부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것을 아파트 경비가 발견했다. 경비의 신고로 이씨 부부는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중태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의식을 잃은 것. 전문가들에 따르면 차량 문을 닫고 에어컨을 오래 켜두면, 일산화탄소가 함유된 차량 배기가스가 안으로 스며들어 질식을 유발할 수 있다. 짜증을 유발하는 무더위에 화를 다스리지 못해 발생하는 각종 사건으로 인해 여름철 불쾌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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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