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 리포트 - 그들이 궁금하다’ ③그들은 왜?

아무나 아무런 이유 없이 죽인다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연쇄 살인범 김일곤은 평범한 사람이 생각지 못할 엽기적인 방법으로 살인 행각을 저질렀다. 김일곤의 행동은 그의 사고가 정상인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음을 보여준다. 범죄의학자들은 앞다투어 김일곤을 전형적인 ‘사이코패스(Psychopath)’로 평하며 극악무도한 사이코패스의 위험성을 상기시키고 있다.

더 이상 사이코패스 혹은 사이코라는 단어는 그리 낯선 표현이 아니다. 대중매체에서는 사이코패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히어로물까지 등장했으며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을 헤아리지 못한 채 특이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농담조로 사이코패스라 부르는 것도 스스럼없다.

사이코보다 더한
반사회 성격장애

그러나 현실세계는 다르다. 사이코패스의 악영향이 강력범죄, 특히 살인으로 표출될 경우 그들의 정신세계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의 문제로 확장된다.

사이코패스라는 용어는 19세기 프랑스 정신과 의사 필리프 피넬이 사이코패시 증상을 연구하면서 알려졌고 1920년대 독일의 심리학자 슈나이더가 사이코패스 개념을 설명하면서 구체화됐다.

이 당시만 해도 사이코패스는 단순 정신질환으로 소개됐지만 이후 캐나다의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가 사이코패스 진단법을 개발하고 <진단명: 사이코패스>라는 책을 내면서 그 심각성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보통 사이코패스는 ‘놀라운 언변과 외적 매력, 과장하는 버릇, 남을 속이거나 조종하려는 태도, 병적인 거짓말 습관,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의 부재, 타인에 대한 냉담함, 공감 능력 부족,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태도 등을 보인다.

정당하다 생각하면 죽이는 소시오패스
자신 감정 조절하고 타인 감정도 이해

그렇다고 무작정 사이코패스로 매도하며 문제 삼을 수 없다. 사이코패스가 모두 범죄자는 아닐 뿐더러 사람들 속에게 이런 특징을 찾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 성향이 나타나는 정확한 이유 역시 밝혀진 바 없다.

사이코패스는 과연 선천적인 것일까? 최근 사이코패스의 뇌구조가 일반인과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나이겔 블랙우드 킹스 칼리지 런던 정신의학연구소 박사 역시 사이코패스가 선천적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나이겔 블랙우드 박사는 사이코패스로 분류된 범죄자 17명과 일반적인 반사회적 성격장애 범죄자 27명, 일반인 22명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한 뒤 뇌 구조를 연구한 결과 사이코패스는 일반인에 비해 전문 측 전두피질과 측두극의 회색질이 다른 범죄자나 일반인들에 비해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해당 뇌부위의 회색질은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의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며 도덕적 행동을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부분이다.

나이겔 블랙우드 박사는 “사이코패스 뇌는 일반인과 달리 감정이입이 되지 않고 죄책감이나 당혹감 같은 자아의식적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모든 사이코패스가 선천적이라고 보는 것도 무리가 따른다. 사이코패스의 한 갈래인 ‘소시오패스(sociopath)’가 이를 뒷받침한다.

소시오패스는 사회를 뜻하는 ‘소시오(socio)’와 병리 상태를 의미하는 ‘패시(pathy)’의 합성어로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일종이다. 정확한 명칭은 ‘반사회성 성격장애(ASPD, 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다.

남다른 정신세계
방조하는 유해환경

미국정신의학회에 따른 소시오패스 증상은 사회규범을 따르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과 쾌락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속이는 사기성이 있다.

쉽게 흥분하고 공격적이어서 몸싸움이나 타인을 공격하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이를 합리화하는 등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특징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소시오패스의 위험성은 일반적인 사이코패스보다 훨씬 크다. 보통의 사이코패스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전혀 없는 반면 소시오패스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알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능력도 있다. 다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믿는다.

또한 대체로 두뇌가 뛰어난 축에 속하기 때문에 상류층 인사나 유능한 직업인으로 성공하기 수월하다.

범죄심리학자 니시무라 유키가 ‘정장차림의 뱀’이라 칭하고 로버트 헤어가 화이트칼라에게서 사이코패스의 특징이 많이 발견된다고 언급한 내용은 소시오패스의 특징을 극명히 보여준다. 영화 <양들의 침묵> <아메리칸사이코> 등에서 드러나는 주인공의 폭력성, 자기합리화도 마찬가지다.

지금껏 살인범의 심리 연구는 부단히 이뤄졌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은 채 살인의 목적이나 살인 과정에서 느끼는 심리에 대한 견해만 쏟아지고 있다.

주목해 볼만한 사안은 살인범 다수가 자살을 위한 도구로 살인을 택하거나 치밀한 범행으로 자신의 죄가 발각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례가 빈번히 발견된다는 점이다.

아담 랭크포드 앨라배마대학교 응용범죄학과 교수는 자살에 대한 충동이 살인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사회적 유대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벌이는 이기적 자살 행동의 일종으로 배우자가 부정을 저질렀거나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이 가족의 목숨과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가족 살인범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런 특징은 살인을 저지르는 범죄자 상당수가 범행 현장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와 일맥상통한다. 특히 한 장소에서 다수의 사람을 살해하는 대량살인사건일수록 살인범의 현장 자살 비율이 높았다. 랭크포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그 비중이 31%에 달한다.

‘묻지마 살인’ 피의자 거의 싸이코패스
죄책감 느끼지 않아…사회적 문제 대두

살인을 하더라도 잡히지 않는다거나 자신의 무고를 입증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살인범들이 취하는 대표적인 행동이다.

김일곤 역시 스스로 무죄를 주장했다. 지난 17일 범행 8일 만인 검거된 김일곤은 검거 전 성수동의 한 동물병원에서 개를 안락사시키는 약을 탈취하려다 실패하고 달아났으며 이후 해당 동물병원에서 1㎞ 떨어진 성동세무서 건너편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붙잡혔다.

그러나 경찰서로 압송된 김일곤은 “난 잘못한 거 없고 더 더 살아야 돼”라며 무죄를 주장하는 뻔뻔함을 보였다. 사이코패스의 남다른 특성은 흔히 살인범과 사이코패스 연결시키는 촉매제가 된다. 모든 사이코패스가 살인범의 탈을 쓰고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살인범 가운데 사이코패스 확률이 높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한 사람이 살인을 계획하거나 구체적인 정황을 모의한다면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다.

자살 위한 살인
잡힐 걱정 안해


수많은 살인범이 기존 범죄사건을 모방하는 모습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모방범죄를 계획하는 과정의 교두보 역할은 각종 유해 영상 및 매체가 담당한다. 대표적인 예가 '스너프 필름'이다.

큰 의미에서 스너프 필름은 살인 등 잔인한 장면을 연출과 여과 없이 찍은 것을 뜻하지만 보통 폭력, 살인, 강간 등을 담은 ‘포르노그라피티’의 한 장르로 이해된다. 섹스장면을 그대로 연출하고 상대방을 죽이는 게 주된 내용이다.

포르노에서 스너프가 하나의 장르로 취급받게 된 것은 높은 수위를 요구하는 포르노의 특성에 기인한다. 극단의 자극을 필요로 하는 포르노에서 섹스, 학대, 변태적행위, 살인 등이 총망라된 건 스너프 필름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특히 살인의 진위여부를 쉽사리 확인하기 힘들 만큼 잘 짜여진 스너프 필름은 말초적인 신경을 자극하고 남다른 쾌락의 길로 인도한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구역질을 느끼지만 여기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문제는 스너프 필름 속 내용과 강력범죄가 현실사회에서 살인 혹은 살인의도와 결합될 때 나타난다. 이 경우 스너프 필름을 모방하는 범죄행위의 폐단이 극대화된다.

지난 2009년 연쇄살인범 강호순을 우상이라고 칭하며, 심야시간대 귀가 중인 여성을 납치한 뒤 금품을 빼앗고 성폭행한 혐의로 방모(26)씨와 양모(27)씨, 이모(27)씨 등 일당 3명이 경찰에 적발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초등학교 동창인 방씨 등은 새벽을 틈타 서초구 골목에서 피해여성을 강제로 승용차에 태운 뒤 신용카드를 빼앗아 40만여원을 인출하고 충남 천안시 인근 야산에서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범행 당시 “연쇄살인범인 강호순이 우리의 우상이다. 죽고 싶지 않으면 말을 들으라”며 피해자를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살인사건으로 커지진 않았지만 경찰의 수사가 늦어졌다면 살인사건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았다. 어느새 살인범이 우상처럼 변질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외에 스마트폰을 통해 무분별하게 퍼지는 음란·폭력성 콘텐츠는 범죄가능성이 높은 사이코패스들에게 좋은 자양분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해환경을 효과적으로 차단할만한 뚜렷한 대책은 아직까지 찾기 힘든 상황이다. 특히 모바일 유해게임은 유통 후 적발이 되더라도 시정을 강제할 수 없다는 규정이 발목을 잡는다.

게임의 경우 제작자가 직접 등급을 매기는데다 이용자의 나이를 인증하는 절차가 없는 경우가 많아 미성년자들의 잠재적인 범행 가능성마저 높인다. 추가적으로 포인트를 구매하면 폭성성과 선정성이 짙어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심각한 모방범죄
“막을 방법 없나”

지난 2011년 정부는 게임산업을 키우겠다며 사전 심사 없이 유통 후 모니터링 하도록 제도를 도입했지만 실제로 점검하고 있는 게임은 전체의 6%에 불과하다. 하루에도 수백 건씩 출시되는 게임의 등급을 일일이 심사할 방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적발되더라도 별다른 제재가 내려지지 않을 때가 비일비재하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범인 키우는 소라넷

소라넷으로 대표되는 해외에 서버를 둔 유해 성인용사이트의 폐단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유사한 형태로 음란물을 유통하는 불법사이트도 우후죽순 증가추세다.

공공연히 몰카 영상을 거래하거나 자랑삼아 올릴 뿐만 아니라 강간, 윤간 등 변태적 성행위를 암시하는 영상들도 다수 올라와 있다. 심지어 강간하는 법, 사람 죽이는 법 등 입에 올리기 힘든 내용을 담은 영상들도 눈에 띈다. 사이코패스들의 온상으로 손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수사당국은 유명 음란물 유통·거래 사이트들이 해외에 거점을 둬 사실상 단속에 손을 놓은 상태다. 유해사이트 접근이 불가능하도록 도메인 접속을 차단하는 방법만으로는 효과가 극히 제한적이다. 사이트 도메인의 일부만을 바꿔가며 운영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음란물을 법으로 허용하는 국가인 호주·캐나다 등에 서버를 두고 있어 수사 진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이 경찰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아동음란물 위주로 수사한 뒤 해당 국가에 협조 요청을 구하는 실정이다. 특정 국가의 사이트 출입을 차단하는 방법도 있지만 국제 무역법상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경찰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유해물 근절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포괄적 규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소라넷의 사례는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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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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