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 리포트 - 그들이 궁금하다’ ①그들은 누구?

어렵게 자라 세상이 적이라 여겼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트렁크 시신’ 사건의 범인 김일곤이 구속됐다. 김씨는 여성을 납치해 살해한 뒤 시신을 차량 트렁크에 넣은 채 도피행각을 벌였다. 그는 주차장에 불을 지르고 시신이 훼손되는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다. 또 검거 당시 그의 호주머니에서는 이른바 ‘데스노트’로 불리는 29명의 이름이 적힌 쪽지도 나왔다. 가히 엽기적이지 않을 수 없다. 살인범들의 이러한 엽기적인 행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들에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살인은 극악무도한 범죄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사건 현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수많은 살인 사건이 일어났으며, 그 과정에서 희대의 연쇄살인범이라고 불리는 이들도 만만치 않게 나왔다.
 
강력범죄 87%
피해자는 여성
 
국회 안정행정위원회가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연간 살인사건 발생 건수는 2012년 984건에서 2013년 914건, 지난해 906건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로 나오지만, 살인범들의 잔혹한 범행 방법은 이런 통계조차 무색하게 만든다. 
 
잔혹한 살인범을 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왜 이들은 연쇄 살인범이 되는 것일까.’ 확답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범죄학자 에드워드 글로버가 쓴 <범죄의 기원>에서는 연쇄 살인범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매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사기성이 짙은 사람이다. 자신의 욕구만이 중요하고 살인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으며 고문·강간·살인에 대한 욕망을 꿈꾼다. 겉으로는 온화하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악한 본성을 감춘 교활하고 냉혹한 약탈자이다. 양심의 가책이 없으며 대부분 선정적이고 파괴적이다.” 
 
우선 연쇄살인범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이는 통계로도 알 수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올 들어 발생한 강력범죄(살인·강도·강간 및 강제추행)는 총 1만5227건으로, 이 중 약 87%인 1만3344건이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로 집계됐다.  
 
 
희대의 살인마로 불리던 강호순은 여성만 살해했다. 2009년 경기도 군포시에서 실종된 여자 대학생을 살해해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경기도 서남부 일대에서 여성 7명을 연쇄적으로 살해했다. 강호순이 살해했다고 밝힌 부녀자는 노래방 도우미 3명, 회사원 1명, 주부 1명, 여대생 2명이었다. 그는 2005년 장모 집에 불을 질러 자신의 장모와 처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이외 김길태, 조두순 등 대부분 여성을 성폭행한 후 살해했다. 
 
십중팔구 불행한 가정환경서 성장
왜소한 체구에 콤플렉스도 공통점
 
여성을 상대로 한 이런 범죄가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며 과거 남성 대 남성의 금전 갈등, 감정적 갈등 등이 여성에게로 번져갔다고 불 수 있다”며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물리적인 힘이 약한 여성이 피해자가 될 확률이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가부장적 분위기도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증가의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폭력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하려는 심리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더 많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세간을 충격에 빠뜨리며 두려움에 떨게 한 살인범들은 대부분 유년시절 큰 충격을 받으며 불우하게 보낸 경우가 많다. 역대 연쇄살인범의 성장 과정을 보면 ‘가정불화’ ‘가출’ ‘학대’ ‘고아’ ‘버림’ 등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대부분 학업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9명을 살해한 정두영은 어린 시절 어머니에 버림받았다. 아버지가 일찍 타계했으며, 어머니가 재혼하는 바람에 삼촌집에 맡겨졌으나 곧 고아원에서 살게 된다. 늘 자신의 왜소한 체구 때문에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첫 살인을 저지른 것도 방범대원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저질렀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18살의 이른 나이에 살인을 저지르고 교도소에서 11년간 복역한다. 
 
유년기 큰 충격
부모 영향 받아
 
유영철의 경우는 어머니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그를 죽일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남편의 외도로 유영철의 친 어머니는 서울로 상경했고 유영철은 계모와 유년시절을 보내게 되지만 계모의 폭력에 시달리다 초등학교 시절 가출을 하는 등 암울한 유년시절을 보내왔다. 
 
이처럼 불안전한 가정환경은 살인범을 양성하는 대표적 원인으로 지적된다. 학자들은 이를 ‘사회구조이론’에 적용한다. 전문가들은 “살인범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버팀목이 될 존재들에게 정서적 애착을 느끼지 못했다”며 “이들은 버팀목 자체가 없거나 그들에게 학대당한 경험이 많다. 사회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려면 정서적인 함양을 통해 경험을 습득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충족하는 방법을 얻지 못한 것이다” 고 말했다.
 
그러다 보면 정서적인 공감능력도 발전하지 못한다는 게 학계의 통념이다. 결국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 수밖에 없고, 이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분별하지 못한 채 범죄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런 탓에 전문가들은 살인범도 포괄적으로 말하면 사회적 피해자로 규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심각한 심리·성격적 문제를 가진 사람 모두 거듭되는 좌절과 실패, 거절 등 스트레스 환경에 놓인다고 다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연쇄살인을 계획하게 만드는 촉발요인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유영철의 경우는 교도소로 날아든 아내의 이혼통고가, 정두영은 10억원을 마련해 동거녀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지존파는 당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입시부정 등 가진 자의 부정부패가 촉발요인이라는 견해가 있다.
 
싸이코패스(Psychopath) 기질도 연쇄살인범들에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다. 사이코패스란 19세기 프랑스 정신과 의사인 필리프 피넬이 창안한 심리학적 용어로 정신을 뜻하는 사이코(Psycho)와 병리 상태를 의미하는 패시(pathy)의 합성어라고 한다.
 
범죄를 저지르면서 자신의 쾌락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또 최대한 잡히지 않을 방법을 고심한다. 일반인과 다른 합리성을 보이지만 이들도 권력욕, 성욕 등 나름대로 범죄의 합리성을 추구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13명을 살해한 정남규다. 
 
 
서울 서남부지역 연쇄살인범 정남규의 경우 살인 자체를 즐겼다. 그는 직접 대면해서 “어떤 도구로 살인하는 걸 좋아하느냐”고 물으며, “망치, 칼 다 쓰지만 아무래도 칼이 제일 짜릿하다. 때론 망치도 쓴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남규는 살인, 방화, 절도, 강도, 강간 등을 남녀노소 불문하고 저질렀다. 쉽게 말하자면 살인을 탐닉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첫 번째 살인이 두 번째 살인의 교본이 된다. 그는 이 사건을 시작으로 완전범죄를 위한 체력관리까지 들어간다. 이틀에 한번씩 10km를 뛰며, 건강식단을 먹는 등 자신의 건강에 신경을 쓴다. 
 

본인 욕구 충족
치밀하고 계획적
 
정남규는 살인자체가 목적이며 살해 대상을 물색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그는 살인 대상 순위까지 정했다. 정남규는 고통받는 피해자를 보면서 희열을 느낀 것으로 전해진다. 정남규를 검거한 영등포 경찰서 팀장은 “피해자가 고통받으며 사망에 이르는 과정을 자기 두 눈으로 보면서 황홀감 내지 쾌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이코패스 살인범의 또 하나 특징은 계획적이며 치밀하다는 것이다. 유영철이 사이코패스 중 한 사람이다. 유영철은 범행 지역을 사전 답사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뒤 살인을 저지르는 ‘계획 살인범’의 면모를 과시했다. 
 
연쇄살인의 경우 목격자를 피하고자 가급적 길에서 멀리 떨어지거나 정원이 넓어 외부에서 집안 상황을 파악하기 힘든 100평 이상 2층 단독주택을 주요 범행대상으로 선정했다. 또 가족들이 모두 외출하고 노인 혼자 집을 지키던 점심시간 전후나 오후 시간대에 주로 범행을 저질렀고, 일가족이 함께 있을 때는 상대를 안 가리고 모두 둔기로 머리를 수차례 때려 잔혹하게 살해했다. 혜화동 노인 살인사건에서는 강도로 가장하려고 곡괭이 등으로 금고문을 뜯어내려 한 흔적을 남겼다.
 
최근 사건 터졌다 하면 ‘참혹’

약자인 여성들 상대로 한 범행
 
이 과정에서 손에 상처가 나 피가 흐르자 경찰의 DNA 감식을 고려해 현장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유씨는 살해한 보도방 여성의 신원 파악을 하지 못하도록 지문을 흉기 등으로 없앴다. 토막낸 사체는 검은 비닐봉지로 5∼6겹 싸서 운반했고, 암매장을 마친 후 단서가 될 수 있는 비닐봉지를 다시 거둬왔다.  
 
그렇다면 살인하는 순간 연쇄살인범의 심리상태는 어떨까. 전문가들은 “금품 탈취 등이 목적이 아니라 동기도 없이 묻지마 연쇄살인을 하는 살인마들이 살인을 멈추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그 순간에 짜릿한 흥분과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범죄자의 DNA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뚜렷한 결론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연쇄살인범 등 특히 폭력적인 범죄자는 뇌구조와 기능, 특정 신경전달물질 생성체계, 또는 성호르몬 분비량 등이 다르다는 보고가 최근 학계에 자주 보고되고 있는 점이다.  2004년 캘리포니아대의 아드리안 레인과 베데스다의 메서디스트병원(NYMH)의 제임스 블레어는 충동적인 살인자의 뇌와 사전에 치밀히 계획된 살인을 범하는 연쇄살인범의 뇌적 이상이 다르다는 것을 밝혀냈다. 
 
뇌 구조 달라
신경도 특이
 
MRI를 통해 충동적 살인자의 뇌는 전두엽피질의 활동이 저하된 반면 연쇄살인범의 경우엔 전두엽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나 편도체의 활동이 저하됐다. 대뇌 피질 측두엽의 왼쪽에 위치한 편도체는 두려움을 발생시키는 곳이며 다른 사람의 두려움을 감지하고 처벌에 따라 태도를 바꾸게 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편도체가 비정상적인 연쇄살인범은 두려움도 타인과의 공감도 없다. 피해자가 자신의 엽기적 행각으로 얼마나 큰 고통을 느끼는지 정작 본인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전두엽의 활동이 저하된 사람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비정상적으로 화를 내며 공격적이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살인사건 연루 유명인 누구?
직접 죽이고 “죽여라” 사주
 
살인 사건은 고위층에서도 일어난다. 사회적으로 안정되고 인정받은 이들이 왜 살인을 저지른 걸까.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0·26 사건’이 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요정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1979년 10월 피격한 사건이다. 김재규는 재판 과정에서 “유신 개헌으로 민주주의가 무너졌다”며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 박정희를 저격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아직 김재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피격한 구체적인 배경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살해 발칵
막후서 지시한 고위층도 
 
90년대 희대의 패륜아로 불렸던 고려한약의 사장의 장남이었던 박한상도 있다. 그는 100억대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1994년 5월 부모를 살해했다. 아버지를 흉기로 수차례 찌른 후 도망가는 어머니도 쫓아가 무참히 살해했다. 그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알몸으로 범행을 감행했고, 집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경찰은 한 집에 있었음에도 유독 박한상만 이렇다 할 상처가 없는 점과 머리에 묻은 타인의 혈흔 등을 근거로 추궁하자 이내 박한상은 부모의 재산을 노리고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자백했다.
 
일가족을 살해한 가장도 있다. 프로야구 선수로 활약했던 이호성은 2008년 3월 아내와 세 딸을 살해하고, 한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일가족 살해사건의 범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호성은 선수생활 은퇴 후 삶의 부침을 겪었다. 
 
이 외에도 최근 친구를 시켜 재력가를 청부 살해한 김형식 전 서울시의원이 법원에 무기징역을 선고받기도 했다. 지난 2010∼2011년 재력가 송모(사망 당시 67세)씨로부터 선거 자금 5억2000만원을 빌리면서 송씨 명의 부동산의 용도를 변경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일 처리가 지연되면서 송씨가 김형식 전 시의원의 금품 수수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자, 친구인 팽모씨를 시켜 송씨를 살해한 혐의로 지난해 8월19일 무기징역으로 복역 중이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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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