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우의 시사펀치> 새누리당, 도대체 왜 이러나!

1990년 1월에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그리고 신민주공화당 세 정당이 합당할 당시 당헌·당규 팀의 실무 간사로 참여했었고, 아울러 필자의 30대와 40대 초반까지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새누리당에 가급적이면 말을 자제코자 했다. 비록 몸은 떠났지만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한마디 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최근 “정당민주주의의 요체는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는 일”이라며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도입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해서는 지지세력이 확고한 우리 정치현실에서 본 의미를 구현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하여 국적 불명의 정당민주주의가 등장했다.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그의 말마따나 무슨 이야기인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의회민주주의를 빗대어 정당민주주의를 부르짖은 모양인데, 즉 정당의 운영도 민주적 절차에 의해 행사하겠다는 의미로 보이는데 느닷없이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렇게 나오느니 헛웃음뿐이다. 하여 차제에 이 나라의 정치가 왜 ‘요 모양 요 꼴’에 처하게 되었는지 그 실상을 살펴보자.

광복 이후 이 땅에 정치단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헌국회가 들어서면서 이승만 정권 유지 차원에서 자유당이 등장했다. 자유당은 초대 대통령에 대한 중임제한 철폐를 골자로 일명 사사오입 개헌을 통과시킨다.

이와 맞물려 현 야당의 원조인 민주당이 태동하면서 이 땅에 제대로 된 정당정치가 시작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당시 정당은 이념이나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아닌 이승만 대 반이승만 구도의 기형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박정희정권 시절 지역주의가 가세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설명을 곁들이자. 다수의 사람들이 지역주의를 정치에 이용한 최초의 인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적하는데 실상은 전혀 다르다. 지역주의가 처음 등장한 선거는 박정희 후보와 윤보선 후보가 다시 맞붙은 제6대 대통령선거 때였다. 먼저 1963년에 실시된 5대 대통령 선거 상황을 살펴보자. 당시 윤보선 후보 측에서 박정희 후보가 여순반란사건에 가담한 전력을 들며 색깔론을 제기했다.

이는 윤보선 후보의 커다란 오판으로 당시 호남사람들의 반감을 사면서 급격하게 박정희 후보에게 표가 몰렸고, 호남사람들이 박정희 후보를 당선시켜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당에서는 호남의 민심을 돌리는 방안의 일환으로 지역주의, 즉 경제개발이 영남에 편중되었다면서 호남 푸대접을 토해내며 호남 민심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이 역시 윤보선의 오판으로 이를 계기로 영남이 뭉치기 시작하면서 지역주의가 정치 전면에 등장했고 삼김씨의 전성기 시절 극을 치닫는다.

그리고 삼김씨가 정치에서 물러나자 희한한 현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꼼수, 그것도 치졸하기 짝이 없는 꼼수로 국민을 정치에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대통령 후보도 그렇지만 자당의 대표를 선출하는 데에도 국민을 끌어들였다.

이는 민주주의가 표방한 책임정치, 정당정치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후안무치한 처사다. 국민이 심판하는 대상이 정당인데 그 행위를 방해라도 하듯 국민을 끌어들이는 일은 한마디로 국민을 농락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새누리당에서 국적불명의 정당민주주의를 내세우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공천권을 국민에게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당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면서 공천권을 당원에게 주어야지 국민에게 주겠다니. 정말 대가리에 뭐가 들었는지 공개적으로 묻고 싶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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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TF, 정보사 못 뒤진 내막

[단독] 국방부 TF, 정보사 못 뒤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방부는 내란 특별검사팀이 해소하지 못한 건을 발본색원하려 했다. 특별수사본부 외에도 TF팀을 꾸렸으나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진상규명 핵심 기관인 정보사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의혹의 상당수가 근거가 빈약해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 인사도 문제다. 내란에 연루된 핵심 기관임에도 인적 쇄신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본부에 조사관들이 상주까지 했는데 밝혀진 게 없다.” 한 정보사령부 영관급 장교의 말이다. 정보사를 둘러싼 의혹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군 안팎에서는 국방부 차원의 특별수사본부와 헌법존중 TF(테스크포스)만으론 어림도 없다는 지적이 거세다. 제보와 투서 내란 특별검사팀의 후신인 2차 종합 특검이 출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정보사에는 대북공작 전문가들인 휴민트(HUMINT·인간정보·820)가 있다. 휴민트 부대인 HID(북파공작부대)와 이들을 지휘하는 100여단이 핵심 중의 핵심이다. 이들은 대북공작 실행 부대로 전략·기획은 특수사업처가 담당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정보사 특수처는 최근 특수·대외·훈련평가 등 3개의 부서를 특수·대외로 개편했다. 신임 정보사령관에는 1988년 이진백 사령관 이후 38년 만에 처음으로 비육사 출신인 조선대학교 학군장교(ROTC)출신 박민영 육군정보학교장이 임명됐다. 참모장은 육사 출신 한모 준장, 정보단장은 하모 준장(3사)이 맡게 됐다. 100여단장이던 육사 출신 정모 준장은 제2작전사령부로 전보됐다. 국방부는 당분간 100여단장 자리를 공석 상태로 놔두기로 했다. 휴민트 조직이 12·3 내란에 깊숙하게 연루된 만큼 특수본의 수사가 끝난 이후 진급 심사 절차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정보사는 검찰과 경찰, 내란 특검팀 수사에 의해 부서명이 노출돼 기밀이 새 나가고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홍도 격화되고 있다. 국방부 특수본과 TF에 제보와 투서가 빗발치고 있는 점이 정보사 내부 분위기가 악화되고 있다는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한 군 관계자는 “‘진급 시즌’ 때문이라고 해도 의혹에 그치는 제보가 많다. 중요한 내용도 있지만 타 부서의 간부를 언급하며 ‘문제가 있어 강도 높은 조사가 필요하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약물 공작’ 문건 본거지 특수처 압수수색 패스 논란의 인물들 되레 진급 “장군 인사로도 거론”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을 통해 드러난 ‘약물 공작 문건’ 이후에는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문건 작성자인 이모 대령(현 속초 HID 부대장)과 군무원 외에도 당시 특수처장이던 A 대령과 관련자들에 대한 인사 조처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박 의원이 확보한 해당 문건은 정보사 특수처 산하 대외 담당실에 존안돼있었다. 문건 작성 및 책임자인 A 대령과 이 대령 모두 특검팀의 소환 조사를 받았다. 다만 특검팀의 수사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던 터라 어떤 목적으로 문건을 작성하게 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특검팀에 파견됐던 한 경찰 관계자는 “특수처 간부 중 일부는 수사에 협조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의 지시로 작성하게 됐다는 것 외에는 확인된 사실이 없다. 노상원 전 사령관과의 연결고리가 의심됐으나 정황을 포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국방부 특수본과 TF는 관련 의혹을 면밀하게 들여다봤다. 실제 담당 조사관들은 정보사 안양 본부에 상주하면서까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약물 공작 문건 외에도 지난해 2월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준장)이 국회에서 증언했던 ‘2016 계획(가칭)’도 조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 준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2016년 속초 HID 부대장으로 있을 때 당시 노상원의 지시가 일반적이지 않았다”며 “대북 중요 임무를 6개월간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 여러 불합리한 지시가 많았지만 특히 요원들을 폭사시키라던 지시가 생각난다. 노상원은 요원들에게 ‘원격 폭파 조끼’를 입혀 보낸 뒤 임무를 끝내면 폭사시키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이 계획은 노상원 전 사령관이 취임 이후 자신의 비서실장과 특수처장, 사업단장을 해임한 이후 모의됐다. 일반적 공작처럼 북한 내 쿠데타를 야기하거나 우회적으로 설득하는 작업이었다. 실제 수십명의 공작관들이 강제로 동원돼 노 전 사령관의 비상식적 계획을 준비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노상원 폭사 지시 ‘2016 계획’도 조사 바짝 붙었는데 빈손…진상규명 어려울 듯 한 국방부 관계자는 “TF에서 해당 사안을 조사했던 건 사실”이라며 “차후 어디서 수사하게 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복수의 전·현직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2016 계획’이 2차 종합 특검이 출범한 이후에도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문건 자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소실됐을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노 전 사령관은 2016 계획 외에도 대북공작 관련 보고서를 ‘특수’가 아닌 ‘일반’ 문서로 만들도록 지시했고 제한된 공간에 보관한 후 통제했다고 한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담당자들이 안양 본부에 가서 보고하는 절차에서 노상원이 직접 100여단을 방문해 보고를 받았다. 시스템이 이상하게 바뀌었는데 문상호도 똑같았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일반 문서로 분류한 대북공작 문건들은 김용현에게 따로 보고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노상원은 사실상 수년간 김용현에게 휴민트들이 작성한 첩보를 갖다 바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군 정보기관 간 갈등도 폭발 직전이다. 또 다른 군 정보기관인 777사령부에 대한 ‘인사 차별’이 원인으로 거론된다. 앞서 777사령부에 소속된 시긴트(SIGINT·신호정보·820) 전문가들은 휴민트와 같은 820 정보병과다. 다만 ‘인간’과 ‘신호’로 구별될 정도로 업무 자체가 전혀 다르다. 정보사는 관행대로 육군 소장이 신임 정보사령관을 맡게 됐지만 777사령부는 공군 준장으로 격하 보직된 데 이어 지휘관의 군종까지 뒤집히는 전례 없는 조치가 단행됐다. 777사령부는 정보사와 다르게 내란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난 바 없다. 인사만 놓고 보면 두 군 정보기관 간 인사에 차이가 있다는 건 명확하다고 볼 수 있다. 주먹구구 인사 국방부 인사를 담당하던 한 소식통은 “777 입장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인사”라며 “정보사 육사 출신들의 진급이 대거 배제됐다고 해도 외형적으로만 그럴듯해 보이지 속사정은 다르다. 실질적 지휘 체계는 뒤바뀌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적 쇄신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TF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했다. 16일 조사를 마무리한 TF는 조만간 결과를 검토해 다음 달 13일까지 승진 취소 및 징계성 전보 등 인사 조처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적어도 이날까지는 군 정보기관 내 파열음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