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진 끌어내린 '보이지 않는 손' 정체

전방위 사정 압박에 결국 ‘백기’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이명박정부 시절부터 수많은 비리 의혹과 사퇴 압박 등에도 자리를 지켜왔던 민영진 KT&G 사장이 5년5개월 만에 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검찰의 수사 압박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MB맨’ 지우기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민영진 KT&G 사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민 사장은 임기를 불과 7개월여 남겨둔 시점에서 물러나게 됐다. 민 사장은 그간 검찰의 수사 압박을 받아왔다. 그가 수사 대상에 오른 것을 두고 이명박정부 시절 임명된 이석태 전 KT회장과 포스코 전 정준양 회장 등 ‘MB맨’에 대한 수사의 연장선상이 아니냐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마지막 ‘MB맨’
 
지난달 29일 KT&G에 따르면 민 사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이날 이사회에 참석한 민 사장은 KT&G 대표이사 사장직에 대한 사의를 밝히고 후속 사장 인선 절차에 착수해 줄 것을 요청했다. KT&G 측은 “민 사장이 본인의 책임과 역할을 다했다고 판단해 퇴임을 결심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지만 검찰과 경찰 등 전방위 압박에 따른 심적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KT&G는 후임 사장 선임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KT&G 사장은 사외이사 중심으로 구성된 사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자격심사를 거쳐 후보 1인을 추천한 후 주주총회 결의를 거쳐 최종 선임된다.
 
최근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김석우)는 민 사장이 계열사 자금을 빼돌린 정황을 잡고 그와 계열사 등의 계좌를 추적하고 있다. 검찰은 분석 과정에서 수십억원 규모의 의심스러운 자금 흐름을 포착해 비자금일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 사장은 2010년 취임하고 이듬해부터 소망화장품과 케이지시(KGC)라이프앤진을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해왔다. 이후 2013년 연임해 6년여 동안 KT&G를 이끌어왔다.
 
민 사장은 2013년 연임 이후 긴장의 나날을 보냈다. 2013년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부동산 개발 용역비를 과다 지급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민 사장을 검찰에 송치했고,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KT&G 청주 공장부지 매각 관련 금품을 주고받은 혐의로 민 사장을 압박했지만 결국 무혐의 처분됐다. 이후 같은 해 전직 직원의 내부고발로 인해 국세청 조사관 100여명이 특별세무조사를 벌였지만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최근 검찰이 다시 민 사장을 압박하면서 민 사장이 백기를 든 모양새다.
 
 

업계는 지난 2년 동안 검찰과 경찰이 민 사장을 겨냥해 수사했음에도 꼬투리를 잡지 못했는데 또다시 수사를 벌이는 것에 대해 사실상 MB맨 솎아내기라고 분석한다.
 
수십억대 비자금 혐의에 사의 표명
검경 번갈아 수사…‘흔들기’ 의혹
 
민 사장은 비SKY 평사원 출신으로 직원들에게 누구라도 능력이 있으면 사장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다. 사장 취임 이후 외국 담배회사들의 추격을 막아내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민 사장은 건국대학교 농학과 출신으로 1979년 기술고시에 합격한 후 86년 KT&G 전신이었던 전매청에 입사했다. 이후 2000년 경영전략단장, 2004년 마케팅본부장, 2005년 해외사업본부장, 2009년 생산부문장 등 주요보직을 거쳐 2010년 평사원으로 입사한 지 24년 만에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곽영균 전 사장은 서울대 무역학과 출신이다. 당시 곽 전 사장과 호흡을 맞췄던 이광열 상임이사는 고려대 농학과 출신이다. 민 사장은 건국대 출신으로 비SKY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사장 자리에 올랐다. 이런 점을 미루어봤을 때 민 사장이 KT&G가 학벌보다는 능력을 중시한다는 이미지를 갖게 하는 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민 사장은 경영자로서 능력도 인정받았다. 외국산 담배의 거센 추격을 막아낸 것이 대표적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KT&G는 국내 담배점유율 90%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후 필립모리스 등 외국계 담배회사들이 국내에 물밀 듯이 들어오면서 2009년 담배점유율이 62.3%까지 주저앉았다. 민 사장 취임년도인 2010년에는 58.5%로 60%대 벽이 깨지면서 위기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2011년 59%로 반등하면서 2012년에는 62%로 뛰었다. 2013년 61.7%로 소폭 낮아지긴 했으나 2014년 62.3%를 기록하며 민 사장 취임 후 최고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실적도 대폭 개선됐다. 2010년 당시 3조4614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4조1129억원으로 6500억원 이상 늘었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1조 1401억원에서 1조1719억원으로 300억원가량 증가했다.


누가 새 사장?
 
이 때문에 민 사장이 지난 2013년 연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대 CEO 중에서 5년 이상 자리를 유지했던 사장은 전임 곽 전 사장과 민 사장뿐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리솜리조트 수사 '진짜 표적은?'
 
농협중앙회 1000억원대 특혜 대출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 하고 있다. 당초 대출을 받은 업체인 리솜리조트 신상수 회장의 개인비리 수사로 보였던 이번 사건에서 최 회장이 주요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임관혁 부장검사)는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송파구에 있는 H건축사무소 등 3곳에 각각 수사관 30명을 보내 재무·회계 장부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H건축사무소는 하나로마트 등 농협중앙회가 관할하는 유통시설의 건축이나 리모델링, 감리 등의 사업을 진행한 업체다.
 
일단 검찰은 이들 업체들이 대금 부풀리기 등의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H건축사무소가 농협이 발주하는 용역을 수주하게 된 경위와 비자금 조성 사이에 연관성이 있는 지를 조사 중이다.
 
검찰은 전날에도 서울 논현동 리솜리조트 그룹 본사와 계열사 4곳 등 총 5곳을 압수수색했다. 리솜리조트 그룹은 10년 전부터 경영 상황이 악화해 자본잠식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2005년부터 최근까지 1000억원이 넘는 대출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농협중앙회는 리솜리조트 소유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이 이뤄졌기 때문에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었고, 실제 이자도 정상적으로 상환되고 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H건축사무소가 일감을 맡게 된 경위도 내부적으로 확인 중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농협중앙회 최 회장이 수사 타겟으로 급부상한 것을 두고 이번 수사가 ‘MB맨’ 솎아내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은 고등학교(포항 동지상고) 출신으로, 전 정권 주요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2007년 농협중앙회 회장에 선출됐고, 2011년 연임에 성공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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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