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나 마나’ 도서정가제 무용지물 논란

책시장 거덜 내는 대형 출판사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도서정가제는 출판시장의 과도한 경쟁을 막고 대형서점 중심의 유통구조를 개선하며 동네서점들의 활성화를 유도하자는 취지에서 등장했다. 벌써 시행 6개월째를 맞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여기에 책을 공급하는 출판계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어 제도의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13년, 주요 출판사와 서점들이 사상 최악의 매출·영업이익 실적을 기록했다. 출판계 맏형 민음사가 처음으로 영업적자를 낸 시기이기도 하다. 단행본 중심 출판사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때 적자로 돌아섰다. 교보문고도 매출 감소와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하면서 출판계 전반에 위기감이 번졌다. 상황이 악화되자 출판사들은 초판을 줄이기 시작했다. 도서관에는 최저가 경쟁 입찰에 의한 도서 구매로 염가 도서가 공급됐다. 이 같은 배경이 도서정가제 개정안의 탄생을 불렀다고 볼 수 있다.
 
책값 불신 여전
 
새 도서정가제는 지난해 11월21일부로 시행됐다. 신간, 구간 상관없이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 모두에서 할인율을 최대 15%(가격할인 10%+간접할인 5%)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출판시장의 과도한 경쟁을 막고 대형서점 중심의 유통구조를 개선하며 동네서점을 살리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제2의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도서정가제 개정안 시행 이전에는 신간일지라도 10% 이내의 현금할인과 마일리지까지 더해 최대 19%까지 할인이 가능했다. 출간된 지 18개월이 지난 구간이나 실용서는 아예 대상에서 제외돼 50% 혹은 90% 이상 할인됐다. 도서정가제의 취지를 논하기에 앞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지불비용에 대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도서정가제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온라인 서점이 유리한 구조다. 제휴카드 할인, 무료배송, 경품에 대한 규제는 도서정가제 최대할인율 15% 안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구매하던 기존습관을 굳이 바꿔 동네서점에서 책을 살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출판사에서 공급하는 책 가격이 동네서점보다 온라인 서점과 대형서점에 유리하게 책정되고 있어 동네서점은 도서정가제의 이점을 챙기지 못하고 있다. 현재 출판사들은 온라인서점과 대형서점에 정가의 40∼60%, 동네서점에는 70∼75%에 각각 책을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동네서점은 출판사와 직거래를 하는 온라인서점과 대형서점들과는 달리 도매업체를 통해 도서를 공급받는다. 한 단계를 더 거치다 보니 구매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시행 6개월째…취지 무색
할인경쟁 막아 책값 안정화?
제도 허점 이용해 꼼수마케팅
 
이 같은 상황에서 도서정가제의 본래 취지를 지키기 위해 앞장서야 할 대형출판사들이 할인 마케팅으로 회귀하면서 도서정가제 본래 취지가 희석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민음사 계열 비룡소, 미래엔, 삼성출판사, 시공사 계열 시공주니어, 김영사 계열 주니어김영사 등 대형 출판사들이 잇따라 홈쇼핑 채널을 통해 도서 할인 판매에 나서면서 업계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러한 마케팅이 가능했던 이유는 현행 도서정가제가 ‘세트도서 구성’에서 가격책정의 예외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구멍’이 편법 창구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홈쇼핑 창구를 통한 책 판매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홈쇼핑이 발달한 우리나라의 특성을 감안 하더라도 한 번 돌이켜볼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어렵게 이룬 합의 정신을 깨는 것”이라고 출판계를 비난한다.
 
백원근 출판정책연구회장은 “여전히 할인 마케팅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출판시장의 현상을 개혁하는 방법은 확고한 도서정가제로의 재개정이 유일한 길”이라며 “가격할인 경쟁에서 가치경쟁으로 가려면 법적 기반부터 바꿔야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과 같은 가격경쟁으로는 소수의 출판사만 이득을 챙길 것이기 때문에 현행 15% 할인율을 없애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소비자에게 이익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백 회장은 “국내 언어권(출판) 시장은 규모가 작은 반면 다수의 출판사가 존재한다”며 “책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작은 출판사도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의 다양성이 유지돼야 양질의 도서가 생산·유통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소장 박익순)는 새 도서정가제 시행 전에 ‘프랑스 도서정가제 법률 개정과 시사점’이라는 연구보고서에서 프랑스의 ‘반아마존 법(도서정가제 개정 법안)’을 들면서 한국과 반대로 프랑스에서는 온라인서점 도서구매가가 더 비싸질 수밖에 없게 됐다는 점을 설명했다. 프랑스는 온라인서점의 공세로부터 동네서점을 보호하기 위해 온라인서점의 책값 할인판매와 무료배송을 금지하고 있다.
 
제도 안착해도…
 
프랑스의 경우 반아마존 법 시행으로 구매자가 정가 10유로인 책을 동네서점에서는 최대 5% 할인한 9.5유로에 구입할 수 있지만 온라인서점과 대형서점에서는 정가 10유로에 배송료까지 지불해야 한다. 이에 프랑스 최대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 프랑스와 대형서점인 프낙은 배송료를 1유로센트(약 14원)로 매겼다. 배송료가 터무니없게 저렴해졌지만 가격만 놓고 보면 동네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게 합리적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형태로 도서정가제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내 독서율 현황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책을 1년에 한 권도 읽지 않는 성인은 28.6%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성인의 연평균 독서율이 71.4%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성인 10명 중 3명이 1년에 1권도 읽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조사에서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은 9.2권에 그쳤다. 2011년 조사에 비해 0.7권이나 감소했다. 초등학교 4학년 이상 초·중·고등학생의 연평균 독서량은 32.3권으로 나타났다. 10대들은 한 달에 3권을 채 읽지 않는다.
 
2014 출판연감에 따르면 2012년 매출액은 21조972억원으로 2011년 21조2445억원에 비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도서관 이용율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15세 이상 공공도서관 이용률은 32%로 나타났다.
 
1인당 독서량 및 가구당 월평균 도서구입비도 감소하는 추세다. 우리나라 성인 독서량은 유엔 회원국 중 161위다. 가구당 월 도서구입비는 2만원을 넘지 않는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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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