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의 그늘 아래, 스스로 씌운 가면 뒤에 숨어있던 아우구스투스 정치술의 진면목을 발견한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한 편의 가면놀이로 여겼던 탓일까. 벼랑 끝에 몰린 로마 공화정을 견고한 로마 제국으로 재건하고 근대 유럽의 기틀을 다진 위업에도 불구하고, 아우구스투스의 삶은 희대의 천재인 양부 카이사르의 그늘에 가려져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중요한 전쟁의 목전에서 항상 신경증을 앓았던 유약한 청년의 가면 뒤에서 타고난 전투력이나 정치력 없이 오로지 은근과 끈기로 로마세계를 뒤집은 로마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 말 그대로 연극 같은 정치를 보여준 그야말로 가장 뛰어난 정치가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남긴 유명한 말들 가운데,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보려고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지 않기를 원하는 것들을 본 카이사르는 결국 원치 않는 진실에 다가가는 그를 두려워한 사람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그 뒤를 이어야 했던 아우구스투스는 양부가 이루려던 것과 같은 목표를 두고 다른 방식을 택했다. 바로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도록 두는 것”이다. 카이사르의 죽음과 병으로 인한 수차례의 위기를 겪으면서 그는 과업을 이룰 때까지 절대 죽거나 죽임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카이사르의 지지자들과 숙적들을 모두 포용해야 했다. 실제로 아우구스투스는 그가 향하고자 하는 방향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원하던 세력과 보수적인 원로원들 모두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아우구스투스가 끌려오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원치 않는 진실을 다짜고짜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주면서 보고 싶은 진실로 포장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아우구스투스가 정확히 무엇을 했는가 알기 위해서는 그가 한 말을 그대로 믿지 말고 정말로 한 일을 보아야 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유명한 말이 카이사르의 정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한다면, 아우구스투스의 정치는 체스경기와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처럼 용맹하고 결단력 있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매우 계획적이고 주도면밀했던 것이다. 주사위 게임처럼 극적인 전투 대신 그는 종이에 물이 스며들듯 철저히 계산된 승리의 사다리를 묵묵히 한 단씩 밟아 올라갔다. 어제의 적도 필요하다면 오늘의 동료로 삼고, 전쟁의 지휘권을 스스럼없이 아그리파에게 넘기며, 자신이 구상한 계획이나 질서를 어그러뜨린다면 가족도 가차 없이 버릴 수 있었던 그는 빠르고 안전하게 황제의 권한을 티베리우스에게 위임하기 위해 자신의 죽음까지도 계획에 포함시켜둘 정도로 철두철미한 정치가였다. 언뜻 모순처럼 보이는 행동들, 예컨대 자신은 방종에 가까운 성적 자유를 누리면서도 딸에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었던 것 역시도 크게 보면 그 자신의 계획이 어긋나는 것을 막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아우구스투스에게 삶을 되돌려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그가 행했던 업적들을 이야기하면서, 그에게 영향을 미쳤던 많은 인물들과 사건들, 장소들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약 5백페이지에 걸쳐 다루어지는 가면 속 아우구스투스의 삶은 때때로 무시무시하기까지 한 놀라운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불확실한 사건들에 대해서 어떤 인위적인 추측은 가능한 한 배제하면서, 견고한 증거 위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을 소생시킴으로써 드라마틱한 문학작품을 읽는 재미와 충실한 역사서를 읽는 뿌듯함을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책이다.

앤서니 에버렛 저/다른세상 펴냄/2만2천원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