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광역자치단체장 탐구①재선 성공 차기 발판 마련 김문수 경기도지사

“경기도민 사랑 받는 내 이름은 ‘김결식’”

김문수 경기지사는 6·2 지방선거에서 가장 많은 ‘실속’을 챙겼다. 그는 힘든 싸움이 예상되던 범야권 단일후보 유시민 후보를 19만 1600표(4.4%포인트)차로 여유있게 누르고 재선에 성공하면서 한나라당의 구겨진 자존심을 빳빳이 세웠다. 초접전 끝에 민주당 한명숙 후보를 힘겹게 이긴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와 나란히 비교되면서 김 당선자의 존재감은 더욱 빛났다. 그가 재선을 할 수 있던 것은 재임시절 경기도민에게 줬던 신뢰가 밑바탕 됐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다시 한 번 경기도의 미래를 짊어진 김 지사. 그의 지나온 삶을 되짚어보고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해 봤다.

문중의 별에서 운동권 수배자로…25년 만에 졸업장 취득
대한민국 복지 패러다임 바꾼 ‘위기가정 무한돌봄 사업’


김문수 경기지사는 한국전쟁 이듬해인 1951년, 경북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에서 태어났다. 김 지사의 표현에 따르면 ‘빚 바랜 양반동네’로 유교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곳이다. 마을의 유일한 교육기관도 서당이었다. 그 역시 초등학교 내내 서당에 다니며 ‘사서삼경’ ‘명심보감’을 배웠다.

그의 유년시절은 썩 풍요롭지 않았다. 공무원이었던 부친이 친척의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어린 4남 3녀를 판잣집으로 나앉게 하는 비운을 맞았기 때문이다.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는 판잣집에서 호롱불을 밝혀 놓고 공부할 정도로 그의 배움에 대한 열의는 대단했다고 한다.

부동의  1등
‘문중의 별’

영천군 부동의 1등이었던 재능을 아까워한 선생님의 격려로 경북중학교에 입학한 김 경기지사. 이때부터 경북고등학교에서 서울대학교로 이어진 김 지사의 길고 가난한 ‘유학’생활이 시작된다.

경북고등학교 시절 김 지사가 활동한 주 무대는 수양동우회. 도산 안창호의 유지를 받들어 이광수가 만든 유서 깊은 조직이었다. 대구지역 연대 서클이었던 수양동우회에서 사회의식을 키웠던 그는 고 3때 소위 3선 개헌 반대를 주도했다. 경찰 조사를 받던 그는 지지 않고 3선 개헌 반대의 정당성을 주장하다 결국 무기정학 처분을 받기도 했다. 다행히 대학입시를 몇 개월 남겨놓고 정학이 풀려 서울대 경영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러분에게 역사적인 막중한 책임이 있다. 이 나라를 위해 함께 나서자!”는 한 선배의 동아리 모집 연설을 들은 그의 심장은 뛰었다. 그길로 사회과학동아리인 ‘후진국사회연구회’에 가입했다. 운동권 인생의 시발점이었다. 이후 ‘행동하는 운동권’으로 변신한 그는 대학교 2학년 때인 71년 10·15 부정부패척결 전국학생시위로 제적당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복학 조치가 내려졌지만 학교에 다닐 마음이 사라진 그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지방학교를 조직화해 유신반대를 외쳤고,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됐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구속, 고문을 받고 2년 6개월간 복역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고초를 겪은 끝에 입학 25년 만에 졸업장을 품에 안게 된다.

노동운동과의 인연은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주선으로 구로공단에 취직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김 지사가 맹활약하면서 그가 몸담았던 한일공업노조는 한국의 대표적인 노조로 명성을 날렸다. 이 가운데 그는 출근길에 사복형사 두 명에게 붙잡혀 악명 높았던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영장도 없고 구속만료도 없었다. 민주화 분위기 탓으로 다행히 다시 회사로 돌아온 그는 일주일간의 파업을 전개한 끝에 임금 30% 인상을 쟁취하며 완벽한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노동운동가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80년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김 지사는 소위 정화대상자가 돼 삼청교육대로 가야하는 수배자가 된다. 갈 곳 없는 그가 몸을 숨긴 곳은 세진전자 노조지부장을 지냈던 지금의 부인 설난영 여사의 자취방이었다.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청춘남녀는 한결 가까워졌고 “만인을 위해 살겠다고 하는 사람인데 한 여자를 못 살리겠느냐”는 그의 적극적인 설득 끝에 설 여사에게 결혼승낙을 얻어냈다.

1981년 9월26일. 서울 봉천동 사거리 밑 봉천중앙교회 교육관에서 원피스를 입은 신부와 뿔테 안경을 쓴 깡마른 신랑이 팔짱을 끼고 동시 입장한다. 웨딩드레스도 청첩장도 없는 김 지사와 설 여사의 결혼식이었다.

이날 결혼식장 주변으로 전경버스 다섯 대가 출동했다. 하객보다 경찰이 더 많았던 결혼식. 경찰이 두 사람의 결혼식을 시위를 열기 위한 ‘위장 결혼식’으로 의심했던 것이 그 이유다.

이후 김 지사는 정계에 입문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90년 민중당 창당에 참여, 노동위원장으로 선임되고,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민중당 전국구 후보 3번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94년 민주자유당에 입당 후 96년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부천시 소사구에 출마한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박지원을 누르고 당선되면서 전국적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어진 10년간의 국회의원 생활은 김문수라는 이름 석자를 국민들의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깐깐한 성격, 빈틈없는 논리, 청빈한 생활은 한나라당 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국회의원이 아니었고 ‘가난한 국회의원’은 어딜 내놔도 상대당의 공격에서 자유로웠다.

그는 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폭로하는 등 야당 저격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같은 저력으로 16, 17대 총선에서도 부천소사에서 ‘탄핵역풍’까지 뚫고 내리 3선에 성공한 그는 지난 2006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임한다. 그리고 6월1일 밤 그는 당당히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결식아동 항의에
‘김결식’ 별명 얻어

당선 이후 김 지사는 학교 급식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어릴 적 죽도 제대로 못 먹고 자랐던 그에게 학교 급식 문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의 김영삼 대통령에게도 건의하고 당시 신한국당 정책위원회에도 문제를 제기하여 학교 급식법을 세 번이나 고쳐가며 급식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힘썼다. 결식아동 급식 예산비를 삭감하려하자 김 지사가 추경 예산안을 조율 중이던 3당 총무회담을 박차고 들어가 “밥 굶는 아이들에게 왜 밥을 주지 않는가.
아이들이 유권자가 아니라고 이래도 되는 거냐”며 거칠게 항의했던 일은 국회의 전설로 남았다. 그 사건 이후 김 지사는 <김결식 의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 그는 ‘김문수 스타일’로 불리는 ‘현장 중심 활동’으로 유명하다. 하루에도 몇 곳씩 현장을 찾다보니 4년여 동안 관용차로 23만km를 달렸다. 지구 6바퀴를 돈 셈이다.

“정책은 교과서에 없다. 보고서에도 없다. ‘현장’은 살아있는 보고서이며 교과서다”라고 말하는 김 지사의 못 말리는 ‘현장사랑’은 마침내 그를 ‘김지사’에서 ‘김기사’로 변신하게 했다. “골프를 못 치면 정치인이 되기 어렵다”는 충고에도 골프 치는 시간이 아까워 여전히 ‘골프 못 치는 정치인’으로 남은 그가 휴일에 골프채 대신 택시 운전대를 잡은 것이다.

“쇼하지 마라, 얼마나 갈지 두고 보자”는 수군거림을 뒤로 하고 1년 여의 기간 동안 보통 택시 기사와 똑같은 조건에서 택시 영업을 한 김 지사. 하루 12시간씩 핸들을 잡고 총 18번 운행하는 동안 26개 시군을 넘나들며 400여 명의 경기도민을 만났다. “이보다 깊이 도민들과 만나는 방법을 지금까지 나는 찾지 못했다”는 김 지사가 택시 운전석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은 정책 구상의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경기도 전체를 한 시간에…수도권 교통 혁명 GTX 추진
골프채 대신 택시 운전대 잡아…국민과 소통하는 정치


그의 대표적인 정책은 수도권 광역 급행 철도(GTX) 건설 사업이다. 최고 시속 200km 로 지하 40m 이하를 달려 일산에서 강남까지 22분, 강남에서 동탄까지 18분 만에 도착하는 GTX는 경기도 전체를 한 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수도권 교통 혁명으로 평가된다.

“세계는 이미 메가시티 패권 경쟁 시대에 돌입했다. 대한민국의 심장 수도권을 경쟁력 있는 메가시티로 키워야한다”고 말해 온 김 지사는 외국 자본의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기 위해 경기도가 선결해야 할 과제는 균형발전의 논리로 50여 년간 적용 돼온 ‘수도권 규제 완화’라고 주장해 왔다.

수도권 규제 완화를 위한 그의 끊임없는 설득과 노력은 여의도 면적의 8배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 개발제한 구역 112㎢ 합리적 조정, 상수원 공장입지 제한거리 대폭 축소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그는 <김결식>이라는 별명답게 복지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대표적인 예가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 복지지원정책부문에서 2년 연속 대상을 수상한 ‘위기가정 무한돌봄사업’이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취약계층을 ‘무제한·무기한’으로 지원하는 복지 서비스로 법과 제도가 보호하지 못하는 위기에 처한 가정들을 ‘선지원·후심사’를 원칙으로 지원해준다.

단순한 경제적 지원 뿐 아니라 민간의 풍부한 복지 인프라와 연계한 수혜자 중심의 지속적이고 통합적인 지원을 하는 ‘위기가정 무한돌봄 사업’은 복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 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 17대 총선 공천심사위원장을 거치며 치열한 내부 경쟁을 극복하고 보수진영의 ‘차세대 주자’로 자리 잡은 김 지사는 지금 다시 한 번 경기도의 앞날을 책임지게 됐다.

이에 따라 향후 GTX 사업, 서해안 골드코스트 무한비상, 무한돌봄 사업 등 3대 핵심사업의 추진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GTX사업의 경우 국토해양부에서도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타당성 조사용역에 착수했고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 현대산업개발 등 3개 컨소시엄에서 국토해양부에 민간투자 제안서를 제출했다.

이와 함께 무한돌봄 사업을 크게 확장했다. 2014년까지 총 1977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위기가정은 물론 차상위층까지 자립을 지원할 계획이다.
김 지사는 이를 위해 이미 31개 시·군에 무한돌봄센터를 설치, 찾아가는 복지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경기도 사회복지공제회 확대 지원을 통한 사회복지 종사자의 복지 돌봄을 강화했다. 세부적으로는 가정보육교사 제도 확대 운영, 시간연장 보육시설 확대, 결식아동급식 확대, 중증장애인 연금제도 시행 등의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선지원·후심사’ 원칙
‘무제한·무기한’ 지원

또 유니버설스튜디오 코리아 리조트 조성사업을 중심으로 한 서해안 골드코스트 무한비상 사업도 추진 기반을 확고히 하게 됐다. 현재 송산그린시티 내 동측 부지 132만평에 테마파크, 씨티워크, 워터파크, 콘도미니엄을 건설해 2014년 개장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항공산업 육성, 평택항 개발 및 국제물류기지 건설사업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제 김 지사는 경기도 발전을 위한 움직임에 두 번째 걸음을 뗐다. 앞으로 그의 행보에 경기도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가 함께하기를 바란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프로필

<주요 경력>
·1951년 경북 영천 출생 ·경북 중·고등학교 졸업 ·1970년 서울대 경영학과 입학 후 민주화 운동으로 두 차례 제적과 투옥 후 25년 만에 졸업·도루코 노조위원장, 서노련 등 노동운동 ·1986년 5.3 인천 직선제 개헌 투쟁으로 2년 5개월 복역 ·제15, 16, 17대 국회의원 (경기도 부천 소사) ·한나라당 제1 사무부총장, 기획위원장, 공천심사위원장(17대 총선) ·2006년 민선4기 경기도지사


<수상. 자격증>
·1996년~2005년 10년 중 9년 의정활동 국정 감사 최우수의원 선정 ·1999년 결식아동 돕기 의정활동 공로패 수상  ·2006년 국회 출입기자단 선정 ‘약속 잘 지키는 국회의원 1위’, ‘일 잘하는 국회의원 1위’ ·2007, 2009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민선4기 광역자치단체 공약 이행도 평가 1위 ·2007, 2009년 포브스 경영품질대상 공공혁신 부문, 리더십 부문 대상수상 ·환경관리기사, 열관리 기능사 등 국가 자격증 9개 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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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