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억 ‘이북5도지사’를 아십니까?

남한 대통령이 북한 도지사 임명?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청와대 뒤쪽 구기동 언덕 이북5도청에 이북도지사 5명이 상주하고 있다. 이들은 차관급 대우를 받으며 도지사 타이틀을 갖고 있다. 엄밀히 말해 우리나라에는 9명의 도지사에 이북5도지사를 더해 총 14명의 도지사가 존재한다. 조금은 생소한 이북5도청과 이북5도지사의 실체를 알아봤다.

 
우리나라에는 총 9명의 도지사가 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최문순 강원도지사,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시종 충북도지사, 이낙연 전남도지사, 송하진 전북도지사, 홍준표 경남도지사, 김관용 경북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이다. 모두 선출직 공직자다. 그런데 이 9명 외에도 5명의 도지사가 더 있다. 박연용 황해도지사, 백남진 평안남도지사, 백구섭 평안북도지사, 황덕호 함경남도지사, 박기정 함경북도지사 등이다. 이북5도지사는 행정자치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들은 청와대 뒤쪽 구기동 이북5도청 청사에서 차관급 대우를 받고 있다.

도민회서 출발
행자부서 관리
 
박연용 황해도지사는 2011년 12월6일 임명됐다. 박 도지사는 해군사관학교 18기 출신으로 대구함(구축함) 함장, 해군 군수사령관, 국방과학연구소(ADD) 부소장, 황해도 중앙도민회 부회장, 황해도 성우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출생지는 황해도 벽성군이다.
 
백남진 평안남도지사(현 이북5도위원장)는 2013년 9월17일 임명됐다. 백 도지사는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출신으로 한국법제연구원 원장, 평남도민회 상임고문, 이북5도위원회 행정자문위원,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출생지는 평안남도 강동군이다.
 

백구섭 평안북도지사는 2013년 9월17일 임명됐다. 백 도지사는 원주 영서고 출신으로 일천만이산가족재회 추진위원회 부위원장, 대한민국 건국회 자문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기협의회 위원, 평안북도 행정자문위원 부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이북5도지역회의 부의장 등을 역임했다. 출생지는 평안북도 태천군이다.
 
황덕호 함경남도지사는 2011년 12월6일 임명됐다. 황 도지사는 숭의여자대학교 학장, 송호대학교 학장, (사)한국상록회 중앙회장, 한양대학교 ROTC 총동문회장, 대한민국 ROTC 예비역 기독장로연합회 회장, 서울중앙 YMCA이사, (사)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출생지는 함경남도 흥남시다. 영화 <국제시장>에 나온 흥남철수 배경지다.

9명 도지사 외에도 5명 지사 존재
이북출신 정·재계 인사들로 구성
 
박기정 함경북도지사는 2013년9월17일 임명됐다. 박 도지사는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으로 동아일보 정치부장, 편집국장, 동아문화센터 사장, 고려대 언론대학원 초청교수,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전남일보 사장, 한국디지털뉴스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출생지는 함경북도 청진시다.
 
이북5도지사들의 이력은 제각각이지만 이들 모두 이북에서 태어났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 정해진 임기는 없다. 이북5도위원장의 경우에만 윤번제로 도지사 가운데 1명이 1년간 위원장직을 맡는다. 현재 이북5도위원장은 백남진 평안남도지사다. 이북5도지사는 차관급 별정직 공직자로 2013년 기준으로 1년에 1억660만5000만원을 받았다. 여기에 각 도지사는 비서, 운전기사, 관용차 등을 두고 있다.
 

도지사뿐만 아니라 평양시장 등 각 동장도 존재한다. 2013년 기준으로 명예 시장·군수는 92명, 명예 시장·군수와 명예 읍·면·동장은 911명이다. 시장과 군수는 월 27만원, 읍·면·동장은 월 12만원의 수당을 받는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63세다. 임기는 3년이지만 두 차례 연임이 가능하다. 이북5도청의 행정 조직은 관할 지역을 실효 지배하는 북한의 행정 구역이 아니라 1945년 광복 당시의 행정 구역을 사용하고 있다. 서울 외에도 15개소에 시·도사무소를 두고 있다.
 
주요 업무는
이북도민 지원
 

이북5도청이 공개한 업무계획서에 따르면 2015년도 예산은 85억4600만원이다. 이중 인건비와 운영비가 64억원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사업 예산은 북한이탈주민 지원이나 이북도민 행사지원 사업에 집중돼 있다. 이북도민 체육대회와 도민단체 지원 등에 10억여원, 북한이탈주민지원 사업에 6억여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북5도지사들은 수천만원의 업무추진비를 쓸 수 있다. 올해 1∼2월 도지사별로 ▲위원장 608만원 ▲평남도지사 1009만원 ▲평북도지사 1752만원 ▲함경남도지사 128만원 ▲함경북도지사 82만원 ▲황해도지사 545만원을 사용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2012년 이북5개도지사와 위원장이 집행한 업무추진비는 1억2800여만원이다. 2013년에는 1억4000여만원이다. 5명의 도지사가 각각 2000만원에서 3000만원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
 
세부 항목을 들여다보면 업무추진비의 대부분이 식사비로 지출되고 있었다. 그 밖에는 기념품 구입과 화환 구입 등이 뒤를 이었다. 2012년에는 업무추진비를 현금으로 사용하고 영수증을 누락시켜 지적을 받기도 했다.
 
지난 11일 <일요시사>는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위치한 이북5도청을 찾았다. 청사 입구에는 ‘함께하는 이북도민 다가서는 평화통일’이라는 문구가 걸려있다. 청사는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다. 지하 1층에는 식당, 주차장 등이 있다. 1층에는 이북5도청사무국, 정보화교육장, 이산가족정보종합센터, 북한이탈주민지원팀, 북한관전시실, 새마을이북5도지부, 체력단련실, 유격군전우회 등이 있다. 2층에는 이북5도지사실과 각 지역 국장실, 회의실 등이 있다. 3층과 4층에는 지역별 도민회와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등이 자리하고 있다. 5층에는 각종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대강당, 중강당, 소강당이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일반적인 청사와 달리 건조하다.
 
 
이북5도청은 격월간지 <이북5도소식>을 발행하고 있다. 4면의 신문을 통해 이북5도위원회 주요현안, 전국 시·도사무소 소식, 해외이북도민회 소식 등을 전하고 있다. 이북5도청의 업무는 이북도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북도민을 위해 존재하는 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북5도청 공보실 관계자는 “도청의 주요업무는 이북도민 관련 행사 지원”이라며 “큰 행사가 1년에 5개 정도 잡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외에 별다른 업무가 없어 일종의 친목회로 바라보는 시각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세대가 교체되면서 결속력이 예전과 같지 않다고 전해진다. 정권의 성격에 따라 입지가 달라지는 것도 고민이다.

평양시장 등
군수도 존재
 
이북5도청을 만든 이북5도위원회의 뿌리는 민간단체인 이북5도민회다.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이 이북5도지사를 임명하고 5월23일 이북5도청이 문을 열면서 공공기관으로 거듭났다. 이북5도청 설립근거는 ‘이북5도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있다. 수복되지 않은 이북5도의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를 규정한 법률이다.
 
1962년 제정된 이후 64년 5월 도지사의 임명·지위에 관한 규정이 개정됐다. 이북5도 도청의 임시 위치, 도지사, 관장 사무, 행정기구, 이북5도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북5도란 1945년 8월15일 현재 행정구역상의 도로서, 아직 수복되지 않은 황해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함경남도, 함경북도를 말한다. 이북5도에 별정직인 도지사를 두는데, 도지사는 안전행정부장관의 제청으로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북5도청이 관장하는 업무는 ▲이북 5도의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각 분야에 걸친 정보의 수집·분석과 이북5도를 수복할 경우에 실시할 제반정책의 연구 ▲반공사상의 고취, 이북에 대한 국시선전과 선무공작의 계획실시, 남하피난민에 대한 사상선도 ▲남하피난민의 실태조사 및 직업보도와 정착사업조성 ▲가호적을 취적하는 경우의 원적지 재적확인 ▲남하피난민단체의 지도 등이다.
 
구기동 청사 상주…차관급 대우

고액 연봉에 비서, 관용차 지원
 
이밖에도 이북5도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공동처리하기 위하여 필요할 때에는 각령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북5도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문 7조와 부칙으로 구성돼 있다.
 
 
이북5도위원회가 상주하는 구기동 청사는 1993년에 완공됐다. 이북5도청사에는 사연이 있다. 이북5도민중앙연합회가 13대 대선 당시 노태우 후보를 조직적으로 지원해줬고 노 후보는 대통령이 된 뒤 이북5도청사 건립에 힘썼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노 전 대통령 재임 5년 동안 이북출신 국무총리는 강연훈(평북 창성), 정원식(황해 재령), 현승종(평남 강서) 등 3명이나 됐다.
 
이후 이북5도민중앙연합회는 1997년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지만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서 조직이 존폐 기로에 놓였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김 전 대통령은 유화책을 펼쳐 이북5도민중앙연합회에 정기적인 지원금을 지급했다.
 
이후 이북5도민중앙연합회 등 관련 단체는 청사에 지내면서 임대료를 내지 않아 특혜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행정자치부는 2005년 법을 개정해 “이북5도민 관련 단체에 대하여 이북5도위원회에서 관리하는 재산을 무상으로 사용하게 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사실상 면죄부를 준 셈이다. 이북5도청을 지원하는 관행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정권의 성격에 따라 입지가 달라진다지만 정권과 무관하게 장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과거 북한 관영방송인 <조선중앙방송>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박완순, 김만수, 안휘정 당 중앙위원을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충남도지사에 각각 임명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김 제1비서한테서 직접 임명장을 받은 이들은 1945년 8월15일 기준으로 아직 수복하지 못한 공화국 남반부 이남9도를 담당, 통일과 동시에 현지 행정을 담당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북한도 마찬가지
이남도지사 운영
 
방송은 ‘이남9도에 대한 국토관념을 명확히 하고 언젠가는 기필코 달성고야 말 실지회복에 대한 통일 의지를 표명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허구’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앞서의 이북5도청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에도 남한도청과 도지사 등이 존재한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니인터뷰] 백남진 평안남도지사 이북5도위원장
“이북5도청 몰랐다고? 거 참 이상하네∼”
 
평안남도 강동군 출신인 백남진 평안남도지사는 오랜 공직생활을 마치고 이북5도청에 입성했다. 그는 이북도민 관련 행사에 빠지는 일이 없다. 지난 12일에는 서울 종로구 나인트리컨벤션에서 열린 국외 이북도민 고국방문단 환영만찬에서 인사말을 전하며 언론에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다음은 백 도지사와의 일문일답.
 
-이북5도청을 생소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6·25전쟁 전부터 이북에서 월남해 온 사람들이 500만 명 정도다. 고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북5도청이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몰랐다는 게 이상한 거다. 우리 헌법 4조에 영토조항이 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다만 지금은 도적이 산을 점령하고 있어 우리가 통치를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한반도 전체는 우리 땅이다. 
 
-이북5도청의 주요업무는 무엇인가.
▲이북5도민들을 관리한다. 이북도민 인증도 우리가 해준다. 그리고 대통령배 이북도민 체육대회 등 도민 관련 행사 및 단체를 지원하고 감독한다. 이북5도청은 도민들에게 고향이나 다름없다. 도민들에게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500만 이북 사람들 위한 안식처”
 
-반공안보교육 등도 진행하나.
▲강명도 교수(탈북·경민대 북한학) 등 탈북민 교수들을 불러 강의를 하기도 한다.
 
-이북도민회가 도청 위에 있다는 말도 나온다.
▲어디가 세다고 할 문제가 아니다. 도민회는 어디까지나 민간단체다.
 
-이북5도청을 두고 예산 낭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에 대해 무심한 사람들이다. 건국초기부터 있던 조직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 때 현재 청사로 옮겼다. 그 전에는 다른 청사 한 층을 빌리는 식으로 셋방살이를 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린다.
▲경제는 세계를 향해 달리고 있는데 정치는 엉망이다. 안보 현실도 참으로 안타깝다. 신념이 좌 쪽으로도 우 쪽으로도 너무 치우치면 안 된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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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