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이 쓰는' 일상 신조어 대해부

눔프족, 금사빠녀, 꼬돌남…알고 계십니까?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국립국어원이 온·오프라인 매체 139개를 조사해 ‘2014 새 낱말’ 334개를 선정했다. 이를테면 ‘눔프족’ ‘뇌섹남’ ‘금사빠녀’ 등이다. 이 같은 신조어의 등장은 작금의 다양한 사회현상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신조어 탄생 배경과 그 쓰임새를 알아보자.

 
국립국어원(원장 민현식)은 2013년 7월부터 2014년 6월까지 각종 매체에 등장한 새 낱말(신어) 334개를 조사해 2014년 신어를 발표했다. 국립국어원은 이번 2014년 신어 자료집에는 ‘눔프족’(복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복지비용을 위한 증세에는 반대하는 사람),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 주관이 뚜렷하고 언변이 뛰어나며 유머가 있고 지적인 매력이 있는 남자), ‘금사빠녀’(금방 사랑에 빠지는 여자), ‘꼬돌남’(꼬시고 싶은 돌아온 싱글 남자) 등 우리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반영하는 신어들을 수록했다.

한국어 맞아?
아리송한 신어
 
이번 신어에는 특정 행동 양상을 보이는 사람들의 무리를 가리키는 어휘가 27%(92개)나 됐다. 실속 있는 소비 경향과 관련된 ‘모루밍족’(제품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자세히 살펴본 뒤, 모바일 쇼핑을 하는 사람), 숨 가쁜 일상이 반영된 ‘출퇴근 쇼핑족’(출퇴근을 하면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컴퓨터 따위로 쇼핑을 하는 사람) 등과 사회 경제적 문제를 반영한 ‘오포 세대’(생활고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주택 구입을 포기한 세대), ‘앵그리맘’(자녀의 교육과 관련한 사회 문제에 분노하여 적극적으로 그 해결에 참여하는 여성) 등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특정 부류를 가리키는 접사로는 ‘-족’ ‘-남’ ‘-녀’가 적극적으로 사용됐다. ‘앵그리맘’(당면한 사회 문제에 분노하는 엄마)과 같은 외래어를 기반으로 만든 신어의 비율도 64%로 높게 나타났다.
 

주제별로 살펴보면 사회·경제(24%, 80개), 통신(14%, 47개) 어휘가 많이 나타났다. 지속된 경기 불황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 어려움을 반영한 ‘임금 절벽’(물가는 지속적으로 오르는 데 반하여 임금은 오르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주거 절벽’(급격하게 오른 주거 비용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디 공포’(통화량의 축소에 따라 물가가 하락하고 경제 활동이 침체되는 현상에 대하여 느끼는 공포) 등이 그 예다. 특히 우리 사회를 ‘일자리 절벽’ ‘재벌 절벽’ ‘창업 절벽’ 등으로 설명한 <절벽사회>(고재학 저)에서 유래한 ‘절벽’계 어휘들이 다수 등장했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80%에 육박하면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먹스타그램’(자신이 먹은 음식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일) ‘인생짤’(그 사람의 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잘 나온 사진), ‘광삭’(빛의 속도와 같이 매우 빠르게 삭제함) 등 통신 관련 어휘들이 쏟아졌다. 음식 관련 어휘는 ‘맛저’(맛있는 저녁), ‘부먹파’(탕수육을 먹을 때 소스를 부어 먹는 사람의 무리) 등이 있다. 
 
교육 관련 어휘에는 ‘돼지맘’(교육열이 매우 높고 사교육에 대한 정보에 정통하여 다른 어머니들을 이끄는 어머니), ‘자동봉진’(자율 활동·동아리 활동·봉사 활동·진로 활동을 줄여 이르는 말) 등이 있다.
 
감정을 표현하는 어휘는 ‘고급지다’(고급스러운 멋), ‘심멎’(심장이 멎을 만큼 멋지거나 아름답다), ‘심쿵’(심장이 쿵할 정도로 놀라움), ‘핵꿀잼’(매우 많이 재미있음) 등의 긍정적 어휘와 ‘노관심’(관심이 없음) ‘극혐오하다’(아주 싫어하고 미워하다)와 같은 부정적 어휘가 나타났다.

사회 비추는
시대의 거울
 
이외에도 300개가 넘는 신조어가 있다. 그중에서도 사용빈도가 높은 것으로 판단되는 신조어의 용례를 픽션을 가미한 스토리로 풀어봤다.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 A씨가 ‘개총’(개강총회) 뒤 ‘개파’(개강파티)참석했다. ‘독강족’(아는 사람 없이 혼자 강의를 듣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학과 행사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을 알게 됐고 술자리에서 ‘두둠칫’(춤추면서 박자에 맞춰 몸을 가볍게 움직이는 모양) 다가갔다. 그녀에게 반해 ‘갠톡’(개인 카카오톡)을 시도했지만 현실은 ‘읽씹’(메시지를 읽고 나서 답장을 하지 않는 행위)이었다.
 
 
그래도 A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그녀를 갈망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듀얼성형’(두 군데 이상의 신체부위를 성형함) 미인이었다. 조금 실망했지만 ‘런피스’(원피스를 입고 러닝화를 신은 차림) 스타일이 무척 끌렸다. 뿐만 아니라 ‘놈코어’(지극히 평범한 옷이나 소품들을 이용해 자연스러운 멋을 표현함)는 기본이었고 ‘긱시크’(세련되고 지적이면서도 괴짜같은 느낌을 풍기는 패션 스타일) ‘꾸러기룩’(장난꾸러기처럼 활동적인 쾌활한 느낌을 주는 옷차림)과 ‘꾸러기템’(쾌활한 느낌을 주는 옷이나 소품)까지 소화해냈다.
 
갈수록 넘쳐나는 신조어…도대체 뭔 말?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사회현상 반영
 
A씨는 ‘썸’을 타지 않았지만 JTBC <마녀사냥>을 시청하며 그녀와의 ‘그린라이트’(상대방이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신호)를 꿈꿨다. A씨는 그녀가 ‘꽃오빠’(외모가 꽃처럼 아름다운 오빠)를 좋아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나 A씨는 ‘소금남’(피부가 희고 쌍꺼풀이 없으며 큰 키에 마른 몸매를 지녀 여린 소년의 느낌을 주는 남자) ‘옴므 파베르’(화장용품에 관심이 많은 남성)와는 거리가 있었다. 물론 외모가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A씨는 기본적인 패션센스도 ‘뇌섹남’ 기질도 없었다. 대충하고 다녀도 인기를 한몸에 받는 ‘완얼’(완성은 얼굴) 동기가 부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껌딱지녀’(다른 사람에게 들러붙어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여자)였다. 남자친구가 잠시라도 붙어있지 않으면 안 되는 성향이었다. A씨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고민 글을 올렸다. 그러나 인기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닥눈삼’(닥치고 눈팅 삼 개월)이 필수였다. 해당 게시판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글을 게시해도 반응이 없었다. 괜히 글 하나 잘못 썼다가 ‘빛삭’(빛의 속도와 같이 매우 빠르게 삭제함) 혹은 ‘광삭’(빛의 속도와 같이 매우 빠르게 삭제함)되기 십상이었다.
 
일단 A씨는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들로부터 ‘예스잼’(재미가 있음)을 이끌기 위해 ‘평타취’(평균과 비슷한 수준) 게시물을 올리며 존재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고대짤’(너무 오래되어 더 이상 재미를 주지 못하는 그림이나 사진)이라는 둥 ‘저퀄’(질이나 수준이 낮음)이나 ‘발퀄’(품질이 뛰어나지 않음)이라며 ‘노관심’(관심이 없음)이라는 반응 일색이었다.
 
고민하던 A씨는 ‘어그로꾼’(인터넷 게시판의 성격과 맞지 않는 주제의 글이나 특정 대상에 대하여 악의적인 글을 습관적으로 올리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먹고 연예인 가십 글을 올렸다. 예상대로 뜨거운 반응이 나타났고 ‘극호감’(아주 좋게 여기는 감정)과 ‘극혐오’(아주 싫어하고 미워하다)가 명확하게 갈렸다. 그러면서 일부 연예인을 향한 마녀사냥이 시작됐고 ‘반도녀’(한국여자)라며 여성을 비하하기에까지 이르렀다. A씨의 어그로로 인해 인터넷 커뮤니티는 난장판이 됐다. 급기야 ‘고소미 드립’(즉흥적으로 상대방을 고소하겠다고 말하는 일)까지 넘쳐났다.

긍정·부정적
골고루 등장
 
이를 계기로 A씨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벗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녀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스트레스를 풀고자 ‘넌치’(저녁과 다음 날 아침 사이의 늦은 밤에 먹는 추가적인 식사) 때마다 ‘존맛’(음식이 매우 맛있음을 속되게 이르는 말) 메뉴를 즐겼다. 습관적인 넌치에 A씨의 몸은 갈수록 불었다.
몸이 무거워지자 게을러졌고 외출도 줄어들었다.
 

자연스레 ‘린백족’(의자나 소파에 앉아 편안하게 등을 기대고 온라인 쇼핑을 즐기는 사람)이 돼 쇼핑도 집에서 즐겼다. 이후 물건을 더 저렴하게 구입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모루밍족’(제품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자세히 살펴본 뒤, 모바일을 통해 구매하는 사람)으로 발전하게 됐다. 여기에 한 단계 더 나아간 ‘바이슈머’(국내에서 판매되는 가격보다 싼 값에 물품을 사기 위해 수입상을 통하지 않고 해외의 인터넷 쇼핑몰 따위에서 직접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가 됐다.
 
 
A씨는 이런 식으로 다양한 물품을 수집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지인을 통해 귀여운 새끼고양이 한 마리를 분양 받았다. 이내 ‘냥스타그램’(고양이의 사진을 주로 올리는 인스타그램)에 빠지면서 방 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후 A씨는 ‘갓수족’(경제 활동을 하지 않고 부모가 주는 용돈으로 직장인보다 풍족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은 시대)으로 전락했다.
 
온·오프라인 구분 없이 등장하는 줄임말
자칫 소통 방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할라
 
대구에 사는 직장인 B씨는 여름이 오는 게 두렵다. 대구의 여름은 조금 과장하면 아프리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프리카’(여름에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높아 지나치게 더운 대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B씨는 ‘솔캠족’(혼자 산이나 들 또는 바닷가 따위로 나가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자 ‘나핑족’(밤에 야영을 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다가올 더위를 피할 방법을 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캠핑이 대중화되면서 ‘레티켓’(여가 활동을 하면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서 불쾌하다.
 
그러나 여성은 예외다. 레티켓이 좀 부족해도 예쁘면 ‘츤데레남’(겉으로는 퉁명스럽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남자)으로 변한다. 그리고 페이스북 주소를 알아내 ‘페메’(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낸다. 이런 식으로 접근해 지금까지 수십 번이고 ‘삼귀다’(아직 사귀지는 않지만 서로 가까이 지내다) 단계까지 발전했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학부모 C씨는 소위 ‘돼지맘’(교육열이 매우 높고 사교육에 대한 정보에 정통해 다른 엄마들을 이끄는 엄마)이다. C씨의 아이들은 하루에 5개가 넘는 사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교육절벽’(과도한 교육비 지출로 인해 가정 경제의 부담이 과중되는 현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은 피할 수 없다.
 
C씨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의 성적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들은 ‘덕통사고’(뜻밖에 일어난 교통사고처럼 어떤 일을 계기로 갑자기 어떤 대상에 병적으로 집중하거나 집착하게 됨)를 당해 공부와 담을 쌓게 됐다. 급기야 ‘덕밍아웃’(한 분야에서 지나치게 심취하는 사람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일)까지 했다. 비뚤어진 건 아니지만 답답했다.

지속적 사용시
사전등재 결정
 
딸은 더했다. C씨의 딸은 ‘자방세대’(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 방송하는 세대)였다. 하루 온 종일 아프리카TV에서 ‘먹부심’(먹는 일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을 부렸다. 치킨, 피자, 삼겹살 등 ‘위꼴샷’(위가 움직일 정도로 식욕을 자극하는 사진)을 올리며 별풍선을 받기도 했다. 딸은 ‘바이어트녀’(자전거를 타면서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 등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주 시청자라며 자랑스러워한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에는 다양한 신조어가 녹아 있다. 습관처럼 내뱉는 말 중에는 신조어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 국립국어원은 매해 조사 전 12개월에 걸쳐 발간된 대중 매체의 언어를 대상으로 자동 신어 조사기를 활용하여 신어 후보 항목을 추출하고, 비속어 제외 등의 신어 선정 기준에 따라 그해 신어를 최종 선정한다. 이렇게 선정된 신어는 이후 지속적인 사용 양상을 관찰하여 사전의 등재 여부 및 표준어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앞으로는 어떤 신조어가 등장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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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