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1000호 특별기획 ①> ‘5000만 대한민국 현주소’ 국민의 4대 의무 대해부 ③교육

개천서 용? 돈 없으면 공부도 못한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쿠레레(currere)’는 ‘달리는 것’이란 의미를 지닌 라틴어다. 이 단어는 이후에 ‘커리큘럼(curriculum)’의 어원이 된다.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달리는 경주마처럼 주위를 살피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과정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비유다. 일요시사가 지면 1000호까지 발간되는데 걸린 시간은 20여년. 그 기간 동안 열심히 달려온 대한민국의 교육을 <일요시사>가 되짚어본다.

한 언론에 따르면 대한민국 교육은 지난 20년간 15회나 변화했다. 전년과 동일한 경우는 겨우 5회뿐이었다. 그마저도 2년을 넘긴 사례가 없다. 그만큼 수험생은 매번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정작 수능을 치는 것은 학생이었지만 그들의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정권의 입맛에 따라 변화하기 일쑤였다.

죽어가는
공교육 현장

전문가들은 “대입의 기본인 수능은 변별성과 객관성이 충분히 있지만, 교육당국 스스로 ‘문제가 있다’며 위정자의 입맛에 맞춰 자꾸 손을 대다 보니, 오히려 개악하는 교각살우를 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대부분의 국민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난이도 조절도 매년 실패했다. 그해가 어려웠다면 다음해는 물수능(난이도가 아주 낮은 수능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으로 나오기 일쑤였다. 시소처럼 들쭉날쭉하는 난이도에 피해사례는 속출했다. 문제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수능 후 정신과 치료를 받는 학생까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수험생 우울증’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스트레스에 의한 반작용도 심각한 수준이다. 수능일 전후로 사회면을 보면 꼭 지나친 음주에 의한 사건사고 소식이 전해진다. 문제는 그 주인공이 수험생이라는 점이다. 2004년 한 언론을 통해 보도된 그 당시 세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일부 대입수험생들은 수능이 100일정도 남은 최근과 같은 시기에 그 동안 쌓인 피로와 액운을 한 잔 술로 씻어 내리며 스트레스를 풀고 심기일전의 기회로 삼자는 의미를 부여한 백일주를 마시며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백일주를 마실 때 더 많이 마실수록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네 종류의 술을 모두 마셔야 네 영역을 모두 잘 치룰 수 있다는 식이다. 백일주를 쉬지 않고 한 번에 마셔야 한 번에 대학 간다는 이야기가 많이 퍼진다고 한다.’ 말 그대로 과열된 입시분위기가 만든 악습이요, 과도한 경쟁이 낳은 미신인 것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교실 풍경은 많이 변화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15개 이상을 유지하던 학급이 출산율 저하에 따른 학생 수 감소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산간지방을 중심으로 학교가 통·폐합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2001년 <연합뉴스>를 통해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경기도내 농촌지역의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통·폐합되거나 분교장으로 격하되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서 ‘도내 농촌학교 8개교를 인근 학교로 흡수통합하거나 분교장으로 개편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며 ‘계속되는 학생 수 감소로 인해 개별 학교체제를 유지하기가 힘든데다 교원 수가 줄어드는 등 교육여건마저 나빠지는 바람에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교실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심각했다. 지나친 입시위주의 교육문화가 정착되다 보니 사교육 비중이 늘어났으나 정작 공교육은 발빠른 입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였고 이는 교권이 무너지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지나친 암기위주의 수업도 학생의 흥미를 잃게 해 선생님들은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을 깨우기 바빴다.

교사의 체벌도 사회적 문제로 지적됐다. 학생의 뺨을 때리는 것은 기본이고 교실에 골프채를 들고 와 휘두르는 교사도 있었다. 반대로 체벌로 교사가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있었다. 체벌을 당한 학생이 장면을 촬영한 뒤 교사를 고소하거나 인터넷상에 유포하겠다며 협박하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제자는 스승을 존경하고, 스승은 제자를 사랑한다는 뜻을 지닌 사자성어 존사애제는 더 이상 현장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활개 치는
사교육 시장
 

2010년 경기도 김포에서는 체벌을 받던 여고생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16살 정양은 학교 운동장에서 체벌을 받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지각을 했다는 이유로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던 중이었다. 이후 보건실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정양은 끝내 숨지고 말았다. 정양은 신장 수술을 2번이나 받은 적이 있는 등 입학 당시부터 몸이 약했던 ‘주요보호학생’이었다는 점에서 학교 측의 좀 더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했다는 여론이 많았다.


체벌에 의해 자살하는 경우도 있었다. 광주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다니던 한 남학생은 자율학습에 2시간 동안 빠졌다는 이유로 담임교사에게 발바닥을 지휘봉으로 100여대를 맞았고 결국 모 놀이터 정자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교육 약화·사교육 강화·유학 활황
공급중심서 수요중심으로 시장 변화

 

문제가 커짐에 따라 2011년 3월18일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학생에 대한 신체적 처벌을 금지하는 ‘체벌금지법’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는 지금도 문제로 지적될 만큼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현장의 교사들은 실효성 없는 법으로 오히려 문제만 크게 만든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균관대학교 양정호 교육학과 교수가 ‘2013년 교수·학습 국제 조사(TALIS·Teaching and Learning International Survey 2013)’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대한민국에서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하는 교사가 갈수록 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갈수록 무너지는 교권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무관하지 않다.

한편 사라지지 않는 군대식 체벌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일보>에서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수원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A양은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교복을 줄여 입은 학생을 불러 뺨을 때렸다”며 “국어 선생님은 ‘나는 체벌 금지법이니 학생인권조례니 신경 안 쓰니 신고할 테면 신고하라’고 소리 질렀다”고 말했다.

이렇듯 급변하는 입시 제도, 교사의 체벌 등으로 공교육은 힘을 잃어간 반면 사교육 시장은 점점 과열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2015년 한국소비자원이 제공하고 JTBC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초등학생 자녀 한 명당 투자되는 한 달 사교육비가 평균 37만원으로 조사됐다.

또한 초등학생 41%는 입학하기 전부터 사교육을 받았다고 답했다.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사교육에 노출된 것이다. 사교육비에 지친 학부모들은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경쟁위주의 입시 제도부터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현실은 요원하기만 하다.

교육부가 통계청과 공동 실시한 ‘2014년 사교육비·의식조사에 대한 분석 결과’를 보면 2014년 사교육비 총 규모는 약 18조2000억원으로 나타났다. 2013년에 비해 줄어들었다곤 하나 여전히 큰 규모를 자랑하는 사교육 시장은 결국 가계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측면에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금액의 총액도 그렇지만 양극화 현상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소득격차가 늘어나면서 계층 간 교육에 투자하는 비용의 차이가 심해지게 되었고 결국 이는 부의 대물림 현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결국 계층의 고착화 현상이 나타나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고소득층의 교육비 지출액이 저소득층보다 8배 정도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는 이 같은 사교육비 증가의 원인으로 예체능 과목에 대한 수요 증가를 꼽는다. 자료에 따르면 예체능 사교육비는 2011년 4만6000원에서 이듬해 4만2000원으로 떨어진 뒤 2013년부터는 2년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음악과 미술, 체육 등 예체능의 1인당 사교육비는 2013년 4만7000원에서 지난해 5만원으로 7% 증가했다. 대한민국 교육이 결국 취업과 무관하지 않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경향은 결국 ‘슈퍼맨’을 요구하는 대기업 문화와 단편적 평가 제도에 의한 폐해로 보여 진다.

떠나는 자식
기러기 증가

사교육은 그동안 입시와 취업 경향에 반응해 꾸준히 변화해 왔다. 인기 과목에 있어서 과거 수학이 주목을 받았다면 이후 영어 열풍이 불면서 영어 과목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바 있다. 수요가 증가하니 영어 전문 학원이 학원가를 점령했다. 그리고 이젠 영어 조기 교육 열풍을 넘어 ‘다언어 조기 교육’ 바람으로 번지고 있다.


학부모들이 자주 방문하는 웹사이트를 보면 이러한 경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그곳에선 영어, 중국어는 물론이고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 다개국 언어 학습을 위한 프로그램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언어를 학습하는 아이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려 자기 자녀의 실력을 공개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취업난이 사회적 문제로 거론되면서 취업 준비생들의 스펙이 상향평준화되다 보니 연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 지적한다.

그 외에도 사교육 시장은 고급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났다. 기존에 많은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되던 사교육이 점점 소규모로 변모되었고 이젠 1:1 과외 형식으로 이어진 것이다.

일부 대형 학원을 중심으로 프랜차이즈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고수익을 올리는 몇몇 학원이 몸집을 부풀려 기업화되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에 현재 골목에 위치한 중소 학원가는 시장 독점화를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터넷 강의 시장도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이는 2000년 4월27일 헌법재판소가 내린 과외금지 위헌결정이 기폭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지난 1980년 이후 제한적으로 허용되어 온 과외교육을 전면 허용함에 따라 온라인 강의에 대한 시장 선점 경쟁이 격화된 것이다.

특히 소비자들은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지 않고 맘에 드는 강사나 학원으로부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온라인 강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관심이 증폭되니 수요가 증가하게 되었고 결국 최근에는 대형 입시학원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병행하는 시스템까지 등장했다. 온라인 강의 시장의 활성화는 스타강사의 등장으로까지 이어졌다.

국내 사교육으로 성에 차지 않은 학부모들은 자녀를 조기 유학시키는 경향도 갈수록 늘어갔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인 2004년 대부분의 언론매체들은 해외 유학과 어학연수 비용 등으로 송금된 돈이 2조원을 넘어섰다고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2014년이 되면서 이는 3조원대로 증가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기 직전인 2007년 5조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것에 미치진 못하지만 그래도 아직 높은 수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잇따른 부작용도 나타났다. 특히 조기유학은 자녀 뒷바라지를 위해 부모가 동행하는 경우가 많아 비용이 몇 배나 더 들었고 ‘기러기 아빠’와 같은 부자연스런 가족관계를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현대에는 ‘맹부삼천지교’가 더 적합한 표현으로 보인다.

변함없는 건 입시전쟁 뿐
국영수만 잘하는 건 옛말

일각에서는 학부모들이 이렇듯 분별없이 조기유학에 매달리는 현상은 국내 사교육비의 부담 증대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서울대학교의 한 교수는 이러한 교육계 전반에 대한 총체적 문제에 대해 “공교육이 부실해 학부모의 위기 의식을 초래한 만큼 대안학교, 자립형 사립학교, 영재학교 등 다양한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이도 지난 20년을 되돌아보면 교육 문제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써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히려 자립형 사립학교의 경우 현재는 입시학원화 되어 많은 문제를 유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패한 수능
곳곳서 자살

지난 세월 동안 드러난 교육 문제에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공교육 정상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오늘내일의 얘기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결국 지난 20년은 공교육과 사교육, 그리고 유학 등 교육 전반에 대한 사항이 꼬리에 꼬리는 무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교육의 정상화는 요원하기만한 한 것일까. <일요시사>의 지면 2000호가 발간되는 다음 시점에선 과연 어떤 내용의 기사가 실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상한’ 대한민국 교육 현실

 

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논의는 정치 얘기 만큼이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누구나 받아본 의무교육에 대한 실효성 부분은 온 국민의 관심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난 20년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공교육 기능의 약화, 그에 따른 사교육 시장의 확대, 조기교육 열풍, 봄철 황사처럼 퍼져간 유학바람 등 복잡다변화의 연속이었다.

근대교육의 아버지라 불린 요한 페스탈로치는 “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머리와 손과 가슴이 적절하게 조화된 전인(全人)의 형성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교육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공교육·사교육을 떠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이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전인교육은 고사하고 암기 위주의 교육에 치우치게 됐다. 이에 대해 교육학을 가르치는 어느 대학의 교수는 “대한민국 교육을 아이로 치면 머리만 비대한 가분수다”고 안타까워했다.

비단 현장의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결과중심적 평가, 대입 위주의 입시제도 등을 보며 한숨짓는 국민이 태반이다. 이는 1994년부터 실시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때문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수능의 도입으로 기존에 대학입시 위주로 흘러가던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시키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경쟁을 더욱 과열시키는 양상이 됐다는 지적이다.

당시 보도된 기사를 보면 그러한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매년 성적을 비관해 투신자살하는 사례가 급속히 늘어난 것이다. 심지어 시험을 치르기 3일전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여고생의 사례도 있었다. 꿈 많던 학생들은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러한 현상들이 비단 수능의 도입 때문이라 단정 짓긴 힘들다.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정권에 따라 갈팡지팡하는 교육 제도와 매년 실패하는 수능 난이도 조절 실패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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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