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군' 국방부 졸책 실태

항상 일 터지고 수습하니 ‘엉망진창’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군에서 사건이 터지면 국방부는 극약처방을 내린다. 얼핏 보면 그럴싸한 정책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건지, 물음표를 짓게 한다. 이대로 가다간 국군이 오합지졸 당나라 군대가 될까 우려된다. 점점 산으로 가는 군대를 만드는 ‘졸책’들에 대해 알아봤다.

 
지난해 4월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 육군 28사단 977포병대대 의무대 내무반에서 윤 일병이 선임병 5명과 초급 간부에게 지속적으로 폭행당해 사망했다. 윤 일병 폭행 사망사건의 주범인 모 병장은 법정에서 징역 45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6월에는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육군 22사단 55연대 GOP에서 임 병장이 총기를 난사해 장병 5명을 살해하고 7명을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임 병장은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 받았다. 

탁상공론 때문
병영혼란 여전
 
‘윤 일병 사건’과 ‘임 병장 사건’이 터진 이후 갖은 군 사건사고 소식이 쏟아졌다. 군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면서 ‘(군대에서)참으면 윤일병, 못 참으면 임병장’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군은 변화의 의지를 내비쳤다.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1차원적인 대책만 나왔다는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기는커녕 사건의 본질을 벗어나는 ‘졸책’들이 줄지어 나왔다.
 
국방부는 지난해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를 통해 20개 과제로 구성된 ‘병영문화 혁신안’을 제시했다. 국방부의 병영혁신안은 ▲장병 기본권 제고를 위한 군인복무기본법 제정 ▲구타 및 가혹행위 관련 신고포상제도 도입 ▲현역 입영대상자 판정기준 강화 ▲현역복무 부적합자 조기 전역 ▲GOP 부대 근무병사 면회제도 신설 등 20개 단기 및 중장기 과제가 포함됐다. 하지만 생색내기용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육군은 ‘이등병(훈련병)-일병-상병 3계급 혹은 ‘일병-상병’ 2계급 체계를 기본으로 한 계급체계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갓 입소한 훈련병들에게 훈련병이 아닌 이등병 계급장을 달아주고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로 배치되면 바로 일병 계급을 부여해 ‘이등병 괴롭히기’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우수병사만 병장계급을 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군대문화를 개선한다는 이유로 다양한 계급 단순화 방안들이 쏟아졌다. 여기에는 병사의 숙련도에 따라 계급을 부여하자는 파격적인 제안도 있었다. 계급 단순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군 복무기간이 36개월이던 시절 만들어진 계급제도를 복무기간이 크게 단축된 현재에도 유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계급 단순화의 당사자인 장병들은 부정적이다. 부대마다 차이는 있지만 병 상호간에는 계급을 떠나 ‘호봉’ 개념이 자리하고 있어 계급체계 단순화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사고 터질 때마다 비슷한 처방 내려
급하게 내놓는 정책들 실효성 물음표
 
군대 내에서 사용하는 명칭도 도마에 올랐다. 국방부는 지난달 16일 병사들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보호 관심 병사’ 명칭을 10년 만에 폐기하기로 했다. 이날 국방부는 “지난해 22사단 총기 난사사건과 28사단 윤 일병 사건 직후 부각된 관심병사라는 용어가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보호·관심병사 관리제도’라는 명칭을 ‘장병 병영생활 도움제’로 변경해 시행한다”고 밝혔다.
 
보호·관심병사 관리제도는 병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를 A급(특별관리), B급(중점관리), C급(기본관리) 등으로 구분해 관리하는 제도다. 지난해 말 기준 보호·관심병사는 A급 8433명, B급 2만4757명, C급 2891명 등이다. 국방부는 기존 3개 등급이었던 보호관심 병사 분류 그룹을 ‘도움’과 ‘배려’ 2등급으로 단순화했다. 관심 병사 명칭을 ‘도움 병사’ ‘배려 병사’로 바꿨다. 하지만 관심 병사 지정 여부는 비밀이었던 제도여서 결국 바뀐 것은 명칭뿐이라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본질 빗나가…

근본대책 전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였던 군 희망준비금 제도를 두고도 말이 많다. 희망준비금 제도는 전역하는 장병에게 100만∼200만원을 지급해주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희망준비금 제도는 공약 파기 수준이다. 국방부는 78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국고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병사들이 자신의 월급을 적립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바꿨다.
 
국방부에 따르면 희망준비금에 가입한 장병의 수는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1만4789명으로 집계됐다. 올해 병사 수는 약 44만1000여명으로 3.3%에 불과한 병사들만 희망준비금 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군 당국은 장병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본인 부담으로 희망준비금을 적립해도 참여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80% 수준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국방부는 지난해 9월 중순부터 ‘국군희망준비적금’이라는 이름의 상품을 출시했다. 연이율은 기간에 따라 국민은행은 4.4∼5.8%, 기업은행은 3.8∼5.3%의 금리를 적용한다. 그러나 최대 저축한도가 240만원이어서 제도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 상품을 통해 박 대통령이 공약한 300만원을 모으려면 군 복무 21개월 동안 매달 14만2800원을 적금으로 부어야 한다. 올해 장병들의 월급은 이등병 12만9400원, 일병 14만원, 상병 15만4800원, 병장 17만1400원이다. 2012년 국방부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 달에 1만원도 채 모으지 못한다고 응답한 병사는 63.2%에 달했다.
 
 
실효성이 의심되는 제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방부는 지난해 육군 25사단 1대대를 대상으로 ‘중대별 수신용 공용휴대전화’를 선보였다. 당시 국방부 관계자는 “25사단 1대대 예사 3개 중대에서 중대당 수신용 휴대전화 4대를 운용하고 있다”며 “각 중대의 계급별 생활관에 1대씩 지급, 일과시간이 아닐 때 공용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 제도 시범운용 초기 엿새간의 수신용 공용휴대전화 사용실적은 165건으로, 계급별로는 이등병 75건(46%), 일병 37건(22%), 상병 24건(15%), 병장 29건(17%)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수신용 공용휴대전화는 2세대(2G)폰이다. 같은 생활관의 병사 계급별로 대표자를 지정해 수신용 공용휴대전화를 지급한 뒤 같은 계급의 병사가 대표자에게 이 전화기를 가져다 사용하는 방식이다. 각 중대 행정반에서 2G폰을 보관하고 있다가 부모가 거는 전화를 바꿔주는 방안도 검토됐다.
 
하지만 연간 사용료가 60억여원 가량이고, 같은 계급의 대표자에게 이 전화를 빌려 쓴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이 제도의 실효성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부모가 장병에게 전화를 걸 수 있다는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소통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있을지 몰라도 자칫 잘못 운용되면 당나라 군대로 가는 지름길이 될 거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화상면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리 곱지만은 않다. 국방부와 미래창조과학부는 오는 10월부터 ‘화상면회 시스템’을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지난달 16일 국방부와 미래부는 이같은 내용이 포함된 ‘공개 SW와 loT(사물인터넷) 관련 기술개발·활용 촉진을 위한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군 내 사건사고 등으로 인한 장병 부모 등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직접 얼굴을 보면서 소통할 수 있는 화상면회 시스템을 공개SW 기반으로 구축한다. 시범운영은 5월부터 시작된다. 
 
이 같은 제도는 병영문화 개선의 일환으로 그 취지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장병 간 위화감이 조성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편부모 또는 부모가 없는 장병의 경우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소통의 활로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기는 현대화
제도는 글쎄∼
 

육군의 ‘병사 전투체력 강화’ 방침을 놓고도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육군에 따르면 병사 교육훈련체계는 기존 핵심평가 과목인 사격, 정신교육, 체력단련, 전투기량 등 4개 부문에서 경계근무 요령을 추가한 5개로 늘어난다. 사격훈련은 구간을 정해놓고 사격하던 기지거리 사격(100m, 200m, 250m)에서 전투사격으로 바뀐다. 체력단련의 경우 기초체력과 2개의 전투체력 과목을 혼합한 형태로 바뀐다.
 
특히 전투체력 과목에는 군장메고 10km 급속행군, 5km, 뜀걸음 등이 추가된다. 군장 메고 10km 급속행군은 2시간10분 내에, 5km 뜀걸음은 40분 내에 주파해야 합격이다. 육군은 핵심 5개 평가과목에 대한 개인별 평가를 특급, 1급, 2급 등 3개 등급으로 분류할 예정이다. 특급 등급을 받으면 조기 진급 및 포상 휴가, ‘특급전사’ 명칭이 부여된다.
 
이러한 육군의 방침은 강군을 위한 노력으로 풀이된다. 전장에서 핵심은 보병이기 때문에 체력을 한계치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첨단 무기가 발전하며 군이 현대화되는 시점에 너무 강도 높은 훈련으로 장병들을 혹사시키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개인마다 다른 체력으로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도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군 당국은 군대 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신병영문화 창달 추진계획(2000년)’ ‘병영생활 행동강령(2003년)’ ‘선진병영문화 비전(2005년)’ ‘병영문화 개선운동(2011년)’ 등 비슷한 처방을 내놓았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강군 위한 노력 없고 돈질만?
이면엔 ‘군피아’ 뿌리 박혀 
 

전문가들은 병영문화 혁신안에 병영 시설개선 등 장병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를 확대해야한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병영문화 혁신안에는 관련 예산확보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 독일식 ‘군사 옴부즈맨(국방 감독관) 같은 독립적인 외부감사기구 설치는 군사보안을 이유로 반영되지 않았다. 이처럼 군이 껍데기만 바뀌고 알맹이는 그대로다 보니 군 관련 문제는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군피아 논란도 여전하다.
 
최근에는 불량 방탄복 2000여벌이 특전사 장병들에게 보급됐다. 애초 시험운용에서 ‘생존률이 낮고 모든 면에서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군수담당 장교가 부적합 의견을 전부 빼낸 것으로 드러났다.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은 불량 방탄복이 임무수행에 적합하다는 내용으로 시험평가 문서를 조작한 육군 전모(49)대령을 지난달 24일 구속기소했다. 전 대령은 특전사 군수처장으로 근무하던 2010년 5월 군수업체 S사가 제작한 ‘다기능 방탄복’에 대한 예하부대 2곳의 시험평가 결과를 거짓으로 작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전사는 방탄복 성능이 대테러·침투 등 실제 작전에 적합한지 납품 전에 확인하기 위해 2009년 3공수여단 정찰대와 707대대에 문제의 방탄복을 시험 운용하도록 했다. 707대대는 “방탄 플레이트 등급이 낮아 생존율이 저조하다”고 평가했다. 또 ‘어깨보호대 때문에 사격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혼자 착용할 수 없다’ ‘신속하게 해체되지 않아 긴급 상황 발생 시 생존성이 낮다’는 등 모든 면에서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냈다.
 
그러나 전 대령은 707대대의 이런 의견을 배제하고 야전부대 운용시험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특전사령관 결재를 거쳐 통과됐고 S사가 사업을 따내 2010∼2012년 세 차례에 걸쳐 13억원 상당 2062벌의 불량 방탄복을 납품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국정감사 등에서 불량 방탄복 문제가 제기되자 북한군의 신형 개인화기인 AK74 소총까지 막을 수 있게 개선된 방탄복으로 교체 중이다. 합수단은 S사를 압수수색하고 주변 금융 거래 내역을 살피며 해당 장교들과 금품 거래가 있었는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합수단은 박 중령도 수사가 마무리 되는 대로 재판에 넘길 방침이다.
 
우리 군 주력 전투기 KF-16 등의 정비대금 243억원을 빼돌린 예비역 중장 등 고위 공군 장교들도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업체 로비스트로 영입돼 정보수집과 수사무마, 정비대금 부풀리기에 적극 가담했다. 지난달 16일 합수단에 따르면 공군작전사령관과 공군교육사령관 출신인 천기광(68) 예비역 중장은 2008년 전투기 정비업체 ‘블루니어’에 영입돼 회장까지 지냈다. 이 회사는 공군 하사관 출신 박모(53·구속기소)씨가 세운 회사였다.

껍데기만 바뀌니
갈수록 점입가경
 
2009년에는 공군본부 장비정비정보체계개발단 과장을 지낸 우모(55) 예비역 대령이, 그 이듬해에는 항공전자장비 정비부대장 출신인 천모(58) 예비역 대령이 영입됐다. 이후 블루니어는 이들 예비역 장교 3명이 활약하며 주력 전투기 정비업체로 급성장했다. 그리고 2006∼2011년 KF-16 피아식별장치(CIT) 등 2902개 부품 정비 관련예산 457억원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합수단은 이들 예비역 장교 3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이처럼 군 문제 이면에는 ‘군피아(군대+마피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에게 군은 단지 돈을 벌기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군 정책이 제대로 나올리 만무하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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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