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군' 국방부 졸책 실태

항상 일 터지고 수습하니 ‘엉망진창’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군에서 사건이 터지면 국방부는 극약처방을 내린다. 얼핏 보면 그럴싸한 정책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건지, 물음표를 짓게 한다. 이대로 가다간 국군이 오합지졸 당나라 군대가 될까 우려된다. 점점 산으로 가는 군대를 만드는 ‘졸책’들에 대해 알아봤다.

 
지난해 4월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 육군 28사단 977포병대대 의무대 내무반에서 윤 일병이 선임병 5명과 초급 간부에게 지속적으로 폭행당해 사망했다. 윤 일병 폭행 사망사건의 주범인 모 병장은 법정에서 징역 45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6월에는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육군 22사단 55연대 GOP에서 임 병장이 총기를 난사해 장병 5명을 살해하고 7명을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임 병장은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 받았다. 

탁상공론 때문
병영혼란 여전
 
‘윤 일병 사건’과 ‘임 병장 사건’이 터진 이후 갖은 군 사건사고 소식이 쏟아졌다. 군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면서 ‘(군대에서)참으면 윤일병, 못 참으면 임병장’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군은 변화의 의지를 내비쳤다.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1차원적인 대책만 나왔다는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기는커녕 사건의 본질을 벗어나는 ‘졸책’들이 줄지어 나왔다.
 
국방부는 지난해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를 통해 20개 과제로 구성된 ‘병영문화 혁신안’을 제시했다. 국방부의 병영혁신안은 ▲장병 기본권 제고를 위한 군인복무기본법 제정 ▲구타 및 가혹행위 관련 신고포상제도 도입 ▲현역 입영대상자 판정기준 강화 ▲현역복무 부적합자 조기 전역 ▲GOP 부대 근무병사 면회제도 신설 등 20개 단기 및 중장기 과제가 포함됐다. 하지만 생색내기용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육군은 ‘이등병(훈련병)-일병-상병 3계급 혹은 ‘일병-상병’ 2계급 체계를 기본으로 한 계급체계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갓 입소한 훈련병들에게 훈련병이 아닌 이등병 계급장을 달아주고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로 배치되면 바로 일병 계급을 부여해 ‘이등병 괴롭히기’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우수병사만 병장계급을 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군대문화를 개선한다는 이유로 다양한 계급 단순화 방안들이 쏟아졌다. 여기에는 병사의 숙련도에 따라 계급을 부여하자는 파격적인 제안도 있었다. 계급 단순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군 복무기간이 36개월이던 시절 만들어진 계급제도를 복무기간이 크게 단축된 현재에도 유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계급 단순화의 당사자인 장병들은 부정적이다. 부대마다 차이는 있지만 병 상호간에는 계급을 떠나 ‘호봉’ 개념이 자리하고 있어 계급체계 단순화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사고 터질 때마다 비슷한 처방 내려
급하게 내놓는 정책들 실효성 물음표
 
군대 내에서 사용하는 명칭도 도마에 올랐다. 국방부는 지난달 16일 병사들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보호 관심 병사’ 명칭을 10년 만에 폐기하기로 했다. 이날 국방부는 “지난해 22사단 총기 난사사건과 28사단 윤 일병 사건 직후 부각된 관심병사라는 용어가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보호·관심병사 관리제도’라는 명칭을 ‘장병 병영생활 도움제’로 변경해 시행한다”고 밝혔다.
 
보호·관심병사 관리제도는 병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를 A급(특별관리), B급(중점관리), C급(기본관리) 등으로 구분해 관리하는 제도다. 지난해 말 기준 보호·관심병사는 A급 8433명, B급 2만4757명, C급 2891명 등이다. 국방부는 기존 3개 등급이었던 보호관심 병사 분류 그룹을 ‘도움’과 ‘배려’ 2등급으로 단순화했다. 관심 병사 명칭을 ‘도움 병사’ ‘배려 병사’로 바꿨다. 하지만 관심 병사 지정 여부는 비밀이었던 제도여서 결국 바뀐 것은 명칭뿐이라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본질 빗나가…

근본대책 전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였던 군 희망준비금 제도를 두고도 말이 많다. 희망준비금 제도는 전역하는 장병에게 100만∼200만원을 지급해주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희망준비금 제도는 공약 파기 수준이다. 국방부는 78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국고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병사들이 자신의 월급을 적립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바꿨다.
 
국방부에 따르면 희망준비금에 가입한 장병의 수는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1만4789명으로 집계됐다. 올해 병사 수는 약 44만1000여명으로 3.3%에 불과한 병사들만 희망준비금 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군 당국은 장병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본인 부담으로 희망준비금을 적립해도 참여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80% 수준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국방부는 지난해 9월 중순부터 ‘국군희망준비적금’이라는 이름의 상품을 출시했다. 연이율은 기간에 따라 국민은행은 4.4∼5.8%, 기업은행은 3.8∼5.3%의 금리를 적용한다. 그러나 최대 저축한도가 240만원이어서 제도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 상품을 통해 박 대통령이 공약한 300만원을 모으려면 군 복무 21개월 동안 매달 14만2800원을 적금으로 부어야 한다. 올해 장병들의 월급은 이등병 12만9400원, 일병 14만원, 상병 15만4800원, 병장 17만1400원이다. 2012년 국방부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 달에 1만원도 채 모으지 못한다고 응답한 병사는 63.2%에 달했다.
 
 
실효성이 의심되는 제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방부는 지난해 육군 25사단 1대대를 대상으로 ‘중대별 수신용 공용휴대전화’를 선보였다. 당시 국방부 관계자는 “25사단 1대대 예사 3개 중대에서 중대당 수신용 휴대전화 4대를 운용하고 있다”며 “각 중대의 계급별 생활관에 1대씩 지급, 일과시간이 아닐 때 공용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 제도 시범운용 초기 엿새간의 수신용 공용휴대전화 사용실적은 165건으로, 계급별로는 이등병 75건(46%), 일병 37건(22%), 상병 24건(15%), 병장 29건(17%)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수신용 공용휴대전화는 2세대(2G)폰이다. 같은 생활관의 병사 계급별로 대표자를 지정해 수신용 공용휴대전화를 지급한 뒤 같은 계급의 병사가 대표자에게 이 전화기를 가져다 사용하는 방식이다. 각 중대 행정반에서 2G폰을 보관하고 있다가 부모가 거는 전화를 바꿔주는 방안도 검토됐다.
 
하지만 연간 사용료가 60억여원 가량이고, 같은 계급의 대표자에게 이 전화를 빌려 쓴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이 제도의 실효성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부모가 장병에게 전화를 걸 수 있다는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소통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있을지 몰라도 자칫 잘못 운용되면 당나라 군대로 가는 지름길이 될 거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화상면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리 곱지만은 않다. 국방부와 미래창조과학부는 오는 10월부터 ‘화상면회 시스템’을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지난달 16일 국방부와 미래부는 이같은 내용이 포함된 ‘공개 SW와 loT(사물인터넷) 관련 기술개발·활용 촉진을 위한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군 내 사건사고 등으로 인한 장병 부모 등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직접 얼굴을 보면서 소통할 수 있는 화상면회 시스템을 공개SW 기반으로 구축한다. 시범운영은 5월부터 시작된다. 
 
이 같은 제도는 병영문화 개선의 일환으로 그 취지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장병 간 위화감이 조성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편부모 또는 부모가 없는 장병의 경우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소통의 활로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기는 현대화
제도는 글쎄∼
 

육군의 ‘병사 전투체력 강화’ 방침을 놓고도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육군에 따르면 병사 교육훈련체계는 기존 핵심평가 과목인 사격, 정신교육, 체력단련, 전투기량 등 4개 부문에서 경계근무 요령을 추가한 5개로 늘어난다. 사격훈련은 구간을 정해놓고 사격하던 기지거리 사격(100m, 200m, 250m)에서 전투사격으로 바뀐다. 체력단련의 경우 기초체력과 2개의 전투체력 과목을 혼합한 형태로 바뀐다.
 
특히 전투체력 과목에는 군장메고 10km 급속행군, 5km, 뜀걸음 등이 추가된다. 군장 메고 10km 급속행군은 2시간10분 내에, 5km 뜀걸음은 40분 내에 주파해야 합격이다. 육군은 핵심 5개 평가과목에 대한 개인별 평가를 특급, 1급, 2급 등 3개 등급으로 분류할 예정이다. 특급 등급을 받으면 조기 진급 및 포상 휴가, ‘특급전사’ 명칭이 부여된다.
 
이러한 육군의 방침은 강군을 위한 노력으로 풀이된다. 전장에서 핵심은 보병이기 때문에 체력을 한계치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첨단 무기가 발전하며 군이 현대화되는 시점에 너무 강도 높은 훈련으로 장병들을 혹사시키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개인마다 다른 체력으로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도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군 당국은 군대 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신병영문화 창달 추진계획(2000년)’ ‘병영생활 행동강령(2003년)’ ‘선진병영문화 비전(2005년)’ ‘병영문화 개선운동(2011년)’ 등 비슷한 처방을 내놓았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강군 위한 노력 없고 돈질만?
이면엔 ‘군피아’ 뿌리 박혀 
 

전문가들은 병영문화 혁신안에 병영 시설개선 등 장병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를 확대해야한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병영문화 혁신안에는 관련 예산확보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 독일식 ‘군사 옴부즈맨(국방 감독관) 같은 독립적인 외부감사기구 설치는 군사보안을 이유로 반영되지 않았다. 이처럼 군이 껍데기만 바뀌고 알맹이는 그대로다 보니 군 관련 문제는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군피아 논란도 여전하다.
 
최근에는 불량 방탄복 2000여벌이 특전사 장병들에게 보급됐다. 애초 시험운용에서 ‘생존률이 낮고 모든 면에서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군수담당 장교가 부적합 의견을 전부 빼낸 것으로 드러났다.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은 불량 방탄복이 임무수행에 적합하다는 내용으로 시험평가 문서를 조작한 육군 전모(49)대령을 지난달 24일 구속기소했다. 전 대령은 특전사 군수처장으로 근무하던 2010년 5월 군수업체 S사가 제작한 ‘다기능 방탄복’에 대한 예하부대 2곳의 시험평가 결과를 거짓으로 작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전사는 방탄복 성능이 대테러·침투 등 실제 작전에 적합한지 납품 전에 확인하기 위해 2009년 3공수여단 정찰대와 707대대에 문제의 방탄복을 시험 운용하도록 했다. 707대대는 “방탄 플레이트 등급이 낮아 생존율이 저조하다”고 평가했다. 또 ‘어깨보호대 때문에 사격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혼자 착용할 수 없다’ ‘신속하게 해체되지 않아 긴급 상황 발생 시 생존성이 낮다’는 등 모든 면에서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냈다.
 
그러나 전 대령은 707대대의 이런 의견을 배제하고 야전부대 운용시험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특전사령관 결재를 거쳐 통과됐고 S사가 사업을 따내 2010∼2012년 세 차례에 걸쳐 13억원 상당 2062벌의 불량 방탄복을 납품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국정감사 등에서 불량 방탄복 문제가 제기되자 북한군의 신형 개인화기인 AK74 소총까지 막을 수 있게 개선된 방탄복으로 교체 중이다. 합수단은 S사를 압수수색하고 주변 금융 거래 내역을 살피며 해당 장교들과 금품 거래가 있었는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합수단은 박 중령도 수사가 마무리 되는 대로 재판에 넘길 방침이다.
 
우리 군 주력 전투기 KF-16 등의 정비대금 243억원을 빼돌린 예비역 중장 등 고위 공군 장교들도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업체 로비스트로 영입돼 정보수집과 수사무마, 정비대금 부풀리기에 적극 가담했다. 지난달 16일 합수단에 따르면 공군작전사령관과 공군교육사령관 출신인 천기광(68) 예비역 중장은 2008년 전투기 정비업체 ‘블루니어’에 영입돼 회장까지 지냈다. 이 회사는 공군 하사관 출신 박모(53·구속기소)씨가 세운 회사였다.

껍데기만 바뀌니
갈수록 점입가경
 
2009년에는 공군본부 장비정비정보체계개발단 과장을 지낸 우모(55) 예비역 대령이, 그 이듬해에는 항공전자장비 정비부대장 출신인 천모(58) 예비역 대령이 영입됐다. 이후 블루니어는 이들 예비역 장교 3명이 활약하며 주력 전투기 정비업체로 급성장했다. 그리고 2006∼2011년 KF-16 피아식별장치(CIT) 등 2902개 부품 정비 관련예산 457억원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합수단은 이들 예비역 장교 3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이처럼 군 문제 이면에는 ‘군피아(군대+마피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에게 군은 단지 돈을 벌기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군 정책이 제대로 나올리 만무하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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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