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 3세’ 병역비리 의혹

재벌 아들 모셔놓고 ‘왕대접’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땅콩 회항’사건으로 반재벌 정서가 판치고 있는 지금, 재벌 2∼3세들의 몸 낮추기가 시작됐다. 다음 타깃은 누가 될까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병역 비리가 터졌다. 주인공은 한솔그룹 3세다. 대체 복무를 하면서 별도의 사무실로 출근하고 병가도 수없이 냈단다.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영국군에게 포위당한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거센 공격을 막아내다 결국 항복을 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누군가는 그동안의 반항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며 칼레의 대표 6명의 죽음을 요구했다. 혼란에 빠진 칼레 시민들 사이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죽음을 자청했다. 이후 시장, 상인, 법률가 등의 귀족들이 처형에 동참했다. 다음날 처형을 위해 교수대에 모인 그들은 임신한 영국 왕비의 간청에 의해 죽음에서 벗어나게 됐다. 역사가에 의해 기록된 이 이야기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됐다.

이인희 고문 손자

높은 사회적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이후 중세, 근대,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1·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2000여명이 전사했고, 6·25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 아들 35명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다. 이들 중에는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도 있었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의 아들도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소위 ‘있는 집’ 자식들은 군대를 안 가거나 편하게 군 생활을 하는 병폐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터진 한솔그룹 3세의 ‘황제 병역’이 대표적이다.

한솔그룹 창업주인 이인희 고문의 손자 조모씨가 병역특례 비리 혐의로 고발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제조업체 산업기능요원으로 대체복무
갖가지 특혜 받는 등 부실 근무 적발

조씨는 조동만 전 한솔아이글로브 회장의 아들이다. 조씨는 지난 2011년 10월 한솔그룹 계열사 한솔인티큐브 지분 10%(137만6300주)를 17억원에 확보하면서 관심을 끈 바 있다. 당시 조씨의 나이는 불과 19세.

사측은 “우호적인 투자자를 찾던 과정에서 단순 투자를 유치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업계에서는 고문이 고액체납으로 지분을 물려줘 봤자 모두 세금으로 상납해야 하는 자신의 둘째 아들인 조 전 부회장 대신 손자를 통해 상속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지난달 서울시는 조 전 회장의 세금 체납액이 84억1000만원으로 3000만원 이상 고액 지방세 체납자 총 6979명 중 1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현재 조씨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가치는 약 30억원으로 평가된다.

 

검찰에 따르면 조씨는 지난 2012년부터 최근까지 서울 금천구의 한 금형제조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했다. 산업기능요원은 국가산업의 육성과 경쟁력 제고를 함양하기 위해 병무청장이 지정한 지정업체에서 제조, 생산인력으로 활동하는 대체복무자를 말한다.

의무종사 기간은 현역 입영대상자의 경우 34개월, 사회복무요원 소집대상자는 26개월이다. 조건은 현역입영대상자는 해당분야 기술자격증을 취득한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중소기업기술사관학교 졸업자이며, 사회복무요원 소집대상자의 경우에는 기술·자격 관련 없이 배정 인원 범위 내에서 편입이 가능하다.

조씨는 해당 업체에서 부품 설계 도면을 작성하고 보조하는 업무를 맡아 일하면서 해당 업체로부터 갖가지 특혜를 받았다. 따로 마련해 준 사무실로 출퇴근했고, 일주일에 1∼2차례 병가를 내는 등 근무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병무청은 이 같은 정황을 지난해 10월 포착하고 대체복무자들에 대한 불시 점검에 나섰으며 조씨가 제대로 근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2개월여에 걸쳐 확인해 조씨와 업체 대표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해당 업체는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조씨가 재벌가 3세인지 몰랐고, 별도의 사무실을 만들어주고 병가를 내 준 것은 조씨가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별도 사무실 마련
출퇴근 마음대로
주 1∼2차례 병가

검찰은 조만간 조씨와 업체 대표 등을 소환해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조씨는 형사처벌은 물론, 의무 복무를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병무청 관리규정에는 별다른 사유 없이 지각이나 조퇴 등을 하게 되면 누계 8시간을 연가 1일로 계산해 휴가 일수에서 공제하고, 누계 8일 이상이면 복무지 이탈로 편입 취소 및 형사처벌(3년 이하의 징역)을 받게 된다. 가수 싸이의 경우 2003년 IT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3년 동안 근무했지만 부실 복무 논란에 휘말렸고 결국 2007년 현역으로 재입대를 한 바 있다.
 

싸이 사건 이후 산업기능요원들이 제대로 근무하지 않았는데도 의무 근무기한을 채우도록 해주거나 전직 고위공무원이나 대기업 간부 등의 아들을 산업기능요원으로 채용해 기술교류 명목으로 해외출장을 보내 오랜 기간 머물게 해 준 행위 등이 검경 수사를 통해 잇따라 적발됐다.

수사 어디까지?

이번 경우 역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 반재벌 정서가 강해져 가는 가운데 한솔 일가는 물론 업계 전반으로 검찰 수사가 확대될 수도 있다. 검찰에서도 해당 업체가 아무런 대가 없이 특혜를 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시선으로 둘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솔그룹은 조 전 회장 일가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솔그룹 측은 “조 전 회장 일가는 14년 전 경영분리를 한 이후 한솔그룹과 연관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병역과 관련해서도 아는 게 없다”고 말했다.

 

<han10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재벌가 ‘신의 아들’은?

한솔그룹 창업주 이인희 고문의 손자 조모씨의 ‘황제 병역’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재벌가에서 군면제를 받은 오너일가가 주목을 받고 있다.

먼저 한솔그룹의 경우 조씨의 큰아버지(조동혁 한솔그룹 명예회장), 아버지(조동만 전 한솔아이글로브 회장), 작은아버지(조동길 한솔그룹 회장)가 나란히 군면제를 받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군 복무를 마쳤지만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질병으로 면제를 받았다. 이재현 CJ 회장은 유전병으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과제중으로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았다.


범 현대가를 보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등은 모두 군에 다녀왔다. 반면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등은 건강상 이유로 면제를 받았다.

LG일가의 경우에는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정상 복무를 한 반면에 구본진 LG패션 부사장과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 구자준 LIG손해보험 회장의 두 아들 등은 면제됐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아들과 SK그룹 회장 형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사장,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 등이 면제를 받았으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우, 이중국적을 이유로 면제를 받았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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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