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속터미널 지하상가 토사구팽 사연

140억 날릴 판…“매일 피눈물 흘린다”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1990년대 중반부터 서울고속터미널 경부선 지하상가에 인생을 받쳐온 한 여성이 있다. 흉물스럽던 지하상가에 80억원을 쏟아 부어 현대화시켰고 다시 60억원을 투자하며 지금까지 역사를 함께했다. 지하상가 어디에도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 이런 그녀가 빈털터리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로부터 명도소송을 당해서다.

성정애 ㈜매스펄 대표가 고속터미널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 3월 터미널 주변 광고 계약을 체결하면서다. 90년대 고속터미널 주변 옥외광고 및 내부 간판광고는 대부분 성 대표의 손을 거쳤다. 성 대표가 그간 모아놓은 자료 사진만 대형 파일케이스로 10여개에 이른다. 그의 자료만 봐도 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국내 기업들의 변천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굴곡진 인생사
하루 아침에…

성 대표에게 고속버스터미널 측이 임대사업을 제안해 온 것은 98년 초다. 당시 고속버스터미널 지하 하차장은 화훼상가로 운영돼 오다가 95년 6월29일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안전불감증이 불거지자 서초구청이 상가 허가를 취소한 상태였다.

화재예방설비는 물론, 환기시설, 전기시설이 낙후돼 흉물스럽기 그지없었다. 성 대표는 ㈜화룡엔터프라이즈를 설립하고 98년 8월 고속버스터미널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뒤 하차장 상가 1000여평에 대한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돌입했다.

공사 규모는 컸다. 워낙 제반시설이 부족해 50억원 정도의 비용이 시설비로 지출됐다. 1년 뒤 하차장 상가는 전국 각지 특산물을 판매하는 팔도 특산품 상가로 문을 열었다. 팔도 특산품 상가는 고속터미널을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주판매품인 전통가공식품협회 제품에서 중국산 소금과 염료 사용이 검출됐고, IMF까지 터지면서 오픈 1년도 채 되지 않아 문을 닫아야 했다.


성 대표는 30억원 이상의 시설을 보충해 '수입명품 및 귀금속 상가'로 전환, 오늘에 이르렀다.

성 대표의 ㈜매스펄과 고속터미널 사이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8일 최병용 이마트 비식품매입본부 생활가전담당이 대표이사 겸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부터다.

신세계그룹은 고속터미널 호남선과 경부선 최대주주에 올라있다. 신세계는 2012년 10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메리어트호텔, 호남선 터미널 등을 소유한 센트럴시티 지분(60.02%)를 사들였고 이듬해 센트럴시티는 고속터미널 지분 38.7%를 인수했다.

2012년 5월1일 성 대표는 고속터미널과 점포 임대차 계약을 다시 체결했다. ㈜화룡엔터프라이즈의 계약조건을 ㈜매스펄이 승계하는 내용으로 임대보증금 10억원에 월 임대료 700만원, 계약기간은 5년이었다. 

제집처럼 가꿔온 사업장서 쫓겨날 위기
터미널 "임대료 체납해 봐줄 수 없다"

계약 후 성 대표는 2012년 8월부터 10월까지 15억원의 비용을 들여 매장을 소형점포 300개로 리모델링공사를 했고, 분양이 미진해 올해 3월부터 4월, 다시 20억원을 들여 소형점포를 합쳐 개방형점포로 하고 출입문을 6개로 하는 공사를 진행했다.

공사를 반복하는 동안 임대료는커녕 관리비까지 제대로 낼 수 없었다. 그리고 지난 4월30일 최 대표 명의로 내용증명 한통이 날아들었다. 임대료와 관리비, 지연이자가 체납되는 등 계약조건을 준수하지 않아 당사(고속터미널) 영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음을 재차 통보하고 5월20일까지 미수금 전액을 납부해 계약상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함께 고속터미널은 건물 및 일간지 등 매체를 통해 진행하고 있는 소유권 분양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의 매체광고를 일체 금하고, 만일 지속할 경우 계약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

'㈜매스펄이 진행하고 있는 분양광고가 제3자의 피해를 불러올 수 있으니 이를 양지하기 바라며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즉시 계약 해지를 바란다'는 내용의 공고문이 하차장 상가 출입문 6곳에 일제히 붙기 시작한 때는 내용증명 발송 불과 하루 뒤인 지난 5월1일이다.

고속터미널은 공고문을 통해 "당사 소유 하차장 지하 대형1호는 당사에서 ㈜매스펄에 '12년 5월1일부터 '17년 4월30일까지 임대한 임대점포로 소유권을 분양할 수 없는 점포"라며 "최근 ㈜매스펄이 일간지 등 매체를 통한 경영주 모집광고에 소유권 분양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한 바, 이에 제3자의 피해가 없도록 공고하오니 소유권 분양 형태의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즉시 계약 해제하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성 대표와 하차장에서 상가를 운영하고 있던 상인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분양이 돼야 임대료가 발생하고 그 임대료를 고속터미널에 납입해야 계속 상가를 운영할 수 있던 터라 분양을 막는 공고문은 나가라는 말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성 대표가 고속터미널로부터 하차장 상가를 임대하고 이를 상인들에게 재임대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이른바 '전대차 계약'이다. 하루 유동인구가 수백~수천만명을 넘는 강남, 잠실 등의 지하상가는 서울 대표적 노른자위 중 하나다. 한정된 점포라는 점을 악용해 가게 주인이 뒷돈을 챙겨 재임대를 해주는 전대차 계약이 기승을 부렸고, 피해를 입은 소·영세상인이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한 적도 있다. 

전대차 명백한 불법
㈜매스펄은 '다르다'

㈜매스펄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98년 고속터미널과 임대차 계약을 맺고 운영을 시작하면서 ㈜매스펄은 '임대분양'이라는 사전에 없는 단어를 써왔다. 남대문·동대문 상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는 용어로서 시설비와 개발비를 낸 상인들을 등기분양자와 달리 임대분양자로 표현한다. 상인들은 임대분양자에게 전전대자로 임대분양자의 투자비를 이자 지급형식으로 월세로 전대하는 경우다. 이러한 방식으로 ㈜매스펄은 지난 18년 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운영을 해왔지만 이제 와서 고속터미널이 문제를 삼고 있다는 게 성 대표의 주장이다.

성 대표는 고속터미널로부터 내용증명을 받은 지 2주 만에 답변을 보내 분할 납부를 요청했다. 성 대표는 내용증명을 통해 "당사가 쓰고 있는 임대분양계약서는 귀사의 고문변호사의 조정을 받은 계약서이고 임대분양계약서로 인해 17년 동안 한 번도 귀사에 피해를 준적 이 없다"며 "공고문 부착 등은 당사의 영속성 문제 등 사업적으로 많은 장애가 되니 상의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성 대표는 또 "2014년 7∼8월을 목표로 상가를 오픈해 밀린 임대·관리비를 지불할 예정이었지만 세월호침몰사고로 경기 및 소액투자가 위축돼 개점지연 문제가 발생하면서 최악의 자금사정을 겪고 있다"며 "최선을 다해 밀린 임·관리비를 납부하려 하니 영세소상인과 소액투자자와 당사의 사정을 감안해 한 번 더 분할해 납부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이를 비웃듯 고속터미널은 한 달 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명도소송을 냈다. 내용증명을 보낸 지 정확히 44일만이다. 성 대표는 "고속터미널이 대기업에 힘을 빌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무작정 임차인을 내쫓으려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속터미널 측에 따르면 명도소송의 이유는 밀린 임대료와 관리비, 지연이자다. 고속터미널이 성 대표에게 보낸 내용증명에 따르면 ㈜매스펄이 올해 4월30일까지 밀린 임대료는 2억5900여만원(32개월치), 관리비 1억9500여만원(26개월치)에, 지연이자 2억1300여만원 등 총 6억6700여만원이다.

4월8일 신임 사장 취임
4월30일 내용증명 발송
5월1일 공고문 부착 시작
6월13일 명도소송 제기


㈜매스펄과 고속터미널간 점포 임대차 계약서 '임대차계약 특수조항' 제6조(임대료외의 제비용)를 보면 고속터미널은 ㈜매스펄의 시설공사 및 임대분양기간 등 영업정상화 기간을 고려, 계약체결일로부터 5개월간 ㈜매스펄의 관리비 부과를 면제하고 6개월부터 12개월간은 전용면적 기준으로 부과하며 이후 정상부과하기로 했다.

제10조(임대료 및 제경비의 체납) 항목에는 '임대료, 제경비, 기타 금전채무를 체납한 경우 체납액의 10%에 해당하는 연체료를 가산 납부하고 체납액 및 연체료를 납부하지 아니하고 해당월을 초과한 경우에는 매월 체납금액의 연 24%에 해당하는 연체료를 추가납부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또한 '임대료 및 제경비를 2개월 이상 체납한 경우 고속터미널은 동 금액을 보증금에서 공제 대체하고, ㈜매스펄이 15일 내에 현금으로 보증금을 충당하여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고속터미널은 언제든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내용증명과 계약서간 오류가 발생하는 부분이 바로 이 규정이다. ㈜매스펄과 고속터미널이 계약을 체결한 지점은 2012년 5월1일. 내용증명이 보내진 시점은 이로부터 정확히 2년(24개월) 뒤다. 이에 따르면 ㈜매스펄이 계약 체결 후 임대료를 밀렸다면 24개월 분만 책정되어야 하며, 관리비 면제 규정에 따라 관리비는 19개월분만 계산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고속터미널 관계자는 "내용증명 상 체납된 금액은 ㈜매스펄이 ㈜화룡엔터프라이즈의 계약 조건을 그대로 승계하면서 계약시점 이전 금액까지 합산된 금액"이라며 "명도소송 소장에는 계약기간 이후 체납금액만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성 대표는 "고속터미널이 상가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해 밀린 임대료를 내지 못하게 원천 차단했다"며 "직원을 동원해 출입문을 막고, 터미널 이용객들의 출입을 방해하는 등 영업방해를 일삼았다"고 전했다. 성 대표는 또 "고속터미널은 ㈜매스펄이 서면으로 공사요청을 하면 문서로 승인하지 않고 항상 구두로 승인했다"며 "이 점이 재판 내내 약점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고속터미널 관계자는 "(주)매스펄은 임대료와 관리비를 체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증금도 입금이 안 돼 있는 상태"라며 "고속터미널 입장에서는 임대료를 계속해서 내지 않고 있는 임차인과 계약을 지속하는 게 부담으로 작용해 명도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결정적 증거자료
재판 영향 있을까?

이 관계자는 또 "영업방해와 관련한 부분은 ㈜매스펄에서 형사고소를 진행했지만 무혐의 결정이 난 상태이고 미승인 공사 진행과 관련해서는 재판에서 모두 해명을 한 상태"라며 "재판 결과를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선고를 약 20여일 앞둔 현재 성 대표는 반전을 노릴 수 있게 됐다. ㈜매스펄 직원과 고속터미널 직원이 주고 받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찾아냈기 때문. 성 대표가 공개한 대화에는 ㈜매스펄 직원이 공사 진행상황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냈고, 고속터미널 직원은 '수고했다'고 답변하고 있다. 고속터미널이 ㈜매스펄이 진행한 하차장 상가 공사를 몰랐을 리가 없다는 얘기. 이 증거자료는 추후 재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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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 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②윤통의 영구 집권 큰 그림

[단독 공개] 검찰 수사 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②윤통의 영구 집권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12·3 비상계엄이 해제된 지도 5개월이 지났다. 위헌이자 위법이었기에 내란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 전 대통령은 반국가 세력과 간첩을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과거와는 다른 유형의 계엄을 선포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으나 전두환보다 위험했고 무모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의 내란 수사 기록에는 그가 영구 집권을 꿈꾼 정황이 확인됐다. “규모로만 봤을 때는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군 전문가들과 법조인들이 바라본 12·3 내란 사태에 대한 평가다. 재판에 넘겨진 군 장성들의 진술조서에도 이들의 규모와 체계가 구체적으로 적시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려 영구 집권을 계획했던 걸까? 경고성이자 평화적 계엄이었다는 주장은 무색하게만 들린다. 경고성 계엄? 대규모 준비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사태는 1979년 12·12 군사 반란과 흡사하면서도 다르다. 전두환씨는 당시 반란을 통해 1980년 5·17 비상계엄의 발판을 마련했다. 국회의원들을 협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으나 장교 3명, 병사 95명에 불과했다. 윤 전 대통령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등에 투입한 경찰과 군인 수는 각각 3144명, 1605명이다. 군 1605명을 부대별로 나눠보면 육군 특수전사령부 1109명, 수도방위사령부 282명, 국군방첩사령부 164명, 국군정보사령부 약 40명, 국방부 조사본부 10명이다. 전씨의 반란과 비교하면 약 16배가 더 투입됐다. 군사력에 의존해 기존의 사회 시스템을 무너뜨린 행위는 같으나 규모로 보면 국회의원들을 겁박하는 수준을 넘어 국회를 점령하거나 통제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목적이 뚜렷한 친위 쿠데타였다는 평가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내란 수사 기록을 보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계엄 열흘 전 (윤 전 대통령이) ‘10명이 넘는 관료들을 탄핵하는데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냐’고 말씀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이외에도 김 전 장관에게 ▲명태균씨 공천 개입 의혹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 재판·수사 관련 판·검사 탄핵 가능성 등을 언급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도 “윤 전 대통령이 항상 헌법상 비상조치를 해야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씀했고 평소에도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이른바 ‘충암파’로 불리던 최측근들에게 자신의 의견에 대해 반대하거나 정책에 태클을 거는 이들을 ‘반국가 세력’이자 ‘간첩’이라고 규정했다. 여 전 사령관은 검찰 조사에서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조해주, 조국, 양정철, 이학영, 김민석, 김민웅, 김명수, 김어준, 박찬대, 권순일 등이 체포 명단에 있다. 윤 전 대통령이 평소에도 부정적으로 말했던 사람들이다. 김 전 장관은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정치 활동 금지 포고령 위반자들에 대해 전시 합동수사본부서 체포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1년 전부터 “특단의 대책” 사실상 계엄 언급 군 장성 대부분 우려 “성공 가능성 낮다” 판단 국회에 투입된 군이 위에 언급된 이들을 체포했다면 비상계엄 해제는 불가능했다. 윤 전 대통령이 국회 장악에 성공했다면 건설적 논의 없이 “반국가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며 자신의 불법적 행위를 합리화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통령실 출신 한 여권 인사는 “임기 초부터 여소야대 형국이다 보니 온갖 정책에 브레이크가 걸려 윤 전 대통령이 ‘격노’를 자주 했다. 술도 자주 마셨고 날이 갈수록 자신에게 직언하는 참모를 멀리했다. 항상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정치권 관계자도 “합법적 수단을 통해 권력을 소유하던 국가 지도자가 입법부를 해체하거나 헌법을 무효화하려 했다면 쿠데타다. 체제 전복 행위로 이어지고 대부분 전체주의적 독재자가 된다. 윤 전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여 전 사령관은 계엄 성공 가능성을 낮게 봤다. 여 전 사령관은 검찰에 “계엄 당일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연락해서 ‘오늘 뭔 일 있는 거 아니냐’고 물었고 국무위원, 안보실장 등의 안전장치가 있는데 설마 하겠냐”고 했다. 또 여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정치적 문제를 왜 군사적인 계엄령으로 하느냐. 장병들이 초기에는 따를 수 있지만, 오래 갈 수 있겠느냐. 지금 대한민국 군대는 예전과 같지 않다. 휴대폰, SNS 등이 있어서 안 된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군 간부들은 윤 전 대통령의 국회 무력화에 대해 여러 차례 증언했다. 국회 무력화 시도 수차례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 수사보고서에는 특전사령부 소속 김형기 1특전대대장이 이상현 여단장으로부터 “‘담을 넘어가 국회 본관으로 들어가서 (국회)의원들을 끄집어내라. 걔들이(국회의원들이) 문 잠그고, 의결(계엄 해제 의결)을 하려고 한다’ 대통령님이 ‘(본회의장) 문짝 부숴서라도 다 끄집어내라고 한다’고 했다”고 적시됐다. 군인들이 국회의원을 체포하려 한 정황도 확인된다. 곽종근 전 사령관의 지시로 국회로 이동한 김현태 특전사령부 대령은 “케이블타이는 어떤 목적으로 갖고 간 것이냐”는 특수본 검사의 질문에 “특전사의 경우 테러 진압 시 적을 포박하기 위한 용도로 케이블타이를 쓴다. 곽 전 사령관이 ‘들어가서 끌어낼 수 있겠느냐. 진입이 안 되냐. 150명이 안 되는데’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김창학 수방사 군사경찰단장도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이 ‘국회 담을 넘어 들어가 게이트를 차단한 후 불응하는 사람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김대우 전 방첩사 수사단장은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우리 부대 수사관 5명, 군사경찰 5명, 경찰 5명 등 타 인원과 25명으로 팀을 꾸려라. 이송 및 구금 명단은 14명이고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조해주, 조국, 양경수, 양정철, 이학영, 김민석, 김민웅, 김명수, 김어준, 박찬대, 정청래 등에 대해서는 인수받아 호송 후 구금시설로 이동한다”고 지시받았다. 김 전 수사단장은 “여 전 사령관이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에게 집중하고 위치추적과 구금까지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국회가 내란 사태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 계엄을 해제하는 데 성공했으나 윤 전 대통령은 이 전 사령관에게 “아직도 못 들어갔어?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 1명씩 들쳐 업고 나오라고 해” “아직도 못 갔냐, 뭐 하고 있냐, 문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라고 지시했다. 사실상 ‘발포 명령’까지 내린 것이다. 이후 “국회의원이 190명 들어왔다는데 실제로 190명이 들어왔다는 건 확인도 안 되는 거고” “그러니까 내가 계엄 선포되기 전에 병력을 움직여야 한다고 했는데 다들 반대해서” “해제됐다고 하더라도 내가 2번,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해”라고 다그쳤다. 음모론 배포 국민적 의혹 이 전 사령관의 얘기를 전해 들은 군 간부는 “‘대통령이 진짜 갈 데까지 갔구나. 돌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이 극우 유튜브에 심취했다는 건 검찰 수사 기록서도 확인된다. 자신의 참모들에게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윤 전 대통령의 얘기를 가장 귀 기울여 들은 건 김 전 장관이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조사에서 “매해 선거 때마다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됐고, 증거자료들이 제출되거나 부정선거에 대한 명확한 스모킹건이 될 수 있는 자료도 나왔음에도 조사도 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국민적 의혹이 있던 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특수본 검사가 “부정선거에 대한 증거자료가 무엇이고 의혹의 출처는 어디냐”고 묻자 그는 “선거인보다 투표인이 더 많은 선거구도 있었고 직인이 안 된 투표용지, 투표함 바꿔치기, 해킹, 전산 조작 등의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고 부방대(부정선거방지대책본부)에 많이 나와 있다. 대통령께서 가장 우려하셨던 건 국정원의 보고였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이 진짜 서버도 아닌 모형 서버임에도 보안시스템이 취약해 아무나 해킹해 선거 조작을 할 수 있다는 수준이라고 보고했고 실제 해커들을 투입해 서버에 들어가 투·개표 용지 바꿔치기, 개표 과정 개입 등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다 성공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국회 입법권 무력화 노린 후 개헌 계획? ‘노상원 수첩’ 검찰 수사 진척 오리무중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2021년 3월부터 2년간 선관위에 대한 북한의 해킹 시도가 8회 있었고 국정원 3차장 산하서 보완 조치를 해달라고 선관위에 통보한 바 있다. 2023년 6월에는 선관위 요청으로 국정원과 한국인터넷진흥원, 선관위 등이 합동 점검을 실시했는데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장관과 윤 전 대통령이 부정선거 음모론의 실체를 확인하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도운 인물이 있다. 내란 기획자로 지목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다. 노 전 사령관에 대한 검찰 수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수첩에는 극단적 표현이 담겨있다. ‘1차 수집’이라는 제목으로 국회가 있는 여의도서 30~50명, 언론 쪽은 100~200 민노총, 전교조, 민변, 어용 판사와 함께 ‘500여명 수집’이라고 적시됐다. 노 전 사령관은 ‘수거 대상 처리 방법 연구’와 ‘수거 후 호송 시 대책’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인물마다 등급을 매겨 ‘특별 수사와 재판소로 사형, 무기형을 받게 한다’고 적고, ‘수거 A급 처리 방안’으로 ‘연평도 이송’이라고 적었다. 특히 A급으로 분류한 인물들을 가스·폭파·침몰·격침 등을 통해 사살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단어를 강조했다. 그의 수첩에 적힌 ‘백령도 작전’ 내용과 국지전 유도 등 외환죄로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은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 노 전 사령관은 계엄 이후의 계획을 적기도 했다. 헌법 개정을 통해 ‘재선’을 넘어 ‘3선’이라고 적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선거제도를 연구해야 한다고도 썼다. 검찰은 백령도 작전이 수거 대상을 체포한 뒤 배에 태워 백령도로 보내는 과정서 사살한다는 취지의 내용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수첩은 김 전 장관과 논의했던 것들”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노상원과 김용현이 논의한 내용은 윤 전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 보통 김용현이 질문하고 노상원이 답하는 식”이라며 “대화를 나눈 내용 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수첩에 적는 습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재선, 3선… 독재자 발상 군 출신의 한 야권 의원은 “수년 전부터 반국가 세력이라고 규정하면서 대화를 배제하고 협치를 실종시켰다”며 “민주당을 몰아낸 이후 개헌을 주도해 임기 연장을 구상했다면 영구적으로 대통령을 하겠다는 독재자와 같은 발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검찰 특수본은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으로부터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을 넘겨받았으나 여전히 외환죄와 관련된 수사에는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노 전 사령관의 재판에도, 검찰의 공소장에도 그의 수첩과 관련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정치권의 ‘내란 특검’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