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바리 전쟁 터진 전주 조폭 대해부

'6개파 150명' 목숨 걸고 복수혈전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최근 전북 전주에서 발생한 폭력조직간 살인사건을 두고 지역적인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옥마을의 붐 등으로 타지인의 유입이 활발해진 전주는 오랜 세월 '토호조폭'이 유흥가를 장악해왔다. 경찰은 "개인 간의 감정 문제"라며 선을 그었지만 그 이면에는 결혼식장을 둘러싼 오랜 영역다툼의 가능성도 있다. 전주 조폭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해봤다.

지난달 23일 전주의 양대 조직폭력 원로들이 비밀 회동을 계획했다. 이들은 전주시내 도심에서 일어난 조직폭력배 피살사건을 두고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접선했다. 앞서 전주 월드컵파 실세인 최모씨는 오거리파 행동대원 또 다른 최모씨를 말다툼 끝에 흉기로 살해했다.

양대조직 원로
비밀리에 만나

용의자가 속해있는 월드컵파의 원로는 화해자리를 주선한 나이트파 원로와 같은 날 오후 5시께 전주 모처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단 이 자리에 오거리파 원로가 참석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들 중 규모 면에서 가장 큰 조직은 월드컵파이며, 그 다음이 나이트파, 세 번째가 오거리파라고 경찰은 전했다.

나이트파가 비밀회동을 주선한 배경으로는 살인사건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이 꼽혔다. 지난 22일 낮 결혼식장에서 월드컵파 최씨는 일부 오거리파 조직원이 자신에게 인사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나무랐다. 그러자 오거리파 최씨는 "왜 우리 애들에게 시비를 거냐"며 최씨에게 맞섰다.

양측의 말다툼은 주먹싸움으로 번질 태세였다. 이때 중재에 나선 인물이 나이트파 간부급 조직원으로 알려진 A씨다. 해당 조직원은 두 최씨의 화해자리를 주선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들은 다시 시비가 붙었다. 끝내는 칼부림이 일어났다.


이날 오후 9시께 중화산동 한 명품관 앞에서는 날카로운 흉기에 우측 가슴이 찔린 오거리파 행동대원 최씨가 발견됐다. 최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과다출혈 등의 원인으로 숨졌다. 숨진 최씨를 찌른 월드컵파 최씨는 사건현장에서 바로 도주했다.

당시 목격자에 따르면 최씨를 포함한 건장한 체격의 남성 5명은 술집 앞에서 언성을 높이다 건물 옆 주차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자주 오고가는 도심 한복판이었지만 이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큰 소리가 나더니 그곳에선 5분 만에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다.

범행 직후 최씨는 상대조직원을 살해할 당시 흉기를 건넨 추종세력(43·살인방조 등)은 놔두고 동료조직원(41·범인도피 등)의 도움을 받아 서울로 피신했다. 강남 한 식당에서 최씨는 일행 및 지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대책을 의논했다.

이로부터 이틀 뒤 최씨를 제외하고 범행에 가담한 모든 인물이 자수하거나 체포됐다. 이들 중 일부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구속을 면치 못했다. 그 사이 최씨는 경기도로 이동했다가 전주를 다녀가는 등 대담한 도피 행각으로 경찰을 괴롭혔다. 사건이 자칫 장기화될 무렵 한 통의 전화가 경찰서로 걸려왔다.

지난달 29일 전주완산경찰서는 최씨로부터 자수 의사를 확인했다. 오후 4시30분께 경찰서로 연락한 최씨는 "자수를 할 테니 저녁 무렵 효자동에 있는 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실제로 최씨는 자택에 나타났다. 그곳에서 대기 중이던 강력계 형사들은 오후 8시20분께 최씨를 검거했다.

최씨는 경찰조사에서 "사건 당일 피해자 일행과 술을 많이 마셨다. 같은 동네 선후배이고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이인데 내가 왜 흉기를 휘둘렀는지 모르겠다. 흉기로 최씨를 찔렀다"고 진술했다. 구치소에 수감된 최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붙잡은 최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이번 살인사건에는 전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폭력조직이 모두 연루됐다. 사건 당일 두 최씨가 찾은 결혼식장에선 나이트파 조직원의 결혼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이들은 1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결혼식과 관련해 크고 작은 사건에 휘말렸다. 사람이 죽기도 했고, 심지어는 자살까지 했다. 관련한 내막을 살피기에 앞서 전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폭력조직의 현황을 확인해보기로 하자.


시내 도심서 일어난 폭력배 피살사건
월드컵·나이트·오거리파 비밀 회동


전주에는 모두 6개 폭력조직(월드컵파, 나이트파, 오거리파, 타워파, 북대파, 중앙시장파)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1983년 이후 결성됐다. 규모는 150여명 안팎으로 추산되고 있다.

월드컵파는 작은 폭력서클로 시작해 전주 중앙동을 거점삼아 성장했다. 1980년대까진 중앙동에 있는 '월드컵 나이트클럽'이 주된 수익원이었다. 월드컵파의 대항마로 결성된 조직은 나이트파다. 나이트파는 전주관광호텔을 무대로 성장했다.

오거리파는 당시 상가와 주점 등이 밀집해 있던 '오거리'를 중심으로 등장했다. 타워파와 북대파는 각각 금암동을 거점으로 결성됐다. 중앙시장파는 비교적 최근 생겨났으며, 시장을 중심으로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30년 넘게 조직을 이끌고 있는 각 조직 보스와 부두목, 행동대원 등은 대부분 폭력전과가 있다. 이 가운데는 전과 10범이 넘는 보스도 있다. 두목들의 나이는 주로 4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까지로 전해진다. 큰 두목들은 외형상 자영업과 건설업 등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은 이른바 '회장님'으로 불린다.

일부 보스들은 서울과 경기, 충남 등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부 간부는 수배 중이거나 교도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타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보스들은 정기적으로 전주에 내려와 조직을 관리하고 있다. 보스가 수감 중인 경우에는 부두목 등이 대리로 조직을 움직인다.

행동대원은 조직원 가운데 활동이 가장 왕성한 중간급인 30∼40대 조직원으로부터 정보를 얻은 뒤 보스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고급 세단을 끌고 다녔던 이들은 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을 계기로 과거만큼의 세를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경찰은 밝혔다. 1980년대만 해도 조직 간의 '나와바리(구역) 싸움'은 매우 치열하게 전개됐다.

지역경기 어렵자
잔혹범죄 증가해

자금을 만들기 위해 조직원들은 '업소를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구역에 있는 업소에서 월정금을 뜯었다. 자신들의 구역을 침범하는 타 조직원은 거침없이 응징했다. 특히 월드컵파와 나이트파의 세력다툼은 선혈이 낭자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유혈 난투극은 끊이지 않았다.

전주 한성여관 살인사건, 명동여관 살인사건 등 이들의 나와바리 싸움은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1984년 무렵 전주백화점을 중심으로 유흥가를 양분했으나 이후에도 크고 작은 세력다툼을 벌였다. 6년 후에는 '서울 강남병원 응급실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검·경의 수배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각 조직원들은 하나둘 서울로 향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전주의 지역 경기가 어려워진 것도 상경의 한 이유였다. 경찰이 단속의 고삐를 죄자 자금줄이었던 업주 월정금이 자취를 감췄다.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이들은 전주를 넘나들며 불법을 일삼았다.

지난해 충남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수십억원대의 도박판을 벌인 혐의로 월드컵파 조직원 홍모씨 등 9명을 구속했다. 홍씨 등은 대전 유성구 송정동의 한 식당을 빌려 회당 수백만원씩 이른바 '아도사키' 도박판을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망을 보는 '문방'과 높은 이자로 돈을 대주는 '꽁지' 전문 도박꾼을 관리하는 '총책' 등 역할을 나눠 회당 70여명을 도박판에 끌어들였다. 월드컵파는 대전의 지역 조폭과 연계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해 전주 조폭 김모씨는 주류사업에 투자하면 거액의 이익금을 벌 수 있다고 속여 수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됐다. 김씨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지인 B씨 등 3명에게 4억4000만원의 투자금을 받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기간 김씨는 "빌려준 돈을 달라"고 말한 채무자를 폭행해 부상을 입힌 혐의도 함께 받았다.

보복폭행에 살인까지 '피 튀는 싸움'
심상찮은 동향…80년대부터 이권다툼

지난달 전주에서 만났던 한 지역사업가는 "영화제나 한옥마을로 외식·숙박·유흥업이 잘되면서 서울 자본이 대거 지역으로 유입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전주 조폭이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돈이 달린 조폭 중 일부는 끔직한 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지난 2012년 한 전직 조폭은 현직 조폭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사건 발생장소는 중화산동에 있는 번화가였다. 이번 살인사건 현장과 멀지 않은 곳으로 확인된다. 전직 조폭은 "돈이 없다고 날 무시해 친구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올해 초에는 자신과 동거한 10대 여중생을 살해한 조폭이 아파트 옥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있었다. 30대 초반인 박모씨는 전과 40범으로 교도소 출소 후 노래방 도우미를 알선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박씨는 동거녀 C양(15)에게 도우미 일을 종용하다가 C양이 이를 거부하자 병원로비에서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박씨는 아파트 19층 아래로 투신했다.

조폭과 가까운 전직 경찰 관계자는 "여자가 낀 사업을 조폭이 포기할 수 없다"며 "특히 결혼과 관련한 사업에도 조폭이 진출해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일례로 결혼정보업체를 가장한 성매매 알선·공급세력을 꼽기도 했다.


전주의 경우 채무 갈등을 겪던 한 예식장 사장이 채권자 2명을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다. 숨진 사장은 자신과 안면이 있는 조직을 움직여 채권자 D(55), E(44)씨를 살해했다.

조폭 출신으로 알려진 D씨 등은 앞서 사장을 두 차례 납치·폭행하는 등 "돈을 내놓으라"며 협박했다. 이에 사장은 조폭인 아들까지 동원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후 사장과 두 채권자는 모두 1t 냉동탑차 안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운전석에는 '채권자 두 명을 먼저 보내고 나도 뒤따라 생을 마감하겠다'는 내용의 유서가 있었다. 조직 간의 처절한 생존 암투였던 셈이다.

전주 조폭은 유독 결혼식장에서 사고를 일으켰다. 몇 년 전 서울 한 웨딩홀에서 서울 조폭과 시비가 붙었을 때는 전주 조폭의 웨딩사업 진출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이번 사건 역시 과거 예식장을 둘러싼 앙금이 쌓였다가 터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경찰은 "조직 간의 충돌이 아니라 개인 간의 감정 문제가 발단이 된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자수 앞두고
무슨 꿍꿍이

최근 조폭을 겨냥한 대대적인 단속이 부활한 가운데 양대 두목의 비밀회동은 중요한 포인트를 시사한다. 경찰의 칼을 빌려 군소조직을 정리하려는 것은 아닌지. 아직도 조폭을 추종하는 F씨는 "곧 나와바리 전쟁이 불붙을 수 있다"며 의견을 전했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국구 접수' 전주 월드컵파 거물 두목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지난 8월 660억원 규모의 면세담배 유출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사건의 중심에는 전주 월드컵파 조직원 김모(39)씨가 있었다. 김씨는 담배 구매업자, 무역업자 등과 공모해 면세담배 2933만여갑을 빼돌렸다. 김씨는 밀수한 담배를 국내로 유통한 총책이었다.

월드컵파는 전주 나이트파와 더불어 전북 지역 최대조직으로 꼽힌다. 시기상으로 월드컵파가 먼저 결성되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나이트파가 생겨났다고 한다.

전성기 때 조직원은 100명 남짓해 그리 크지 않은 규모다. 하지만 월드컵파가 전국구에 준하는 명성을 갖게 된 이유가 있다. 두목 주모씨의 화려한 이력이다.

주씨는 지난 범죄와의 전쟁으로 구속돼 실형을 살았다. 검찰은 주씨에게 범죄단체 수괴죄를 적용했다. 당시 검찰의 기소 내용을 보면 주씨는 상당한 '거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주씨는 1980년대 전북승마협회 부회장직을 맡아서 사회고위층과 어울렸다. 1987년 4월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인 일명 '용팔이사건'에 연루되는 등 정치권과 연을 맺었다.

지역에서는 골재채취회사 등을 운영하며 사업가 행세를 했지만 88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서울 강남·이태원 일대 유흥가에 진출했다. 주 수입원은 슬롯머신 사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월드컵파는 경쟁조직을 제거할 목적으로 강남 모 병원 응급실에서 나이트파 조직원을 무참히 살해했다.

월드컵파는 소규모 폭력서클로 출발했다. 전주 완산구에 있는 나이트클럽 '월드컵'을 접수하면서 월드컵파란 이름을 갖게 됐다. 월드컵파가 급성장한 배경에는 부두목 김모씨의 역할이 컸다. 김씨는 일대 어느 조폭보다 폭력적이며 잔인했다고 한다. 김씨의 '주먹'에 힘입어 주씨는 일대 상권을 손쉽게 거머쥘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 몸집을 불린 나이트파와는 수차례 칼부림을 벌여 수십명이 죽거나 다쳤다. 1983년과 1984년 연이어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1989년에는 보복살인이 오가며 '피바람'이 불었다. 당시 월드컵파 조직원 4명은 나이트파 두목 김모씨의 친구에게 가스총을 쏘는 등 충격적인 범행으로 시민을 경악시켰다.

1990년 8월 주씨의 구속 후 월드컵파의 외형은 급격히 축소됐다. 그러나 일부는 서울과 경기로 거주지를 옮겨 아직도 폭력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주로 자영업이나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개별 조폭들이 정관계와 유착해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실제로 지난 2005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월드컵파가 모 정치인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대법관에 오른 변호사는 월드컵파 두목 주씨를 변호했다가 구설에 휘말렸다. 또 월드컵파 조직원은 수감생활 중 알게 된 교도관을 꾀어 수억원을 투자받은 뒤 반환을 요구하는 교도관을 폭행해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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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돌아왔다. 3년의 옥살이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명분과 서사를 모두 거머쥐었다. 두 팔 벌려 환영했지만 송 전 대표를 바라보는 정청래 지도부의 고심이 깊은 모양새다.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의 변수가 된 송 전 대표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무죄가 확정됐다. ‘돈봉투 사건’을 주도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다.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의혹 사건, 2심 무죄에 이어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며 “긴 시간 함께 걱정해 주시고, 흔들림 없이 믿어주시며 끝까지 곁을 지켜주신 많은 분의 성원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은 결국 가려지지 않았다. 이제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책임 있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돌아온 큰형님 송 전 대표는 지난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경선을 앞두고 6000만원의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역 본부장에게 현금이 든 돈봉투를 건네고, 민주당 윤관석 의원을 통해 국회의원에게 나눠줄 돈봉투 6000만원을 제공하는 데 개입한 혐의 등을 받았다. 아울러 그의 외곽 후원 조직인 ‘사단법인 먹고사는문제 연구소(이하 먹사연)’를 통해 기업인 7명으로부터 후원금 명목의 불법 정치자금 총 7억6300만원을 챙긴 혐의 등도 있다. 당초 1심 재판부는 송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으나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윤성식)는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돈봉투 사건과 먹사연 사건 범죄 사실의 관련성을 인정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먹사연 사건 관련 공소 사실의 경우 압수물이 영장 없이 증거로 사용됐다”고 판단했다. 송 전 원내대표의 복귀는 화려했다. 무죄가 선고된 날 서울고등법원 현장에는 민주당 강득구·김교흥·김상욱·박선원·부승찬·전현희 의원 등 10여명이 모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자신의 SNS에 “송 대표의 무죄 판결을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며 “검찰 전횡을 바로잡는 검찰개혁에 더 매진하겠다”고 작성했다. 이 판결로 송 전 대표는 ‘정치 검찰의 희생양’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얻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정치 검찰의 서슬 퍼런 칼날을 이겨내고 돌아오신 송 전 대표를 환영한다”며 “이재명정부 성공을 향해 연대와 통합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송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인천시당을 찾아 복당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달 27일 최종 의결됐다. 정 대표는 “송 전 대표의 복당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앞으로 민주당 발전과 이정부의 성공을 위해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정 대표는 “탈당 후 당의 요청이 아니면 다른 경선에서 20% 감산되는 불이익을 받는데, 당 대표인 제가 요청해 (감산이 없도록) 처리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천시당에 복당을 신청한 것이 서울시당으로 이첩됐던 것을 중앙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로 보내라고 지시해 복당했다”고 말했다. “정치 검찰 피해자” “이재명의 은인” 정점 찍은 서사…‘송 사용법’ 고심 송 전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서 당의 주류였던 친문(친 문재인)계를 꺾으며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났다. 그런 그에게는 이재명 대통령과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 같은 해 치러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서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화됐고, 송 전 대표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밀어줬다는 이른바 ‘이심송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국회로 이끈 인물 역시 송 전 대표다. 그는 2022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사퇴했고, 그때 이 후보가 보궐선거를 통해 당내에 입성했다. 당시 그는 이 후보의 전략공천을 환영하는 입장을 밝히며 “당의 단단한 결정과 이재명 (당시) 상임고문의 결단이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 이 상임고문은 우리 민주당과 현재 한국 정치에 큰 자산”이라고 치켜세우며 “이번 지방선거 승리의 큰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국회 입성에 성공하고 당 대표직을 따내는 등 정치인으로서 성공가도를 걸었던 반면,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며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됐다. 이때부터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송 전 대표가 ‘자신을 희생하고 후배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정치인’이라는 인식으로 남았다. 2023년 두 사람에게 본격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돈봉투 의혹 수사가 송 전 대표를 덮쳤고, 이재명 대표는 거리를 두는 전략을 택했다. 민주당은 당 전체의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송 전 대표의 자진 탈당을 압박했고, 송 전 대표 역시 당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3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송 전 대표가 자신의 서사를 어떻게 활용할지 이목이 쏠린다.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그가 복귀하자 현 수장인 정 대표의 셈법만 복잡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방선거, 전당대회, 나아가 다음 대선까지 송 전 대표가 차후 진행될 모든 선거의 변수가 됐다.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가 첫 번째 관문이다. 복당 이후 송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계양을로 이사오면서 이곳에서 치러질 보선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계양구는 송 대표의 정치적 고향으로, 지난 2000년 해당 지역에서 당선돼 16대 국회에 입성한 뒤 17·18·20·21대 총선까지 내리 승리했다. 이때 쌓은 조직력을 기반으로 2010 민선 5기 인천시장에도 당선됐다. 굴리는 주판알 인천 계양에 출마가 유력한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과의 교통정리 여부가 변수다. 송 전 대표는 YTN과의 인터뷰서 김 전 대변인도 계양을 출마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당 지도부가 잘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라며 “지역구라는 게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국민과 당원의 뜻이 중요하다. 당 지도부가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중진과 대통령의 최측근인 신인 정치인의 대결구도가 예상되는 만큼 시선은 지도부의 교통정리에 쏠렸다. 정 대표와의 신경전도 예상된다. 정 대표가 당 대표 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송 전 대표가 국회에 입성하면 차기 당권을 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송 전 대표가 실제 당권에 도전할 경우 정 대표를 비롯해 ‘차출설’이 제기되는 김민석 총리와 함께 3파전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벌써 송 전 대표의 이름이 거론된다. 지난달 26일 <뉴스토마토>가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34명을 대상으로 ‘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서 다음 세 사람이 맞붙는다면, 누가 민주당을 이끌 차기 당대표로 적합하다고 보는지’를 묻는 말에 답변은 ▲정청래 대표 21.6% ▲송영길 전 대표 19.4% ▲김민석 국무총리 18.8%로 집계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이며 ARS(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8%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강경 개혁파로서 외연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정 대표의 강경 노선이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중도층과 무당층을 포섭해야 하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비슷한 중도·실용주의적 성향인 송 전 대표는 민주 당원의 또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는 ‘뉴이재명’ 그룹이 송영길 역할론에 불을 지피면서 그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상황이다. 거침없는 저격수 따라서 송 전 대표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정 대표의 리더십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정청래 VS 송영길 구도를 만드는 등 당내 경선을 앞두고 판이 깔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모든 권력투쟁의 종착지가 그렇듯 그가 2027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송 전 대표는 복귀와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친문으로 분류되는 김어준씨의 유튜브 채널 ‘뉴스공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두고 ‘대국민 사기’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의 근원지인 ‘뉴스공장’을 향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라”고 충고했다. 송 전 대표는 “(‘뉴스공장’에) 섭외를 받아도 안 나가고 싶다”며 “특정 언론 유튜브에 국회의원들이 줄 서서 알현하듯이 있는 모습이 좋은 건 아니다. 우리가 국민의힘에 대해서 고성국이나 전한길 비판하듯이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볼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친명인 강득구 의원도 김씨의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그에게 힘을 실었다. 강 의원은 “큰 틀에서 송 전 대표의 문제 제기에 뜻을 같이 한다”며 “(최근) 김씨는 김 총리의 미국 출장을 두고 ‘차기 주자 육성 프로그램처럼 보인다’고 해석했다. 해석은 자유이지만 다소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8월 전대 ‘정·송·김’ 3파전? 6월 지선·재보선 첫 번째 관문 코로나 백신 논란에 대해서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가 참전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조 대표는 “송 전 대표는 두 가지 음모론을 여전히 믿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극우 변희재가 주장한 최순실 태블릿 PC 조작론. 둘째, 코로나 백신 국가적 사기론”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주장해 온 변희재씨와 손을 잡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JTBC와 검찰, 특검이 태블릿 PC 조작을 통해 박근혜 탄핵 수사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법률가인 제가 보기에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 공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조 대표의 부산 출마’ 필요성을 언급한 송 전 대표를 비판했다. 조 대표는 “최근 송 전 대표께서 느닷없이 저와 혁신당을 향해 ‘호남 이삭줍기 말고 영남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호남 출마자들이 어떻게 이삭이냐”며 “모욕과 폄훼”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혁신당 후보들은 지난 총선 시기에 송 전 대표가 손을 잡았던 극우 인사 변희재·최대집씨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다시 한번 송 전 대표의 과거 행적을 거론했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송 전 대표는 ‘뉴이재명 바람’에 올라탔다. 지난 15일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이 개최한 ‘뉴이재명 토론회’ 현장에 나타나 지지자와 인사를 나눴다. 송 전 대표의 축사가 끝나자 지지자들은 연신 “송영길”을 외치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송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칼”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송 전 대표와 이 대통령, 두 사람은 혁신과 쇄신을 강조하는 등 성격이 비슷하다”며 “정부·여당에 타격을 입히는 ‘당정 갈등설’을 부인하는 것도, 논란을 만드는 것도 정 대표다. 이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지지층이 봤을 때 이 대통령이 어떤 의중을 전달할 때 정 대표가 아닌 송 전 대표의 입을 빌리는 편이 쉬울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쏘리재명’ ‘쏘리영길’ 그러면서 “뉴이재명은 송 전 대표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다.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했다는 미안함과 이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일 등, 송 전 대표의 희생정신을 높게 평가할 것”이라며 “이런 여론이 확산하면 앞으로 치러질 모든 당내 선거에서 송 전 대표가 승산이 있다고 계산해 어떤 방식이든 (출마를) 결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송영길 소나무당 어디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 2024년 옥중 창당했던 소나무당이 해체했다. 송 전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자 “소나무당을 해산하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고 말했다. 소나무당 시도당위원장 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송 전 대표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협의회는 “송영길 대표의 소나무당 해산 및 더불어민주당 복당 천명은 바로 그 위임에 따른 책임 있는 정치적 결단”이라며 “이는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소나무당이 존재했던 이유와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완성해 나가겠다는 결정이라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소나무당은 해산하지만,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신뢰와 연대의 경험은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송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존중하며 그의 정치적 행보를 함께 지켜보고 응원하는 시민들과 새로운 방식의 역할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