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바리 전쟁 터진 전주 조폭 대해부

'6개파 150명' 목숨 걸고 복수혈전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최근 전북 전주에서 발생한 폭력조직간 살인사건을 두고 지역적인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옥마을의 붐 등으로 타지인의 유입이 활발해진 전주는 오랜 세월 '토호조폭'이 유흥가를 장악해왔다. 경찰은 "개인 간의 감정 문제"라며 선을 그었지만 그 이면에는 결혼식장을 둘러싼 오랜 영역다툼의 가능성도 있다. 전주 조폭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해봤다.

지난달 23일 전주의 양대 조직폭력 원로들이 비밀 회동을 계획했다. 이들은 전주시내 도심에서 일어난 조직폭력배 피살사건을 두고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접선했다. 앞서 전주 월드컵파 실세인 최모씨는 오거리파 행동대원 또 다른 최모씨를 말다툼 끝에 흉기로 살해했다.

양대조직 원로
비밀리에 만나

용의자가 속해있는 월드컵파의 원로는 화해자리를 주선한 나이트파 원로와 같은 날 오후 5시께 전주 모처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단 이 자리에 오거리파 원로가 참석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들 중 규모 면에서 가장 큰 조직은 월드컵파이며, 그 다음이 나이트파, 세 번째가 오거리파라고 경찰은 전했다.

나이트파가 비밀회동을 주선한 배경으로는 살인사건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이 꼽혔다. 지난 22일 낮 결혼식장에서 월드컵파 최씨는 일부 오거리파 조직원이 자신에게 인사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나무랐다. 그러자 오거리파 최씨는 "왜 우리 애들에게 시비를 거냐"며 최씨에게 맞섰다.

양측의 말다툼은 주먹싸움으로 번질 태세였다. 이때 중재에 나선 인물이 나이트파 간부급 조직원으로 알려진 A씨다. 해당 조직원은 두 최씨의 화해자리를 주선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들은 다시 시비가 붙었다. 끝내는 칼부림이 일어났다.


이날 오후 9시께 중화산동 한 명품관 앞에서는 날카로운 흉기에 우측 가슴이 찔린 오거리파 행동대원 최씨가 발견됐다. 최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과다출혈 등의 원인으로 숨졌다. 숨진 최씨를 찌른 월드컵파 최씨는 사건현장에서 바로 도주했다.

당시 목격자에 따르면 최씨를 포함한 건장한 체격의 남성 5명은 술집 앞에서 언성을 높이다 건물 옆 주차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자주 오고가는 도심 한복판이었지만 이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큰 소리가 나더니 그곳에선 5분 만에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다.

범행 직후 최씨는 상대조직원을 살해할 당시 흉기를 건넨 추종세력(43·살인방조 등)은 놔두고 동료조직원(41·범인도피 등)의 도움을 받아 서울로 피신했다. 강남 한 식당에서 최씨는 일행 및 지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대책을 의논했다.

이로부터 이틀 뒤 최씨를 제외하고 범행에 가담한 모든 인물이 자수하거나 체포됐다. 이들 중 일부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구속을 면치 못했다. 그 사이 최씨는 경기도로 이동했다가 전주를 다녀가는 등 대담한 도피 행각으로 경찰을 괴롭혔다. 사건이 자칫 장기화될 무렵 한 통의 전화가 경찰서로 걸려왔다.

지난달 29일 전주완산경찰서는 최씨로부터 자수 의사를 확인했다. 오후 4시30분께 경찰서로 연락한 최씨는 "자수를 할 테니 저녁 무렵 효자동에 있는 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실제로 최씨는 자택에 나타났다. 그곳에서 대기 중이던 강력계 형사들은 오후 8시20분께 최씨를 검거했다.

최씨는 경찰조사에서 "사건 당일 피해자 일행과 술을 많이 마셨다. 같은 동네 선후배이고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이인데 내가 왜 흉기를 휘둘렀는지 모르겠다. 흉기로 최씨를 찔렀다"고 진술했다. 구치소에 수감된 최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붙잡은 최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이번 살인사건에는 전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폭력조직이 모두 연루됐다. 사건 당일 두 최씨가 찾은 결혼식장에선 나이트파 조직원의 결혼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이들은 1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결혼식과 관련해 크고 작은 사건에 휘말렸다. 사람이 죽기도 했고, 심지어는 자살까지 했다. 관련한 내막을 살피기에 앞서 전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폭력조직의 현황을 확인해보기로 하자.


시내 도심서 일어난 폭력배 피살사건
월드컵·나이트·오거리파 비밀 회동


전주에는 모두 6개 폭력조직(월드컵파, 나이트파, 오거리파, 타워파, 북대파, 중앙시장파)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1983년 이후 결성됐다. 규모는 150여명 안팎으로 추산되고 있다.

월드컵파는 작은 폭력서클로 시작해 전주 중앙동을 거점삼아 성장했다. 1980년대까진 중앙동에 있는 '월드컵 나이트클럽'이 주된 수익원이었다. 월드컵파의 대항마로 결성된 조직은 나이트파다. 나이트파는 전주관광호텔을 무대로 성장했다.

오거리파는 당시 상가와 주점 등이 밀집해 있던 '오거리'를 중심으로 등장했다. 타워파와 북대파는 각각 금암동을 거점으로 결성됐다. 중앙시장파는 비교적 최근 생겨났으며, 시장을 중심으로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30년 넘게 조직을 이끌고 있는 각 조직 보스와 부두목, 행동대원 등은 대부분 폭력전과가 있다. 이 가운데는 전과 10범이 넘는 보스도 있다. 두목들의 나이는 주로 4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까지로 전해진다. 큰 두목들은 외형상 자영업과 건설업 등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은 이른바 '회장님'으로 불린다.

일부 보스들은 서울과 경기, 충남 등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부 간부는 수배 중이거나 교도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타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보스들은 정기적으로 전주에 내려와 조직을 관리하고 있다. 보스가 수감 중인 경우에는 부두목 등이 대리로 조직을 움직인다.

행동대원은 조직원 가운데 활동이 가장 왕성한 중간급인 30∼40대 조직원으로부터 정보를 얻은 뒤 보스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고급 세단을 끌고 다녔던 이들은 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을 계기로 과거만큼의 세를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경찰은 밝혔다. 1980년대만 해도 조직 간의 '나와바리(구역) 싸움'은 매우 치열하게 전개됐다.

지역경기 어렵자
잔혹범죄 증가해

자금을 만들기 위해 조직원들은 '업소를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구역에 있는 업소에서 월정금을 뜯었다. 자신들의 구역을 침범하는 타 조직원은 거침없이 응징했다. 특히 월드컵파와 나이트파의 세력다툼은 선혈이 낭자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유혈 난투극은 끊이지 않았다.

전주 한성여관 살인사건, 명동여관 살인사건 등 이들의 나와바리 싸움은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1984년 무렵 전주백화점을 중심으로 유흥가를 양분했으나 이후에도 크고 작은 세력다툼을 벌였다. 6년 후에는 '서울 강남병원 응급실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검·경의 수배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각 조직원들은 하나둘 서울로 향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전주의 지역 경기가 어려워진 것도 상경의 한 이유였다. 경찰이 단속의 고삐를 죄자 자금줄이었던 업주 월정금이 자취를 감췄다.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이들은 전주를 넘나들며 불법을 일삼았다.

지난해 충남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수십억원대의 도박판을 벌인 혐의로 월드컵파 조직원 홍모씨 등 9명을 구속했다. 홍씨 등은 대전 유성구 송정동의 한 식당을 빌려 회당 수백만원씩 이른바 '아도사키' 도박판을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망을 보는 '문방'과 높은 이자로 돈을 대주는 '꽁지' 전문 도박꾼을 관리하는 '총책' 등 역할을 나눠 회당 70여명을 도박판에 끌어들였다. 월드컵파는 대전의 지역 조폭과 연계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해 전주 조폭 김모씨는 주류사업에 투자하면 거액의 이익금을 벌 수 있다고 속여 수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됐다. 김씨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지인 B씨 등 3명에게 4억4000만원의 투자금을 받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기간 김씨는 "빌려준 돈을 달라"고 말한 채무자를 폭행해 부상을 입힌 혐의도 함께 받았다.

보복폭행에 살인까지 '피 튀는 싸움'
심상찮은 동향…80년대부터 이권다툼

지난달 전주에서 만났던 한 지역사업가는 "영화제나 한옥마을로 외식·숙박·유흥업이 잘되면서 서울 자본이 대거 지역으로 유입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전주 조폭이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돈이 달린 조폭 중 일부는 끔직한 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지난 2012년 한 전직 조폭은 현직 조폭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사건 발생장소는 중화산동에 있는 번화가였다. 이번 살인사건 현장과 멀지 않은 곳으로 확인된다. 전직 조폭은 "돈이 없다고 날 무시해 친구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올해 초에는 자신과 동거한 10대 여중생을 살해한 조폭이 아파트 옥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있었다. 30대 초반인 박모씨는 전과 40범으로 교도소 출소 후 노래방 도우미를 알선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박씨는 동거녀 C양(15)에게 도우미 일을 종용하다가 C양이 이를 거부하자 병원로비에서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박씨는 아파트 19층 아래로 투신했다.

조폭과 가까운 전직 경찰 관계자는 "여자가 낀 사업을 조폭이 포기할 수 없다"며 "특히 결혼과 관련한 사업에도 조폭이 진출해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일례로 결혼정보업체를 가장한 성매매 알선·공급세력을 꼽기도 했다.


전주의 경우 채무 갈등을 겪던 한 예식장 사장이 채권자 2명을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다. 숨진 사장은 자신과 안면이 있는 조직을 움직여 채권자 D(55), E(44)씨를 살해했다.

조폭 출신으로 알려진 D씨 등은 앞서 사장을 두 차례 납치·폭행하는 등 "돈을 내놓으라"며 협박했다. 이에 사장은 조폭인 아들까지 동원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후 사장과 두 채권자는 모두 1t 냉동탑차 안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운전석에는 '채권자 두 명을 먼저 보내고 나도 뒤따라 생을 마감하겠다'는 내용의 유서가 있었다. 조직 간의 처절한 생존 암투였던 셈이다.

전주 조폭은 유독 결혼식장에서 사고를 일으켰다. 몇 년 전 서울 한 웨딩홀에서 서울 조폭과 시비가 붙었을 때는 전주 조폭의 웨딩사업 진출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이번 사건 역시 과거 예식장을 둘러싼 앙금이 쌓였다가 터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경찰은 "조직 간의 충돌이 아니라 개인 간의 감정 문제가 발단이 된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자수 앞두고
무슨 꿍꿍이

최근 조폭을 겨냥한 대대적인 단속이 부활한 가운데 양대 두목의 비밀회동은 중요한 포인트를 시사한다. 경찰의 칼을 빌려 군소조직을 정리하려는 것은 아닌지. 아직도 조폭을 추종하는 F씨는 "곧 나와바리 전쟁이 불붙을 수 있다"며 의견을 전했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국구 접수' 전주 월드컵파 거물 두목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지난 8월 660억원 규모의 면세담배 유출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사건의 중심에는 전주 월드컵파 조직원 김모(39)씨가 있었다. 김씨는 담배 구매업자, 무역업자 등과 공모해 면세담배 2933만여갑을 빼돌렸다. 김씨는 밀수한 담배를 국내로 유통한 총책이었다.

월드컵파는 전주 나이트파와 더불어 전북 지역 최대조직으로 꼽힌다. 시기상으로 월드컵파가 먼저 결성되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나이트파가 생겨났다고 한다.

전성기 때 조직원은 100명 남짓해 그리 크지 않은 규모다. 하지만 월드컵파가 전국구에 준하는 명성을 갖게 된 이유가 있다. 두목 주모씨의 화려한 이력이다.

주씨는 지난 범죄와의 전쟁으로 구속돼 실형을 살았다. 검찰은 주씨에게 범죄단체 수괴죄를 적용했다. 당시 검찰의 기소 내용을 보면 주씨는 상당한 '거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주씨는 1980년대 전북승마협회 부회장직을 맡아서 사회고위층과 어울렸다. 1987년 4월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인 일명 '용팔이사건'에 연루되는 등 정치권과 연을 맺었다.

지역에서는 골재채취회사 등을 운영하며 사업가 행세를 했지만 88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서울 강남·이태원 일대 유흥가에 진출했다. 주 수입원은 슬롯머신 사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월드컵파는 경쟁조직을 제거할 목적으로 강남 모 병원 응급실에서 나이트파 조직원을 무참히 살해했다.

월드컵파는 소규모 폭력서클로 출발했다. 전주 완산구에 있는 나이트클럽 '월드컵'을 접수하면서 월드컵파란 이름을 갖게 됐다. 월드컵파가 급성장한 배경에는 부두목 김모씨의 역할이 컸다. 김씨는 일대 어느 조폭보다 폭력적이며 잔인했다고 한다. 김씨의 '주먹'에 힘입어 주씨는 일대 상권을 손쉽게 거머쥘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 몸집을 불린 나이트파와는 수차례 칼부림을 벌여 수십명이 죽거나 다쳤다. 1983년과 1984년 연이어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1989년에는 보복살인이 오가며 '피바람'이 불었다. 당시 월드컵파 조직원 4명은 나이트파 두목 김모씨의 친구에게 가스총을 쏘는 등 충격적인 범행으로 시민을 경악시켰다.

1990년 8월 주씨의 구속 후 월드컵파의 외형은 급격히 축소됐다. 그러나 일부는 서울과 경기로 거주지를 옮겨 아직도 폭력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주로 자영업이나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개별 조폭들이 정관계와 유착해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실제로 지난 2005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월드컵파가 모 정치인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대법관에 오른 변호사는 월드컵파 두목 주씨를 변호했다가 구설에 휘말렸다. 또 월드컵파 조직원은 수감생활 중 알게 된 교도관을 꾀어 수억원을 투자받은 뒤 반환을 요구하는 교도관을 폭행해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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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