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⑦가미카제 특공대의 실상

"나는 죽고 싶지 않다" 그들의 마지막 메시지

올해는 광복 69주년이 되는 해다. 내년이면 벌써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지만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등 일본의 역사인식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일본의 자랑인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일요시사가 화제의 책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를 연재한다.

이렇듯 일본에서는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가나 정치가에 이르기까지 나서서,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을 숭고한 애국심으로 국가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애국자로 묘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사무라이 정신으로 무장된 가미카제 대원들이 출격에 앞서 천황이 내리는 술 한 잔을 받으며 ‘텐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 : 天皇陛下 萬歲)!’를 외치고, 용감하게 미군 함정에 돌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가미카제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사무라이 정신이요, 일본인들의 정신 ‘야마토 다마시(大和魂)’라며 추켜세우고 있다.

협박과 회유

가미카제 특공대의 실제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본 정부가 주장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같이 또는 대중문화 속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이 애국의 신념으로 일왕과 국가를 위하여 스스로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자원한 것도 아니며, 또한 사무라이 정신으로 무장되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미군 함정을 향하여 용감히 돌진한 것도 아니었다. 이는 명백히 왜곡된 이야기이다.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가미카제 특공대의 얘기가 허황된 거짓이라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의심의 여지도 없이. 일본 정부는 그들이 일으켰던 전쟁을 미화하여 영광스러웠던 역사로 가르치고 싶었듯이, 가미카제 특공대의 실상도 그 내용을 왜곡하여 그들을 영웅으로 받들면서 은연중에 자국민과 학생들에게 맹목적적인 애국심을 심어 주고 있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대략 3940명의 가미카제 대원들이 자살 비행기를 탔으나, 그중 실제로 미 함정에 돌진한 숫자는 불과 10퍼센트 안팎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조종사가 직접 비행기를 몰고 미군 함정을 향해 돌진하는, 오늘날의 미사일보다 더 정확히 목표를 맞출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률이 상당히 낮았던 것이다. 그 10퍼센트 안팎의 성공률로 미군 함정 30척이 침몰했고, 120척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이들, 특공대원들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었다고 한다. 미국 위스콘신대학 인류학과의 미국 국적의 일본인 오누키 에미코(大貴惠美子) 교수는 가미카제에 대한 연구 논문에서 ‘가미카제 병사의 85퍼센트가 고등교육을 받은 학도병이었고, 그중 상당수가 일본의 최고 대학인 도쿄(東京)제국대학 출신이었다’라고 조사 결과를 밝혔다.

이는 전쟁 초기에 농촌 출신의 젊은이들은 이미 육군으로 징집되어 전선에 투입되었고, 전쟁이 길어지면서 전선에 투입할 인력이 턱없이 모자라게 되자 대학 출신의 젊은이들을 징집하여 가미카제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비행기 조종술을 빠른 시일에 습득하려면, 교육 수준이 낮은 농촌 출신 젊은이들보다는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 적합하다는 점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미카제 대원으로 끌려간 젊은이들
전쟁 미화 위해 국민영웅으로 추앙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은 높은 교육을 받은 탓인지, 나름대로 뚜렷한 주관과 국가관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전쟁 초기에 투입되었던 순진했던 농촌 출신 군인들보다는 사무라이 정신을 앞세워 무조건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일본 군부의 교육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던 것 같다. 일본 군부가 아무리 일왕(日王)의 신성(神性)을 강조하고, 국가를 위한 충성심을 교육시키며 헌신적인 희생을 요구해도, 이들은 자신의 이해타산에 따라 행동했던 것 같다.

오누키 에미코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은 왕을 위해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무사도로 무장된 젊은이라기보다는 대다수가 강압적으로 지원을 강요받아 불가피한 죽음을 맞은 불쌍한 젊은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도쿄 제국대학 재학 중 가미카제로 징집된 하야시 다다오의 일기에, “지금은 새벽 3시다. 날이 밝으면 나는 죽어야 한다. 아! 그러나 죽고 싶지 않다. 내가 왜 가미카제를 해야 하는가?”라고 쓰여 있었고, 게이오대학 경제학부 학부생인 우에하라 료지는 ‘권력주의 국가는 일시적으로 흥했다가도 결국에는 망한다. 파시즘의 이탈리아와 나치즘의 독일이 패한 것이 그 증거다’라고 하며, ‘이러한 상태로 죽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라고 출격하기 전 유서에 남겨 놓았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징집 경험이 있는 <요미우리신문>의 ‘와타나베 쓰네오(渡邊恒雄)’ 회장이 2006년 2월11일 전후 일본의 태도에 대하여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면서 “일본은 주변국들에 말할 수 없는 피해와 고통을 주었던 포악했던 전시시대를 인정하고, 침략전쟁을 더 이상 미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그 예로 가미카제 특공대를 들었다.

“나는 당시 사병으로 그들 주변에 함께 있었다. 가미카제 특공대에 대한 진실 또한 우리가 아는 것 대부분이 왜곡되어 있다. 가미카제 대원들이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용맹과 기쁨으로 미군 함정에 돌진했다는 것은, 모든 정치인들과 역사 인식이 부족한 역사학자들이 지어낸 거짓말이며,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의 진실은, 겁에 질려 바지에 오줌을 흘리고, 공포에 질려 일어서지도 못하는 대원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겁에 질려 오줌을 흘리고, 일어서지도 못하는 대원을 강제로 비행기에 밀어 넣었고, 순순히 따르지 않을 때에는 그 자리에서 폭력을 써 가며 강제 탑승시켰다.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은 단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 같은 신세였을 뿐이고, 그들에겐 애국심도 천황에 대한 충성심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강제적 죽음

와타나베 쓰네오(渡邊恒雄) 회장의 이 발언은 가미카제 특공대의 실상을 밝혀주는 중요한 증언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최대 우익신문인 <요미우리신문> 회장이 이러한 발언을 했다는 것은, 바로 오늘날까지도 일본 정부가 자국 국민들에게 허황된 자부심과 긍지를 주기 위하여 심각하게 사실을 오도하고, 역사를 왜곡하면서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증언이다. 와타나베 쓰네오 회장의 가미카제에 대한 증언도 “일본 정부는 침략전쟁을 더 이상 거짓으로 미화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그 예로 든 것이다.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미국 국적의 또 다른 일본인인 ‘리사 모리모토’가 가미카제 생존자와 인터뷰를 통한 조사에 의하면, 일본 군부는 가미카제를 모집하면서 국가를 위한 사명이라는 미명 아래 모집에 부응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수없이 협박과 회유를 했다고 한다.

“이 국가적 사명에 목숨을 바치지 않는다면 너도 죽이고 네 가족들까지 몰살하겠다고 협박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가미카제로 나서면 가족들에게는 충분한 보상을 해 주겠다며 회유했다고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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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