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⑦가미카제 특공대의 실상

"나는 죽고 싶지 않다" 그들의 마지막 메시지

올해는 광복 69주년이 되는 해다. 내년이면 벌써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지만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등 일본의 역사인식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일본의 자랑인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일요시사가 화제의 책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를 연재한다.

이렇듯 일본에서는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가나 정치가에 이르기까지 나서서,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을 숭고한 애국심으로 국가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애국자로 묘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사무라이 정신으로 무장된 가미카제 대원들이 출격에 앞서 천황이 내리는 술 한 잔을 받으며 ‘텐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 : 天皇陛下 萬歲)!’를 외치고, 용감하게 미군 함정에 돌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가미카제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사무라이 정신이요, 일본인들의 정신 ‘야마토 다마시(大和魂)’라며 추켜세우고 있다.

협박과 회유

가미카제 특공대의 실제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본 정부가 주장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같이 또는 대중문화 속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이 애국의 신념으로 일왕과 국가를 위하여 스스로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자원한 것도 아니며, 또한 사무라이 정신으로 무장되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미군 함정을 향하여 용감히 돌진한 것도 아니었다. 이는 명백히 왜곡된 이야기이다.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가미카제 특공대의 얘기가 허황된 거짓이라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의심의 여지도 없이. 일본 정부는 그들이 일으켰던 전쟁을 미화하여 영광스러웠던 역사로 가르치고 싶었듯이, 가미카제 특공대의 실상도 그 내용을 왜곡하여 그들을 영웅으로 받들면서 은연중에 자국민과 학생들에게 맹목적적인 애국심을 심어 주고 있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대략 3940명의 가미카제 대원들이 자살 비행기를 탔으나, 그중 실제로 미 함정에 돌진한 숫자는 불과 10퍼센트 안팎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조종사가 직접 비행기를 몰고 미군 함정을 향해 돌진하는, 오늘날의 미사일보다 더 정확히 목표를 맞출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률이 상당히 낮았던 것이다. 그 10퍼센트 안팎의 성공률로 미군 함정 30척이 침몰했고, 120척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이들, 특공대원들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었다고 한다. 미국 위스콘신대학 인류학과의 미국 국적의 일본인 오누키 에미코(大貴惠美子) 교수는 가미카제에 대한 연구 논문에서 ‘가미카제 병사의 85퍼센트가 고등교육을 받은 학도병이었고, 그중 상당수가 일본의 최고 대학인 도쿄(東京)제국대학 출신이었다’라고 조사 결과를 밝혔다.

이는 전쟁 초기에 농촌 출신의 젊은이들은 이미 육군으로 징집되어 전선에 투입되었고, 전쟁이 길어지면서 전선에 투입할 인력이 턱없이 모자라게 되자 대학 출신의 젊은이들을 징집하여 가미카제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비행기 조종술을 빠른 시일에 습득하려면, 교육 수준이 낮은 농촌 출신 젊은이들보다는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 적합하다는 점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미카제 대원으로 끌려간 젊은이들
전쟁 미화 위해 국민영웅으로 추앙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은 높은 교육을 받은 탓인지, 나름대로 뚜렷한 주관과 국가관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전쟁 초기에 투입되었던 순진했던 농촌 출신 군인들보다는 사무라이 정신을 앞세워 무조건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일본 군부의 교육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던 것 같다. 일본 군부가 아무리 일왕(日王)의 신성(神性)을 강조하고, 국가를 위한 충성심을 교육시키며 헌신적인 희생을 요구해도, 이들은 자신의 이해타산에 따라 행동했던 것 같다.

오누키 에미코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은 왕을 위해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무사도로 무장된 젊은이라기보다는 대다수가 강압적으로 지원을 강요받아 불가피한 죽음을 맞은 불쌍한 젊은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도쿄 제국대학 재학 중 가미카제로 징집된 하야시 다다오의 일기에, “지금은 새벽 3시다. 날이 밝으면 나는 죽어야 한다. 아! 그러나 죽고 싶지 않다. 내가 왜 가미카제를 해야 하는가?”라고 쓰여 있었고, 게이오대학 경제학부 학부생인 우에하라 료지는 ‘권력주의 국가는 일시적으로 흥했다가도 결국에는 망한다. 파시즘의 이탈리아와 나치즘의 독일이 패한 것이 그 증거다’라고 하며, ‘이러한 상태로 죽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라고 출격하기 전 유서에 남겨 놓았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징집 경험이 있는 <요미우리신문>의 ‘와타나베 쓰네오(渡邊恒雄)’ 회장이 2006년 2월11일 전후 일본의 태도에 대하여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면서 “일본은 주변국들에 말할 수 없는 피해와 고통을 주었던 포악했던 전시시대를 인정하고, 침략전쟁을 더 이상 미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그 예로 가미카제 특공대를 들었다.

“나는 당시 사병으로 그들 주변에 함께 있었다. 가미카제 특공대에 대한 진실 또한 우리가 아는 것 대부분이 왜곡되어 있다. 가미카제 대원들이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용맹과 기쁨으로 미군 함정에 돌진했다는 것은, 모든 정치인들과 역사 인식이 부족한 역사학자들이 지어낸 거짓말이며,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의 진실은, 겁에 질려 바지에 오줌을 흘리고, 공포에 질려 일어서지도 못하는 대원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겁에 질려 오줌을 흘리고, 일어서지도 못하는 대원을 강제로 비행기에 밀어 넣었고, 순순히 따르지 않을 때에는 그 자리에서 폭력을 써 가며 강제 탑승시켰다.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은 단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 같은 신세였을 뿐이고, 그들에겐 애국심도 천황에 대한 충성심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강제적 죽음

와타나베 쓰네오(渡邊恒雄) 회장의 이 발언은 가미카제 특공대의 실상을 밝혀주는 중요한 증언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최대 우익신문인 <요미우리신문> 회장이 이러한 발언을 했다는 것은, 바로 오늘날까지도 일본 정부가 자국 국민들에게 허황된 자부심과 긍지를 주기 위하여 심각하게 사실을 오도하고, 역사를 왜곡하면서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증언이다. 와타나베 쓰네오 회장의 가미카제에 대한 증언도 “일본 정부는 침략전쟁을 더 이상 거짓으로 미화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그 예로 든 것이다.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미국 국적의 또 다른 일본인인 ‘리사 모리모토’가 가미카제 생존자와 인터뷰를 통한 조사에 의하면, 일본 군부는 가미카제를 모집하면서 국가를 위한 사명이라는 미명 아래 모집에 부응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수없이 협박과 회유를 했다고 한다.

“이 국가적 사명에 목숨을 바치지 않는다면 너도 죽이고 네 가족들까지 몰살하겠다고 협박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가미카제로 나서면 가족들에게는 충분한 보상을 해 주겠다며 회유했다고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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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당사자’라고 주장한 30대 오모씨의 행위와 이력을 두고 파장이 일고 있다. 그는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이자 ‘평양 무인기 작전’을 목적으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 이사였다. 2년 전부터의 행적도 수상하다. 정보사령부 휴민트 요원들과 수차례 접촉해 사실상 대북 공작을 준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난 17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오씨와 정보사의 직접적 연결고리가 형성된 건 2024년 5월 이후다. 정보사와 오씨와의 접촉은 A 대령의 승인하에 이뤄졌다. 그는 정보사 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건 이후 속초 HID 부대장을 마치고 돌아온 인물로 조직개편 TF(태스크포스) 팀장 및 기반조성단장을 맡았다. 수상한 접촉 앞서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인 오씨는 윤정부 시절 ‘북한 무인기 대통령실 상공 침투’에 대응할 목적에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의 이사로 근무했다. 그는 지난 16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 외관과 위장 무늬, 색 등이 자신이 북한으로 보낸 무인기와 일치한다”며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목적에 대해 “북한 우라늄 공장의 방사선과 중금속 오염도 측정”이라고 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무인기를 북한으로 보냈다는 취지로 읽힌다. A 대령은 ‘정보사 기능·역량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수도권 안가 설립을 기획했다. A 대령의 계획대로 B 소령은 오씨와 C 상사는 김모씨를 접촉했다. B 소령은 휴민트(HUMINT·820·인간정보) 요원이다. 이들은 오씨와 김씨를 통해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려 확보한 영상 증거를 확인했다. 이 시기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언급했던 정보사의 국방과학연구소(ADD) 접촉 및 무인기 개발 의혹이 시작되던 때와 겹친다. 당시 정보사는 ADD에 “드론에 전단통을 달 수 있느냐”고 문의한 바 있다. ADD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고 내란 특별검사팀에 진술했다. 정보사 간부는 “누구의 지시로 국방과학연구소에 드론과 관련해 연락했냐”는 특검팀의 질문에 “문상호의 지시였고 문 전 사령관이 원천희 전 국방정보본부장에게도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오씨의 영상 증거가 북한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A 대령은 이후에도 B 소령과 오씨의 접촉을 허가했다. ‘지속적 협력 관계’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A 대령은 오씨에게 이른바 ‘협조비’를 제공한 의혹을 받는다. 사비가 아닌 ‘정보사 공작금’ 수십만원을 정기적으로 전달했다는 게 골자다. 이 같은 행위는 정보기관과 협조·정보원 간 이뤄지는 통상적 거래로 알려져 있다. 실제 정보기관은 국제범죄 및 마약 관련 첩보를 제공한 ‘야당’에게 많게는 수백만원의 금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정보사가 오씨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4년 여름 ‘대북 공작’ 의심 정보사와 지속적 접촉 정보사·ADD 연락 시기 겹쳐 ‘김태효 안보실’ 연루설도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A 대령과 오씨가 일반적 협력 관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대북 공작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정보기관이라면 늘 하는 업무다. A 대령이 오씨에게 ‘무인기를 북으로 보내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고 그저 오씨가 회사를 설립하는 데 지원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A 대령의 부하인 B 소령은 오씨가 북한 전문 매체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줬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언론사는 오씨가 발행인으로 있는 곳으로 2025년 3월 중순부터 첫 기사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지난 11일을 끝으로 기사가 작성되지 않은 걸 보면 오씨가 언론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회사 운영에도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정보사 출신 한 소식통은 “오씨가 채널A 인터뷰에서 무인기를 세 번 날렸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닌 걸로 보인다. 적어도 수십번은 날렸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린 건 정보사 조직 차원의 지시가 아니라 오씨의 독단적 행동이다. 오씨와 접촉했던 담당자들도 그의 무리수 때문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는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오씨가 대통령실 출신임과 동시에 정보사와 접촉한 배경을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정부 안보실 2차장 산하 정보현안대응팀에 파견됐던 HID 출신 오모 중령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오 중령은 2022년 8월 국정원장 비서실에 근무하다가 다음 해 3월 대통령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자신이 확보한 첩보를 인성한 전 2차장이 아닌 ‘안보실 실세’ 김태효 전 1차장에게 수차례 보고했다. 오 중령의 행위를 두고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비정상적 보고”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김 전 1차장은 국방이 아닌 외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대북 문제에 어떤 군사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전략을 세우는 데는 신원식 전 안보실장보다 한 수 아래였다는 평가다. 사실상 ‘국방 문외한’인 김 전 1차장은 2023년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HID 부대를 방문했다. 그는 “2023년 6월 초 정보당국 관계자들과 HID 부대를 격려 방문한 바 있지만 1년7개월 전에 있었던 군 부대 격려 방문을 이번 계엄 선포와 연결 짓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약”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평양 작전' 준비하려 일종의 테스트 아니었나 의심” "오씨 독단적 행동 무인기 날리라 지시한 적 없어”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윤석열 전 대통령도 오려고 했다는 건 사실이다. 김태효가 그때 왜 왔는지 모르겠다. 와선 안 되는 건 아닌데 올 일이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 가지 않는 해명”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윤 전 대통령이 오고 싶어 했고 안보실이 그의 HID 방문이 검토된 바 없다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 당시에 대통령 방문 가능성 때문에 대비 회의까지 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오 중령이 2023년 12월 안보실 2차장 산하 국가위기관리센터 정보현안대응팀에 들어가게 된 건 김 전 1차장이 HID를 방문한 직후다. 오 중령은 인 전 2차장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인 전 2차장도 “공개된 자리서 말하기 어렵지만 제가 통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 중령을 포함한 팀원들의 보고서는 인 전 2차장이 아닌 김 전 1차장이 검토했다. 안보실은 이 비밀 TF가 “규정화된 테두리 밖에서 대북 특수정보를 분석하는 팀”이라며 계엄과 관련해 정보사와 소통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비밀 조직이 아니라 위기관리센터에 배치된 ‘정보융합팀’이다. 정보융합팀은 문재인정부의 정보융합비서관실을 대북 정보 분석에 특화시켜 슬림화한 조직으로, 2022년 5월1일 대통령직 인수위 브리핑서도 해당 조직의 신설 취지와 배경을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정보사 차원에서 북한으로 무인기를 보내는 건 부담이 크다. 그래서 민간과 협업해 일종의 테스트를 진행한 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안보실이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적극적으로 기획 및 실행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대북 공작 준비? 그러나 이는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오 중령의 경우 내란 특검팀 소환 조사에서 김 전 1차장에게 정보 보고를 했던 사실은 인정했으나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기획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정부는 현재 군·경합동조사TF를 꾸려 무인기를 북한에 보낸 정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수사 중이다. 무인기를 보냈다고 주장한 사람의 과거 이력과 정보사와의 접촉이 확인된 만큼 숨겨진 목적에 대해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