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풀린 퇴폐이발소 여주인 살인사건 전말

유사성행위 파트너 맘에 안 들어…’‘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경기도 안산 원곡동의 한 퇴폐이발소 여주인을 흉기로 잔인하게 살해하고 달아났던 피의자가 8년7개월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미제로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이 사건은 뜻밖의 단서인 ‘담배꽁초’로 인해 실마리가 풀렸다. 당시 피의자가 태웠던 담배 한 개비가 독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죄 짓고 살면 안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기막힌 이 사건의 전말을 풀어본다.

지난 2005년 12월 찬바람 불던 겨울, 김모(40)씨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거리로 나섰다. 외로움에 사무쳤던 그가 향한 곳은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에 있는 한 허름한 이발소. 겉모습은 여느 이발소의 모습과 다를 것 없었지만 실상은 유사성행위가 성행하는 퇴폐영업소였다. 이 이발소에서 가위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물론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목적은 이발이 아닌 낯선 여성과의 진한 스킨십이었기 때문.

증거 없어 표류
 
찬 바람에 몸을 웅크린 채 퇴폐이발소에 입장한 김씨는 성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이내 이발소 여주인의 안내에 따라 어두운 조명 아래에 있는 간이침대에 누웠다. 눈앞에 있는 세면대와 수건들을 보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찰나, 이발소 여주인 권모(43·여)씨가 들어왔다. 그리고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눈 뒤 곧바로 유사성행위를 위해 하나 둘 호흡을 맞췄다. 
 
그런데 권씨로부터 유사성행위를 제공받던 김씨는 기분이 언짢았다. 자신이 생각했던 유사성행위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불쾌감을 내비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권씨가 내뱉은 말들에 깊은 내상을 입었다. 퇴폐이발소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긴커녕 오히려 모욕감을 느낀 것이다. 결국 김씨는 불쾌감을 떨치지 못한 채 이발소를 나왔다.
 
서비스하던 업소녀 모욕에 격분해 살인

다른 혐의로 잡힌 범인 DNA 일치해 검거 
 
문제는 이발소에서의 불쾌감이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됐다는 점이다. 김씨는 이발소를 나오는 순간부터 대략 한 달 동안 매일같이 권씨를 향한 분노에 휩싸였다. 화가 치민 김씨는 극단적인 결심까지 하게 됐다. 자신에게 모욕감을 안겨준 권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2006년 1월22일, 김씨는 흉기를 챙기고 한 달 전쯤 찾았던 퇴폐이발소를 다시 찾았다.
 
결국 김씨는 한 달 전 자신에게 모욕감을 줬던 이발소 주인 권씨를 다시 만났다. 분노에 찬 김씨는 그 자리에서 바로 흉기를 꺼내 권씨를 무참히 살해하고 담배를 태운 뒤 달아났다. 권씨는 김씨의 흉기에 5차례 찔린 채 쓰러져 그 자리에서 바로 숨졌다. 이발소 바닥은 피로 흥건했다. 그리고 이날 오전 3시20분께 권씨를 만나기 위해 이발소를 찾은 다른 손님에 의해 살해 현장이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잔인한 수법으로 미뤄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추정하고 이발소 여주인 권씨의 통화내역을 낱낱이 뒤졌다. 의심이 가는 주변 인물들도 조사했다. 안산의 이태원이라 불리던 원곡동이었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수사를 이어갔지만 증거가 부족해 용의자를 특정하진 못했다. 이후에도 경찰은 각고의 노력으로 수사를 계속 이어갔지만 끝내 범인을 찾지 못했다. 이후 9년 가까이 흘러 미제사건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6월 경기도 의정부의 한 호프집에서 여주인을 유리잔으로 때려 살해하려 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9년이 지난 사건의 실마리가 풀렸다. 경찰은 폭력행위 등의 죄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김씨를 다시 체포해 수사를 벌였다. 경찰은 붙잡힌 김씨의 범행수법이 과거 이발소 여주인 살해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하고 김씨의 유전자(DNA)를 채취했다. 그리고 9년 전 이발소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에서 나온 4개의 DNA 가운데 하나가 김씨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김씨가 9년 전 태웠던 담배가 미제사건의 열쇠가 된 셈이었다.

범인 잡은 꽁초
 
이 같은 DNA 검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오래전 범행을 극구 부인했다. 경찰은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했다. 결국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김씨의 진술이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 ‘거짓’ 으로 나왔다. 김씨는 범행 일체를 시인한 뒤 “죄송하다”고 말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결과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수사의 방향을 정하거나 자백을 끌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지난 22일, 경기도 의정부경찰서는 이발소여주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 등으로 김씨를 붙잡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이번 사건처럼 의외의 단서로 인해 수사가 급물살을 타기도 한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10년 만에 재수사…강화도 변사사건은?
 
지난달 14일 인천 강화경찰서는 채권자를 살해하고 시신을 야산에 유기한 혐의로 A(62)씨를 구속했다. A씨는 지난달 31일 오전 11시 30분∼오후 12시 40분 사이 토지 매매대금 1억1200만원을 돌려준다며 30대 채권자를 자신의 강화군 집으로 부른 뒤 머리에 둔기를 휘둘러 살해하고 시신을 강화군 선원면의 야산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A씨가 이번 살해건뿐만 아니라 2001∼2006년 강화군에서 발생했던 2건의 실종사건, 1건의 변사사건과 연루됐다고 보고 최근 수사에 착수했다. 2001∼2006년까지 실종되거나 숨진 이들은 모두 A씨의 지인으로, 당시 경찰은 A씨를 수사 선상에 올려놓고 조사를 벌였으나 범행 입증엔 실패한 바 있다.
 
2001년 12월 A씨의 동거녀 B(당시 40세)씨가 실종됐다. B씨의 실종은 다음해 3월 B씨 여동생이 “언니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가출 신고를 하면서 경찰에 인지됐다. 경찰은 같이 살던 B씨가 사라졌는데도 바로 신고하지 않았던 A씨의 행동이 수상하다고 보고 A씨를 상대로 범행을 추궁했지만 심증 외에 딱히 확보된 증거가 없던 경찰은 A씨를 더는 추궁할 수 없었고, 사건은 13년간 미제로 남게 됐다.
 
2004년 9월엔 A씨가 운영하던 식당에서 일하던 C씨(당시 42세)가 실종됐다. A씨와 C씨는 바로 옆집에 살던 이웃으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A씨는 매일 보던 C씨가 사라졌는데 이번에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2006년 8월엔 A씨 집 인근 펜션의 관리인이던 D(당시 54세) 씨가 펜션에서 약 70m 떨어진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D씨의 펜션 부지에 둘러싸인 A씨 소유 땅에 건축물을 짓는 문제로 이들이 갈등을 겪어 온 사실을 확인하고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증거 불충분으로 영장이 기각돼 수사는 더 진척될 수 없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데다 당시에도 증거 부족으로 A씨를 범인으로 특정할 수 없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A씨가 자백하지 않는 한 미제 사건에 대한 혐의 입증은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A씨는 구속된 지금도 살해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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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