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농구 잔혹사

게임은 재미없고 선수는 사고치고

[일요시사=경제팀] 한종해 기자 = 등을 돌리는 농구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 유독 한국 농구와 관련된 논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심판을 폭행한 감독이 자격 박탈을 당하는가 하면 폭행 및 사기혐의로 기소되거나 처형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기도 했다. 왕년의 스타 출신 감독은 승부조작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지난 한 시즌 농구계를 충격으로 몰아 넣은 사건을 재조명해봤다.

 
한국 농구가 개념을 잃어버렸다.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농구계 소식은 전부 부정적인 소식 투성이다. 바람 잘날 없다는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린 적이 없었다.
 
최근 연세대 정재근 감독의 ‘박치기’가 농구계를 들었다 놨다. 정 감독은 지난 7월10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KCC와 함께하는 2014 아시아-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 고려대와의 결승전에서 심판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에게 폭언을 하고 심판 얼굴을 박치기했다.

동네북 된 심판
 
양팀이 팽팽한 접전을 펼치던 중 연장전에서 연세대 최준용이 골밑슛을 시도할 때 수비 과정에서 발생한 고려대 이승현이 반칙을 심판이 파울로 선언하지 않은 데 대한 분출이었다.
 
사태가 커지자 정 감독은 하루 뒤인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사과한 뒤, 연세대 감독직에서 자진사퇴했다. 대한농구협회는 상벌위원회를 개최하고 정 감독에게 자격정지 5년의 징계를 결정했다. 한 번의 실수로 5년 동안 아마추어팀을 비롯해 프로팀을 맡을 수 없게 된 것. 또 해외에서의 지도자 생활도 대한농구협회 승인 없이는 불가능해 사실상 퇴출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3월 프로농구 부산 KT와 창원 LG의 4강 플레이오프 1차전 경기 도중 코트로 들어와 심판에게 ‘배치기’를 시전하는 등 강하게 항의한 KT 전창진 감독은 테크니컬 반칙 2개를 받고 코트를 떠났다. 대한농구협회는 전 감독에게 1경기 출전 정지와 제재금 500만원의 징계를 내렸다.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선수를 나무라는 과정에서 폭언을 하고, 입에 테이프를 붙이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논란이 됐다. 지난 2월16일 안양 KGC와의 원정경기 중 작전타임에 모비스 함지훈을 혼내면서 “야 테이프 줘봐, 입에 붙여”라고 했다. 이에 함지훈이 잠시 머뭇대자 유 감독은 “붙여 이 XX야”라고 욕설을 뱉었고 이 장면이 중계화면을 통해 방송됐다.
 
촉망받던 농구선수들의 충격적인 행보도 이어졌다. 한국 최고의 슈터로 이름을 날리며 미국 프로농구(NBA) 진출까지 노렸던 농구 국가대표 출신 방성윤은 지난 2월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방성윤은 공증까지 된 상황에서 건물 보증금을 속여 빼앗는 등 고소인을 상대로 사기를 친 혐의를 받고 있다. 
 
방성윤은 지난 2012년 9월 폭행 혐의 등으로 고소돼 경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당시 피해자 김모씨는 고소장에서 ‘방성윤이 사업 파트너이자 또 다른 피고소인 이씨와 함께 2012년 4월부터 8월까지 나를 수차례 폭행했다. 이들은 골프채와 아이스하키 스틱, 쇠파이프 등으로 허벅지를 매회 40∼50회 정도 때렸다’고 진술했다.
 
등 돌리는 팬들 갈수록 늘어나
툭하면 감독 심판에 폭행·폭언
폭력·사기에 살인 사건 잇달아
 

당시 방성윤은 “남자들끼리 장난친 게 전부”라고 항변했지만 결국 2013년 3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방성윤은 현재 집단·흉기 등 상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방성윤과 함께 한국 농구의 재목으로 평가됐던 정상헌은 사체은닉 혐의로 기소, 지난달 21일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정상헌은 지난해 6월 상가 권리금 문제로 처형과 말다툼을 벌이다 목 졸라 살해한 뒤 인근 야산에 시체를 암매장했다. 이후 정상헌은 숨진 처형의 휴대전화로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내 피해자가 살아 있는 것처럼 꾸미거나 아내의 살인 교사로 처형을 살해했다는 거짓 진술을 내놓으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가대표 출신의 김민구는 음주사고를 냈다. 지난 6월7일 새벽 국가대표 농구팀 외박기간 중 음주 후 자신의 승용차를 몰다 신호등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본인을 제외한 인명피해는 없었다. 당시 김민구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60%로 면허정지에 해당됐다. 김민구는 고관절, 발목 등에 부상을 입고 수술을 받았다. 선수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 부상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수술 후 그의 회복경과는 예상보다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에는 강동희 전 원주 동부 감독이 승부조작 사태에 관련됐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줬다. 강 전 감독은 지난 2011년 2∼3월 브로커들에게 4700만원을 받고 주전 대신 후보 선수를 기용하는 방식으로 승부를 조작한 혐의로 실형을 받았다. 지난해 8월 법원으로부터 징역 10월에 추징금 4700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강 전 감독이 범행 내용과 방법이 불량해 죄질이 좋지 않고 범행 내용을 대부분 부인하고 있어 반성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후에도 브로커들에게 회유와 압력을 넣었다”고 판시했다. 또 “한국 농구계의 우상인 강 전 감독이 직접 승부조작에 개입한 사건 때문에 프로농구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고 사회적 손실도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전국구 스타로 인지도가 높은데다 사령탑 부임 3년 만에 팀을 정규리그 정상으로 이끌었던 지도자의 타락에 팬들의 실망감은 컸다. 강 전 감독은 한국농구연맹으로부터 영구제명됐다.
 
이처럼 감독·선수 가릴 것 없이 불미스러운 사건을 양산하고 있는 가운데 프로종목 중 가장 인기가 떨어진다는 오명을 받고 있는 한국 농구가 이대로라면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90년대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한국 농구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성적 지상주의와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 발목을 잡고 있다. 경기장에선 응원의 목소리보다는 코치들이 선수를 닦달하는 고함소리가 더 크다.
 
이기는 농구에 익숙하다보니 경기 자체를 즐기는 선수들은 줄어들고 있다. 어릴 때부터 개개인의 기술보다는 당장 도움이 되는 패턴과 지역방어를 먼저 배운다. 길거리 농구는 진정한 농구가 아니라고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처럼 어릴 적 배운 농구 습관은 커서도 이어진다. 한 경기에도 멋진 묘기가 수십개씩 나오는 NBA와 비교해 봐도 한국 농구는 재미가 없다.
 
체계적이지 못한 인성교육 시스템도 문제다. 지난 2010년부터 공부하는 농구선수를 만들기 위해 수업에 참여하게 하고 훈련을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지만 효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NBA 벤치마킹?
 
구단프런트들은 한국 농구의 변화를 위해 NBA를 벤치마킹하고 마케팅과 홍보에 힘쓰지만 선수들은 변화에 무감각하다. 경기장에서 쇼맨십은 전무하고 경기력도 거기서 거기다. 성적을 내야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감독과 코치들은 그런 선수들에게 자신있는 플레이를 요구한다. 프론트, 감독, 선수가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한국 농구가 침체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농구계에 몸담고 있는 농구인 모두에게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 프로농구는 다시 한번 팬들에게 열정어린 사랑을 받는 종목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침체를 거듭하느냐 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최고 인기 스포츠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혼신의 뜀박질을 시작해야 한다”는 김영기 프로농구연맹 신임 총재의 말처럼 한국 농구가 혼신의 힘으로 과거의 영광을 재연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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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