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서울대 총장되는 성낙인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지식한 이미지 서울대 ‘과연 변할까’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서울대학교 신임 총장 최종후보자에 성낙인(64) 법과대학장이 선출됐다. 서울대 총장 선거는 교직원이 뽑는 직선제였지만 2011년 법인화가 되면서 이사회에서 선출하는 간선제로 바뀌었다. 이번 총장은 서울대 첫 간선제 총장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성 후보자는 향후 교육부장관의 임명 제청과 대통령의 임명을 거쳐 7월20일부터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서울대학교는 지난 19일 오후 4시 서울대 관악캠퍼스 호암교수회관에서 2014년도 제6차 이사회를 개최하고, 비공개 투표를 통해 제26대 총장 최종후보자에 성낙인 교수(64)를 선출했다. 2011년 법인화 이후 첫 간선제 총장이 등장하는 만큼, 학내에서 새 총장에 거는 기대와 관심은 여느 때보다 높다. 교수채용 비리, 인재 이탈, 국공립대 통합 논란 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은 서울대를 새 총장이 어떻게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도 초미의 관심사로 꼽힌다.

역대 총장 모두
순혈주의 못깨
 
앞서 총장추천위원회는 5월 초에 공과대학 재료공학부 강태진 교수, 법학전문대학원 법학과 성낙인 교수, 자연과학대학 물리·천문학부 오세정 교수를 3명의 총장후보자로 이사회에 추천하였으며, 이사회는 13일 개최된 제5차 이사회에서 면접을 실시하고, 이날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정관’에 따라 재적이사 과반수를 득표한 성낙인 교수를 최종 총장후보자로 선출했다.
 
성 후보자는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이사회에서 재적 15명 중 과반인 이사 8명의 표를 얻어 최종 후보자로 낙점됐다. 오세정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4표를, 강태진 재료공학부 교수는 3표를 각각 득표했다. 앞서 성 후보자는 대학의 분권형 운영체계 및 대학 자치, 학생상담학점제 도입을, 오세정 교수는 서울대의 공공성 강화와 입시제도를 통한 중·고교 교육의 정상화를, 강태진 교수는 학부교육 강화, 학내 연구진과 외부 산업을 잇는 SNU C&D(Connect & Development) 도입을 주요정책으로 내세웠다. 앞선 평가에서는 오세정 교수가 1위, 강태진 교수와 성 후보자가 공동 2위를 했다.
 

서울대는 지난 2월부터 오연천 총장을 비롯한 교직원과 외부 인사 30명으로 구성된 총장추천위원회를 꾸려 새 총장을 뽑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총장추천위원회는 12명의 예비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소견발표와 정책평가 등을 거쳐 4월 말 성 후보자와 강 교수, 오 교수를 후보자로 압축해 이사회에 추천했다. 성 후보자는 2012년 서울대가 법인화된 이후 처음 간선제로 치러진 선거를 통해 서울대호의 수장을 맡게 됐다. 이전 선거는 서울대 교직원들의 직선제로 치러졌다.
 
서울대는 국립대 체제에서 지난 1991년 이후 직선제 방식의 총장 선출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지난 2011년 법인화 이후 간선제로 선출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성낙인 후보자는 그동안 총장추천위원회가 주최한 소견발표회와 정책평가회에서 “인간성 회복과 인간 존엄이라는 지성인 최고 덕목의 구현을 목표로 선한 인재를 양성하며, 모교의 모든 법인을 아우르는 거버넌스를 재정립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헌법학자인 성 후보자는 국립대학법인 서울대의 자율성과 발전 기반을 조성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헌법이 보장하는 대학자치의 이념을 구현하겠다”며 “단과대학과 대학원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화해 분권형 운영체제를 확립하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서울대 출신 교수 임용을 확대하고 연 500만원의 교수 바우처 시행, 서울대 과밀화 해소를 위해 대운동장 지하개발 등을 제안했다.
 
 
그는 “서울대병원의 법정 유형을 연구병원에서 교육병원으로 바꾸면 연 460억원가량 내는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며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또 국고 출연금을 안정적으로 지급받기 위해 매년 15% 증액이 가능하도록 하는 입법조치 강화 방안도 공약했다. 임기 4년간 발전기금 6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서울대가 2020년에 세계 20위 대학, 2030년에 세계 10위 대학으로 부상하는 ‘2020-20 프로젝트’도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인문계 출신 총장으로서 간과하기 쉬웠던 기초학문 육성과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정책을 내세웠다. 그러다보니 이사회 최종 투표에서도 법적 한계를 보완하면서 기초학문을 육성할 수 있는 후보라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학내에서 성 후보자는 의사결정 속도가 빠르고 의견이 다른 사람들도 포용할 줄 아는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K·S 출신
화려한 경력
 

과거 성 후보자와 대학 내에서 업무를 해 본 경험이 많은 서울대의 한 교수는 “성 교수는 굵직굵직한 선을 긋는 사람이고 세세한 부분은 실무진에 전적으로 맡기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서울대 교수는 “아무리 어려운 사안이 있더라도 시간을 안 끌고 결정하기 때문에 밑에서 일하기 편하다”며 “정·관계 인사들과 두루두루 잘 지낸다는 것도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성 교수에게는 오는 7월 서울대 총장으로 부임하기 전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학내 구성원들의 가장 큰 지지를 받지 못한 후보였기 때문에 성 후보자가 내세운 정책과 비전에 반대하는 학내 세력을 설득하고 포용해 나가는 작업을 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성 교수는 지난 4월 총장추천위원회 1차 평가에선 1위를 차지해 여유 있게 총장예비후보 5명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학내 구성원으로 이뤄진 정책평가단 투표에선 꼴찌에서 두 번째인 4위를 차지했다.
 
직선제서 간선제로 바뀌고 첫 수장
앞으로 당면과제 산적 “전체 개조”
 
성 후보자는 교육부의 임명 제청과 대통령 임명 절차를 기다리고 있지만, 최종후보자가 사실상 차기 총장이 된다. 신임 총장의 임기는 다음달 20일부터 4년이다. 이번 총장 선거는 서울대 법인화 이후 처음 치러지는 간선제 선거라는 데 의의가 있다. 이전 총장 선거는 서울대 교직원이 참여하는 직선제로 치러졌다.
 
최근 선출된 진보교육감의 ‘국공립대 통합’ 공약에 따라 서울대 폐지론이 불거지는 가운데 신임 총장에게는 서울대의 위상을 지켜야 하는 임무도 주어졌다. 성 후보자는 지난 2010년 25대 총장 선거에서 한차례 고배를 마신 적이 있다. 그러나 재수 끝에 서울대 제26대 총장에 올랐다. 
 
성 후보자는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3년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82년 동대학원에서 헌법학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87년 프랑스파리2대학교에서 국내공법(헌법학)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교육개혁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00년 서울대 법대 교무부학장·법학부장을 거쳐 2004년 법대 학장을 지냈다. 2002년 서울대 교수협의회 이사와 2008년 서울대 평의원회 위원도 역임했다.
 
저명한 헌법학자인 성 신임 총장은 2005년 헌법재판소 자문위원과 2006년 한국공법학회 회장을 지냈다. 2009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을 지냈다. 2009년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1995년 김영삼 정부에서 대통령자문교육개혁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0년에는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와 통일부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성 후보자는 2005년 노무현대통령으로부터 대한민국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2년 한국헌법학회와 지난 2월 대한민국법률대상위원회에서는 각각 학술상을 받기도 했다. 그가 학자일 때 쓴 저서로는 <프랑스헌법학과 언론정보법> <선거법론> <한국헌법사> <헌법소송론(공저)> 등이 있다.
 
“국민의 사랑받는 
대학교 만들겠다”
 

서울대 총장 선거의 간선제 전환은 정부가 국립대 총장 직선제의 폐단인 돈선거와 파벌주의 등을 고치기 위해 권고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서울대는 올해 처음으로 문호를 개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도 ‘KS(경기고·서울대)’ 총장 전통이 이어졌다.
 
실제 최종 후보에 오른 3명 모두 ‘KS(경기고·서울대)’ 출신으로 순혈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 역대 서울대 총장 7명 중 5명이 경기고 출신이다. 22대 이기준(서울대 사대부고), 20대 이수성(서울고) 총장만 다른 고등학교를 나왔다.
 
선출 규정을 정하는 문제도 기준이 없다 보니 후보가 원하는 대로 이뤄져 지나치게 복잡한 룰이 탄생한 점이나 흑색선전, 포퓰리즘이 사라지지 않은 점 등도 첫 간선제에서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당면 과제
산적한 서울대
 
김태원 새누리당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서울대 전체교원 2164명 중 1832명(84.7%)이 모교 출신이다. 이는 39개 국립대 평균(31.9%)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지난해 상반기엔 서울대 신규채용 교수 48명 가운데 36명이 서울대 학부 출신이었으며, 서울대 학부 출신 교수 중 36%는 석·박사 학위도 모두 서울대에서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시내 모 대학의 한 교수는 “채용 과정의 폐쇄성은 인맥으로 점철된 서울대 순혈주의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러한 구조의 개혁 없이 서울대의 혁신은 무의미하다”고 꼬집었다.
 

신임 총장이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6·4 지방선거 당시 진보교육감들은 서울대 폐지를 핵심으로 하는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공동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서울대 학생들의 거센 반대가 이어지고 있어 이들을 달래고 서울대의 위상을 지키는 것이 신임 총장의 첫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학생들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신임 총장에게 요구되는 조건으로 ‘강한 리더십’을 꼽았다. 서울대 3학년생 김모씨는 “사교육 걱정 없이 서울대에 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아니라 서울대를 없앨 생각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가”라며 “이번 신임 총장은 과감한 결단력과 판단력으로 과거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국공립대 통합 논란을 확실히 잠재워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 유모씨 역시 “역대 총장들에게는 과감한 리더십이 없었다”며 “법인화 이후 첫 간선제 총장인 만큼 학생들을 위해 제대로 된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앞서 서울대 교수협의회는 역대 총장 7명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번 간선제 이전에 직선제로 선출된 총장들의 공약과 업적을 평가해 ‘성공한 총장’의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정재 서울대 교수협의회장은 지난 4월 5일 “최근 열린 총회에서 교수협의회(교협)가 역대 총장들을 평가해 공과를 제시해야 한다는 건의가 있었다”며 “이를 받아들여 직선제로 선출된 총장들이 제시했던 공약과 업적을 평가할 방침이다. 평가 결과가 나오면 ‘잘한 총장’이나 ‘못한 총장’의 모델이 제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교협은 1990년 이후 임용된 교수들도 많기 때문에 평가 범위를 ‘직선제 이후 선출된 총장’으로 제한할 계획이다. 서울대는 1991년부터 2011년 법인화 이전까지 직선으로 7명의 총장을 선출했다. 역사상 첫 직선 총장이 된 인물은 제19대 총장(1991∼1995년)인 고 김종운 서울대 명예교수다. 교협은 김 전 총장을 비롯해 ▲20대 이수성(1995년 3∼12월) ▲21대 선우중호(1996∼1998년) ▲22대 이기준(1998∼2002년) ▲23대 정운찬(2002∼2006년) ▲24대 이장무(2006∼2010년) ▲25대 오연천(2010∼2014년) 총장에 대한 평가를 추진하기로 했다.

법인화 2기
순항 여부 주목
 
교협은 평가 과정에서 총장들의 공과가 균형있게 드러나도록 할 방침이다. 일례로 23대 총장을 지낸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경우 재직 중 지역균형선발제도를 도입해 서울대의 위상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4년 당시 거세게 불었던 ‘서울대 폐지론’을 비교적 선방했다는 분석도 있다. 반면 대학 입학정원을 줄이는 구조개혁을 단행, 결과적으로 서울대 연구인력 규모를 축소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교협은 올해 안으로 평가문항을 개발, 전임교수 2178명을 대상으로 평가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교협이 평가에 착수할 무렵에는 이미 법인화 이후 첫 간선제 총장이 선출돼 있을 것”이라며 “차기 총장에게 역대 총장들에 대한 서울대 교수사회의 평가 결과를 제시하면 향후 대학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khlee@ilyosisa.co.kr>

 
[성낙인은?]
 
▲경남 창녕
▲경기고 졸업
▲서울대 법학과 학사, 동대학원 석사, 박사 수료
▲프랑스 파리2대학교 법학 박사
▲서울대 법과대학장
▲한국법학교수회장
▲한국공법학회장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장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위원
▲대통령자문교육개혁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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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