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속 보이는 '이상한 입찰' 막전막후

‘떼논 당상’ 짜고 치는 일감 몰아주기

[일요시사=경제팀] 이창근 기자 = 경찰청은 지난달 30일부로 조달청을 통해 ‘경찰관서 교환기 교체 사업’에 대한 입찰공고를 게시한 바 있다. 연간 사업비 80억원 규모로 IT관련 계약으로는 작지 않은 건이다. 이 입찰공고가 게재되자마자 IT업계에서는 “이번에도 낙찰 받는 업체는 정해져 있다”는 볼멘소리가 튀어나오고 있다. 입찰방식과 채점기준이 모두 2011년부터 3년째 99.5%라는 역대 최고의 낙찰율로 수주한 ‘A업체’를 위한 기준이라는 것. 업계에서는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입찰을 왜 붙이나. 차라리 수의계약을 줘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IPT장비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하면 ‘키폰’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장비다. 키폰은 일반전화선을 이용한 통신수단이고, IPT는 인터넷 회선을 기반으로한 통신수단이다. 키폰이 외부로부터 전화를 착신 받아 해당 부서로 연결시키는 기능을 위주로 한다면, IPT는 인터넷이나 전용망과 같은 데이터네트워크에서 음성신호나 영상신호를 실시간으로 전달시키는 기능을 한다.
 
또한 IPT는 온라인이 기반이기 때문에 각종 부가서비스가 지원된다. 예를 들어 외부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 담당자가 자리에 없으면 자동으로 담당자의 휴대폰에 ‘민원인의 전화가 와 있으니 신속히 연결 요망’ 같은 메시지를 띄우거나 바로 휴대폰으로 연결시켜 주는 것도 가능하다. 경찰청 본부에서 전화 한 통으로 전국의 일선 경찰들에게 동시에 지령을 내리고 모니터링까지 할 수 있다. 경찰청 정보화사업의 핵심과제 중 하나다. 
 
해보나 마나 한 입찰
 
이에 경찰청은 2014년도 IPT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공고를 냈다. 그런데 이를 둘러싸고 여기저기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경찰청 정보화장비 관련 정책부서가 제시한 입찰방식과 심사기준이 특정업체가 수주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A업체는 국내 굴지의 전자회사의 통신운영사업부가 분사하여 설립한 회사로 국내 양대 IPT 장비제조사인 삼성전자와 에릭슨LG 진영 중 에릭슨LG 쪽에 속하는 업체다.
 
이미 2012년과 2013년에 IPT 계약을 따낸 바 있는 A업체로서는 이번 년도에도 수주가 가장 유력시되는 업체로 꼽히고 있다. ‘기존 시스템 연동조건의 증설사업’과 ‘신규지방경찰청 교체 및 경찰서 교체사업’이 1개의 사업으로 통합발주 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신규’와 ‘증설’이 분할발주되지 않는 한 ‘이번 역시 해보나 마나 한 입찰’이라는 말이 돌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 진영의 중소협력업체들 입장에서는 이번 입찰 기회가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설사 계약을 따냈다고 해도 그간 A업체가 설치한 에릭슨LG 교환기에 삼성전자 단말기를 장착하려면 프로토콜(테이터 처리체계) 맞춰야 하는데 계약을 뺏긴 업체 측에서 순순히 협력해 줄 턱이 없고, 적절한 협력을 받지 못하면 애써 설치한 교환기를 들어내고 삼성교환기를 새로 투입해야 난맥이 생기기 때문이다.
 
말이 공개입찰이지 삼성전자 진영의 중소업체들은 아예 배제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삼성전자 진영이니, 에릭슨LG 진영이니 하는 것은 중소 IPT 프로그램 개발업체들이 어떤 쪽 교환기의 프로그램을 많이 해봤느냐 하는 것일 뿐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에도 차별 아닌 차별을 받게 된 것이다. 신규와 증설부분을 분리발주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교환기 교체사업 입찰공고에 IPT업계 불만
3년 연속 99.5% 낙찰 받은 특정업체가 예약?
 
분리발주에 대한 주장은 나름 근거가 있다. 작년에 IPT 사업을 분리발주 한 육군의 경우 당초 예산 대비 45%를 절감했고, 절감된 예산을 다른 IT부분에 투입함으로써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한 재원의 효율성을 높인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혈세를 아끼는 방법이라면 경찰청 역시 분리발주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에릭슨LG 진영의 협력사라고 할지라도 A업체가 아닌 다른 중소IPT업체가 낙찰을 받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청이 이번 입찰공고와 함께 밝힌 평가기준에 따르면 전체 배점 100점 가운데 입찰가격평가에 대한 배점은 10점, 기술능력 평가의 배점은 90점이다.
 

동등한 기술수준이라면 입찰가격이 낮은 업체가 유리해야 마땅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A업체가 그간 99.5%라는 놀라운 낙찰율로 계약을 따낸 것만 봐도 가격 문제는 아닌 것이다. 업계에서는 전체 배점 가운데 90점을 차지하는 ‘기술능력 평가’를 주목하고 있다.
 
이 기술능력 평가는 크게 객관적 평가(20점)와 주관적 평가(70점)로 나뉘어 있다. 입찰에 참여한 업체의 재무상태를 반영한 신용등급 및 업체실적, 투입인력의 기술등급과 경력 등이 객관적 평가 항목이고, 각 시스템의 구축방안과 전략, 경찰서간 지방청 집중 통합 서비스 전략, 시스템 구축방안과 설치계획 및 시스템의 안정성과 확장성 등이 주관적 평가 항목이다.
 
주관적 평가 항목 부분에서는 그간 VoIP 분야의 기술이 상향평준화가 됨으로써 상위랭크 업체 간의 격차는 백지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의 통설이다. 따라서 낙찰여부를 가리는 핵심은 객관적 평가 부분. 입찰업체가 재무적으로 얼마나 탄탄한가, 그 동안의 실적이나 핵심 기술인력의 등급과 경력 등과 같은 외형적 요소가 성패를 가르는 요소가 되고 있다.
 
이 부분에서 2~3점만 차이가 나면 아무리 획기적인 기술과 저렴한 가격으로 입찰을 한다 해도 뒤집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가격경쟁력의 배점은 10점에 불과하기도 하고 입찰업체 중 최고가와 최저가를 배제한 평균가격이 낙찰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혜택 업체만 들어와라? 
차라리 수의계약 줘라!”
 
업계에서는 A업체가 최근 3년 이상 계약을 따낸 배경도 바로 이 외형적 경쟁력 때문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 업체는 국내 유명 전자회사에서 분사한 이후에도 모기업 산하에 있는 통신사의 기지국 관련 일감을 맡고 있기 때문에 재무 건전성이 좋을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A업체와 경쟁관계에 있는 업체들이 “대기업 후광 업은 기업만 입찰하란 얘기냐”고 입을 모으게 된 배경도 이부분이다.
 
실적평가 항목에 대한 평가기준을 보면 년간 수주실적이 70억 이상(A등급)이 5점, 50억 규모(B등급)는 4점, 30억 규모(C등급)면 3점인데, IPT 분야에서 중소업체가 70억 정도의 수주실적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대기업의 직간접적인 일감 몰아주기’ 없이는 불가능한 실적이란 게 경쟁업체의 시각이다. 기술인력과 관련한 평가항목 또한 마찬가지다.
 
A업체처럼 IPT관련 엔지니어 외에도 기지국 관련한 엔지니어까지 보유하고 있는 업체는 이력서만 추가로 제출해도 고득점을 얻을 수 있는 구조이다. 업계를 통틀어 객관적 평가에서 만점이 가능한 업체는 A업체뿐이라는 푸념이 퍼지는 배경이다.

가격·기술보다 외형
 
IPT 업계에서는 “최소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신규 물량과 증설물량을 따로 입찰해서 업체 간 경쟁을 통한 예산절감 효과와 더불어 여타 중소기업에게도 기회를 제공해주는 방향으로 개선해 달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경찰청 입찰공고에 앞서 한 IPT 업체의 임원은 경찰청 정보화장비정책관을 찾아가 위와 같은 사항을 요청한 바 있으나 ‘분리발주는 행정력의 낭비’라는 당혹스러운 답만 듣고 돌아왔다. “육군이 분리발주를 통해 절감한 예산이 수십억인데 실무자가 그만한 수고도 못하느냐”고 따져 물었지만 담당자를 설득하진 못한 상태다.
 

한편, 이 사안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이찬열 의원 측은 “분리발주로 인해 예산을 절감한 사례가 있는데도 행정력 낭비 운운하고 있는 경찰공무원의 자세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이라며 “추후 예산안에 경찰청 노력 여부를 반영할 계획”임을 밝히고 있다. 
 
 
<manchoice@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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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