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살인' 층간소음법 보니…

‘삭막한 이웃’ 더 싸움 나게 생겼다

[일요시사=사회팀] 층간소음에 대한 법적 기준이 마련됐다. 정부가 층간소음 문제로 일어나는 각종 갈등을 줄이고 화해나 조정이 합리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층간 소음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내놓은 것이다. 실효성은 지켜봐야하겠지만 일각에서는 이웃 간 고소·고발이 남발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근본적인 대안이 부재한 무책임한 탁상공론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단순한 이웃 간의 갈등이라고 여겼던 층간소음이 범죄로까지 이어져 심각한 사회문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웃 간 말다툼을 넘어 살인과 방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6개월 동안 층간소음 갈등 사례는 3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조사결과 지난해 환경부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층간소음 건수는 총 1271건으로 하루 평균 3~4건이었다. 층간소음 분쟁조정 신청은 2008년 11건, 2009년 9건, 2010년 18건, 2011년 21건, 2012년 16건, 지난해 29건으로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다. 환경부 층간소음 민원센터 자료에 따르면 접수된 민원은 2012년 7021건, 2013년 1만5455건이다. 

불신의 씨앗
층간소음전쟁
 
층간소음의 원인으로 아이들이 뛰거나 걷는 소리가 73%로 가장 많았고, 망치질 소리 4.5%, 가구 옮기는 소리 2.6%, 가전제품 소리 2.3%가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는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다. 전체 가구 중 65% 이상이 공동주택에서 생활한다. 1990년대 이전에는 통상 주택 바닥을 콩자갈로 시공해 방음이 비교적 잘 됐지만, 최근에는 단가가 낮은 벽식구조 아파트가 많아지면서 소음발생 문제가 더 커졌다고 한다. 최근 층간소음으로 인한 불미스러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13일,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3부는 아파트 층간 소음 갈등을 빚어오던 윗층 거주자의 초등학생 아들을 폭행한 박모(48·여)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박씨는 2월 13일 오전 8시께 부산 해운대구 모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왜 시끄럽게 하느냐”면서 A(8)군의 얼굴 등을 때려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혔다.
 
A군은 이날 등교하기 위해 나섰다가 박씨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이같은 폭행을 당한 뒤 대인기피증에 시달려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최근 열린 검찰 시민위원회에서 피의자에게 법정에서 진술할 기회를 보장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약식기소 대신 불구속 기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14일에는 층간소음으로 인한 칼부림이 발생했다. 피해자 허모(45)씨는 이날 집 안에 혼자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반사적으로 아무 의심없이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 앞에는 키 큰 청년이 서 있었다. 알고 보니 아랫집 아들 김모(24)씨였다. 김씨는 격양된 목소리로 허씨에게 “좀 조용히 다니라”며 허씨가 시끄럽다고 큰소리쳤다. 결국 실랑이가 벌어졌고 김씨는 뒤로 돌아서 미리 준비해온 흉기를 꺼내 휘둘렀다. 허씨는 가까스로 재빨리 뒤로 물러났으나 열여덟 바늘을 꿰매야 하는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
 
허씨 주장에 따르면 이 다툼은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됐다. 김씨네 집이 아래층으로 이사를 온 지 한 달 후부터 아랫집 아주머니가 올라와서 “윗집 방과 거실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심해 아들 공부에 지장을 받는다"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씨는 2010년 3월부터 이 아파트에 살면서 소음으로 갈등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김씨네 집이 이사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더군다나 허씨는 혼자였다. 허씨는 계속 “내가 혼자 살고 있고, 거의 대부분 생활을 거실에서 하기 때문에 소음이 날 리가 없다”며 김씨네를 이해시켰다.
 
이후 두 집은 서로 조심하기로 약속했고, 평소보다 조심히 생활했다. 집 안에서 발꿈치를 들고 생활했고 혹시나 소리가 날까봐 늘 노심초사했다. 허씨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소음이 안 나도록 노력했지만 갈등은 계속됐다”고 말했다.
 
조심조심했지만 소음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허씨와 김씨 양측은 결국 관리소장과 함께 소음에 대한 논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허씨는 계속해서 “소음의 원인은 내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관리소장도 소음의 원인이 꼭 바로 윗집은 아닐 수도 있다면서 서로 이해할 것을 권유했다. 결국 소음의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아랫집에 사는 이웃이 윗집에 사는 이웃을 향해 흉기를 휘둘렀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평소 신경쇠약 증세가 있었다.


칼부림·방화 등
심각해지는 범죄
 
지난달 26일, 서울 구로경찰서는 수년간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겪던 윗집 현관문 앞에 불을 지른 장모(34)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는 지난 1월11일 오전 4시24분쯤 서울 구로구 한 아파트에서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 평소 층간소음으로 다툼이 심했던 위층 A(36·여)씨 자택 현관문 앞 유모차에 불을 붙여 현관문을 태우는 등 1450만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입혔다.
 
새벽에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잠에서 깼던 A씨가 불이 타오르는 소리 등을 듣고 관리사무소와 112에 신고, 인명피해는 없었다. 경찰은 CCTV 분석을 통해 장씨 외에 범행 전후에 이동한 사람이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수사해왔다.
 
화해·조정이 우선 구체적인 기준 마련
실효성 논란…고소고발 남발 현상 우려
 
경찰 조사 결과 장씨는 2008년 9월 위층으로 이사온 이모(36·여)씨와 층간소음 문제로 잦은 다툼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당일 장씨는 술에 취해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장씨는 경찰 조사에서 “A씨의 자녀는 3∼10살 4명으로 최근 소음이 부쩍 심했다”고 진술했다. 이씨의 집에는 어린 자녀 4명과 이씨의 남편까지 총 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장씨는 경찰 조사에서 “불을 지를 개연성은 인정하지만 당시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어떻게 불 질렀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진술로 일관하거나 “빠른 사건 마무리를 위해 피해자들과 합의를 보고 싶다” 등 모호한 답변을 반복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평소 담배를 피우던 장씨로부터 범행 의심 물품인 라이터를 압수하고, CCTV 분석과 관리사무소장 등의 참고인 진술, 거짓말 탐지기 분석 등을 통해 혐의를 입증했다”고 전했다.
 
 
지난 1월9일에 일어난 사건은 더 끔찍했다. 서울고법 형사2부는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은 세입자에게 도끼를 휘두르고 집에 불을 질러 2명을 살해한 70대 노인 임모(73)씨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5월 임씨는 자신의 다가구주택 1층에 세들어 사는 A씨 부부에게 도끼를 휘두르며 위협했다. 이들 부부가 집 안 작은방에 샌드백을 설치해 운동하는 소리가 2층에 있는 자신의 집까지 들렸기 때문.
 
결국 이 부부는 샌드백을 치웠지만 임씨는 전세계약이 만료될 때 나가라고 요구했고 A씨 부부는 전세금부터 먼저 받겠다며 집을 비우지 않았다. 이에 앙심을 품은 임씨는 범행 한 달 전부터 휘발유 등을 구비해 방화 계획을 세웠다. 
 

5월 A씨와 층간소음 문제로 또 다시 말다툼을 벌인 임씨는 A씨가 “집주인이면 다냐. 이 XX야”라고 욕설한 것에 분개해 집에 있던 도끼로 A씨와 그의 부인의 팔을 가격했다.
 
이 부부는 황급히 집 안으로 도망쳤으나 도끼로 부부의 집 문을 부수고 들어온 임씨는 거실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폈다. 당시 집 안에서 놀고 있던 부부의 20대 딸과 남자친구는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화상으로 숨지고 말았다.
 
1심 재판부는 “층간소음이라는 사소한 분쟁 때문에 흉기를 휘두른 것도 모자라 주거지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불을 질러 무고한 2명이 생명을 빼앗겼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임씨는 즉시 항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미 범행 전에 휘발유와 라이터를 구입해 범행을 준비한 점, 도끼로 피해자들을 위협하고, 이들이 안방으로 피신하자 거실에 휘발유를 뿌린 후 불을 질러 두 사람이 고귀한 생명을 잃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갈등 없앤다지만…
원천적 해결? 글쎄∼
 

이처럼 층간소음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정부와 시민단체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했다. 이에 정부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국토교통부와 환경부는 ‘소음·진동관리법’과 ‘주택법’ 개정에 따른 하위법령 위임사항을 규정한 ‘공동주택 층간소음기준에 관한 규칙’ 공동부령을 마련하고 지난 11일부터 5월11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제정하는 공동부령은 공동주택에서 입주자의 과도한 생활행위로 인하여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층간소음의 기준을 제시하여 입주자 간의 분쟁을 방지하고, 건전한 공동체 생활여건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이번 제정안의 적용대상은 공동주택으로 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 주택이 해당된다. 층간소음의 구체적인 범위는 아이들이 뛰는 동작, 문·창을 닫거나 두드리는 소음, 헬스기구, 골프연습기 등의 운동기구에서 발생하는 소음 등 벽, 바닥에 직접 충격을 가해 발생하는 직접 충격 소음과 TV, 피아노 등의 악기에서 발생하는 공기전달 소음으로 하고 욕실 등에서 발생하는 급배수 소음은 제외된다. 이는 건설 시에 소음성능이 결정되므로, 입주자의 의지에 따라 소음조절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알아서 해결하도록 권고 수준
"건축법규 손보는 게 먼저" 지적
 
규칙은 1분 등가소음도(Leq) 주간 43dB, 야간 38dB, 최고소음도(Lmax) 주간 57dB, 야간 52dB로 기준치를 설정했다. 1분 등가소음도는 1분 동안 발생한 변동소음을 정상소음의 에너지로 등가해 얻으며, 최고소음도는 충격음이 최대로 발생한 소음을 측정하여 얻는다. 이는 지난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연구용역)을 거쳐 완공된 30개 아파트를 대상으로 실제 충격음을 재현하는 실험을 통해 설정했다.
 
이번에 제정하는 층간소음기준은 입주자가 실내에서 보통으로 걷거나 일상생활 행위를 하는 데는 지장이 없는 기준이며 지속적으로 층간소음을 일으켜 이웃에 피해를 주는 소음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측정기준도 1분 이상 계속적으로 발생되는 소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층간소음기준은 소음에 따른 분쟁발생 시 당사자간이나 아파트관리기구 등에서 화해를 위한 기준으로 이웃 간 조심 하도록 하고자하는 기준이다. 분쟁 발생시 1시간 동안 소음을 측정한다. 층간소음 기준의 최고소음도 기준을 3번 이상 초과하면 기준을 넘긴 것으로 규정하게 된다. 당사자간 화해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공동주택관리분쟁조정위원회나 환경분쟁조정위원회 등 공적기구에서 화해·조정기준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공동주택의 관리에서 발생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상담을 통해 지원하기 위하여 주택관리공단에 위탁하여 ‘우리家 함께 행복지원센터’를 지난 8일 개소해 새로이 만들어 층간소음 상담도 함께 지원 층간소음 상담에 들어갔다.
 
환경부는 공동주택 층간소음 해결을 위한 ‘층간소음 이웃사이서비스(1661-2642)’를 2012년 3월부터 수도권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2013년 9월 5대광역시로, 올해 5월부터는 전국으로 확대하여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서비스’는 공동주택 층간소음과 관련한 상담, 현장진단 및 측정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웃 간 갈등조정을 위해 전문가가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층간소음 분쟁을 해결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아울러 2003년 6월 이래로 층간소음으로 인한 환경분쟁을 조정 및 중재해 온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서도 법적 층간소음기준이 발효됨에 따라 이웃사이서비스를 통해 해결이 어려운 층간소음 관련 분쟁을 중심으로 적극적이고 실효성 있는 분쟁해결을 추진한다.
 
공동주택 층간소음기준은 ‘행복한 생활공간 조성’이라는 국정과제의 구현을 위해 지난해 초부터 국토부·환경부가 협업하여 마련한 것으로, 앞으로도 양 부처가 협력하여 층간소음 예방 및 해결에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
 
근본적인
대안부재
 
국토부·환경부 관계자는 “그동안 층간소음 수준에 대한 법적기준이 없어 이웃 간 갈등 해결이 어려운 점이 있었다”라며 층간소음기준이 마련되면 “이웃 간 갈등 해결 및 국민불편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이번에 제정되는 ‘공동주택 층간소음기준에 관한 규칙’은 2014년 5월1일까지 입법예고되고, 세부 내용은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http://www.law.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국토부와 환경부가 제시한 층간소음 기준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존재한다. 오히려 소음기준을 후퇴시키는 퇴행적 조처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부실시공으로 원천적 책임이 큰 건설사 편을 들어주는 셈이라고 주장한다. 건설사에 면죄부를 줬다는 것이다. 국토부와 환경부가 새로 제시한 기준이 법적 기준으로 확정되면 5dB이 완화되기 때문에 오히려 추가소음을 인정하게 된다.
 
사실상 정부가 층간소음을 시민들에게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거주자가 아닌 시공사 입장에서 만들어졌다는 점과 법적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등의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호주의 소음관리 방식?
직접피해 없어도 이웃 주민 위해 신고
 
호주에는 경찰보다 더 무서운 ‘네이버 워치(Neighbor Watch)’가 있다. 네이버 워치는 이웃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 있다면 본인이 피해를 받지 않았다 해도 나서서 신고하는 호주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가령 밤늦도록 파티를 하거나 소음을 발생시킨다고 판단되면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더라도 마을 주민을 위해 신고한다. 주어진 자유 안에서 자신들이 정한 규을을 철저히 지키며 생활하는 셈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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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