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공포’ 건설업계 현주소

줄줄이 무너지는 악순환 언제까지?

[일요시사=경제1팀] 위기의 건설업계에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벽산건설은 사실상 폐업 절차에 돌입했고 법정관리 및 워크아웃 상태에 있는 기업들 중에도 회생의 기미를 보이는 곳이 없다. 주택시장은 침체기가 길어지고 있고 경영악화라는 '꼬리표' 때문에 신규 수주도 힘들다. 최악의 상황이 지금 당장 들이닥쳐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제2의 벽산건설은 누가될까?

벽산건설이 창사 5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일 벽산건설에 대해 기업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내렸다. 앞서 지난달 14일 벽산건설은 법원에 법정관리 폐지를 신청했다. 중동 아키드컨소시엄의 M&A가 불발된 후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진 데 따른 것이다. 사실상 스스로 기업회생을 포기한 셈이다. 법원이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내림에 따라 벽산건설은 조만간 파산 선고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계속 '빨간불'

재판부는 "벽산건설은 회생계획 실시 이후에도 건설경기 침체와 신용도 하락이 계속돼 매출액이 급감하고 있고 영업이익도 계속 적자를 내고 있다. 회생채권도 변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며 "회사 측이 파산을 결정한 상황이고 이해관계자 또한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벽산건설은 1958년 한국스레트공업으로 출발했다. '블루밍'이라는 아파트 브랜드로 주택사업을 펼쳐 한때 시공능력순위 15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침체로 98년과 2010년에 2차례에 걸쳐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등 위기를 맞았고 2012년 6월에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법정관리 돌입 후 벽산건설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수차례 M&A를 시도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고 시공능력순위 35위 건설사는 폐업에 들어가게 됐다.

벽산건설의 폐업이 확정되면서 워크아웃 및 법정관리 중에 있는 건설사들의 앞날에 '빨간불'이 켜졌다. 시공능력 100위권 내 건설사 가운데 현재 워크아웃 중인 건설사는 8개사, 법정관리는 10개사다. 1년 전보다 7곳이 줄었지만 이는 시공순위가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법정관리 중인 범양건영은 2012년 84위에서 110위로, 신일건업은 83위에서 116위로 하락했다. 워크아웃 중인 삼환까뮤와 중앙건설도 각각 120위와 141위로 100위권을 벗어났다.


벽산건설을 제외하고 쌍용건설(시공능력순위 12), STX건설(40), 극동건설(41), 남광토건(42), 동양건설산업(49), 한일건설(56), LIG건설(59), 남양건설(74), 우림건설(88)이 법정관리 중이다. 금호산업(18)과 경남기업(21), 고려개발(38), 진흥기업(43), 신동아건설(46), 삼호(52), 동일토건(84), 동문건설(92)은 워크아웃 상태다.
 

이들 중 모기업의 지원을 받는 금호산업과 고려개발, 삼호를 제외하고 회생 기미를 보이는 곳은 없다. 대한건설협회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중인 14개 건설사 매출액을 분석한 결과 이들 건설사의 지난해 3·4분기 매출액은 5조7342억원으로 전년 3·4분기보다 5.8% 줄었다. 또한 매출부진과 자산매각 등으로 같은 기간 워크아웃 건설사의 현금성 자산은 7.8% 감소했고, 법정관리 건설사는 41.8% 줄었다.

제2의 벽산건설로 거론되는 기업은 동양건설산업이다. 동양건설산업은 10일까지 상장폐지 요건을 해소하는 입증자료와 사업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해 상장폐지 절차에 들어갔다. 법정관리 중인 쌍용건설은 감사보고서 제출기한인 지난달 31일까지 자본전액잠식 사유를 해소하지 못해 지난 2∼10일 주식 정리매매기간을 거쳐 11일 상장폐지가 확정됐다.

벽산건설 법정관리 폐지…56년 만에 역사 속으로
다음은 어디? 시공순위 10위권 아래 모두 위험

LIG건설도 지난해 5월부터 매각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지난해 8월과 지난달에 진행된 경영권 입찰은 2차례 모두 자금 조달 계획 불투명 등을 이유로 유찰됐고 인수합병을 추진 중인 남광토건과 우림건설 등도 시장에 나와 있는 건설사 매물이 많아 진척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업계가 도미노 위기를 맞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법정관리와 워크아웃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수주산업이 주가 되는 건설사 입장에서 경영악화라는 '꼬리표'가 달린 상태에서 신규 수주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은행이나 법원 역시 신규 사업에 대한 지원을 하기가 쉽지 않아 회사 정상화는 더욱 힘들다.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서둘러 졸업하도록 종용하는 것도 부담이다. 당초 회사 자체가 허약한 상태에서 시장에 다시 나오면 보증서 발급이 어려워 부실 수준은 더 깊어진다.


실제로 경남기업은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했다가 유동성 위기로 1년5개월만인 지난해 10월 말 다시 워크아웃을 신청하기도 했다.

건설업계는 워크아웃 돌입 시 채권단이 당장 눈앞의 이익을 찾는 데 급급하다는 점도 문제라고 보고 있다.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본연의 취지와는 달리 채권단만을 위한 운영이 되고 있다는 것. "워크아웃은 은행 좋은 일 시키기"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중견건설사 한 관계자는 "워크아웃은 기업 회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은행의 채권 확보를 위한 절차일 뿐이다"며 "경영권을 장악한 채권단은 오로지 자신들의 채권 회수에만 열을 올릴 뿐 기업 살리기에는 관심이 없다"고 전했다.

줄도산 우려

전문가들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가 제 기능을 찾으려면 M&A시장이 활성화될 만한 환경 조성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지난달 초 M&A시장 활성화를 위해 국내 사모펀드 지분 인수를 허용키로 했지만 주택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국내 중견건설사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주택시장이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M&A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보루로 M&A를 선택한 중견건설사들에게 부채를 탕감해주는 등의 획기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며 "확실한 대책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건설사 도미노 도산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종해 기자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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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