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추억 사고파는 동묘 벼룩시장 가보니…

홍대 안 부러운 노인들의 놀이터

[일요시사=사회팀]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에 위치한 동묘 벼룩시장은 전국팔도를 돌고 돌아 다시 부활한 다양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시대와 장르를 불문한 온갖 물건을 저렴하게 만날 수 있다는 점에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흔히 ‘노인들의 홍대’로 알려졌지만 요즘엔 젊은이들도 많이 찾는 보물창고다. 동묘 벼룩시장의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동묘 벼룩시장에 가면 세상 온갖 만물과 마주할 수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빠끔히 얼굴을 내밀며 입양을 기다리는 물건들로 즐비하다. 구석구석 향수가 묻어나는 시장으로,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끼기에 적합한 장소다. 이제 동묘 벼룩시장은 단순한 시장이 아닌, 하나의 관광지로 변모하고 있다. 주말 평균 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찾을 정도라고 하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하루종일 북적

연중무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동묘시장은 ‘동묘 벼룩시장’ 혹은 ‘동묘 구제시장’이라고도 불린다. 온갖 잡다한 물건들이 거래되는 특별한 시장이다. 서울 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이 교차하는 동묘역 주변으로 많은 물건들이 거래된다. 평일 250∼300개, 주말 550∼600개 정도의 좌판이 모여 자연스럽게 거리시장을 형성한다. 주말에 찾은 동묘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길거리에는 수북이 쌓인 옷 더미로 가득한 좌판이 즐비했다. 돗자리 위에 깔린 옷들의 가격은 보통 1000원부터 시작했다. ‘사든 말든’. 길거리의 상인들은 판매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가격을 물어볼 때나 대답해주는 정도였다. 그런데 가격을 묻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다.

대부분의 좌판들은 쌓여 있는 옷들을 1000원이나 2000원에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시세’는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형성돼 있었다.


조금 괜찮다 싶은 브랜드의 옷들은 대게 5000원 정도였다. 물론 명품 브랜드의 옷은 예외다. 명품 옷은 옷걸이에 걸어놓고 판매한다. 그렇지만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었다. 이 옷들은 만원짜리 몇 장이면 구매가 가능했다. 새 상품 구입가격을 생각해보니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잘 찾아보면 ‘보물찾기’가 가능한 것. 그렇다고 쉽게 보면 안 된다. 보물찾기가 간단할 리 없다. 수많은 옷들을 헤치고 자신만의 아이템을 찾는다는 건 그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기자도 수십분 만에 겨우 하나를 건졌다.
 

동묘시장 길거리에는 옷 외에도 중고휴대폰, 카세트, 디지털카메라, 헤드폰 등을 판매하는 전자제품 전문 좌판도 있다. 노인들은 좌판에 모여 물건을 탐색하며 상인과 가격을 흥정하고 있었다. 상인들의 착한 ‘끼워 팔기’도 눈에 띄었다. 한 상인은 “카세트 사면 최신 헤드폰 3000원에 줄게요”라며 노인들의 구매욕을 자극하기도 했다.

제품의 성능을 확인하며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노인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단순히 ‘쇼핑’이 아닌 ‘놀이’로 보였다. 실제로 동묘시장엔 소일거리를 나온 노인들이 많다. 괜히 ‘노인들의 홍대’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좌판 근처엔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모습도 보였다. 노인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역사박물관’ 아날로그 감성 자극 시장풍경
단돈 만원이면 옷 한벌…젊은세대도 모여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사방으로 좌판이 펼쳐져 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옷들은 기본이며 잡다한 물건들이 돗자리 위에 있었다. LP판, 시계, 보온병, 글러브, 탄띠, 화장품, 도자기, 밥상, 액자 등 종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옛 상품도 곳곳에 있었다.

굳이 구매를 하지 않더라도 ‘역사박물관’으로서 구경할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시대와 장르를 불문한 물건들이 동묘시장을 지탱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가치 때문일까. 구경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출사’ 나온 이들도 여럿 보였다. 또 요즘엔 과거와 달리 젊은이들도 많이 찾는다. 빈티지를 찾는 이들에겐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특히 패션과나 연극과 학생들에게 이곳은 새로운 쇼핑지다. 패션과 학생들에게 동묘시장은 일종의 배움터다. 과거 스타일을 곱씹으며 패션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것이다. 연극과 학생 및 연극배우에게는 경제적인 소품백화점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연극 소품 등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젊은이들까지 동묘시장을 찾으면서 20∼30대의 또 다른 패션 메카로 떠올랐다. 여기에는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가수 빅뱅의 지드래곤과 개그맨 정형돈이 동묘시장에서 쇼핑한 옷들을 입고 뮤직비디오를 찍은 뒤 젊은 층들이 몰려들었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했던 동묘 동쪽 돌담길 골목은 유난히 인기다. 여기에 아날로그 감성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보태지면서 노인들의 홍대가 신구세대의 집합소가 되고 있다.  또 요즘엔 외국인들의 방문도 잦다.한국의 오래되고 진귀한 물건들을 구경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국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관광코스로 부상했다.

아줌마들과 함께 옷을 파헤치는 외국인들의 모습도 흔히 보인다. 외국인 상인들의 방문도 줄을 잇는다. 동묘시장 한 상인에 따르면 동남아, 아프리카 중개상들은 정기적으로 이곳을 찾아 옷과 가방 등을 찾는다.

추억 담아가는 장소

동묘시장도 쇼핑 방법이 있다. 시장 상인들에 따르면 시시각각 물건이 바뀌고 먼저 집는 사람이 임자기 때문에 개시 시간을 알고 찾는 게 중요하다. 또 황금 할인 시간대도 따로 있다. 오전보다는 오후에 찾는 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또한 시장 인근에 있는 동묘(동관왕묘:보물 제142호)를 산책할 수 있다는 것도 이곳의 매력이다.

이처럼 동묘시장이 입소문을 타면서 방문객이 급증했다. 한동안 지지부진했던 상권이 자연스레 다시 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노점’이라는 태생적 약점은 상인들에게 불안한 요인이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노점상 대부분이 생계형 상인이기 때문에 단속만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질서가 잘 유지된다는 전제 하에 영업을 허용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동묘 벼룩시장 VS 서초 벼룩시장

서초구의 서초토요문화 벼룩시장은 지하철 2·4호선 사당역 11번 출구로 나오면 만날 수 있다. 사당역에서 이수역까지 800m 구간, 방배2동 복개도로에서 벼룩시장이 열린다. 판매자만 10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옛날돈·골동품·필름카메라·LP판 등 희귀한 물건도 많다. 14년째 이어져 오는 서초토요벼룩시장은 단순한 벼룩시장이 아니다. 각종 문화 공연과 체험행사, 전시, 어린이장터 등이 열려 온가족 나들이로도 손색이 없는 하나의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서초토요벼룩시장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매회 판매자로 신청받아 판매금액의 50%를 기부토록 하고 있다. 이는 교육 차원이다. 이곳엔 기부왕도 있다. 30년간 동대문에서 원단 소매업을 했다는 전봉순(81) 할머니는 15년간 매회 5만1000원씩 기부해 왔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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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