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노예 사건으로 본' 2014 신 인신매매 충격보고서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4.02.17 11:5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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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고차 납치 옛말…이제 돈으로 꼬드긴다

[일요시사=사회팀] 최근 불거진 '염전 노예' 사건과 맞물려 인신매매 피해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염전 업주와 직업소개소 직원의 공모로 수년간 노예처럼 일했다는 두 장애인의 눈물겨운 사연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그러나 '인간일 권리'를 노예처럼 사고파는 범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빚을 갚기 위해 강제로 성을 파는 매춘부와 영문도 모른 채 바다로 끌려간 뱃사람, 친부모로부터 버림당한 신생아들은 지금 인신매매의 피해로 몸부림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1년 발표한 '국민인권의식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매매 여성은 '인권이 가장 존중되지 않는 집단'(전체 응답자의 84.7%)으로 꼽혔다. 뒤를 이어 가장 많은 응답을 얻은 집단은 노숙인(81.2%)이었다.

흔히 이들은 인권을 말할 때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대표 후보군으로 지목된다. 사회적 편견은 물론이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어 감금·강제노동·착취로 유인되는 일은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여성과 노숙인
인신매매 타깃

 

무엇보다 이들은 일상 속 다양한 범죄에 노출돼있다. 살인·강간·폭행 등의 강력범죄는 물론이고, 다수의 성매매 여성과 노숙인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인신매매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윤리의 근간을 흔든다는 측면에서 우려의 대상이다.

넓은 범주로 봤을 때 성매매는 인신매매의 한 유형으로 분류된다. 성매매 여성의 상당수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성매매에 동원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소 '일반인'이라고 지칭되는 여성도 포주에게 붙잡혀 성을 제공하면 '성매매 여성'이 된다. 이들은 유흥주점이나 성매매 업소로 팔려간 뒤 수시로 매춘을 강요당한다.

관계 법령상 노숙인은 아니지만 여성 가출청소년 역시 인신매매의 타깃이다. 주거지가 없으며, 경제적 자립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10대들은 악덕 포주의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남성도 인신매매에서 자유롭지 않다. 18세 미만의 가출청소년과 18세 이상의 노숙인 모두 노동을 제공하는 대가로 인신의 자유를 철저히 구속당한다. "재워주고 먹여주겠다"는 유혹에 넘어간 이들은 강제노역의 현장에서 지옥을 경험한다.

이처럼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처지에 놓인 성매매 여성과 노숙인은 돈벌이를 찾는 인신매매단의 주요 표적이다. 또 전자가 인신매매의 결과로 파생한 집단이라면, 후자는 인신매매될 확률이 타 집단보다 높은 것으로 보고된다. 특히 노숙인이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경우라면 범죄의 확률은 더 높아진다.

 

갈수록 지능화
단속의지 있나

 

일반적인 인신매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성을 착취하기 위한 인신매매와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인신매매, 범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돈이다.

지난해 여름 있었던 순천 여대생 납치사건'은 생활고에 시달리던 20대 남성 정모씨가 계획한 인신매매 범죄로 뒤늦게 드러났다.


광주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신현범)는 2013년 12월 정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특수강도 및 영리약취 등의 혐의를 인정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당시 정씨는 인터넷을 통해 만난 동년배 A씨와 여성을 인신매매한 뒤 성매매업소 등에 넘기자고 공모했고, 같은 해 6월5일 전남 순천에서 A씨와 친분이 있던 20대 여성 B씨를 납치해 현금 2300여만원과 승용차 1대를 빼앗은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1700만원 상당의 빚 독촉을 받던 정씨는 인터넷에서 장기매매를 알선해 준다는 A씨를 만나 이 같은 범행을 공모했다. A씨 역시 인신매매의 한 유형인 장기매매 브로커를 자임한 셈이다.

 

매춘부·노숙인·장애인·가출청소년 피해 반복
성착취·노동착취 목적…대부분 조직범죄 성향

 

B씨의 남자친구와 고교 동창이었던 A씨는 남자친구가 이벤트를 해준다고 속여 B씨의 의심을 덜 수 있었다. 또 A씨 등은 B씨와 함께 원룸에서 거주하던 C씨까지 납치하려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B씨에게 휴대전화를 건네며, 통화로 C씨를 불러내라고 했던 것.

다행히 이들의 계획은 C씨의 신고로 비교적 조기에 발각됐으며, B씨 역시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인신매매의 잠재적 위험은 오히려 가까운 곳에 있다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과거 집창촌 등을 중심으로 성매매가 이뤄졌던 시기에는 고액을 미끼로 여성을 유인한 후 업소로 직접 팔아넘기는 수법의 인신매매가 성행했다. 팔려간 여성 중의 상당수는 10대로 추정됐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다시함께상담센터'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동안 성매매 여성을 집중 상담한 내용을 살펴보면 10명 중 4명이 13∼19세 때 처음 성매매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대다수는 가정폭력과 성폭력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즉 가정폭력을 피해 가출했다가 브로커 등을 통해 성매매업소로 유입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여성들은 섬으로 팔려갔다. 불과 5년 전의 사건기록만 봐도 인신매매범들은 납치한 여성을 1인당 400만원을 받고 바닷가 어촌마을로 보냈다. 어촌으로 보내진 여성들은 지역 유흥업소나 티켓다방 등에서 성매매를 강요받았다. 집도 없고, 연고도 없는 이들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하듯 우리 사법당국은 지난해 3월 '인신매매죄'를 형법에 신설했다. 여성이나 미성년자를 납치해 유흥업소 등에 팔아넘기는 범죄에 대해 지금까지 적용했던 약취·유인죄 대신 인신매매죄를 새로이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성 착취나 노동력 착취, 장기 적출 등을 목적으로 하는 인신매매 범죄에 대해서는 최대 15년까지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명시했다. 또 성추행이나 성폭행, 결혼 등의 목적으로 사람을 사고판 경우에는 징역 1∼10년에 처하고, 자녀를 입양하기 위해 돈거래를 한 경우에는 브로커와 양부모 모두 형사 처벌을 받도록 조문을 넣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인신매매법 개정을 추진해온 진영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법리 적용이 어려운 유명무실한 법안이기 때문이다. 인신매매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이 ▲인신매매범들의 구체적인 범행 목적을 증명해야 하며 ▲인신매매한 사람을 제3자에게 팔아넘긴 사실이 있어야 하고 ▲인신매매 당한 사람이 스스로의 의지에 반하여 이동의 자유 등을 구속받거나 착취당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판 인신매매는 피해자가 인신매매범들의 경제적 유인에 넘어가 착취를 미리 인지하거나 인신의 이동(또는 구속)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고 ▲인신매매범들은 "사람을 모집해서 넘길 뿐이지 착취의 목적은 없었다"며 법망을 빠져나갈 공산이 크고 ▲심지어는 납치한 사람을 제3자에게 넘기지 않고 '사유화'하는 일이 잦다.

 

성접대와
금융범죄

 

실제로 성매매는 집창촌이나 유흥업소가 아닌 오피스텔이나 숙박업소 등을 중심으로 활황하고 있다. 온라인이 발달하면서 성매매가 개인 간의 거래로 음성화된 탓이다. 때문에 과거 브로커 역할을 했던 인신매매범들은 이젠 본인이 직접 여성들을 관리하는 포주가 되고 있다.

서울서부지검 형사3부는 지난달 17일 D양 등 여중생 5명을 유인해 강제로 합숙시키고 성접대를 시킨 혐의(공갈 및 감금)로 빌라 임대업자 우모씨와 성접대 알선책 등 4명을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우씨가 "월 100만원을 주겠다"고 여중생 5명을 속여 이들을 경기 안양에 있는 한 아파트에 합숙시키고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건설 투자자를 상대로 한 성접대와 술 시중에 동원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우씨는 여중생을 감금하기 위해 조직폭력배 김모씨 등에게 감시를 맡긴 건 물론 전문 안마사를 불러 성접대 교육까지 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우씨는 투자자 최모씨(사립대 강사) 등을 아파트로 초대해 D양 등에게 성접대를 시키고, 이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투자자를 협박한 혐의도 받고 있다.


그러나 우씨 일당에게 씌워진 혐의 중에선 인신매매를 찾아볼 수 없다. 우씨 등은 여중생을 다른 곳에 팔아넘기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성노예로 전락시켰다. UN협약에 명시된 국제기준상 우씨 등이 저지른 범죄는 엄연한 인신매매다. 하지만 형법상 이들에게는 보다 경미한 죄목이 붙는다. 때문에 인신매매가 현재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한 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부 중·고교생 및 20∼30대 사이에서 퍼지고 있는 인신매매와 관련한 괴담은 범죄가 발생했다는 보고 사례도 드물뿐더러 범행 수법에서 현실과 차이를 보인다. '어두운 밤 젊은 여자가 봉고차에 납치됐다'는 식의 레퍼토리는 그야말로 확인되지 않는 괴담이다.

 

 

인신매매단은 이미 지능화됐다. 불과 50m간격으로 CCTV가 있는 한국에서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납치나 인신매매는 범행이 발각될 위험에 비해 기대 소득이 적다. 지난해 발생한 '노숙인 인신매매' 사건은 달라진 인신매매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사건을 수사한 경기 양평경찰서의 설명을 종합하면 인신매매단 총책 김모씨 등 18명은 각각 인신매수책, 범행대상 물색책, 유인매도책 등으로 역할을 나눴다. 그런데 이들의 타깃은 가족이 있는 일반 시민이 아니었다. 김씨 등은 집요하게 노숙인만을 노렸다.

이들은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서울역과 용산역 등지에서 일자리를 주겠다며 노숙인 11명(지적장애인 2명 포함)을 꾀었다. 이어 이들은 인천 등지 오피스텔과 여관 등으로 노숙인을 데려가 합숙시키면서 휴대전화, 금융계좌, 사업자등록증 등을 개설해 20여억원의 이득을 챙겼다.

또 이들은 납치한 노숙인의 신용등급을 조회한 뒤 등급에 따라 각각 가격(3등급 750만원, 4등급 650만원, 5등급 550만원, 6등급 450만원)을 매겨, 인신매수책 임모씨에게 모두 6100만원을 받고 노숙인을 팔았다.

가출 상태였던 E씨(지적장애 1급)는 지난해 7월 서울역에서 "일자리를 구해주겠다"는 말에 한 남자를 따라 나섰다. E씨는 서울 전농동에 있는 한 폐업 다방으로 끌려가 목욕을 하고 이발을 했다. 증명사진도 찍었다. 그러나 인신매매단이 호의를 베푼 속내는 따로 있었다.

다음날 이들은 E씨와 함께 장안동에 있는 주민센터에서 E씨의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 인근 은행에서 E씨 명의로 된 계좌를 개설했다. 또 이들은 이동통신 대리점에서 휴대전화 4대를 개통했다. 이튿날에는 문래동 주민센터에서 E씨의 인감증명서를 떼었으며, 조회된 신용도를 근거로 650만원의 가격을 매겨 E씨를 또 다른 인신매매단에 팔아넘겼다. E씨를 인수한 조직은 E씨 명의로 된 인감증명서를 이용, 카드할인·신용대출 등으로 모두 5000여만원을 뜯어냈다.

이처럼 신종 인신매매는 피해자의 신체가 범행의 최종 목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 지적장애를 앓고 있거나 일정한 거주지가 없는 '사회적 약자'가 범행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들은 왜 노숙인을 노리는 것일까.

 

브로커 점차 포주화…처벌규정 미흡
사람 따라 등급 매기고 사고팔아

 

시민단체 홈리스행동의 이동현 대표는 "기본적으로 노숙인은 나쁜 일자리(혹은 범죄)로 유인되기 쉬운 동인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명의도용 사건이나 최근 염전 사건 모두 노숙인의 현실적인 욕구를 건드리면서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노숙인은 집이 없거나 배고픈 상태다. 때문에 범죄자들은 '따뜻한 데서 재워줄게' '밥 사줄게' 등의 말로 노숙인의 약한 고리를 파고든다. 그러나 노숙인을 꾀어낸 이들은 곧 본색을 드러낸다. 명의를 빼내 금융범죄에 이용하거나 염전이나 멍텅구리선과 같은 고된 노역장에 돈을 받고 파는 것이다.

특히 노숙인을 상대로 한 인신매매 및 강제노역은 이들의 삶을 통째로 파괴하는 중범죄임에도 사법기관에 의해 적당한 선에서 무마되는 일이 적지 않다.  

이 대표는 "염전이나 무동력선(멍텅구리선) 등에서 노역을 했던 분들을 만나보면 그야말로 노예 형태의 노동을 수개월에서 수년간 강요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며 "그분들의 말만 온전히 믿을 수는 없겠지만 '해양경찰과 지역주민들이 모두 한통속'이라는 말을 자주 하신다"고 말했다.

한 노숙인은 동물사료만도 못한 식사, 불법감금, 폭력, 고된 노역을 견디다 못해 어선에서 스티로폼을 타고 탈출했다. 다행히 인근을 순찰 중이던 해경에 의해 구조됐지만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또 염전에서 노예처럼 부림을 당한 노숙인은 구조 후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린다고 한다.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늘 불안해하며, '잘못했어요'라고 혼잣말을 하는 등 장기간 폭력에 의한 후유증이 남은 것이다.

그러나 치안당국의 조처는 미흡한 실정이다. 이 대표는 "기본적으로 경찰력 강화가 이 같은 연결고리를 모두 끊어낼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노숙인을 명의도용 범죄의 주범으로 조작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냐"고 강조했다.

최근까지 경찰은 노숙인 명의로 금융범죄가 발생하면 노숙인을 공범으로 의심하고 수사를 진행했다. 심한 경우 수사과정에서 피의자가 도피하면 아무 것도 모르는 노숙인이 사건의 주범으로 둔갑하는 일도 있었다는 설명이다. '사회적 약자'인 이들에게 가하는 2차 피해다.

 

예나 지금이나
약자만 당한다

 

전문가들은 "전남 신안에서 일어난 이번 인권유린 사건이 빙산의 일각"이라고 입을 모은다. '제2의 염전 노예', '제3의 섬 노예'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어두운 곳에서 지금도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더불어 인신매매는 사법당국과 치안당국은 물론 정부 각 유관기관의 강력한 의지 없이는 뿌리 뽑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당장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 갓 출산한 신생아를 입양시키겠다는 글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개인 간의 아동 입양은 국내법상 불법이며, 국제법상 인신매매로 정의돼 있다. 그러나 아동을 유기의 수단으로 보는 범죄는 되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검찰이나 경찰뿐만 아니라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 각 기관의 긴밀한 공조가 필요하다. 또 관할 지자치단체의 진정성 있는 대책 마련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시민들이 '사람을 수단이나 노예로 보는' 구시대적 관행과 결별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인신매매는 결코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인신매매법 표류 '국제 권고 무시'

'땜질식 처방' 피해자 놔두고 가해자 처벌만

인신매매 가해자를 처벌하는 형법은 신설됐지만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은 논의조차 중단돼 땜질식 처방이란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김춘진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인신매매처벌등에관한법률안은 앞서 통과된 형법개정안과 병합 심사되지 못한 채 아직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해당 법안은 국제법인 '팔레르모 의정서'에 근거한 제정법이며, 인신매매 피해자들의 인권 보호를 중심으로 한 특별법 성격을 갖는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국내법상 인신매매죄가 적용키 어려웠던 범죄자들에 대해 포괄적인 혐의적용이 가능해 진다.

민주당 김춘진 의원실의 유경선 보좌관은 "국제 기준과 달리 국내는 인신매매의 정의를 너무 협소하게 보는 것이 문제"라며 "매년 미 국무부가 발표하는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등급이 강등될까 두려워 형법개정안만 급하게 처리한 뒤 계류 중인 법안을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팔레르모 의정서에 따르면 인신매매는 범죄의 '행위' '목적' '수단'의 요건을 갖춘 경우 피해자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인신매매로 규정하게 돼있으며, 보다 적극적인 형태의 피해자 보호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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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