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여드름 부가세’ 논란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4.02.17 11: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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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하다…뾰루지로 세수확보?

[일요시사=사회팀] 여드름하면 사춘기가 떠오른다. 여드름은 호르몬 분비가 왕성한 시기에 흔히 볼 수 있는 피부 트러블로 보통 성인이 되면 상태가 완화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드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여드름은 단순한 피부트러블이 아니다. 분명 ‘질환’이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정부가 이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여드름 치료에 ‘부가가치세’를 지불토록 한 것이다.




정부가 이달부터 여드름 치료비의 10%를 부가가치세로 부과키로 해 논란이다. 여드름 치료가 부가가치세 대상에 포함되면서 피부과 의사들과 여드름 때문에 피부과를 찾는 청소년과 20대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탄식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신규세원 발굴 방안의 하나로 꺼낸 카드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신규세원 발굴


만성적인 여드름으로 인해 사회생활에 자신감을 잃은 직장인 A(29·여)씨는 자주 다니는 단골 피부과로부터 문자 한통을 받았다. ‘여드름 부가가치세’ 관련 소식이었다. 처음엔 ‘설마’ 했지만 진짜였다. 사춘기 때부터 지금까지 여드름 치료를 받고 있는 그에게 부가세 10%가 반가울 리 없었다. 지출액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A씨는 여드름 치료를 위해 한 달에 평균 25만을 투자해왔다. 그런데 앞으로는 치료비용의 10%의 세금도 내야한다. 그렇다고 해서 치료를 중단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A씨는 “업무 특성상 외부 미팅이 잦은 편이라 피부에 더욱 민감하다”며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부가세 10%가 큰 금액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꾸준히 치료를 하는 환자로서 부담되는 게 사실이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이제는 정부가 여드름까지 건드려 세금을 충당하는 것 같다”고 불쾌감을 나타냈다.

A씨 같은 만성 여드름 환자는 지속적으로 병원에 가야하기 때문에 치료비가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여드름이 질병이라고 말한다. 반면 정부는 미용이라는 입장이다. 이번 조치는 정부가 세수확대를 위해 피부·성형 분야의 의료부가세 대상을 확대한 데 따른 것이란 지적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1월 ‘부가가치세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피부·성형 의료 부가세 대상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 3일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세법 개정에 따라 대부분의 미용·성형 의료 시술에 부가세를 부과하는 ‘미용·성형 의료용역에 대한 부가가치세 과세 관련 지침’을 관련 단체에 배포했다.

개정안에는 양악 수술, 점, 주근깨, 검버섯 등 색소 질환 치료술과 함께 겨드랑이나 이마 등의 털을 제거하는 제모술, 보톡스, 필러, 레이저 등 미용 목적 피부 관련 시술, 그리고 여드름 치료가 포함됐다. 모두 국민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다.


정부 이달부터 피부과 치료비 10% 부과
미용으로 분류…질환 주장 환자들 불만


이번 개정안에 의료계는 우려를 나타냈다. 개정된 시행령에서 의학적으로 치료가 필요할 수 있는 영역을 정부가 일괄적으로 ‘질환 여부’를 판단해서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의사전문가 단체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의료정책을 강압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포스터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이들은 ▲조세법률주의 원칙 위배 ▲치료목적과 미용목적의 구별기준 모호 ▲건강보험법상 비급여 항목 규정을 과세대상의 기준으로 삼는 것의 문제점 ▲국민 세부담 증가 등을 지적하며 정부에 재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여론 조사 기관 갤럽에 의뢰한 설문조사(16∼69세 503명)에 따르면 63.4%가 이번 부가세 확대 방안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대한의사협회 홍보실 관계자는 “각 해당 병원 의사가 질병 여부를 결정하는 게 맞는데 기재부가 판단한 건 분명 문제”라며 “환자들의 치료비용 상승과 의료서비스 질이 떨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피부과 의사회는 ‘여드름 치료의 대다수는 질병 진료이고 건강보험 재정이 취약해 이 분야까지 아직 보험 혜택을 주지 못해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될 뿐인데 부가세를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이번 개정안을 두고 한 피부과 병원장은 “여드름 치료는 엄연히 질병 치료가 맞다”며 “보험을 적용해도 모자랄 판에 부가세를 만들어 의사들이 장사치로 비춰지게 생겼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부가가치세제과 관계자에 따르면 개정안 시행 이후 관련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도 여드름에 부가세를 매기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는 “비급여 항목은 건강보험 재정과 의료행위 이용 빈도 등을 고려해 정책적으로 결정하는 사안”이라며 “여드름 치료에는 질환 치료 목적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비급여 항목이라고 해서 포괄적으로 부가세 과세 대상에 넣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시행령 개정안 검토 의견서를 냈다.


10만명 발끈


정부는 다만 여드름·탈모 질환을 치료하지 않고 처방전을 써주는 행위에 대해서는 부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치료보단 약을 먹으라고 유도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과거 영국에서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여드름 치료를 받은 환자 중 95%는 흉터가 남는다. 따라서 여드름이 결코 가벼운 질환만이 아니기에, 상태에 따라 부가세 적용이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민건강보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병·의원에서 여드름 진료를 받은 사람은 총 10만3304명이다. 의료기관 방문 건수는 23만여건이다. 과거에 비해 수 만명 늘어난 수치다. 그런데 이 수치는 건강보험이 적용된 여드름 환자 인원으로, 비급여 항목(연고 사용, 얼굴 붉어짐 감소 시술, 피지 제거 시술, 여드름 흉터 방지 치료 등)의 치료를 포함한 여드름 진료 인원은 한해 약 3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성기수술도 부가세


대부분의 미용성형에 대해 부가가치세가 붙는 가운데, 성기확대 수술도 이에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구체적 성형수술의 범위로는 성기확대 수술을 포함해 ▲소음순성형술 ▲유방성형술 ▲엉덩이성형술 ▲복부성형술 ▲배꼽성형술 ▲종아리퇴출술 ▲사지연장술이 있다. 이중 성기확대술은 발기부전 및 불감증 또는 생식기 선천성기형 등의 비뇨생식기 질환 치료, 포경수술, 외상후 재건술, 기능 개선을 위한 시술은 과세 제외되며, 사지연장술은 신장을 늘리기 위해 시행하는 경우로 제한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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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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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