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회원권 시장 본격 빙하기 실태 공개

전국 20곳 법정관리 신청…늘어나는 ‘깡통 골프장’

겨울, 골프장업계엔 삭풍이 불고 있다. 회원권의 가치가 날개 없는 추락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한 골프장이 회원들에게 입회금의 17%만 돌려주겠다는 내용의 회생계획안이 법원의 승인을 받으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하루아침에 80% 이상의 투자금을 날린 회원들이나 회생절차가 개시된 다른 골프장의 회원들, 나아가 일반 골프장 회원들까지 충격과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회원권거래소의 한 애널리스트는 “유통시장이 동맥경화증에 걸렸다”는 말로 회원권 시장의 답답한 현주소를 비유했다.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으면서 회원가의 하락세가 끝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얘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시장에 핵폭풍을 몰고 왔던 리먼사태 이후 벌써 6년째다. 2008년 3월까지는 회원권을 사면 가격이 올라갔지만, 2008년 4월 이후 하락세를 보이며 급기야 회원가가 분양가를 밑도는 상황이 됐다.

회원가 하락세 벌써 6년째

전체 골프회원권 값은 2008년 4월 평균 3억1705억원의 최고점에 달한 후 지난 9월에는 평균 1억2378억원으로 61% 폭락했다. 8억원을 초과하는 초고가 회원권 골프장도 2008년 4월 13개에서 지난 9월에는 1개로 급감했다.
반면 6000만원 미만의 초저가 회원권 수는 2008년 18개에서 지난 9월에는 39개로 급증했다. 회원권 수요가 접대·투기 위주에서 개인·이용가치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초고가 회원가의 거품이 빠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은 “회원권의 투자가치가 사라진 데다 회원제 골프장들의 입회금 반환 문제 등이 겹치면서 회원권 가격의 하락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최근 골프장 업계 등에 따르면 현재 법정관리 중인 골프장은 최근 부도난 동양그룹 계열사인 동양레저가 운영하던 경기 용인의 파인크리크와 강원 삼척의 파인밸리 등 3곳을 포함해 전국에서 20곳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법정관리 신청을 진행 중인 10여 곳과 경영상태가 어려워져 공매나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한 골프장 15곳을 포함하면 잠재적인 부실골프장이 50여 곳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부실골프장이 늘어난 데는 골프장마다 금융기관의 과도한 부채로 인해 정상적인 경영이 어렵거나 자금력 부족으로 회원 입회금 반환을 해줄 여력이 없는 곳이 속출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업주의 부도덕한 경영으로 인해 골프장의 자산보다 금융권이나 회원 입회금 등 부채가 더 많은 이른바 ‘깡통 골프장’도 급증하고 있다.

부실, 회원들이 피해 고스란히 떠안아
시공사 유진기업으로 넘어간 가산노블리제

A골프장의 경우 총공사비 1000억원을 투입, 회원권 분양으로 1200억원을 회수해 공사비용을 갚고, 200억원의 여유자금으로 골프장을 운영해 왔다.
그러나 이 골프장 소유주는 골프장을 담보로 수백억원을 대출받아 신규사업에 손댔다가 금융위기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결국 금융기관의 압류로 공매 처분 절차를 밟고 있다. 비슷한 이유로 B골프장은 회원권 권리를 17%만 보장하는 선에서 제3자 매각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동양그룹 사태로 인해 파인크리크 회원권의 경우 한때 7억원을 호가했지만 현재 시세는 분양금의 30%선에도 매수자가 없어 거래가 올스톱된 상태다.
회원권 전문가들은 “법정관리 골프장들은 절차에 따라 회원들이 일부를 보전받거나 회원자격 유지는 가능하지만 법원에서 청산 결정을 하면 회원들의 채권 보전이나 회원자격 유지는 사실상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골프장 업종은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최고 호황기를 누렸다. 당시 골프장 사업자 중에는 상당수가 골프장 부지를 살 계약금만 갖고 사업허가를 받은 뒤 금융권에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려 공사를 시작했다. 또 공사 진척도가 30%만 넘으면 회원권 분양을 통해 공사비를 충당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골프장 공급이 급격히 늘고, 금융위기로 회원권 분양 시장이 막히자 이들 신규 골프장은 잇따라 도산 위기에 처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10여년 전 일본처럼 부실골프장 양산으로 인해 회원들의 피해가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회원들의 피해를 줄이려면, 골프장들이 과도한 투자로 인해 만들어진 거품을 걷어내고 새 주인을 찾는 게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골프장 양산 인한 피해 점차 현실화

골프장 회원권 시장이 수원지방법원이 내린 결정으로 인해 패닉 상태에 빠졌다. 수원지법은 최근 골프클럽Q안성의 모기업인 (주)태양시티건설이 신청한 회생계획안을 승인하면서 “기존 회원들에게 입회금(회원권 분양대금·총 773억원)의 17%만 돌려주라”고 결정했다. 골프장 주인이 바뀌더라도 회원자격 승계를 의무화한 ‘체육시설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체시법) 제27조와 어긋나는 판단이다.
수원지법은 체시법 27조와 충돌하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통합도산법)을 적용해 “회원권은 단지 담보권 없는 채권으로만 인정될 뿐”이라며 “담보권을 통해 우선순위를 가진 금융회사들이 먼저 회수하고 남은 금액만 돌려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결정은 골프장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사실상 회원들의 권리가 전혀 보장받을 수 없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어서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 올 전망이다.
이 결정이 나온 이후 기업회생절차를 밟지 않는 골프장 회원권 가격까지 폭락하기 시작했다. 수원지법 결정 전 2억9000만원이던 아시아나CC는 13.8%인 4000만원 급락해 2억5000만원으로 떨어졌다.

법정관리 골프장 입회금 17%만 반환 결정
‘동맥경화’ 회원권 시장, 회원가 추락 지속

솔모로CC는 5300만원에서 4600만원으로 13.2%, 기흥CC는 1억3400만원에서 1억1900만원으로 11.2% 빠졌고 블루헤런은 8300만원에서 7500만원으로 9.63% 하락했다.
2010년 4월 개장한 골프클럽Q안성은 회원권 분양 실패로 자금난에 허덕이다 지난해 3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올 2월 법원의 M&A 허가가 났고 4월 골프존카운티-케이스톤파트너스 컨소시엄을 인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중인 경기 포천 가산노블리제CC(27홀)가 시공사이자 주채권자인 유진기업에 인수되면서 입회금을 출자전환해 주주가 된 가산노블리제 회원들이 결국 빈손으로 남게 됐다.
유진기업은 최근 자회사인 유진로텍이 골프장 용도로 가산노블리제의 땅과 건물을 629억원(매매 비용 포함)에 사들였다고 공시했다. 유진기업이 밀린 공사대금을 회수하기 위해 골프장 땅과 건물을 공매에 부친 뒤 직접 사들이면서 가산노블리제 회원들은 ‘껍데기 회사’의 주주로 전락해 버렸다.

자산 몽땅 날리고‘껍데기 회사’ 전락

회원들이 입회금을 통째로 날린 사상 첫 사례다. 가산노블리제CC 회원들은 최근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입회금의 17%만 돌려받게 된 골프클럽Q안성 회원들보다 더 큰 손실을 입은 셈이다. 가산노블리제 회원(현 주주) 507명은 입회보증금(4억~7억5000만원)을 출자전환해 직접 경영으로 정상화를 모색했으나 자산을 몽땅 잃어버리고 한 푼도 건지지 못하게 됐다.
입회금을 반환받지 못하거나 회원권이 휴지 조각으로 변하는 사태가 잇따라 발생함에 따라 1990년부터 거래를 시작한 국내 골프회원권 시장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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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