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모 경계령' 내린 재계 '대물림 비상' 내막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4.02.05 1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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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가 든 회장댁 ‘상속법’에 발동동

[일요시사=경제1팀] 뒤늦게 새 장가든 재벌 회장님들이 남몰래 속앓이 중이다. 배우자 중심으로 바뀌는 상속법 개정 탓에 머릿속 셈이 복잡해지고 있는 것. 홀로 남을 배우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라지만, 기존 자녀들의 반발로 가족간 분쟁을 야기할 가능성이 커졌다. 심한 경우, 오너일가 성씨가 배우자 성씨로 바뀌어 버리는 막장드라마 속 이야기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내 아버지의 재산을 재혼한 새 어머니가 거의 가져가게 된다면?’ 자녀보다 배우자를 우선시 하는 상속법 개정안을 두고 말들이 많다. 때 아닌 구설에 오른 주인공은 최근 새 장가에든 재벌가 회장님들. 이 법안이 통과되면 향후 나이 어린 새 아내와 기존 자녀들 사이에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져서다.


무자식 상팔자?
상속의 올가미


최근 법무부가 상속과 관련된 민법을 24년 만에 손질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배우자가 사망하면서 남긴 재산 중 50%는 남은 배우자에게 먼저 배분하고, 해당 선취분에 대해선 상속세나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자녀들은 나머지 50%를 상속비율에 따라 나눠 받는다.

예를 들어 10억원의 상속재산을 두고 배우자와 자녀 2명이 있을 경우 재산 상속 시 현재는 배우자가 42%, 자녀가 각각 28%를 받았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배우자가 50%를 먼저 선취하고 나머지를 상속분에 따라 나누어 배우자 71%, 자녀들 각각 14%씩 받게 된다.

즉, 배우자는 7억1400만원을 받고, 자녀 2명은 각각 1억4300만원을 물려받게 된다. 배우자에게 50%을 먼저 배정하고, 나머지 50%에서도 자녀보다 1.5배를 더 가져간다.


법무부는 고령화 시대에 배우자의 노후 생활비용 증가 등의 사회적 문제를 막기 위해 배우자의 우선 상속분을 규정하고 나머지 재산을 다시 상속인끼리 나누는 상속법 개정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물론 배우자라고 해서 무조건 재산의 절반을 주는 건 아니다. 혼인 이후 증가한 재산이 그 대상이 되고, 증액에 대한 기여도를 따질 수 있다. 결혼 후 재산에 큰 변화가 없다면 문제될 게 없지만, 기업 경영이나 승계와 관련 돼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장남서 배우자 중심…상속법 개정 후폭풍
잇단 회장님 재혼 “경영권 분쟁 조짐도” 


과거에는 상속인인 오너가 사망하면 큰아들이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상속 받았었다. 배우자와 장남, 장남이 아닌 아들, 결혼하지 않은 딸, 결혼한 딸의 법정 분배 비율이 0.5대 1.5대 1대 0.5대 0.25였다.

두 번째 개정에서는 호주제도의 변화로 장남에 대한 가산 규정이 사라지고 딸도 아들과 같은 비율을 받게 됐다. 그 결과 현재 배우자, 장남, 장남이 아닌 아들, 결혼하지 않은 딸, 결혼한 딸의 상속비율이 1.5대 1대 1대 1대 1이 된 것이다.


기여도 따라
선취분 조정?


홀로 남게 되는 배우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라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재혼 가정의 경우 가족간 분쟁 가능성이 더 크다.


한 가사 전문 변호사는 “현재도 재혼과정에서 분쟁이 많다. 지금 법으로는 겨우 50%를 더 받는 것인데도 새엄마가 받는 것은 무효라고 주장하며 자녀들이 모든 재산을 받겠다고 하는 분쟁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개정이 돼서 50%를 더 줄 경우 이런 분쟁이 훨씬 더 많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것을 우려한 단서조항이 있긴 하다. 개정안은 생존 배우자의 선취분을 50%로 못 박고, 배우자의 혼인기간, 재혼 또는 별거한 기간, 별거 사유 등을 참작해 법원이 선취분을 감액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정상적 결혼 생활을 하면서 재산을 일군 경우, 재산형성 기여도를 따질 필요도 없이 배우자에게 50%가 돌아가지만, 그렇지 않고 재혼을 했거나 이혼 또는 별거 등의 경우에는 재산형성 기여분을 따져야 한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50%를 먼저 주고 나머지 비율대로 나누되 새 부인과 자식들간 이견이 있는 경우 먼저 떼어준 50% 비율을 조정하겠다는 것인데, 배우자의 재산형성 기여도를 어느 정도로 어떻게 산정할 것이냐를 놓고 법적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재계 오너 중에는 부인을 잃고 외롭게 지내다 새 장가를 든 회장님들이 적지 않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지난해 11월 40대 초반 여성과 재혼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 회장이 62세인 점을 감안하면 두 사람의 나이는 20세 가까이 차이가 나는 셈이다.

4년 전 부인 고 정혜원씨와 사별한 신 회장은 슬하에 두 아들 중하·중현씨를 두고 있다. 현재 교보생명의 최대주주는 지분 33.8%를 보유한 신 회장이며, 두 아들이 보유한 지분은 없다.

올해 팔순을 맞은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도 지난해 4월 60대 여성과 재혼했다. 김 회장은 동원그룹 장학회를 꾸리던 고 조덕희씨와 2012년 3월 사별한 뒤, 그해 말 새 부인을 처음 만났고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했다는 후문이다.

현재 동원그룹은 2세 경영권 승계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한 상태다. 동원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금융 부문은 장남이, 그룹의 모태인 식품 부문은 차남이 맡아 각각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된다. 김 회장은 자녀들을 생산 현장과 어선 등에서 근무를 시키며 바닥부터 엄격히 현장 교육을 시켜왔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머릿속 복잡한
신혼 회장님들


박용현 전 두산그룹 회장도 새장가를 갔다. 박 전 회장은 서울대병원장 시절인 2003년 지병을 앓고 있던 고 엄명자씨가 사망한 뒤 혼자 지내다 2009년 동문 후배인 여의사 윤보영씨와 비밀리에 결혼했다.

이들은 서울대 의대 동창회에서 처음 알게 된 이후 20살 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본격적인 교제를 시작해 서울 근교에서 가족과 친지들만 모인 가운데 조촐히 결혼식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1998년 17세 연하의 차경숙씨와 재혼했다. 전 부인 고 강영혜씨는 1996년 구 회장이 그룹 회장에 오른 직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둘 사이에 태어난 자녀가 바로 ‘LG 황태자’ 구광모 LG전자 부장이다. 구 부장과 차씨는 불과 13세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재혼 땐 재산형성 기여도 따라 50% 감액
자산승계 미완 기업 갈등 가능성 높아져


이혼 후 재혼한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1995년 톱스타 고현정씨와 결혼했지만 2003년 갈라섰다. 이후 경영에만 몰두하다 음악회를 다니는 모임을 통해 알게 된 플루티스트 한지희씨와 2011년 재혼해 화제를 낳았다.

정 사장은 고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뒀고, 지난해 말 한씨와 사이에 이란성 쌍둥이를 출산하면서 총 2남 2녀의 자녀를 두게됐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도 2004년 정의정씨와 이혼하고 2007년 ‘천재소녀’ 윤송이씨와 극비리에 재혼했다.

관련 기업들은 “(재혼한 회장들의 상속 분쟁에 대해)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반응이지만, 법조인들은 상속세 개정안이 통과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개정법이 시행되면 재혼 회장들을 중심으로 법적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법조계 인사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모친이 현재보다 지분을 많은 지분을 가져갈 가능성이 커지는 데 반발이 없을 수가 없을 것”이라며 “특히 아직 자산승계가 진행되지 않은 기업의 경우에는 더 큰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 승계
복잡해져


상속법이 정부안대로 개정될 경우 자산승계율이 낮은 그룹들은 더욱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오너가 고령인 경우에는 대응할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더욱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기업정보회사 CEO스코어에 따르면 그룹 총수의 나이가 60세 이상인 기업 중 태광과 동국제강, 부영 등은 자산승계율이 10% 미만이고, 교보생명과 이랜드, 현대중공업은 자산승계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만약 자산승계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오너가 사망하면 자산의 50%가 무조건 배우자의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부모자식 간에 문제가 생기면 배우자가 야심을 갖고 후계 구도에 손을 뻗칠 수 있다.

부부 관계가 좋고 부모자식 간에 문제가 없으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배우자가 야심을 갖고 후계구도에 손을 뻗칠 수 있다.

또 배우자가 최대주주 자격으로 경영일선에 나설 수도 있고, 상속받은 지분을 특정 자녀에게 몰아주는 형태로 후계자를 직접 고를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오너의 성이 바뀔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개정된 상속법은 모든 부분에서 후계 구도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며 “이는 향후에 그룹 임직원들도 전혀 생각지 못한 불안요소이자, 기업의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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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