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출소자 보복범죄 백태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4.01.20 14: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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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때문에 잡혔다" 잔인한 복수

[일요시사=사회팀] 최모(38·여)씨는 2012년 12월 자신의 집에서 살해됐다. 범인은 이제 갓 살인죄로 복역한 후 출소한 성모(61)씨. 그는 지난 2004년 법정에서 자신의 범행사실을 진술한 최씨를 찾아가 끔찍한 보복을 저질렀다. 성씨뿐만이 아니다. 성씨처럼 복수를 꿈꾸는 출소자들의 보복범죄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 마지막 날인 12월31일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에서는 한 개인사찰 주지가 폭행 등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때리다 살인도

이날 오전 6시30분께 종교인 정모(49)씨는 자신의 고종사촌인 윤모(48·여)씨의 집에 들어가 윤씨의 남편 서모(51)씨의 목에 흉기를 들이대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정씨는 윤씨의 신고로 경찰관이 출동하자 현관문을 열어주던 윤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정씨가 윤씨 등을 찾아온 이유가 섬뜩했다. 앞서 정씨는 지난 2012년에도 윤씨의 신고로 처벌을 받았던 것이다. 같은 해 10월 정씨는 윤씨의 집에서 고모(85)와 만나 자신의 채무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상의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말다툼이 생겼고, 화가 난 정씨는 집 안에 있던 집기류를 마구 부쉈다.

정씨의 행동과 언행이 점차 난폭해지자 참다못한 윤씨가 나섰다. 정씨를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입건된 정씨는 법원에서 재물손괴 및 협박죄가 인정돼 35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후 정씨의 범행은 더 고약해졌다.

경찰조사가 시작된 이래로 정씨는 지난해 말까지 '죽여버리겠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와 칼을 가는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 등을 모두 27차례에 걸쳐 윤씨에게 전송했다. 윤씨 입장에서는 친척에게 지속적인 협박을 당해온 것이다.

하지만 정씨는 오히려 "사과를 하라고 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아 집 앞에서 기다렸다"는 등의 진술로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경찰은 피해자 보호와 재범을 우려해 정씨를 구속했다. 지난 2일 경기 의왕경찰서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 등의 혐의로 정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자신을 신고하거나 재판 과정에서 불리한 증언을 했다는 이유로 신고자(혹은 증인)에게 앙갚음을 하는 보복 범죄가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학용 의원이 지난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보복범죄 발생 건수는 모두 310건으로 2011년 162건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보복범죄 혐의로 정식 재판이 청구된 인원은 2010년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 정식 재판은 상대적으로 죄가 무겁거나 법리적인 다툼의 여지가 있을 때 청구된다. 2010년 110명이었던 피의자는 2011년 118명, 2012년 189명을 기록했다.

김 의원은 "6400여명에 달하는 보복범죄 우려사범이 있지만 실제 관리되고 있는 인원은 235명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의 신변보호를 위해 마련된 안전가옥 역시 전국에서 12곳만 운영되고 있다. 넘치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대검찰청은 지난해 말 보복범죄 피해를 막기 위해 신고자나 피해자의 신원을 알 수 없도록 가짜 이름으로 조서를 꾸미는 가명조서 제도를 적극 활용하라고 일선에 지침을 내렸다.

경찰 역시 신고자 신변보호를 골자로 하는 지침을 일선에 하달했다. 현재 경찰은 피해자와의 핫라인 구축을 위해 비상호출기를 무상으로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 수사기관이 도입한 가명조서 제도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로 불린다. 피고인들이 법정자료를 요청하면 증인이나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언제든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경찰이 관리하고 있는 피해자 핫라인은 비상호출기의 운영 여부조차 모르는 피해자가 훨씬 많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때문에 보복범죄의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들은 오늘도 두려움에 떨고 있다. 

법정서 범행사실 진술한 증인 찾아가 해코지
협박에 폭행·납치도…신고자 신변보호 미흡

지난달 사채업자 김모(58)씨는 자신을 신고한 여성들을 감금하고 전기충격기로 고문해 충격을 안겼다.

그는 같은 달 10일 주부 강모(37)씨와 최모(35)씨를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자택으로 불러 족쇄와 수갑을 채우고 고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지난 2010년 강씨 등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이자가 밀렸다며 이들을 감금·폭행한 전력이 있다. 이 사건으로 김씨는 법원에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고, 2012년 출소했다.

출소한 김씨는 "(자신이) 췌장암에 걸린 시한부 인생"이라며 "죽기 전에 악감정을 풀자"는 말로 강씨 등을 유인했다. 그러나 피해자들과 만난 김씨는 이내 본색을 드러냈다. 다이너마이트와 수류탄, 권총, 칼로 위협하고 직접 만든 전기충격기로 고문을 가했다.

앞서 강씨 등은 휴대전화를 이용해 112를 눌렀지만 이를 눈치 챈 김씨는 전원을 꺼버렸다.

두 여성은 빌린 돈을 갚겠다는 각서를 쓰고 감금당한 지 5시간 만에 풀려났다. 때마침 인근 우범지역을 순찰하던 경찰은 혼비백산한 두 여성을 만나 김씨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었다. 경찰에 붙잡힌 김씨는 "돈도 받지 못했는데 감옥까지 가는 바람에 억울했다"고 진술했다. 이 같은 보복범죄는 특성상 범죄수법이 잔인하거나 재범의 확률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2013년 6월의 어느 날 한 40대 남성은 자신을 신고했던 내연녀를 4년여 만에 찾아가 얼굴 등을 수차례 때리고 담뱃불로 전신 20여 곳을 지지는 악행을 저질렀다.

같은 해 11월에는 주폭으로 구속됐던 50대 남성이 1년1개월 만에 출소한 뒤 자신을 신고한 영업장을 찾아가 빈 병을 던지고 유리창을 깨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 당일 이 50대 남성은 영업장 인근에 있던 한 시민을 이유 없이 폭행한 혐의를 함께 받았다. 전형적인 보복범죄다. 
 
언젠간 풀려난다

전문가들은 수감자를 상대로 벌이는 교화만큼이나 신고자와 피해자의 신변을 보호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형량이 크건 작건 이 같은 범죄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이유는 수사기관이 적극적인 초동대응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죄 있는 사람은 복수를 꿈꾸고, 수사기관은 머뭇거리는 동안 또 다른 잠재적인 피해자는 오늘도 잠자리를 뒤척인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보복편지' 시달리는 사연

"난 평생 감옥에 있지 않는다"

수감 중인 상황에서도 보복범죄는 멈추지 않는다. 강도·강간죄로 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모(48)씨는 최근 피해자(34)에게 보복·협박성 편지를 모두 2차례에 걸쳐 보냈다.

그는 첫 번째 편지에서 "감옥에서 저주하겠다. 난 평생 감옥에 있지 않는다. 꼭 살아나가 얽히고설킨 원한의 실타래를 풀겠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살얼음판을 걸어가듯 살아야 하겠지"라는 내용을 적어 피해자에게 보냈다.

놀란 피해자는 김씨를 수사기관에 신고했고, 김씨는 보복범죄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6월의 형량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그러자 김씨는 앙심을 품고 두 번째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 붉은색 형광펜으로 "덕분에 추가 징역 아주 잘 받았다. 보복 협박했다는 죄목으로…"라며 피해자를 압박했다.

피해자는 편지를 받은 후 문에 잠금장치를 추가로 설치하고 몽둥이를 옆에 두고서 잠자리에 들었으며 이사와 개명까지 준비할 정도로 불안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사건을 맡은 대구지검 상주지청은 김씨가 "고맙다"는 말로 협박했다고 보고 지난달 김씨를 법정에 세웠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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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