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보험사 리베이트 실태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4.01.07 14: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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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지는 장사 없다 '은밀한 뒷거래'

[일요시사=경제1팀] 삼성·교보생명에 이어 한화생명 소속 설계사의 리베이트 정황이 포착됐다. 대형 보험 대리점들의 불법 영업 행위도 무더기로 적발됐다. 보험업계의 불법 관행 방지를 위해 당국의 조처가 강화되고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일선 보험설계사들도 불법영업 형태를 뿌리 뽑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12월20일 '보험왕'에 대한 보험업계의 자체 전수조사를 지시했다. 최근 잇따라 벌어지고 있는 보험업계 리베이트 사건에 대한 조치다. 금융당국은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겠다고 나섰지만 해결은 쉽지 않다.

보험설계사의 꿈, '보험왕'은 매년 최고 실적을 올린 보험설계사에게 주어지는 타이틀이다.

현재 국내 보험설계사는 40여만명. 보험사에 소속된 설계사가 23만여명, 보험대리점 소속 설계사가 16만여명이다. 이중 1억원 이상 고액 연봉 보험설계사는 1만여명 정도다. 이들 중 보험왕에는 회사당 1명 정도가 오른다. 전국 보험왕이 40여명 정도라는 얘기다.

걸어다니는 CEO
전국 보험왕 40명

이들의 평균연령은 50대 초반이며 여성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대부분 2회 연속 보험왕 타이틀을 갖고 있으며 매출은 평균 70억∼100억원대다.


한 번 보험왕에 오르면 뒤 따라오는 혜택은 어마어마하다. 사무실, 고급 자동차, 기사 등이 제공되며 한 해 평균 10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다. 각종 매체와 강연에 초청을 받는 것은 물론 책까지 출간한다. 보험왕 타이틀을 영업에 활용, 전보다 높은 수입을 보장하기도 한다. 걸어 다니는 CEO라고 불릴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보험왕들은 많은 유혹에 노출된다. 실적을 유지하거나 높이기 위해 무리한 영업활동에 나서게 된다. 리베이트다. 최근 설계사와 보험 대리점들의 리베이트 혐의가 잇따라 적발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난 12월3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월부터 약 3주간에 걸쳐 실시한 한화생명에 대한 종합검사 과정에서 일부 설계사의 리베이트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생명의 한 설계사는 계약자가 초회보험료를 내는 날 보험가입에 따른 감사의 표시로 같은 금액을 계약자에게 계좌 이체하는 등의 수법으로 금품을 제공했다. 이 설계사가 그동안 저지른 리베이트 규모는 모두 1000만원 수준이다.

앞서 금감원은 보험왕 출신인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의 소속 설계사 2명을 같은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이들 보험왕은 인쇄업체 대표 A씨의 자금세탁을 도왔다. 비자금을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의 각종 비과세 보험 상품에 분산, 은닉하고 만기가 도래하면 다른 보험 상품에 가입하는 식으로 자금을 관리하는 방법을 썼다. 비과세 보험 상품은 세무당국에 통보가 되지 않아 대규모 불법자금의 세탁경로로 악용되기도 한다.

이들은 거액 보험 가입 대가로 A씨의 부인에게 수억대의 리베이트를 건넸다. 특히 삼성생명 보험왕은 A씨의 해약보험금 60억원을 개인용도로 사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대형 생보 3사 잇단 불법영업 포착
대리점도 '거액수수료' 영업 발칵


금감원은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의 내부통제시스템을 집중 점검하고 경영 유의 조처를 내렸다.

같은 달 10일에는 청주에서 보험왕 출신 설계사가 고이자를 미끼로 투자를 권유해 수십명으로부터 수십억원을 모집해 잠적하는 일이 벌어져 금감원이 사실 관계 확인에 나섰다.

이 보험왕은 3년 전부터 보험에 가입한 고객에게 접근해 돈을 빌려주면 높은 이자를 주겠다고 속여 투자를 권유했다. 한 고객은 별다른 의심 없이 1000만원을 맡겼고 10일 간격으로 30만∼40만원의 높은 이자를 받았다. 이후 이 고객은 투자금액을 1억5000만원까지 늘렸으나 이 보험왕이 연락을 끊고 잠적해 이자는커녕 원금조차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꼼수로 당한 피해자만 수십 명, 피해액은 35억원에 달한다.

앞서 2011년엔 알리안츠생명 보험왕이 고수익을 미끼로 60억원 상당의 투자금을 모집한 뒤 잠적했다. 그는 투자받은 돈을 이익금조로 나눠주며 고객들을 안심시키다가 돌연 종적을 감췄다.

2009년에는 동양생명 보험왕이 출시되지 않은 상품을 고객들에게 권유해 가짜 서류에 서명을 받아내고 고객들의 돈은 15년짜리 장기 보험 여러 개에 나눠 투입하는 '돌려막기' 방법을 썼다.

손해보험사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동부화재의 모 직원은 2009년 1월부터 2011년 8월까지 보험대리점에 지급한 모집 수수료 4200만원 중 4100만원을 본인 계좌로 돌려받아 보험 계약자에게 리베이트로 제공했다가 적발됐다.

메리츠화재 모 직원은 2010년부터 2011년에 모 회사와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3100만원을 리베이트로 건넸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LIG손해보험의 보험왕 출신 설계사는 고객 동의서를 위조해 명의를 변경한 다음 보험을 해약하고 보험금을 빼내다 덜미를 잡혔다. 이 설계사는 투자금 명목으로 고객에게 돈을 빌렸고 고객 이름으로 대출받는 등의 방식으로 총 24억원을 횡령하기도 했다.

리베이트 규모
생보사>손보사

회사 차원의 불법 영업도 이뤄졌다. 지난 10월 KB생명이 당국의 철퇴를 맞았다. 금감원은 지난 2012년 9월26일부터 10월26일 기간 중 KB생명에 대한 부문검사를 실시한 결과 '보험모집에 관한 수수료 지급 금지의무 위반' 및 '보험계약 체결 또는 모집에 관한 금지행위 위반' 사항을 적발했다. 이와 관련해 KB생명에 대해 기관주의 조치와 함께 과징금 5500만원을 부과했으며 임직원 3명(퇴직자 2명 포함)에 대해 '감봉' 등 문책 조치했다.


B카드는 KB생명이 보험영업에 활용할 신규 회원 발굴 등을 위해 공동프로모션을 실시해 보험가입 가능성이 높은 회원들의 주요 정보를 KB생명에 제공했다. KB생명의 보험 상품 중 어린이보험, 상해보험 등 특정 보험 상품의 보험 모집이 용이하도록 B카드사 상품 중 특화고객 대상카드의 회원정보를 발굴·제공한 것이다.

당국 칼 빼들어
뿌리 뽑긴 어렵다


KB생명은 B카드사로부터 제공받은 고객정보를 활동해 2011년 7월1일부터 2012년 8월31일 기간 중 총 6만592건의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그 실적과 연동해 발생한 모집수수료 94억7400만원을 보험모집에 대한 대가로 B카드에 지급했다.

신한생명은 은행들에 현금성 리베이트를 지급하고 방카슈랑스 영업을 한 점 때문에 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금감원은 신한생명에 대한 종합검사 결과 보험대리점 관련 사업비 집행 업무가 철저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기관주의 조치를 내렸다. 전직 부사장 등 일부 임직원 13명에 대해서는 감봉, 견책, 주의(상당) 조치를 내렸다.

금감원에 따르면 신한생명은 2011년 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특정 쇼핑업체에서 11억8100만원 상당의 물품 구입비를 불투명하게 처리했다. 9억9600만원은 증빙서류를 보관하지 않았고 1억8500만원은 거래처 대표에게 상품권을 되돌려 받아 12개 금융회사 보험대리점에 영업성 경비로 쓴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대리점들의 불법 영업도 잇따랐다. 보험설계사가 아닌 일반인으로부터 고객을 소개받고 거액의 수수료를 지급한 대리점들도 당국에 무더기로 적발되면서 보험업계의 불법 영업으로 인한 논란이 신년 벽두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엠에이치라이프, 아이앤에스포, 메가, 에프엠피파트너즈, 비비본부 보험대리점에 대해 보험 모집 수수료를 부당 지급한 혐의 등으로 최대 5000만원의 과태료에 생명보험 모집 업무 60일 정지 등 중징계를 내렸다.

엠에이치라이프는 2011년 8월∼2012년 1월에 모 생명보험사의 저축보험에 가입하려는 고객을 소개받는 대가로 일반인에게 2400만원의 수수료를 건넸으며 아이앤스포? 2011년 3월∼8월에 역시 일반인 8명에게 저축보험 가입 희망 고객을 소개받고 2500만원을 제공했다. 비비본부 또한 일반인 5명에게 저축보험 고객을 소개받은 대가로 8100만원을 지급했다.


메가 보험대리점 소속 설계사는 2011년 10월∼2012년 1월에 276건의 보험계약을 모집하면서 이를 타 대리점 소속 보험설계사가 모집한 것으로 처리하고 모집 수수료 8300만원을 챙겼다가 적발됐다. 에프엠피파트너즈도 2011년 3월∼10월에 47건의 보험계약을 모집하면서 다름 보험대리점 설계사들이 모집한 것처럼 꾸며 1800만원의 모집 수수료를 받았다. 에이치엠엘 소속 보험설계사도 유사한 행위로 모집수수료 4100만원을 수수했다.

지난해 말에도 5000명 이상의 설계사를 거느린 대형 보험대리점들의 불법 영업 행위가 적발됐다. 뉴중앙과 에프앤스타즈는 모집 규정 위반으로 각각 기관경고에 과태료 1000만원,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 받았다. 뉴중앙은 2011년 10월31일부터 2012년 5월31일까지 대표이사가 모집한 무배당 연금 보험 총 31건을 타인의 명의를 이용해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15억5300만원의 모집수수료를 부당하게 수수했다.

"돈 줄게 보험 들어 주오" 설계사의 양면성
스스로 가입하고 돌려막기도…결국엔 파산

에프앤스타즈는 설계사 8명에 대해 소속 설계사로 등록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 중 일시적 무등록 상태로 인해 모집인 명의 사용이 불가하자 2011년 6월2일부터 12월21일까지 모집한 37건의 보험계약을 에프앤스타즈 소속 다른 설계사의 명의를 이용토록 하여 체결하고 총 1647만원의 수수료를 수취했다.

피플라이트 보험대리점은 설계사로 등록되지 않은 22명에게 보험가입 가능고객을 발굴해 소속 설계사와 면담을 주선케 하는 등 섭외업무를 전담시키고 2011년 4월1일부터 2012년 3월31일 기간 중 이들의 주선을 통해 실제 보험계약이 체결된 연금보험 등 총 303건에 대한 모집의 대가로 3억1500만원을 지급했다.

보험업법(제98조)은 보험계약 체결 때부터 최초 1년간 납입된 보험료의 10%와 3만원 중 적은 금액 이외에는 리베이트 제공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월 100만원짜리 보험계약을 체결했다고 가정하면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리베이트는 1200만원의 10%인 120만원이 최대라는 얘기다. 월 1만원짜리 보험계약일 경우에는 1년 납입 보험료의 10%가 3만원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고객에게 3만원까지의 금액만 지급할 수 있다. 이를 어기는 설계사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하고, 해당 보험사는 연간수입보험료의 50%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 받는다.

그런데도 설계사와 대리점, 보험사들의 불법 행위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보험업계에서는 설계사 간 지나친 경쟁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계약을 따낸 보험료에 따라 설계사들의 추가 수입이 발생하는 구조인 만큼 리베이트를 이용한 무리한 영업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알고도 모른 척하는 보험사에도 문제가 있다. 보험 유치를 위해 고객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건 업계에 관행처럼 치부돼 왔다. 하지만 보험사는 이를 제지하지 않는다. 설계사들이 따낸 보험 계약이 회사의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보험회사는 설계사에게 최초 정착지원금 100여만원을 3개월간 지급한 후 성과급만으로 운영한다. 현재 보험설계사는 독립사업자 신분으로 보험사와 위촉계약을 맺는다. 보험사와 설계사는 근로계약이 아닌 위임계약이 작성되는 것. 개인사업자로 취급되기 때문에 4대 보험 의무적용 대상자에서도 제외된다. 3개월이 지나면 잘 버는 설계사와 못 버는 설계사로 나뉜다. 심할 경우에는 월급통장에 '0원'이 찍히는 경우도 있다.

영업을 못하는 설계사 중에는 성과급을 위해 스스로 보험에 가입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를 통해 받은 성과급으로 다른 보험의 보험료를 내고 돈이 부족하면 또 다른 보험을 들어 보험료를 메꾼다. 돌려막기다.

반면 영업 실적이 좋은 설계사의 경우 실적 유지 혹은 향상을 위해 설계사 본인의 성과급을 줄여 더 많은 리베이트를 고객들에게 제공한다. 한 달분에서 세 달분의 보험료를 납부해주기도 한다. 일종의 마케팅 비용이다. 성과급 대부분을 리베이트로 준다고 해도 손해는 그리 크지 않다. 일단 보험계약 실적이 향상되면 각각의 보험계약에 따른 성과급 말도고 월별 실적에 따른 추가 성과급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잘하면 억대 연봉
못하면 '쪽빡'

이와 관련해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사의 리베이트 관행은 보험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며 "이런 행위에 대해 각 사에서 대대적인 내부 단속이 이뤄질 것으로 보이지만 뿌리 뽑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보험계약 체결 고객은 보험료를 절약하거나 현금을 받고, 설계사는 높아진 실적에 따른 성과급을 지급받는 이른바 '누이 좋고 매부 좋고'의 구조인데다가 개인 간의 거래로 이뤄져 직접적인 증거도 잡기 어렵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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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