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신상사' 신상현 회고록 전격 공개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4.01.06 13: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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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시라소니 "이정재 암살계획 짰다"

[일요시사=사회팀] 조폭이 미화되던 시기가 있었다. 조폭 영화가 흥행하고, 조폭을 꿈꾸는 사람들이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조폭은 그저 깡패일 뿐이다. 최근 붙잡힌 양은이파 전 두목 조양은 역시 실상은 깡패에 불과하다. 이를 확인하듯 주먹계 원로 신상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지금 주먹세계는 돈과 폭력만 있을 뿐 낭만과 가치가 사라졌다." 그가 직접 밝힌 주먹세계의 빛과 그림자는 어떤 모습일까. 




전국구 조폭 시대가 저물었다. 범서방파 전 두목 김태촌(64)의 사망과 칠성파의 와해, 양은이파 전 두목 조양은(64)의 구속 등으로 이른바 '3세대 조폭'들은 역사에서 퇴장했다. 

전국구 조폭
차례로 몰락

지난달 23일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윤재필)는 사기 대출을 받아 수십억원의 대출금을 가로챈 혐의로 조양은을 구속 기소했다. 조양은은 지난 2010년 8월 서울 강남 일대에서 풀살롱 형태의 P유흥주점을 운영하면서 유흥업소 종업원으로 가장한 22명을 내세워 허위선불금 채권을 담보로 제일저축은행으로부터 29억9600만원의 대출금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조양은은 자신의 존재와 범행 사실을 숨기기 위해 영업사장이나 바지사장 명의로 유흥주점을 인수한 뒤 서류작성자, 모집책, 모집총책 등으로 역할을 나눠 사기 대출을 공모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양은은 이렇게 불법 대출 받은 돈을 유흥주점 인수대금이나 운영자금으로 썼으며 자신의 생활비 등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조양은은 바지사장에게 "사건을 떠안고 가라"며 협박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등 허위 진술을 강요한 사실도 적발됐다.


앞서 사정당국은 지난 2011년 6월 중국을 거쳐 필리핀으로 도주한 조양은을 지명수배와 함께 인터폴에 적색수배했다. 조양은의 신병을 추적하던 당국은 필리핀 현지 카지노에서 조양은을 붙잡아 2년여 만에 국내로 압송했다.

마지막 낭만협객이 본 주먹세계 빛과 그림자
자서전 <주먹으로 꽃을…> 발간 뒤늦게 확인

그래도 한때는 전국구 조폭으로 불렸던 조양은. 그러나 그는 필리핀 도피생활 동안 거의 잡범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전해진다. 카지노 주변의 관광객이나 교민들을 상대로 소위 '삥'을 뜯으며 연명했다는 것이다.

과거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한 조직원은 "그 형님 시대가 끝난 지 언제인데 아직도 이름값에 목을 매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또 그는 "칼로 뜬 사람(조양은)은 건달이 아닌 양아치에 불과하다"고 못박았다.

조양은은 우리나라 주먹사에서 회칼을 처음 사용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조양은은 지난 1975년 서울지역 최대의 폭력조직인 신상사파를 기습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연장을 사용했다. 훗날 '명동 사보이호텔 사건'으로 명명된 이 사건으로 조양은은 주먹계의 거두가 됐다.

하지만 알려진 것과 달리 주먹계의 진짜 보스는 조양은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그의 필생의 라이벌이었던 김태촌은 생전 언론 인터뷰에서 "솔직히 나(김태촌)나 조양은이나 무슨 두목이냐. 우리는 평생 교도소나 다니는 실패한 인생이다. 진짜 두목들은 뒤에 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건달은 죽고
양아치 남았다


신상사파 전 두목 신상현(82)씨는 김태촌이 인정한 진짜 두목이다. 195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명동을 거점으로 암약했던 신씨는 전국구 보스 '신상사'로 30년 넘게 막후에서 군림했다.

신씨는 1세대 조폭인 김두한, 시라소니(본명 이성순), 이정재 등과 같은 시대에 활동했다. 때문에 신씨는 소위 말하는 '낭만시대'의 마지막 남은 증인이다.

지난해 신씨는 자신의 회고록인 '주먹으로 꽃을 꺾으랴'를 <월간중앙>과 함께 발간했다. 이 책에서 신씨는 어둠의 세계 한 가운데 있던 비화들을 한 보따리 풀어놨다. 신씨가 경험한 주먹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것(혹은 영화화나 드라마화 된 것)과 어떻게 다를까.

먼저 낭만시대 주먹은 칼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양은이 칼을 사용한 75년을 전후로 조폭들은 빠르게 '양아치화'됐다.

당시 조폭들은 흉기를 사용하는 일을 치욕으로 여겼다. 또 여러 명이 한 명에게 몰매를 가하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소위 말하는 '다구리(몰매)'는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조폭들은 격투기를 직접 익혀 자신의 몸을 단련했다. 맨주먹을 무기로 삼을 뿐 특별한 도구나 흉기를 동원하지 않았다. 때문에 조직의 보스가 되기 위해선 이른바 '맞짱' 싸움 실력이 필수였다. 신씨는 주로 상대의 턱을 노려 싸움을 재빨리 끝냈다고 한다.

건달은 감옥서도 호의호식
출소 후엔 재벌들과 어울려

1949년 신씨는 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1953년 특무부대 상사로 제대했다. 신씨의 암흑가 별명인 '신상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어쨌거나 나랏밥을 먹었던 신씨가 남은 반평생을 깡패로 살았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무렵에는 신씨처럼 나름의 배경을 갖춘 조폭들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1세대 조폭들은 대의와 명분을 중히 생각했다. 대표적으로 구마적(고희경)과 신마적(엄동욱)은 깡패였지만 협객으로 포장됐다. 이들은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조선인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폭력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대의와 명분을 앞세웠기 때문에 사회적 평가가 박하지 않았다.

명동·종로 등 번화가에서 이득을 챙기던 조폭들은 광복 후 활동 영역을 넓혔다. 상권은 상권대로 관리하고 정치인과 손을 잡았다. 이중 김두한은 좌익 인사를 상대로 한 백색테러로 의회에까지 진출했다.

김두한이 떠난 주먹계는 이화룡, 시라소니 등이 버틴 명동사단과 이정재, 유지광, 임화수 등이 있던 동대문사단으로 양분됐다. 신씨는 같은 시기 주먹계에서 현역으로 활동했다.

신씨가 증언한 1950년대의 서울 주먹은 이른바 3각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우미관을 중심으로 한 김두한파, 명동 시공관을 중심으로 한 명동파, 동대문시장으로 진출한 이정재파가 꼭지점을 이뤘다.

신씨는 이중 이화룡이 만든 대동강동지회 즉 명동파와 교류했다. 하지만 이화룡 밑에서 일한 적은 없다는 것이 신씨의 주장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명동사단과 동대문사단은 사사건건 대립했다. 이승만정권 말기에 다툼은 더 심했는데 이들의 전쟁은 정치권력을 등에 업은 동대만사단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정재는 경무대 경찰서장인 곽영주를 후견인으로 삼고 ‘장충동테러사건’을 비롯한 각종 정치테러를 주도하면서 악명을 떨쳤다. 그의 심복 유지광과 연예계 황제 임화수는 이정재와 합심해 독보적인 세력을 형성했다. 어찌 보면 이때가 정치 깡패의 황금기였다.

하지만 이승만정권의 총애를 받던 이정재는 4·19혁명으로 내리막길을 걷다가 군사정권에 붙잡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의 죽음을 지켜본 신씨는 "이정재의 거대한 야망이 화를 불렀다"고 평했다. 이처럼 권력에 기생한 조폭들은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가장 먼저 사회의 희생양이 됐다.

권력에 빌붙은
정권의 희생양

신씨는 1세대 주먹사의 가장 중요한 비화로 '이정재 암살 계획'을 언급했다. 그는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이정재를 제거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세워두었지만 실행 직전 이정재와 김두한이 청요리집인 관수동 대관원에서 극적으로 화해하게 돼 없던 일이 됐다고 주장했다. 만약 이정재가 그때 살해됐다면 전체 주먹계의 판도가 달라졌을 것이란 해석이다.

그러나 역사는 가정이 없는 법. 자유당의 비호 아래 철권을 누리던 동대문사단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자 가장 먼저 패망했다. 반면 자유당의 타깃이 됐던 명동파는 군사정권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화룡이 떠난 명동의 새로운 패자는 '신상사'가 됐다.


5·16쿠데타 직후 군사정권은 민심을 잡기 위해 각지의 깡패를 잡아들였다. 1961년 한 해에만 모두 1만3000여명이 검거됐다. 하지만 검거된 깡패는 감옥에서 호의호식했다. 신씨는 "형무소의 규칙은 돈 앞에 무력했다"고 적었다.

당시 감옥에는 비리와 뇌물이 판쳤다. 깡패들은 돈만 있으면 담배는 물론이고 술을 마시며 호화 수감생활을 했다. 심지어 한 유명 정치깡패는 복역 중 교도소에서 딸을 갖기도 했다. 이 깡패는 교도관을 매수한 뒤 면회실에서 부인과 둘만의 '특별면회'를 했다.

카지노, 섹스…7공자 전성시대
사보이호텔 사건 진짜 내막은?

공권력은 범죄 집단과 결탁했다. 서울에서 생산한 마약을 전국으로 유통하는 데 그 흔한 단속 한 번 없었다. 단속 전 깡패들이 돈을 뭉텅이로 넣어주면 경찰은 그들의 영업을 방해하지 않았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사채시장이 성장했다. 채무자를 관리할 조폭의 수요도 늘었다. 많은 조폭들은 앉아서 돈을 벌었다. 하지만 신씨는 같은 기간 마약과 사채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돈이 돌던 때라 범죄행위와 거리를 두면서도 자금을 모을 방도가 있었던 것이다. 비교적 금도를 지켰던 신상사파의 전성기는 10년 넘게 이어졌다.

이 시기 신씨는 권력자의 아들, 재벌의 반열에 들었던 기업인 2세와 어울렸다. '7공자'로 불렸던 이들 무리는 돈과 권력, 젊음으로 무장한 무소불위의 집단이었다. 신씨는 당시 7공자를 따르는 무수한 여자가 있었으며, 당대 최고의 미인들이 7공자와 관계를 맺었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명동에서 만나 술을 곁들인 저녁을 먹고 워커힐로 이동해 쇼와 카지노, 섹스를 즐겼다.

태광실업 박동명 대표를 비롯해 D산업 창업주의 아들 L씨, S건설 회장의 아들 J씨, P산업 사장 K씨, 양조회사 창업주의 장남 G씨 등이 7공자 중 5인으로 소개됐다. 나머지 2인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척관계인 Q씨, 고위공직자의 아들 K씨였다고 신씨는 주장했다.

그리고 미인들은 몸치장에 드는 돈을 벌기 위해 일본인을 상대로 한 술접대에 동원됐다고 한다. 각 유명 요정과 룸싸롱에는 여자 연예인들의 사진과 전화번호가 걸린 앨범이 비치돼 있었는데 일본인들은 그 앨범을 보고 자신의 파트너를 선택했다고 전해진다.

또 당시 연예계는 스타급 연예인도 연락을 받으면 달려 나가야 할 정도로 궁핍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고름을 짠 조폭들은 되레 승승장구했다. 돈과 여자를 주무를 수 있는 깡패들은 암울한 시대를 맞아 메뚜기처럼 창궐했다.

사람과 돈이 서울에 몰리다보니 지방에 있던 조폭도 차례로 상경했다. 서울 주먹계의 절대 강자였던 신상사파의 아성도 마침내 흔들렸다.

'권불십년'이란 말처럼 신상사파의 전성기는 신씨가 명동으로 회귀한 10년째에 막을 내렸다. '명동 사보이호텔 사건'을 시작으로 3세대 조폭은 마지막 남아 있던 낭만시대 주먹을 대체했다.

사건 당사자인 신씨는 그곳에서 목숨을 잃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이어 명동사단은 보복을 위해 사건 주모자인 조창조·정학모·오종철·조양은을 쫓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최종 결과는 합의였다. 이 합의로 '공공의 적'이었던 조양은은 음지에서 양지로 돌아왔다. 이후 조양은은 선배들을 넘어 전성기를 구가하게 됐다.

깡패는 깡패
낭만은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신씨의 합의는 1세대 조폭인 이화룡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는 득이 됐다. 너무 이른 나이에 세력을 얻은 조양은과 김태촌은 곧이어 등장한 신군부의 타깃이 됐다. 이들은 그 대가로 상당한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반면 신씨는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를 입었다. 또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명동에서의 영향력을 일부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깡패는 깡패일 뿐. 정권의 힘 앞에는 무력했다.

신씨는 '범죄와의 전쟁'을 버티지 못하고 주먹계에서 은퇴했다. 이후 외제차 사업에 뛰어 들었다가 최근에는 모든 사업을 정리한 상황이다. 비교적 평온한 말년을 보내고 있는 신씨는 "지금의 주먹세계는 돈과 폭력만 있을 뿐 낭만과 가치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어쩌면 후배인 조양은이 선배인 신상사에게 칼을 들이댄 순간부터 주먹세계의 마지막 낭만은 끝장났는지 모른다. 겉으로만 형님 찾고 의리 찾는 이들의 표리부동한 행동은 끝내 씁쓸함을 자아낸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소문만 무성한 '김태촌 비망록'

지난 2013년 1월 '주먹계 거물' 김태촌씨가 사망했다. 70∼80년대를 주름잡으며 전국구 조폭으로 불린 그는 어둠의 세계에 발을 들인 뒤 영원한 어둠 속에 묻혔다.

생전 김씨는 자신의 삶을 "실패한 인생"이라고 표현했다. 30년 넘는 감옥생활 동안 김씨는 건강과 세력을 모두 잃었다. 긴 수감생활을 거치며 김씨가 얻은 것은 본인의 인지도뿐이었다.

대개의 조폭은 음지에서 활동한다. 하지만 김씨는 유독 자신을 드러내길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김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는 일이 잦았다고 전해진다. '김태촌'이란 이름값을 노린 '하이애나'들은 그가 죽기 전까지 김씨 곁을 맴돌았다.

이런 자신의 삶이 억울했던 것인지 아니면 또다시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싶어 했던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김씨는 이른바 '김태촌 회고록' 출간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대병원에서 투병 중이던 김씨는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했다.

지난 2012년 본지 기자와 만났던 김씨는 "만약 내가 죽으면 일대기 형태로 모든 것을 공개할 생각"이라며 "(비망록을) 지인들을 통해 집필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가 병석에서 지난 사건들을 술회하면 지인들이 메모를 해 책으로 엮어내는 형식이다.

그러나 김씨가 약속했던 회고록(또는 비망록)은 그가 죽은 지 1년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연예계는 물론 정·재계와 관련한 각종 비화가 담길 것으로 예상됐던 '김태촌 비망록'은 출간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편 주먹계 원로인 신상현씨는 김씨에 대해 "거칠었지만 성격이 직선적이고 사내다운 면이 있었다"며 "그가 오랜 기간 보스로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 신세 진 정치·경제·연예계 인물이 셀 수 없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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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로 열린 윤영호 게이트

좌우로 열린 윤영호 게이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를 둘러싼 정치권 로비·금품 제공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이른바 ‘통일교 특검’이 본궤도에 올랐다. 여야는 통일교의 정치권 금품 지원 의혹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법을 각자 발의한 뒤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와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김은혜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지난 22일 국회에서 만나 이같이 합의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31일 “2차 종합특검, 통일교·신천지 특검(법의 국회 통과)을 설(내년 2월17일) 연휴 전에 반드시 마무리짓겠다”고 밝혔다. 정치인 줄줄이 특검 수사의 초점은 정치인 개개인의 비위 여부를 넘어, 통일교가 어떻게 조직적으로 정치권에 접근해 정책·인사·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살펴볼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 제공이 있었는지 여부도 핵심이다. 수사선상에는 통일교 지도부와 핵심 실무 라인은 물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실명이 거론된 정치권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포장된 정치 로비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특검은 출범과 동시에 통일교 내부 자금 흐름과 의사결정 구조를 정밀 추적하고 있다. 수사의 출발점은 통일교 고위 간부였던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의 진술과 관련된 자료다. 윤 전 본부장은 검찰·경찰 조사 과정에서 “정치권 인사들에게 현금과 고가 물품이 전달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이 진술의 신빙성을 가리기 위해 통일교 본부 및 산하 단체 회계, 자금 집행 내역, 내부 문건을 대거 확보해 분석 중이다. 통일교 측은 “조직 차원의 불법 지시는 없었다”며 일부 인사의 개인적 일탈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으나, 특검은 지도부 보고·승인이 있었는지 여부를 핵심 쟁점으로 보고 있다. 이번 특검이 주목받는 이유는 수사의 외연이 정치권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와 수사 과정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 전·현직 의원, 광역단체장, 정부 인사들의 이름이 잇따라 등장했다. 민주당에서는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임종성 전 의원, 강선우 의원,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이름이 언론 보도에서 거론됐다. 국민의힘 계열에서는 권성동 의원, 김규환 전 의원 등이 수사 관련 기사에 등장했다. 이들 대부분은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거나 “통일교와의 접촉은 공식 행사 차원이었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특검은 진술과 물증을 대조해 사실관계를 가려내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계열에서 가장 먼저 거론된 인물은 전 전 장관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2018년 전후 통일교 고위 인사로부터 현금 또는 고가 물품을 받았다는 취지의 진술이 수사 과정에서 나왔다. 여야 각자 특검법 발의 후 협의키로 여야 막론 정교 유착 전모 밝혀지나 해당 의혹은 윤 전 본부장의 진술을 통해 처음 알려졌고, 이후 경찰과 특검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핵심 쟁점은 실제 금품 전달 여부와 함께, 당시 전 전 장관의 직무와 관련된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다. 전 전 장관은 관련 보도 직후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해 오고 있다. 같은 당의 임 전 의원 역시 통일교 정치권 로비 의혹 명단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의 경우 구체적인 금액이나 전달 시점이 특정되지는 않았지만, 통일교 측이 “여야 정치인 다수에게 자금을 전달했다”는 취지로 진술하는 과정에서 실명이 언급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매체는 특검이 임 전 의원을 포함한 인사들에 대해 소환 조사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쟁점은 통일교와의 관계가 단순한 접촉 수준이었는지, 아니면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하는 금품수수로 이어졌는지다. 임 전 의원 역시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을 부인하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도됐다. 강 의원은 금품수수보다는 ‘접촉·관리 대상’ 의혹으로 이름이 거론됐다. 보도된 통일교 관계자 간 통화 녹취 또는 내부 언급에서 강 의원의 이름이 등장했다는 내용이 전해지면서다. 해당 보도들은 통일교 측이 정치권 인사들을 분류·관리하며 접근 전략을 세웠다는 의혹을 전하는 맥락에서 강 의원을 언급했다. 현재까지 강 의원과 관련해 현금이나 물품 제공 정황이 확인됐다는 보도는 없다. 그는 통일교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노 전 실장 역시 통일교 인사 간 통화 녹취 또는 내부 문건에서 이름이 언급됐다는 언론 보도로 연관 의혹이 제기됐다. 그의 경우도 금품수수 의혹보다는, 통일교가 ‘영향력 있는 정치·권력 인사’로 인식하고 접촉을 시도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노 전 실장 측은 통일교와의 불법적 관계나 금품수수는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계열에서는 권 의원이 통일교 특검 국면에서 가장 무겁게 거론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측이 권 의원에게 정치자금 또는 현금 성격의 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매체는 압수수색이나 계좌 추적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권력 과시 여야 통일? 쟁점은 자금이 실제로 전달됐는지, 전달됐다면 정치자금으로 신고됐는지, 그리고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다. 권 의원 측은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통일교 측이 관리·접촉 대상으로 삼았던 정치인 명단 관련 보도에서 이름이 등장했다. 그의 경우도 구체적인 금품 전달 사실이 확인됐다는 보도보다는, 통일교 내부에서 ‘정치권 접점 인사’로 분류됐다는 정황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수사기관은 통일교 자금과의 실질적 연결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 전 의원 역시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을 부인했다. 이들 사례를 시기별로 정리하면 공통적인 흐름이 드러난다. 2018년 전후 통일교 내부에서 정치권 로비를 담당하는 실무·재정 라인이 가동됐다는 진술이 나오고, 2022년 이후 통일교 지도부 관련 사건이 불거지면서 과거 정치권 접촉 내역이 재조명됐다. 2024~2025년에는 경찰 수사와 특검 출범을 계기로 통일교 고위 인사 진술, 녹취, 내부 문건 일부가 언론에 공개되며 정치인 실명 보도가 잇따랐다. 의혹의 유형을 나누면 세 가지로 첫째, 전재수·권성동처럼 현금 또는 정치자금 성격을 띤 자금 제공 의혹이 직접 제기된 경우다. 둘째, 임종성처럼 통일교 측 진술에서 ‘자금 전달 대상’으로 언급됐으나 구체성이 아직 부족한 경우다. 셋째, 강선우·노영민·김규환처럼 통일교 내부 녹취나 문건에서 ‘접촉·관리 대상’으로 거론된 경우다. 특검은 이 세 유형을 종합해 통일교의 정치권 접근이 우발적이었는지, 아니면 계획적·조직적이었는지를 판단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특검의 법적 판단은 몇 가지 체크 리스트에 따라 갈릴 가능성이 크다. 통일교 자금 또는 물품이 실제로 정치인 또는 그 측근에게 전달됐는지에 대한 물증(계좌 흐름, 현금 출처, 구매 내역)이 확보되는지 여부다. 줬다는데 안 받았다 또 해당 정치인의 직무와 관련된 청탁이나 편의 제공 요구가 있었는지, 즉 대가성이 입증되는지다. 이어 자금이 개인 차원의 일탈이 아니라 통일교 지도부 또는 조직의 승인·묵인 아래 이뤄졌는지 여부다. 또 정치자금으로 볼 경우 신고 누락이 있었는지, 뇌물로 볼 경우, 공소시효와 구성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다. 현재까지 통일교 특검에서 거론된 정치인들과 관련한 보도는 모두 ‘의혹 제기’ 또는 ‘수사 진행 상황’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특검이 이 사안을 개별 정치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종교단체가 정치권을 상대로 벌인 장기적 로비 구조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가 소환과 기소 여부에 따라 파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통일교 특검이 향하는 끝이 어디인지, 그리고 정치권 전반의 신뢰 문제로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특검 수사의 또 다른 축은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씨를 둘러싼 고가 선물 수수 의혹이다. 통일교 측이 명품 가방과 귀금속 등을 전달하며 각종 편의를 기대했다는 의혹이다. 이 사안은 정치인 대상 로비와는 별도의 트랙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다만 특검은 통일교 지도부가 동일한 자금·조직 라인을 활용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며, 두 사건을 구조적으로 연결해 보고 있다. 특검이 들여다보는 ‘로비 방식’은 전통적인 봉투 전달에 국한되지 않는다. 통일교 및 연계 단체들은 국제회의, 평화 포럼, ‘평화대사’ 위촉 행사 등을 통해 정치인과의 접점을 넓혀 왔다. 문제는 이 같은 공식 행사 뒤편에서 현금·물품 제공이나 정치적 대가성 요구가 있었는지다. 특검은 행사 전후 일정, 면담 기록, 수행 인력 동선, 통신 기록 등을 종합 분석해 접촉의 성격을 규명하고 있다. 특히 정치자금법상 신고되지 않은 후원이거나, 직무 관련성이 인정될 경우 청탁금지법·뇌물죄 적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린다. 여야 모두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파장 관리에 고심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하나같이 “접촉은 공식 행사 차원” 레퍼토리 반복···한 입서 나온 증언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불법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원칙론을 내세웠다. 여권과 야권 일각에서는 “특검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경계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특검 수사 대상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확대되면서, ‘편파 수사’ 논란은 힘을 잃는 분위기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특검의 성패가 ‘대가성 입증’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한 친분 관계나 종교 행사 참석만으로는 처벌이 어렵고, 금품 제공과 구체적 직무 행위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자금법 위반의 경우 공소시효 문제도 변수로 작용한다. 특검이 초기부터 강제수사에 나선 배경에는 이 같은 시간적 제약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통일교 특검은 한국 정치사에서 반복돼온 ‘종교-정치 유착’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종교의 자유와 정치의 독립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어디에서 충돌하는지, 그 경계선을 명확히 그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수사가 개인 처벌에 그칠지, 아니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통일교 특검이 던진 질문은 “정치가 누구의 돈과 조직에 의해 움직였느냐?”다. 특검의 칼끝이 어디까지 향할지, 그 결과가 한국 정치의 신뢰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핵심 피고인·피의자로는 통일교 지도부(한학자 총재)와 통일교 고위 간부(윤영호 전 세계본부장) 등이 거론된다. 한 언론은 특별검사팀 발표를 인용해 한 총재가 통일교 자금의 유용 및 증거인멸 지시, 정치자금법 위반·뇌물 등 혐의로 기소됐고, 김건희(전 영부인)씨 및 권 의원(국민의힘) 등에게 전달된 것으로 의심되는 금품·자금이 수사의 초점이라고 전했다. 특히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측은 2022년 1월 권 의원에게 1억원을 제공했다는 의혹, 2022년 7월 김씨에게 명품 등을 제공했다는 의혹 등이 ‘수사기관 주장’으로 적시돼있으며, 당사자들은 부인 취지 입장을 밝혀왔다. 로비 자금의 ‘규모’ 논란을 키운 장면은 통일교 핵심 시설(가평 천정궁) 압수수색 과정에서 거액 현금이 발견됐다는 보도였다. <MBC>는 특검 압수수색 당시 한학자 총재 개인 금고에서 외화 포함 약 280억원 상당 현금이 확인됐다며, 이 돈이 통일교 회계와 별개로 관리된 자금이라는 점 때문에 ‘정치권 로비 자금’ 의심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2022년 지방선거 전후 ‘정치 후원금’ 형태의 지원 의혹으로는, 법정 진술을 인용해 유상범 의원(국민의힘), 백경현(경기 구리시장), 김진태(강원도지사) 등의 이름과 액수가 거론됐다고 알려졌다. 또 나온 김건희 통일교 로비 의혹의 ‘작동 방식’으로 자주 지목되는 것은 산하·연계 조직의 외피를 통한 접점 확보다. 예컨대 UPF(천주평화연합) 같은 NGO 성격 단체가 각종 국제 행사(월드서밋 등)를 주최하고, ‘평화대사’ 위촉 등으로 정치인·지자체 관계자·지역 인사들과의 네트워크를 확장해 왔다는 설명이 반복된다. UPF가 권역을 나눠 주요 인사를 접촉·관리하는 구조였다는 의혹을 전하며, 자금 집행과 조직적 접촉이 실제 정치자금 제공이나 청탁과 연결됐는지가 수사의 핵심이라고 짚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