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신상사' 신상현 회고록 전격 공개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4.01.06 13: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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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시라소니 "이정재 암살계획 짰다"

[일요시사=사회팀] 조폭이 미화되던 시기가 있었다. 조폭 영화가 흥행하고, 조폭을 꿈꾸는 사람들이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조폭은 그저 깡패일 뿐이다. 최근 붙잡힌 양은이파 전 두목 조양은 역시 실상은 깡패에 불과하다. 이를 확인하듯 주먹계 원로 신상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지금 주먹세계는 돈과 폭력만 있을 뿐 낭만과 가치가 사라졌다." 그가 직접 밝힌 주먹세계의 빛과 그림자는 어떤 모습일까. 




전국구 조폭 시대가 저물었다. 범서방파 전 두목 김태촌(64)의 사망과 칠성파의 와해, 양은이파 전 두목 조양은(64)의 구속 등으로 이른바 '3세대 조폭'들은 역사에서 퇴장했다. 

전국구 조폭
차례로 몰락

지난달 23일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윤재필)는 사기 대출을 받아 수십억원의 대출금을 가로챈 혐의로 조양은을 구속 기소했다. 조양은은 지난 2010년 8월 서울 강남 일대에서 풀살롱 형태의 P유흥주점을 운영하면서 유흥업소 종업원으로 가장한 22명을 내세워 허위선불금 채권을 담보로 제일저축은행으로부터 29억9600만원의 대출금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조양은은 자신의 존재와 범행 사실을 숨기기 위해 영업사장이나 바지사장 명의로 유흥주점을 인수한 뒤 서류작성자, 모집책, 모집총책 등으로 역할을 나눠 사기 대출을 공모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양은은 이렇게 불법 대출 받은 돈을 유흥주점 인수대금이나 운영자금으로 썼으며 자신의 생활비 등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조양은은 바지사장에게 "사건을 떠안고 가라"며 협박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등 허위 진술을 강요한 사실도 적발됐다.


앞서 사정당국은 지난 2011년 6월 중국을 거쳐 필리핀으로 도주한 조양은을 지명수배와 함께 인터폴에 적색수배했다. 조양은의 신병을 추적하던 당국은 필리핀 현지 카지노에서 조양은을 붙잡아 2년여 만에 국내로 압송했다.

마지막 낭만협객이 본 주먹세계 빛과 그림자
자서전 <주먹으로 꽃을…> 발간 뒤늦게 확인

그래도 한때는 전국구 조폭으로 불렸던 조양은. 그러나 그는 필리핀 도피생활 동안 거의 잡범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전해진다. 카지노 주변의 관광객이나 교민들을 상대로 소위 '삥'을 뜯으며 연명했다는 것이다.

과거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한 조직원은 "그 형님 시대가 끝난 지 언제인데 아직도 이름값에 목을 매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또 그는 "칼로 뜬 사람(조양은)은 건달이 아닌 양아치에 불과하다"고 못박았다.

조양은은 우리나라 주먹사에서 회칼을 처음 사용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조양은은 지난 1975년 서울지역 최대의 폭력조직인 신상사파를 기습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연장을 사용했다. 훗날 '명동 사보이호텔 사건'으로 명명된 이 사건으로 조양은은 주먹계의 거두가 됐다.

하지만 알려진 것과 달리 주먹계의 진짜 보스는 조양은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그의 필생의 라이벌이었던 김태촌은 생전 언론 인터뷰에서 "솔직히 나(김태촌)나 조양은이나 무슨 두목이냐. 우리는 평생 교도소나 다니는 실패한 인생이다. 진짜 두목들은 뒤에 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건달은 죽고
양아치 남았다


신상사파 전 두목 신상현(82)씨는 김태촌이 인정한 진짜 두목이다. 195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명동을 거점으로 암약했던 신씨는 전국구 보스 '신상사'로 30년 넘게 막후에서 군림했다.

신씨는 1세대 조폭인 김두한, 시라소니(본명 이성순), 이정재 등과 같은 시대에 활동했다. 때문에 신씨는 소위 말하는 '낭만시대'의 마지막 남은 증인이다.

지난해 신씨는 자신의 회고록인 '주먹으로 꽃을 꺾으랴'를 <월간중앙>과 함께 발간했다. 이 책에서 신씨는 어둠의 세계 한 가운데 있던 비화들을 한 보따리 풀어놨다. 신씨가 경험한 주먹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것(혹은 영화화나 드라마화 된 것)과 어떻게 다를까.

먼저 낭만시대 주먹은 칼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양은이 칼을 사용한 75년을 전후로 조폭들은 빠르게 '양아치화'됐다.

당시 조폭들은 흉기를 사용하는 일을 치욕으로 여겼다. 또 여러 명이 한 명에게 몰매를 가하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소위 말하는 '다구리(몰매)'는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조폭들은 격투기를 직접 익혀 자신의 몸을 단련했다. 맨주먹을 무기로 삼을 뿐 특별한 도구나 흉기를 동원하지 않았다. 때문에 조직의 보스가 되기 위해선 이른바 '맞짱' 싸움 실력이 필수였다. 신씨는 주로 상대의 턱을 노려 싸움을 재빨리 끝냈다고 한다.

건달은 감옥서도 호의호식
출소 후엔 재벌들과 어울려

1949년 신씨는 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1953년 특무부대 상사로 제대했다. 신씨의 암흑가 별명인 '신상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어쨌거나 나랏밥을 먹었던 신씨가 남은 반평생을 깡패로 살았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무렵에는 신씨처럼 나름의 배경을 갖춘 조폭들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1세대 조폭들은 대의와 명분을 중히 생각했다. 대표적으로 구마적(고희경)과 신마적(엄동욱)은 깡패였지만 협객으로 포장됐다. 이들은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조선인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폭력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대의와 명분을 앞세웠기 때문에 사회적 평가가 박하지 않았다.

명동·종로 등 번화가에서 이득을 챙기던 조폭들은 광복 후 활동 영역을 넓혔다. 상권은 상권대로 관리하고 정치인과 손을 잡았다. 이중 김두한은 좌익 인사를 상대로 한 백색테러로 의회에까지 진출했다.

김두한이 떠난 주먹계는 이화룡, 시라소니 등이 버틴 명동사단과 이정재, 유지광, 임화수 등이 있던 동대문사단으로 양분됐다. 신씨는 같은 시기 주먹계에서 현역으로 활동했다.

신씨가 증언한 1950년대의 서울 주먹은 이른바 3각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우미관을 중심으로 한 김두한파, 명동 시공관을 중심으로 한 명동파, 동대문시장으로 진출한 이정재파가 꼭지점을 이뤘다.

신씨는 이중 이화룡이 만든 대동강동지회 즉 명동파와 교류했다. 하지만 이화룡 밑에서 일한 적은 없다는 것이 신씨의 주장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명동사단과 동대문사단은 사사건건 대립했다. 이승만정권 말기에 다툼은 더 심했는데 이들의 전쟁은 정치권력을 등에 업은 동대만사단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정재는 경무대 경찰서장인 곽영주를 후견인으로 삼고 ‘장충동테러사건’을 비롯한 각종 정치테러를 주도하면서 악명을 떨쳤다. 그의 심복 유지광과 연예계 황제 임화수는 이정재와 합심해 독보적인 세력을 형성했다. 어찌 보면 이때가 정치 깡패의 황금기였다.

하지만 이승만정권의 총애를 받던 이정재는 4·19혁명으로 내리막길을 걷다가 군사정권에 붙잡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의 죽음을 지켜본 신씨는 "이정재의 거대한 야망이 화를 불렀다"고 평했다. 이처럼 권력에 기생한 조폭들은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가장 먼저 사회의 희생양이 됐다.

권력에 빌붙은
정권의 희생양

신씨는 1세대 주먹사의 가장 중요한 비화로 '이정재 암살 계획'을 언급했다. 그는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이정재를 제거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세워두었지만 실행 직전 이정재와 김두한이 청요리집인 관수동 대관원에서 극적으로 화해하게 돼 없던 일이 됐다고 주장했다. 만약 이정재가 그때 살해됐다면 전체 주먹계의 판도가 달라졌을 것이란 해석이다.

그러나 역사는 가정이 없는 법. 자유당의 비호 아래 철권을 누리던 동대문사단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자 가장 먼저 패망했다. 반면 자유당의 타깃이 됐던 명동파는 군사정권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화룡이 떠난 명동의 새로운 패자는 '신상사'가 됐다.


5·16쿠데타 직후 군사정권은 민심을 잡기 위해 각지의 깡패를 잡아들였다. 1961년 한 해에만 모두 1만3000여명이 검거됐다. 하지만 검거된 깡패는 감옥에서 호의호식했다. 신씨는 "형무소의 규칙은 돈 앞에 무력했다"고 적었다.

당시 감옥에는 비리와 뇌물이 판쳤다. 깡패들은 돈만 있으면 담배는 물론이고 술을 마시며 호화 수감생활을 했다. 심지어 한 유명 정치깡패는 복역 중 교도소에서 딸을 갖기도 했다. 이 깡패는 교도관을 매수한 뒤 면회실에서 부인과 둘만의 '특별면회'를 했다.

카지노, 섹스…7공자 전성시대
사보이호텔 사건 진짜 내막은?

공권력은 범죄 집단과 결탁했다. 서울에서 생산한 마약을 전국으로 유통하는 데 그 흔한 단속 한 번 없었다. 단속 전 깡패들이 돈을 뭉텅이로 넣어주면 경찰은 그들의 영업을 방해하지 않았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사채시장이 성장했다. 채무자를 관리할 조폭의 수요도 늘었다. 많은 조폭들은 앉아서 돈을 벌었다. 하지만 신씨는 같은 기간 마약과 사채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돈이 돌던 때라 범죄행위와 거리를 두면서도 자금을 모을 방도가 있었던 것이다. 비교적 금도를 지켰던 신상사파의 전성기는 10년 넘게 이어졌다.

이 시기 신씨는 권력자의 아들, 재벌의 반열에 들었던 기업인 2세와 어울렸다. '7공자'로 불렸던 이들 무리는 돈과 권력, 젊음으로 무장한 무소불위의 집단이었다. 신씨는 당시 7공자를 따르는 무수한 여자가 있었으며, 당대 최고의 미인들이 7공자와 관계를 맺었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명동에서 만나 술을 곁들인 저녁을 먹고 워커힐로 이동해 쇼와 카지노, 섹스를 즐겼다.

태광실업 박동명 대표를 비롯해 D산업 창업주의 아들 L씨, S건설 회장의 아들 J씨, P산업 사장 K씨, 양조회사 창업주의 장남 G씨 등이 7공자 중 5인으로 소개됐다. 나머지 2인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척관계인 Q씨, 고위공직자의 아들 K씨였다고 신씨는 주장했다.

그리고 미인들은 몸치장에 드는 돈을 벌기 위해 일본인을 상대로 한 술접대에 동원됐다고 한다. 각 유명 요정과 룸싸롱에는 여자 연예인들의 사진과 전화번호가 걸린 앨범이 비치돼 있었는데 일본인들은 그 앨범을 보고 자신의 파트너를 선택했다고 전해진다.

또 당시 연예계는 스타급 연예인도 연락을 받으면 달려 나가야 할 정도로 궁핍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고름을 짠 조폭들은 되레 승승장구했다. 돈과 여자를 주무를 수 있는 깡패들은 암울한 시대를 맞아 메뚜기처럼 창궐했다.

사람과 돈이 서울에 몰리다보니 지방에 있던 조폭도 차례로 상경했다. 서울 주먹계의 절대 강자였던 신상사파의 아성도 마침내 흔들렸다.

'권불십년'이란 말처럼 신상사파의 전성기는 신씨가 명동으로 회귀한 10년째에 막을 내렸다. '명동 사보이호텔 사건'을 시작으로 3세대 조폭은 마지막 남아 있던 낭만시대 주먹을 대체했다.

사건 당사자인 신씨는 그곳에서 목숨을 잃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이어 명동사단은 보복을 위해 사건 주모자인 조창조·정학모·오종철·조양은을 쫓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최종 결과는 합의였다. 이 합의로 '공공의 적'이었던 조양은은 음지에서 양지로 돌아왔다. 이후 조양은은 선배들을 넘어 전성기를 구가하게 됐다.

깡패는 깡패
낭만은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신씨의 합의는 1세대 조폭인 이화룡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는 득이 됐다. 너무 이른 나이에 세력을 얻은 조양은과 김태촌은 곧이어 등장한 신군부의 타깃이 됐다. 이들은 그 대가로 상당한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반면 신씨는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를 입었다. 또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명동에서의 영향력을 일부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깡패는 깡패일 뿐. 정권의 힘 앞에는 무력했다.

신씨는 '범죄와의 전쟁'을 버티지 못하고 주먹계에서 은퇴했다. 이후 외제차 사업에 뛰어 들었다가 최근에는 모든 사업을 정리한 상황이다. 비교적 평온한 말년을 보내고 있는 신씨는 "지금의 주먹세계는 돈과 폭력만 있을 뿐 낭만과 가치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어쩌면 후배인 조양은이 선배인 신상사에게 칼을 들이댄 순간부터 주먹세계의 마지막 낭만은 끝장났는지 모른다. 겉으로만 형님 찾고 의리 찾는 이들의 표리부동한 행동은 끝내 씁쓸함을 자아낸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소문만 무성한 '김태촌 비망록'

지난 2013년 1월 '주먹계 거물' 김태촌씨가 사망했다. 70∼80년대를 주름잡으며 전국구 조폭으로 불린 그는 어둠의 세계에 발을 들인 뒤 영원한 어둠 속에 묻혔다.

생전 김씨는 자신의 삶을 "실패한 인생"이라고 표현했다. 30년 넘는 감옥생활 동안 김씨는 건강과 세력을 모두 잃었다. 긴 수감생활을 거치며 김씨가 얻은 것은 본인의 인지도뿐이었다.

대개의 조폭은 음지에서 활동한다. 하지만 김씨는 유독 자신을 드러내길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김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는 일이 잦았다고 전해진다. '김태촌'이란 이름값을 노린 '하이애나'들은 그가 죽기 전까지 김씨 곁을 맴돌았다.

이런 자신의 삶이 억울했던 것인지 아니면 또다시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싶어 했던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김씨는 이른바 '김태촌 회고록' 출간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대병원에서 투병 중이던 김씨는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했다.

지난 2012년 본지 기자와 만났던 김씨는 "만약 내가 죽으면 일대기 형태로 모든 것을 공개할 생각"이라며 "(비망록을) 지인들을 통해 집필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가 병석에서 지난 사건들을 술회하면 지인들이 메모를 해 책으로 엮어내는 형식이다.

그러나 김씨가 약속했던 회고록(또는 비망록)은 그가 죽은 지 1년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연예계는 물론 정·재계와 관련한 각종 비화가 담길 것으로 예상됐던 '김태촌 비망록'은 출간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편 주먹계 원로인 신상현씨는 김씨에 대해 "거칠었지만 성격이 직선적이고 사내다운 면이 있었다"며 "그가 오랜 기간 보스로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 신세 진 정치·경제·연예계 인물이 셀 수 없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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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