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특집> ⑥로또명당 리스트

  • 최현경 mw2871@ilyosisa.co.kr
  • 등록 2013.12.30 1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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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을 ‘뻥’ 튀겨주는 대박 가게들

[일요시사=사회팀]다가오는 새해에도 ‘대박’의 희망은 놓을 수가 없다. 종이 한 장으로 인생역전의 꿈을 꾸는 사람들의 필수 코스가 있다. 이른바 ‘로또 명당’이다. 구매자가 많을수록 당첨자가 나올 확률이 높은 당연한 사실을 알면서도 혹시나 특별한 기운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찾는 이들로 로또 명당 앞은 연일 붐빈다. 전국의 6000개가 넘는 로또 판매점들 사이에서 똥 꿈, 조상 꿈 등 각종 꿈들을 ‘대박 꿈’으로 바꾸려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전국 곳곳의 로또 명당들을 소개한다.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40분, 사람들이 TV 앞으로 모인다. 2002년 12월부터 시작해 지난 22일 577회를 맞이한 로또 복권의 1등 당첨자는 총 3384명이다. 이들이 로또복권 당첨금으로 받은 금액만 총 7조870억2920만337원에 이른다.

대한민국의 식지 않는 로또 열풍에 ‘로또 명당’으로 불리는 일부 로또 판매점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로또 복권으로 대박을 노리는 사람은 물론, 로또 명당을 구경하기 위해 전국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도 있다.

독보적인 수치로 로또복권의 1등 당첨자를 배출한 일부 로또 명당들은 연간 100억원 이상의 로또 복권을 판매하기도 한다. 판매 수익의 5.5%는 로또 판매점 주인의 몫으로 돌아간다. 때문에 수억원 대의 연봉(?)을 얻는 로또 명당 주인들 또한 1등 당첨자를 배출하기 위한 노력이 돋보인다. 일부 로또 명당 주인은 1등 당첨자가 나오는 날 특별한 꿈을 꾸는가 하면 기념패를 달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도 한다. 

부동의 1위
부일카서비스

우리나라에서 로또 복권 1등 당첨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로또 판매점은 부산 동구 범일동에 위치한 부일카서비스다. 가게를 찾는 이들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문 앞의 ‘이번엔 당신입니다’라는 문구다. 일찍부터 마니아들 사이에서 로또 명당으로 소문나있는 부일카서비스는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멀리 사는 사람들을 위해 우편택배나 퀵 서비스로도 복권을 판매하기도 한다.


부일카서비스가 위치한 지역이 용의 꼬리에 해당해 많은 1등 당첨자가 배출될 것이라고 한 역술가의 예언 덕분일까. 로또 복권 전문사이트인 ‘마이고 로또’에 따르면 부일카서비스는 지난 5월18일 제546회 추첨에서 마지막으로 1등 당첨자를 배출한 것을 포함해 총 27명의 1등을 배출한 전국 최고의 로또 명당이다.

이제는 부산의 필수 관광코스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로또를 사가기도 한다. 부일카서비스는 1등 배출점 2순위인 ‘스파’보다 훨씬 많은 당첨자를 배출하면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96억원 이상의 로또를 판매한 부일카서비스는 수수료만 4억원 이상을 얻었다.

전국 최고 부산 범일동 ‘부일카서비스’ 
1등 27명…1주 판매수익 수억원에 달해

부산에 부일카서비스가 있다면 서울에는 ‘스파’가 있다. 부일카서비스와 함께 국내 최고의 명당이라 평가받는 로또 전문점 스파는 노원구 상계동에 위치해있다. ‘마이고 로또’ 사이트에 따르면 스파는 총 20명의 1등 당첨자를 배출했고, 한 주 매출만 2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지난해 스파의 로또 판매액은 168억 이상으로 가게의 몫으로 돌아가는 수수료만 8억이 넘는다. 스파 주인 김씨의 말에 따르면 개점 이후 첫 6개월 동안 벌어들인 수입은 적었다고 한다. 이를 고심하던 김씨는 전국 로또 판매점 중 최초로 간판을 걸고, 직접 신문사를 돌아다니면서 가게 홍보물을 배포했다. 




그렇게 개점한 지 1년 만인 2003년 11월 15일 제50회차 추첨에서 첫 1등 당첨자를 배출했다. 이후 제61회, 제116회, 제165회, 제199회 등 연이어 1등 당첨자를 배출하면서 로또 마니아들 사이에서 명당으로 입소문을 탔다. 2010년 6월19일 제394회차에는 106억원의 1등 당첨자를 배출하면서 로또 명당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하루 6000명 이상의 로또 복권 구매 고객이 찾아 편의점을 접고 로또전문점으로 전향했다. 지난 5월 제546회차 이후 1등 당첨자가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던 스파에서는 지난 7일(제575회)과 14일(576회)에 연이어 1등 당첨자를 배출하면서 다시 화제를 모았다.

부일카서비스보다 1등 당첨자 수는 적지만 60번 이상의 2등 당첨자를 배출한 스파는 로또 판매량과 수익만큼은 전국 1위다.

물, 버드나무 덕분
천하명당 복권방


매일신문에 의하면, 과거 한 풍수지리학자는 스파를 “중랑천이 암궁수(뒤쪽에서 안아주는 보이지 않는 물)가 되어 (스파를) 에워싸고 있으며 수락산 산맥이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 최고의 명당”이라고 평했다. 이어 “암궁수가 감싸안는 자리는 굉장히 귀하며 판매점이 네거리 모서리에 위치해 도로까지 암궁수 역할을 한다”며 “편의점으로 운영되는 가게 내부 인테리어도 풍수지리적으로 잘 배치돼 있어 돈이 몰리는 형상”이라고 덧붙였다.
스파의 명성을 듣고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신비한 기운을 내뿜는 관광지(?)가 되기도 한다.

스파 주인 김씨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본인도 로또를 하냐”는 질문에 대해 “(로또 판매점) 운영 초기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에 나오셔서 복권 4장을 구입한 적이 있다. 그런데 희한하게 나는 안 되고 우리 편의점에서 거액의 1등 당첨자가 나왔다. 그 이후로도 아버지가 3∼4번 꿈에 나오셨는데 그 때마다 나는 꽝이었고, 신기하게도 우리 집에서 1등 당첨자가 나오더라”고 말했다. 이제는 로또 복권 1등 당첨자를 배출하는 것이 일상생활같다는 김씨는 더 이상 특별한 꿈을 꾸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각각 27번과 20번의 1등 당첨자를 배출한 부동의 1, 2위 부일카서비스와 스파를 제외한 전국의 타 로또 명당들은 대부분이 8번 이하의 비슷한 수치의 1등 당첨자를 배출하고 있다.

혹시 특별한 기운?
연일 줄서는 진풍경

부일카서비스와 스파를 뒤이은 로또 명당으로는 로또휴게실, 제이복권방, 까치복권방, 당산의 한 가판점 등이 있다.

경남 양산시 평산동 31-5에 위치한 ‘GS25 편의점 양산문성점’도 유명한 로또 판매점 중 하나다. 8번의 1등 당첨자를 배출한 GS25 양산문성점은 한 번에 다섯 명의 1등 당첨자를 내 화제가 됐다. 2009년 3월7일에 방송된 제327회차에는 총 12명의 1등 당첨자가 나왔다. 이 중 5명은 GS25 양산문성점에서 배출됐는데 추후 로또 복권 공식 수탁사업자인 나눔로또 측에 의해 1명의 남성 당첨자 A씨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로또 복권은 보통 한 장에 다섯 개의 게임을 할 수 있는데 327회의 1등 주인공인 A씨는 한 장의 티켓에 6, 12, 13 17, 32, 44의 숫자를 다섯 게임에 동일하게 입력했고, 모두 1등에 당첨되면서 5번의 기록을 한 번에 세웠다. 당시 1등 당첨금은 1인당 약 8억8200만원으로 A씨는 이의 다섯 배인 44억원 이상의 당첨금을 받았다. 

이에 GS25 양산 문성점 주인인 박씨는 “3년 전 점포를 인수했는데 1등 당첨이 3차례나 나와 손님들에게 행운을 줄 수 있어 기쁘다”며 “점포 인수 전에도 2등 당첨은 여러 번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GS25 양산 문성점은 앞선 제301회와 제283회에서 1등 당첨자를 배출한 적이 있어 로또 명당으로 등극했다.

관광지로 부상한
부산의 ‘스파’

충남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에 위치한 로또 명당 ‘천하명당 복권방’은 2002년 12월 개점해 2003년 11월 제48회를 시작으로 제63회, 제68회, 제107회, 제132회, 제242회, 제258회, 제561회차에 1등 당첨자를 배출했다.

천하명당 복권방은 ‘물 사건’이 있을 때마다 로또 복권의 1등 당첨자가 나온다는 특이한 징크스가 있다. 주인 박씨의 말에 따르면 첫 당첨자를 배출한 제48회에는 정원에 있는 지하수 배관 꼭지가 갑자기 터졌다.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당첨자가 나올 때마다 보일러 배관, 화장실 배관이 터졌고 제242회차에는 보일러실에 있는 기름 탱크에서 기름이 새어나왔다고.




박씨는 로또 명당의 비결로 정원에 있는 버드나무를 베어버린 것을 이유로 들기도 했다. 과거 한 풍수가가 “집안에 집보다 큰 나무가 있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말하자 박씨는 버드나무를 베어버렸고, 그 이후 1등 당첨자가 나왔다고 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후로도 천하명당 복권방은 인기를 누렸다. 천하명당 복권방이 충남의 로또 명당으로 알려지면서 서해안 관광 필수코스로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가하면 계좌이체로 값을 지불하고 로또복권을 배송받는 사람들도 있다.


필수 관광코스로 
전국 각지서 찾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청주 버스터미널 근처에 위치한 ‘대박찬스 복권방’도 손꼽히는 로또 명당 중 하나다. 평균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로또 복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로또 복권 전문사이트인 ‘마이고 로또’에 의하면 대박찬스 복권방은 지난해 12월1일 제522회 추첨식에서 1등 당첨자를 배출했다. 이후 제15회, 제30회, 제104회, 제129회, 제285회, 제522회에서 연달아 당첨자를 배출하면서 전국에 있는 사람들의 방문하게끔 만들었다.

대박찬스 복권방에는 첫 당첨자가 나온 제15회 추첨식과 관련해 재밌는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다. 처음으로 1등 당첨자를 배출한 제15회차 추첨식에서는 3, 4, 16, 30, 31, 37의 번호 조합으로 한 부부가 당첨금 170억을 받았다. 부부에게 큰 돈을 안겨준 장본인은 그들의 어린 딸이었다. 로또 번호가 적힌 쪽지를 딸아이에게 고르게 한 뒤, 그 번호를 입력해 당첨금을 얻은 것이다.

딸아이가 170억을
대박찬스 복권방

청주의 로또 명당 주인 이씨는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 세가 많이 나가더라도 유동인구가 많고 터가 좋은 곳으로 골라서 시작한 것이 이렇게 전국적인 로또 명당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며 성공비결을 밝혔다. 이어 “올해는 아직까지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올해 안에 7번째 1등 당첨자가 나와 전국 최고의 로또 명당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로또복권 1등, 2등을 배출한 로또 명당 등에 대한 기타 정보는 ‘나눔로또 홈페이지’(http://www.nlotto.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현경 기자 <mw287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대박 판매점 주인 꿈은?

“용과 호랑이, 표범이…”

로또 명당을 찾는 이들에게 ‘신’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로또 판매점 주인들, 이 중에서도 꿈을 통해 로또복권 1등 당첨자를 점지해주는 로또 명당 주인이 있다.

대구시 서구 평리동에 위치한 ‘세진전자통신’은 제50회에 첫 1등 당첨자를 배출했다. 이후로도 몇 번의 1등 당첨자와 수십 명의 2등 당첨자가 나와 로또 명당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세진전자통신을 더 유명하게 만든 건 사장 전재운 씨다.

전씨는 꿈을 통해 총 세 번의 1등과 9번의 2등을 배출했다. 그의 기억에 남는 꿈은 첫 1등을 배출하기 전 꾼 꿈이다. 화요일에 용 다섯 마리가 자욱한 안개를 뚫고 나타나 전씨의 몸을 휘감는 꿈을 꾼 그는 수요일, 목요일을 연달아 꿈을 꿨다.

호랑이와 표범이 자신을 덮치는 꿈을 꾼 다음 날 안개가 걷힌 뒤 하늘에서 떨어진 낙엽이 돈으로 바뀌어 수북히 쌓인 꿈을 꿨고, 일주일 뒤 그의 가게에서 1등 당첨자가 나왔다. 전씨는 “가게에 물난리가 나는 꿈 등을 꾸고 나면 1등 혹은 2등이 터졌다. 특히 꿈에서 특정 대상을 보면 관련된 숫자가 어김없이 당첨 번호로 등장했다”며 “꿈 속에서 38선을 본 뒤 추첨한 로또 복권에서 38번 이하 숫자만 당첨번호로 등장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로또에 당첨되면?
“빚부터 갚겠다”

복권과 관련된 이색 설문조사가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달 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는 직장인 882명을 대상으로 복권 구매와 관련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전체 응답자 중 69.8%에 해당하는 직장인 615명은 평소에도 복권을 구매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복권 구매 개수로는 1개(58%), 2개(21.4%), 5개(12.5%), 3개(6.2%), 4개(1.8%)등 순이었다. 주로 구매하는 복권으로는 다른 복권보다 상대적으로 당첨금이 많은 로또 복권이 1위로 44%를 차지했다. 이어 연금복권(42.8%), 스포츠토토(9.8%), 즉석복권(2.1%), 인터넷복권(0.2%)이 뒤를 이었다.

당첨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의 26.9%가 ‘저축이나 부동산·주식 투자를 하겠다’가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대출금 상환 및 빚 탕감(26.5%), 창업이나 개인사업 자금(16%), 가족 분배(8.5%), 불우이웃 돕기·기부자금(7.3%), 쇼핑·유흥비(6.4%), 해외 이민 자금(5.2%) 순으로 응답했다. 이 밖에 복권 1등에 당첨된 상황에서 현재 직장생활을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612명(69.4%)이 ‘그만 두겠다’고 답했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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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