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특집> ⑥로또명당 리스트

  • 최현경 mw2871@ilyosisa.co.kr
  • 등록 2013.12.30 1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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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을 ‘뻥’ 튀겨주는 대박 가게들

[일요시사=사회팀]다가오는 새해에도 ‘대박’의 희망은 놓을 수가 없다. 종이 한 장으로 인생역전의 꿈을 꾸는 사람들의 필수 코스가 있다. 이른바 ‘로또 명당’이다. 구매자가 많을수록 당첨자가 나올 확률이 높은 당연한 사실을 알면서도 혹시나 특별한 기운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찾는 이들로 로또 명당 앞은 연일 붐빈다. 전국의 6000개가 넘는 로또 판매점들 사이에서 똥 꿈, 조상 꿈 등 각종 꿈들을 ‘대박 꿈’으로 바꾸려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전국 곳곳의 로또 명당들을 소개한다.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40분, 사람들이 TV 앞으로 모인다. 2002년 12월부터 시작해 지난 22일 577회를 맞이한 로또 복권의 1등 당첨자는 총 3384명이다. 이들이 로또복권 당첨금으로 받은 금액만 총 7조870억2920만337원에 이른다.

대한민국의 식지 않는 로또 열풍에 ‘로또 명당’으로 불리는 일부 로또 판매점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로또 복권으로 대박을 노리는 사람은 물론, 로또 명당을 구경하기 위해 전국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도 있다.

독보적인 수치로 로또복권의 1등 당첨자를 배출한 일부 로또 명당들은 연간 100억원 이상의 로또 복권을 판매하기도 한다. 판매 수익의 5.5%는 로또 판매점 주인의 몫으로 돌아간다. 때문에 수억원 대의 연봉(?)을 얻는 로또 명당 주인들 또한 1등 당첨자를 배출하기 위한 노력이 돋보인다. 일부 로또 명당 주인은 1등 당첨자가 나오는 날 특별한 꿈을 꾸는가 하면 기념패를 달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도 한다. 

부동의 1위
부일카서비스

우리나라에서 로또 복권 1등 당첨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로또 판매점은 부산 동구 범일동에 위치한 부일카서비스다. 가게를 찾는 이들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문 앞의 ‘이번엔 당신입니다’라는 문구다. 일찍부터 마니아들 사이에서 로또 명당으로 소문나있는 부일카서비스는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멀리 사는 사람들을 위해 우편택배나 퀵 서비스로도 복권을 판매하기도 한다.


부일카서비스가 위치한 지역이 용의 꼬리에 해당해 많은 1등 당첨자가 배출될 것이라고 한 역술가의 예언 덕분일까. 로또 복권 전문사이트인 ‘마이고 로또’에 따르면 부일카서비스는 지난 5월18일 제546회 추첨에서 마지막으로 1등 당첨자를 배출한 것을 포함해 총 27명의 1등을 배출한 전국 최고의 로또 명당이다.

이제는 부산의 필수 관광코스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로또를 사가기도 한다. 부일카서비스는 1등 배출점 2순위인 ‘스파’보다 훨씬 많은 당첨자를 배출하면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96억원 이상의 로또를 판매한 부일카서비스는 수수료만 4억원 이상을 얻었다.

전국 최고 부산 범일동 ‘부일카서비스’ 
1등 27명…1주 판매수익 수억원에 달해

부산에 부일카서비스가 있다면 서울에는 ‘스파’가 있다. 부일카서비스와 함께 국내 최고의 명당이라 평가받는 로또 전문점 스파는 노원구 상계동에 위치해있다. ‘마이고 로또’ 사이트에 따르면 스파는 총 20명의 1등 당첨자를 배출했고, 한 주 매출만 2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지난해 스파의 로또 판매액은 168억 이상으로 가게의 몫으로 돌아가는 수수료만 8억이 넘는다. 스파 주인 김씨의 말에 따르면 개점 이후 첫 6개월 동안 벌어들인 수입은 적었다고 한다. 이를 고심하던 김씨는 전국 로또 판매점 중 최초로 간판을 걸고, 직접 신문사를 돌아다니면서 가게 홍보물을 배포했다. 




그렇게 개점한 지 1년 만인 2003년 11월 15일 제50회차 추첨에서 첫 1등 당첨자를 배출했다. 이후 제61회, 제116회, 제165회, 제199회 등 연이어 1등 당첨자를 배출하면서 로또 마니아들 사이에서 명당으로 입소문을 탔다. 2010년 6월19일 제394회차에는 106억원의 1등 당첨자를 배출하면서 로또 명당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하루 6000명 이상의 로또 복권 구매 고객이 찾아 편의점을 접고 로또전문점으로 전향했다. 지난 5월 제546회차 이후 1등 당첨자가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던 스파에서는 지난 7일(제575회)과 14일(576회)에 연이어 1등 당첨자를 배출하면서 다시 화제를 모았다.

부일카서비스보다 1등 당첨자 수는 적지만 60번 이상의 2등 당첨자를 배출한 스파는 로또 판매량과 수익만큼은 전국 1위다.

물, 버드나무 덕분
천하명당 복권방


매일신문에 의하면, 과거 한 풍수지리학자는 스파를 “중랑천이 암궁수(뒤쪽에서 안아주는 보이지 않는 물)가 되어 (스파를) 에워싸고 있으며 수락산 산맥이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 최고의 명당”이라고 평했다. 이어 “암궁수가 감싸안는 자리는 굉장히 귀하며 판매점이 네거리 모서리에 위치해 도로까지 암궁수 역할을 한다”며 “편의점으로 운영되는 가게 내부 인테리어도 풍수지리적으로 잘 배치돼 있어 돈이 몰리는 형상”이라고 덧붙였다.
스파의 명성을 듣고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신비한 기운을 내뿜는 관광지(?)가 되기도 한다.

스파 주인 김씨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본인도 로또를 하냐”는 질문에 대해 “(로또 판매점) 운영 초기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에 나오셔서 복권 4장을 구입한 적이 있다. 그런데 희한하게 나는 안 되고 우리 편의점에서 거액의 1등 당첨자가 나왔다. 그 이후로도 아버지가 3∼4번 꿈에 나오셨는데 그 때마다 나는 꽝이었고, 신기하게도 우리 집에서 1등 당첨자가 나오더라”고 말했다. 이제는 로또 복권 1등 당첨자를 배출하는 것이 일상생활같다는 김씨는 더 이상 특별한 꿈을 꾸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각각 27번과 20번의 1등 당첨자를 배출한 부동의 1, 2위 부일카서비스와 스파를 제외한 전국의 타 로또 명당들은 대부분이 8번 이하의 비슷한 수치의 1등 당첨자를 배출하고 있다.

혹시 특별한 기운?
연일 줄서는 진풍경

부일카서비스와 스파를 뒤이은 로또 명당으로는 로또휴게실, 제이복권방, 까치복권방, 당산의 한 가판점 등이 있다.

경남 양산시 평산동 31-5에 위치한 ‘GS25 편의점 양산문성점’도 유명한 로또 판매점 중 하나다. 8번의 1등 당첨자를 배출한 GS25 양산문성점은 한 번에 다섯 명의 1등 당첨자를 내 화제가 됐다. 2009년 3월7일에 방송된 제327회차에는 총 12명의 1등 당첨자가 나왔다. 이 중 5명은 GS25 양산문성점에서 배출됐는데 추후 로또 복권 공식 수탁사업자인 나눔로또 측에 의해 1명의 남성 당첨자 A씨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로또 복권은 보통 한 장에 다섯 개의 게임을 할 수 있는데 327회의 1등 주인공인 A씨는 한 장의 티켓에 6, 12, 13 17, 32, 44의 숫자를 다섯 게임에 동일하게 입력했고, 모두 1등에 당첨되면서 5번의 기록을 한 번에 세웠다. 당시 1등 당첨금은 1인당 약 8억8200만원으로 A씨는 이의 다섯 배인 44억원 이상의 당첨금을 받았다. 

이에 GS25 양산 문성점 주인인 박씨는 “3년 전 점포를 인수했는데 1등 당첨이 3차례나 나와 손님들에게 행운을 줄 수 있어 기쁘다”며 “점포 인수 전에도 2등 당첨은 여러 번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GS25 양산 문성점은 앞선 제301회와 제283회에서 1등 당첨자를 배출한 적이 있어 로또 명당으로 등극했다.

관광지로 부상한
부산의 ‘스파’

충남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에 위치한 로또 명당 ‘천하명당 복권방’은 2002년 12월 개점해 2003년 11월 제48회를 시작으로 제63회, 제68회, 제107회, 제132회, 제242회, 제258회, 제561회차에 1등 당첨자를 배출했다.

천하명당 복권방은 ‘물 사건’이 있을 때마다 로또 복권의 1등 당첨자가 나온다는 특이한 징크스가 있다. 주인 박씨의 말에 따르면 첫 당첨자를 배출한 제48회에는 정원에 있는 지하수 배관 꼭지가 갑자기 터졌다.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당첨자가 나올 때마다 보일러 배관, 화장실 배관이 터졌고 제242회차에는 보일러실에 있는 기름 탱크에서 기름이 새어나왔다고.




박씨는 로또 명당의 비결로 정원에 있는 버드나무를 베어버린 것을 이유로 들기도 했다. 과거 한 풍수가가 “집안에 집보다 큰 나무가 있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말하자 박씨는 버드나무를 베어버렸고, 그 이후 1등 당첨자가 나왔다고 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후로도 천하명당 복권방은 인기를 누렸다. 천하명당 복권방이 충남의 로또 명당으로 알려지면서 서해안 관광 필수코스로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가하면 계좌이체로 값을 지불하고 로또복권을 배송받는 사람들도 있다.


필수 관광코스로 
전국 각지서 찾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청주 버스터미널 근처에 위치한 ‘대박찬스 복권방’도 손꼽히는 로또 명당 중 하나다. 평균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로또 복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로또 복권 전문사이트인 ‘마이고 로또’에 의하면 대박찬스 복권방은 지난해 12월1일 제522회 추첨식에서 1등 당첨자를 배출했다. 이후 제15회, 제30회, 제104회, 제129회, 제285회, 제522회에서 연달아 당첨자를 배출하면서 전국에 있는 사람들의 방문하게끔 만들었다.

대박찬스 복권방에는 첫 당첨자가 나온 제15회 추첨식과 관련해 재밌는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다. 처음으로 1등 당첨자를 배출한 제15회차 추첨식에서는 3, 4, 16, 30, 31, 37의 번호 조합으로 한 부부가 당첨금 170억을 받았다. 부부에게 큰 돈을 안겨준 장본인은 그들의 어린 딸이었다. 로또 번호가 적힌 쪽지를 딸아이에게 고르게 한 뒤, 그 번호를 입력해 당첨금을 얻은 것이다.

딸아이가 170억을
대박찬스 복권방

청주의 로또 명당 주인 이씨는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 세가 많이 나가더라도 유동인구가 많고 터가 좋은 곳으로 골라서 시작한 것이 이렇게 전국적인 로또 명당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며 성공비결을 밝혔다. 이어 “올해는 아직까지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올해 안에 7번째 1등 당첨자가 나와 전국 최고의 로또 명당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로또복권 1등, 2등을 배출한 로또 명당 등에 대한 기타 정보는 ‘나눔로또 홈페이지’(http://www.nlotto.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현경 기자 <mw287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대박 판매점 주인 꿈은?

“용과 호랑이, 표범이…”

로또 명당을 찾는 이들에게 ‘신’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로또 판매점 주인들, 이 중에서도 꿈을 통해 로또복권 1등 당첨자를 점지해주는 로또 명당 주인이 있다.

대구시 서구 평리동에 위치한 ‘세진전자통신’은 제50회에 첫 1등 당첨자를 배출했다. 이후로도 몇 번의 1등 당첨자와 수십 명의 2등 당첨자가 나와 로또 명당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세진전자통신을 더 유명하게 만든 건 사장 전재운 씨다.

전씨는 꿈을 통해 총 세 번의 1등과 9번의 2등을 배출했다. 그의 기억에 남는 꿈은 첫 1등을 배출하기 전 꾼 꿈이다. 화요일에 용 다섯 마리가 자욱한 안개를 뚫고 나타나 전씨의 몸을 휘감는 꿈을 꾼 그는 수요일, 목요일을 연달아 꿈을 꿨다.

호랑이와 표범이 자신을 덮치는 꿈을 꾼 다음 날 안개가 걷힌 뒤 하늘에서 떨어진 낙엽이 돈으로 바뀌어 수북히 쌓인 꿈을 꿨고, 일주일 뒤 그의 가게에서 1등 당첨자가 나왔다. 전씨는 “가게에 물난리가 나는 꿈 등을 꾸고 나면 1등 혹은 2등이 터졌다. 특히 꿈에서 특정 대상을 보면 관련된 숫자가 어김없이 당첨 번호로 등장했다”며 “꿈 속에서 38선을 본 뒤 추첨한 로또 복권에서 38번 이하 숫자만 당첨번호로 등장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로또에 당첨되면?
“빚부터 갚겠다”

복권과 관련된 이색 설문조사가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달 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는 직장인 882명을 대상으로 복권 구매와 관련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전체 응답자 중 69.8%에 해당하는 직장인 615명은 평소에도 복권을 구매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복권 구매 개수로는 1개(58%), 2개(21.4%), 5개(12.5%), 3개(6.2%), 4개(1.8%)등 순이었다. 주로 구매하는 복권으로는 다른 복권보다 상대적으로 당첨금이 많은 로또 복권이 1위로 44%를 차지했다. 이어 연금복권(42.8%), 스포츠토토(9.8%), 즉석복권(2.1%), 인터넷복권(0.2%)이 뒤를 이었다.

당첨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의 26.9%가 ‘저축이나 부동산·주식 투자를 하겠다’가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대출금 상환 및 빚 탕감(26.5%), 창업이나 개인사업 자금(16%), 가족 분배(8.5%), 불우이웃 돕기·기부자금(7.3%), 쇼핑·유흥비(6.4%), 해외 이민 자금(5.2%) 순으로 응답했다. 이 밖에 복권 1등에 당첨된 상황에서 현재 직장생활을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612명(69.4%)이 ‘그만 두겠다’고 답했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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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