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 사람들 릴레이인터뷰 3> 설 훈 전 의원

“‘스승’ 김대중,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군사법정에서 처음 만난 학생운동가와 김대중 전 대통령
영남인사로는 처음으로 동교동 간 것은 “재야 부탁 때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동교동 사람들이 주목받고 있다. 오랜 시간 김 전 대통령의 곁에 머물면서 그의 삶을 생생히 목도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세간에 알려진 ‘김대중’보다 더 따뜻했던, 눈물 많고 정 많은 김 전 대통령을 보았고 민주화를 위해 끝없이 투쟁한 인동초 삶의 곁에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의 유훈도 이들에게는 평소 들어오던 말일 뿐이다. 동교동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의 숨겨진 일면들과 그가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되새겨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호남의 맹주’였다. 당연하게도 그의 곁에는 호남 출신 인사들이 가득했다. 때문에 영남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동교동계가 된 설훈 전 의원이 가지는 의미는 각별하다. 권노갑 고문이 ‘동교동계의 맏형’으로 더 잘 알려진 것처럼 ‘동교동계의 막내’라는 별칭이 더 정감있게 다가오는 설훈 전 의원. 지난 9일 연남동 사무실에서 그의 맛깔 나는 입담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다. 다음은 설 전 의원과의 일문일답.

- DJ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나.
▲ 김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은 영원히 기억될 만한 순간이었다. 1980년 김 전 대통령이 내란 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공범으로 군사법정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나는 학생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김 전 대통령과 공모를 했다는 죄목이었다.
24명의 공범들이 같이 재판을 받았는데 23명이 재판장에 앉아 있고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헌병들이 앞만 보고 앉아 있으라고 했다. 하지만 궁금했다. 신군부가 사형시키려 작정한 ‘김대중’이라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알고 싶었다. 헌병의 위협에도 고개를 돌려 재판장으로 들어오는 김 전 대통령을 봤다.
흰 수의를 입은 김 전 대통령은 양쪽 팔을 잡혀 재판장에 들어섰다. 신문이나 방송 말고 김 전 대통령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완벽한 무표정이었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분노하고 있다거나, 어떤 감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유명한 이들을 좌우로 배치해 사진을 찍고 순서대로 앉았는데 김 전 대통령 바로 뒤에 앉게 됐다. 아침부터 밤까지 한 달 이상 재판은 계속됐고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 이후 DJ는 수감생활 후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어떻게 인연이 이어지게 됐는지 궁금하다.
▲ 김 전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구명운동으로 1982년 석방된 직후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은 1985년 12대 총선을 4일 앞두고서다. 그의 귀국은 신민당 2·12 총선에서 당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귀국 직후 연행돼 가택연금에 들어갔다. 한 달 뒤인 3월부터 연금이 풀렸다. 4월1일, 나는 김 전 대통령 곁에서 재야와 김 전 대통령의 다리 역할을 해 달라는 재야의 요청으로 김 전 대통령의 비서로 동교동에 머물게 됐다.

- 동교동계에 영남 출신 인사가 속하게 된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 동교동에 영남 출신 비서는 처음이다. 하지만 내가 동교동에 들어간 이후 영남 인사들이 많이 들어왔다.

- DJ는 어떤 분이었나.
▲ 한마디로 ‘스승’이었다. 동교동에서는 김 전 대통령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난 왜 그렇게 부르는지 모르고 덩달아 ‘선생님’이라고 했다. 하지만 함께 지내다보니 왜 그렇게 부르는지 절로 알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은 항상 남의 모범이 되려 했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으니 항상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했고 항상 “배워야 해”라고 말씀하시며 주위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본인도 스승으로서의 위치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공부했다. 스스로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 전 대통령은 즉흥 연설을 해도 받아 적으면 그대로 원고가 될 정도로 논리정연하고 명쾌했다. 뛰어나게 타고나기도 했지만 철저하게 준비했다. 연설을 한다고 하면 메모를 하고 고치고 또 고쳤다. 굉장한 정성을 들였다. 모든 일에 혼신의 노력을 했다.
예전에는 ‘김대중’이라는 가정교사가 있어서 쉬웠다.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보고 ‘가자’하면 그게 정답이었다. 지금은 참 답답하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김 전 대통령은 상황을 정확하게 봤다. 시대의 양심과 민족이 가야 할 방향을 알고 계셨다.

- 어떤 것을 배워야 한다고 하신 것인가.
▲ 정치적 상황이나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이었다. ‘정도가 아니면 가지 말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가 불리한 입장에 처한 일이 있었다. 그 일을 다른 방향으로 알리는 것에 대해 논의했는데 김 전 대통령이 “무슨 짓이냐”고 호통을 쳤다. 사가들이 자신의 발자국을 따라올 텐데 사기 쳤다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분의 삶의 원칙이었다.
‘부자도 되지 말고 가난하게도 살지 말라’고도 하셨다. 부자가 되면 돈의 노예가 돼서 돈에 휘둘리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정치인은 돈의 정거장이 돼야 한다고 하셨다. 정치자금을 만들 수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자신이 아닌 국민에게 돌려줘야 하는 ‘정거장’이 되라는 것이었다.


- 동교동에서의 생활은 어떠했나.
▲ 24시간을 함께했다. 심지어 김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생활하는 안방에서 사무를 본 적도 있다. 동교동에서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는 사생활이 없었다. 다리를 굽히기 힘든 김 전 대통령의 목욕을 도와주거나 식사를 같이하고 잠도 같이 자다 보니 김 전 대통령이 ‘아’하거나 ‘어’해도 무슨 뜻인지 알 정도였다.

-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다 보게 되면 존경하기가 더 힘들었을 수 있지 않나.
▲ 인간적인 면이나 약점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 전 대통령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른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시는 분이셨다.

- 당시 DJ 모습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 김 전 대통령은 귀국 후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을 했다. 상도동계와 번갈아가며 매일 연설을 했는데 세 번에 한 번은 진한 감동을 줬다. 말이라는 게 진심을 담고 있어야 감동을 주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애절함을 가지고 있었고 매일 연설을 하는 중에도 들을 때마다 감동을 줬다.

- ‘사적인’ DJ는 어떠했나.
▲ 동교동에는 열댓 명이 머물렀다. 비서, 보좌관, 운전기사 외에도 교통사고 등으로 위장해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경호원이 항상 함께 하게 됐다. 일반 가정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주말이면 가족들을 위한 곳이 됐다. 아들들은 다 연애결혼을 했는데 며느리들을 잘 들였다.
이 중 김 전 대통령의 둘째 며느리, 김홍업 전 의원의 부인은 5공 시절 김 전 의원과 결혼했다. 부친이 감사원 부원장이었는데 딸이 야당 수장인 김 전 대통령의 아들과 결혼 한다고 하니 크게 반대했다. 김 전 대통령이야 아들들에게 “백인이든 흑인이든 좋은 사람 있으면 결혼해라. 사랑하면 됐지 뭐가 문제냐”는 분이었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결혼해라”라고 했다. 그러나 며느리 집안의 반대는 계속 이어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뭐 그런 것 가지고 그러냐”고 허락하고 나서야 맺어졌다.

- DJ가 좋아하던 것들은 어떤 것인가.
▲ 김 전 대통령은 꽃과 강아지, 손자들하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TV프로그램 중에서는 <동물의 왕국>을 즐겨보셨다. 창이나 판소리, 문학이나 연극, 영화 등 문화에 대한 갈망이 컸다. 부드럽고 여린 분이셨다. 불의에는 목숨을 걸 정도로 강직하게 대항하셨지만 개인적으로 부드럽고 온유한 분이셨다.
농담도 잘하셨다. 김 전 대통령이 농담을 하면 이 여사는 진담처럼 받아쳤다. 보는 사람들은 그게 더 재미있었다.

- DJ 하면 ‘책’이 떠오른다.
▲ 밤 10시쯤이면 동교동에 손님이 끊긴다. 그러면 김 전 대통령은 서재로 내려가 글을 쓰거나 책을 읽다 12시 전후로 올라왔다. 술도 안 드시니 365일 반복되는 습관이었다. 감옥에서는 아예 매시간을 책과 함께하셨으니 독서량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김 전 대통령이 구속될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김 전 대통령이 서재로 내려와 보라고 하셨다. 갔더니 노란테이프를 조금씩 자르라고 해서 자르고 책장의 책에 표시를 하라고 해서 표시했다. 알고 보니 감옥에 들어갈 때 가지고 들어갈 책이었다. 구속된다고 하니 책부터 챙기셨던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책을 읽을 때 “자네 관점을 가지고 책을 봐. 책에 나오는 내용을 맹종하려고 하지 말고 무엇이 맞는 말인지 무엇이 그른 말인지는 생각하면서 봐야 해”라며 자신만의 관점을 강조하셨다.
- DJ 최대의 업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IMF 극복, 사회복지 개선, 남북관계 개선, IT사업을 일으킨 것 등이 김 전 대통령의 업적으로 꼽힌다. 하지만 나는 김 전 대통령의 최대 업적은 ‘한류의 원조’라고 생각한다.
난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한류’도 문화사적으로 문제를 봐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오르기 전과 후, 한국 영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김 전 대통령은 집권 후 문화적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며 소재에 대한 제한 등 정책적인 족쇄를 풀었다. 문화진흥청을 세웠다. 문화 예산을 GNP 대비 1% 수준으로 늘렸다. 이를 통해 한류가 통할 수 있는 틀을 마련했다.
한류, 한국의 문화가 세계로 나갈 원동력, 바탕을 마련한 것, 그것이 김 전 대통령 최대의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 한류를 떠올리면 한일 문화개방이 연상된다.
▲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인들은 유교를 받아들여 주자학에 중국보다 더 독하게 빠져들었다. 기독교를 받아들여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세웠고, 공산주의는 김일성 국방위원장이 독하게 했지 않냐”고 했다.
한국인은 양서류 같다. 한대에서는 한대, 열대에서는 열대성으로 변하는 특이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일본문화 개방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문화를 받아들여서 더 큰 것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나쁜 것은 버릴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민족에 대한 자신감과 국민에 대한 믿음,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 있었다.

- IMF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금모으기 운동’과 관련,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 IMF 관리체제는 경제식민지와 같았다. 달러가 모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며칠 후 나를 불러 소비자단체와 만남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간담회가 시작되고 소비자보호원의 보고 후 전국 20여개 소비자단체장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했다. 기자들은 거기까지 보고 기사작성을 위해 다 자리를 빠져 나갔다.
단체장들의 말을 다 들은 김 전 대통령은 “사실 오시라고 한 것은 부탁을 하기 위해서”라며 “달러가 부족해 국난 위기에 처했는데 금은 달러와 교환이 쉽다. 장롱에 금붙이들이 있는데 이를 끄집어 내 달러로 바꿔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금모으기 운동’을 해달라”고 했다.

- 이 내용은 알려지지 않지 않았나.
▲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을 브리핑하기 위해 기자실을 찾았더니 이미 기자들이 다 가버린 상태였다. 순간적으로 기사가 나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대통령 당선자의 지시로 금모으기 운동을 한다는 것은 자칫 좋지 않게 비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금모으기 운동은 그해 11월 검찰에서 시작됐다 흐지부지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정확하지 않다.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이 금모으기 운동을 제안한 것이 본인의 생각이었는지 다른 사람의 조언이었는지 영원히 확인되지 않을 숙제로 남게 됐다.
김 전 대통령과 소비자단체와의 만남 후 금모으기 운동은 누가 시작했는지 알려지지 않은 채 시작됐고 IMF 위기 극복에 크게 기여했다.


- DJ의 유지는 무엇인가.
▲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범야권의 단합이다. 레드컴플렉스가 사라지는 등 국민 정서가 변했고 민노당도 변했으니 민노당까지 같은 틀에서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도 문을 열어야 하고 민노당도 문을 열어야 한다. 다만 개인이나 누구나 중심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김 전 대통령도 개인을 거론하는 분은 아니었다.
현실을 무시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민주당이 중심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덩치가 큰 이는 ‘겸양의 미덕’을 보여야 한다. 다 같이 하자고 하고 양보해야 한다. 통합의 기술적 방법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통합에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는 있을 수 없다. 범야권이 함께 해야 김 전 대통령의 유지가 살아난다. 정동영 의원, 한화갑 전 대표 따질 것 없다. 본인이 함께하지 않겠다고 해도 설득해야 한다.

- 민주진영에서 동교동계 인사들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보는가.
▲ 자연스럽게 후견인이 되거나 리더가 될 것이다. 두고 볼 일이지만 걸맞은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본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난 1996년에 국회의원에 당선돼 10년을 국회에서 보냈다. 그러나 사실 1985년에 이미 국회로 나갈 기회가 있었다. 재야에서 반대해 포기하고 김 전 대통령의 비서로 동교동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과 지낸 10여 년은 금배지 5선, 10선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김 전 대통령과 함께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설훈은 누구?>
▲1953년 경남 창원 출생
▲1983년 민주화청년연합 상임위원
▲1987년 평민당 마산지구당 위원장
▲1988년 평민당 성북지구당 위원장
▲1992년 김대중 총재 보좌관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수석부대변인, 도봉지구당위원장
▲2000년 새천년민주당 시민사회위원장
▲2001년 민주화추진협의회 이사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경선후보 상황실장
▲1996년~2004년 제15, 16대 국회의원
▲2000년~2004년 민족화해협력범국민연합회 공동의장
▲2004년~2005년 중국북경대학교 아태연구원 객좌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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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논란과 문제가 끊이지 않던 퍼스트레이디가 결국 구속됐다. 김건희 여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부터 사사건건 발목을 잡던 의혹으로 최초로 구속된 영부인이 됐다. 김 여사의 구속 기간인 20일 동안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법원이 지난 13일, 김건희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 발부하면서 최초로 전직 대통령 부부가 모두 구속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대통령보다 힘이 세던 V0이 몰락한 셈이다. 주요 의혹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등으로 김 여사 구속에 성공한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의혹에 대한 수사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증거인멸 도주 우려”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김 여사는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정식 구치소 입소 절차를 거쳤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주소 등 인적 사항을 확인한 후 일반 수용자와 마찬가지로 정밀 신체검사를 진행한다. 이는 마약 등 반입 금지 물품을 지니고 들어왔는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다. 왼쪽 가슴 부분에 수용자 번호가 있는 미결수용 수용복으로 갈아 입고, 얼굴 사진인 ‘머그샷’을 촬영한다. 또 지문 채취와 구치소 내 규율 등 생활 안내, 건강 검진도 받게 된다. 이후 세면 도구와 모포, 식기 세트 등을 받아 본인 ‘감방’으로 향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영부인 신분이 아닌 만큼 일반 수용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게 법무부 측 설명이다. 김 여사는 앞서 수감된 윤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독거실에 수용될 전망이다. 크기는 구인 피의자 대기실과 비슷하며 매트리스와 책상 겸 밥상, 관물대, TV 등이 비치돼있다. 끼니도 구치소에서 제공하는 1700원짜리 음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식사와 목욕도 일반 수용자와 같은 절차에 따르지만, 보안상 다른 수용자와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은 지난 7일, 김 여사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은 법원에 22쪽 분량의 구속영장 청구서와 함께 848쪽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구속 의견서에는 ▲지난 4월4일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 김 여사가 휴대전화를 교체한 사실 ▲탄핵 인용 전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 있는 노트북을 포맷한 사실 ▲김 여사의 ‘문고리’로 불리던 유경옥·정지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 휴대전화를 초기화한 사실 등이 적시됐다. 특검은 ▲김 여사가 지난 6일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한 점 ▲김 여사의 진술이 계속 바뀌는 점 ▲압수된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점 ▲전 대통령실 행정관 등 최측근과 말 맞추기를 시도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여사가 건강상 이유로 입원할 경우 수사에 불응할 가능성이 있다며 구속 사유에 ‘도주 우려’를 포함했다. 영장실질심사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주도했던 한문혁 부장검사 등 8명이, 김 여사 측에선 유정화·채명성·최지우 변호사가 참여했다. 김 여사 측은 이날 약 80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준비했으며 특검도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약 3시간 분량의 프리젠테이션(PT)을 진행했으나 법원은 특검의 손을 들어줬다. 특검팀이 처음 주목한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로 불리는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 게이트로 불리는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이다. 특검팀은 이를 848쪽의 구속 의견서에 담았다. 최초 전직 대통령 부부 구속 의견서엔 구체적 사실 적시 구체적으로 김 여사가 지난 2010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범행에 가담한 공범이라고 판단하며 불법 거래 횟수가 총 3822회에 달한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으로 수익 8억1144만3596원을 얻어내기 위해 70만2512주를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과 공모해 통정매매 188회, 가장매매 12회를 했다고 판단했다. 또 같은 기간 주가를 올리려는 목적으로 높은 값에 사는 척하는 고가 매수 주문 1661회, 주가를 내리려는 목적으로 많은 양의 주식을 파는 척하는 물량 소진 주문 1432회, 허수 매수 주문 367회, 시가·종가 관여 주문 242회 등의 이상매매 주문을 김 여사가 권 전 회장 등과 공모해 제출했다고 봤다. 4년 넘게 김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0월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인식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 여사의 계좌가 주가조작에는 이용됐지만 범행을 알았다는 증거가 없었다는 취지라며 주가조작 공모와 방조 모두 무혐의로 판단했다. 하지만 특검은 보강 수사를 거쳐 방조 혐의를 넘어 공범 혐의를 적용했다. 특검은 2011년 1월경 김 여사가 미래에셋증권 직원과 통화하면서 “6대 4로 나누면 저쪽에 얼마를 줘야 하는 것이냐”며 “2억7000만원을 줘야 하는 것 같다”고 말한 통화 녹취록을 확보해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가 통화 당일 은행 계좌에서 2억7000만원을 수표로 인출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에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 주도 세력인 ‘저쪽’에 수익 40%를 떼어줬다고 판단하고 “시세조종이라는 교묘한 수법을 동원해 재산상 이득을 취했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관련 공천 개입 의혹과 건진법사 전성배씨 관련 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 등에 대해선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공적 지위를 사적으로 활용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특검은 “헌법적 가치가 훼손됐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명씨로부터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에 정치권력과 금권이 개입한 사건’으로 규정하며 “선거제도의 출발점인 공천의 공정성을 훼손하면서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침해했다”고 영장에 적시했다. 또 윤모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으로부터 샤넬 백 2개와 영국 그라프사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총 8000여만원의 금품을 전씨를 통해 전달받은 뒤 통일교 현안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선 김 여사 구속영장을 통해 “종교와 정치가 분리돼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규정했다. 848쪽 의견서 특검은 통일교의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등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지원 청탁에 대해선 “김 여사가 대한민국 정부의 조직과 예산에 대한 사적 개입으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밝혀낸 3가지 의혹의 주요한 사실과 더불어 제시한 ‘증거인멸 정황’이 김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검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매해 김 여사에게 교부한 혐의를 받는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으로부터 전날 제출받은 자수서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진품, 김 여사의 친오빠 진우씨의 장모 자택에서 압수한 목걸이 가품을 영장실질심사에서 제시했다. 이 회장은 자수서에서 “대선이 치러진 2022년 3월 직후 비서실장을 통해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입해 김 여사에게 전달했고 다시 돌려받았다”고 밝혔다. 특검에 따르면 김 여사가 이 회장 측에 진품을 돌려준 시기는 2022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순방 이후 재산 미등록 의혹 관련 고발장이 제출된 2022년 9월 이후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건희 특검팀이 수사하고 있는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사건 ▲명품 가방 수수 사건 ▲명태균·건진법사 등 민간인이 국정에 관여한 국정 농단 사건 ▲인사 개입 사건 ▲채해병 사건 및 세관 마약 사건 구명 로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제8회 전국동시지방 선거 개입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명태균 등을 통해 제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불법 여론조사 등 총 16가지다. 이 외에도 ▲무상 여론조사 제공 대가로 2022년 재보궐선거 공천 거래 등 선거 개입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및 양평 공흥지구 인허가 과정 개입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및 국가 계약에 개입 ▲국가기밀정보 유출 ▲제1호부터 제15호까지의 사건과 이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 및 특별검사의 수사에 대한 방해 행위 등이다. 특검팀은 의혹의 정점인 김 여사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최장 20일간의 구속 기간 동안 아직 풀리지 않은 사건들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대부분의 의혹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건진법사 게이트와 관련된 사건으로, 특검팀은 관련된 사실을 대부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들통난 거짓말 이에 특검팀은 출범 이후 인지한 사건인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베트남에서 귀국한 ‘김 여사 일가의 집사’ 김예성씨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향후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를 중심으로 IMS모빌리티(구 비마이카)에 대가·보험성 투자 혐의가 의심되는 기업들과 김 여사 일가의 사금고 의혹을 받는 신안저축은행, 그리고 김 여사가 운영해 온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전시회 뇌물 협찬 기업들로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우선 특검팀은 이번 김 여사의 구속영장 청구에서 배제됐던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의혹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6000만원대로 알려진 해당 목걸이는 2022년 6월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나토 정상회의 참석 차 유럽 순방 당시 착용했다가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바 있다. 목걸이의 행방을 추적해 왔던 특검팀은 최근 김 여사의 오빠인 김진우씨의 장모집에서 해당 목걸이를 확보했지만 감정 결과 모조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 여사 역시 해당 목걸이에 대해 모친인 최은순씨에게 선물하기 위해 2010년쯤 홍콩에서 구매한 200만원대 모조품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특검팀이 최근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김 여사에게 반클리프 스노 플레이크 목걸이의 진품을 직접 건넸다’는 취지의 자수서를 확보하면서 수사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해당 목걸이를 선물했으며, 몇 년 뒤 김 여사 측으로부터 돌려받아 보관해 왔다는 게 서희건설 측의 설명이다. 서희건설 측은 해당 목걸이 실물도 특검팀에 제출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김 여사는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목걸이 진품을 교부받아 나토 순방 당시 착용한 게 분명함에도 특검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착용한 제품이 20년 전 홍콩에서 구매한 가품이라고 진술하고 김 여사 오빠 인척집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와 동일한 모델인 가품이 발견된 경위에 대해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여사를 비롯한 모든 관련자를 수사 방해 및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 명확히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받은 귀중품 수사 확대 집사 게이트·관저 이전 의혹도 특검팀은 조만간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과 비서실장 최모씨 등을 소환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인척집에서 최소 3000만원 이상의 바셰론 콘스탄틴 여성용 시계 보증서가 발견된 것과 관련해서도 김 여사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수사 중이다. 해당 시계를 구매한 사업가 서모씨는 최근 특검팀 조사에서 지난 2022년, 윤 전 대통령 취임 뒤 김 여사의 부탁을 받아 같은 해 9월7일쯤 자신이 구매한 뒤 직접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시계 구매 자금 중 일부는 김 여사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입장이다. 같은 해 9월 대통령경호처와 1870만원 상당의 로봇개 경호 시범 사업 계약을 맺기도 했다.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서는 핵심 키맨인 김씨가 베트남 호찌민에서 귀국하자마자 특검팀은 인천공항에서 체포해 특검 사무실로 압송해 즉시 조사에 착수했다. 김씨의 체포 기한이 영장 집행 기준 48시간 이내이기 때문에 특검팀은 그 안에 수사를 마치고 구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김씨 역시 특검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특검팀은 김씨를 상대로 집사 게이트에 연루된 기업들의 184억원 투자 경위와 46억원의 행방 그리고 코바나콘텐츠 뇌물 협찬 의혹을 집중 추궁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씨가 운영한 렌터카 플랫폼 사이드스탭 ‘뿅카’는 비마이카와 함께 2015~2019년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4개 전시회 협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은 물론 신안저축은행을 대상으로 특검팀의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특검팀은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이 IMS모빌리티에 거액을 투자하기 전후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사받은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지난 11일, 관련 자료 제출 요구를 위한 정부세종청사 공정위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기도 했다. 김 여사 일가가 운영하는 이에스아이엔디(ESI&D) 등에 130억원이 넘는 대출을 해준 것으로 알려져 사금고 논란이 제기된 바 있는 신안저축은행은 코바나콘텐츠 전시회에도 협찬했다. 신안그룹 회장 차남인 박지호(개명 전 박상훈) 전 신안저축은행 대표는 2010년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EMBA)에서 김 여사와 김씨를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인연이 이어져 2013년 3월 신안저축은행의 각종 불법 대출 혐의가 불기소 처분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가 바로 윤 전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김씨는 박 전 대표의 집사 역할을 했다는 의혹도 있다. 박 전 대표는 신안저축은행이 2017년 김씨와 모친 최은순씨의 329억원대 허위 잔고 증명서 사건의 피해자였음에도 이듬해 김씨를 계열사인 바로투자증권(현 카카오페이증권) 임원으로 선임했다. 특검팀 과제는? 특검팀은 관저 이전 특혜 의혹에 관한 수사도 본격화했다. 이들은 지난 13일 “관저 이전과 관련해 21그램 등 관련 회사 및 관련자 주거지 등에 대해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등 혐의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관저 이전 문제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저 이전 특혜 의혹은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실과 관저 이전·증축 과정에서 21그램 등 무자격 업체가 공사에 참여하는 등 실정법 위반이 있었다는 게 핵심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