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 사람들 릴레이인터뷰 3> 설 훈 전 의원

“‘스승’ 김대중,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군사법정에서 처음 만난 학생운동가와 김대중 전 대통령
영남인사로는 처음으로 동교동 간 것은 “재야 부탁 때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동교동 사람들이 주목받고 있다. 오랜 시간 김 전 대통령의 곁에 머물면서 그의 삶을 생생히 목도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세간에 알려진 ‘김대중’보다 더 따뜻했던, 눈물 많고 정 많은 김 전 대통령을 보았고 민주화를 위해 끝없이 투쟁한 인동초 삶의 곁에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의 유훈도 이들에게는 평소 들어오던 말일 뿐이다. 동교동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의 숨겨진 일면들과 그가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되새겨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호남의 맹주’였다. 당연하게도 그의 곁에는 호남 출신 인사들이 가득했다. 때문에 영남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동교동계가 된 설훈 전 의원이 가지는 의미는 각별하다. 권노갑 고문이 ‘동교동계의 맏형’으로 더 잘 알려진 것처럼 ‘동교동계의 막내’라는 별칭이 더 정감있게 다가오는 설훈 전 의원. 지난 9일 연남동 사무실에서 그의 맛깔 나는 입담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다. 다음은 설 전 의원과의 일문일답.

- DJ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나.
▲ 김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은 영원히 기억될 만한 순간이었다. 1980년 김 전 대통령이 내란 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공범으로 군사법정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나는 학생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김 전 대통령과 공모를 했다는 죄목이었다.
24명의 공범들이 같이 재판을 받았는데 23명이 재판장에 앉아 있고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헌병들이 앞만 보고 앉아 있으라고 했다. 하지만 궁금했다. 신군부가 사형시키려 작정한 ‘김대중’이라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알고 싶었다. 헌병의 위협에도 고개를 돌려 재판장으로 들어오는 김 전 대통령을 봤다.
흰 수의를 입은 김 전 대통령은 양쪽 팔을 잡혀 재판장에 들어섰다. 신문이나 방송 말고 김 전 대통령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완벽한 무표정이었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분노하고 있다거나, 어떤 감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유명한 이들을 좌우로 배치해 사진을 찍고 순서대로 앉았는데 김 전 대통령 바로 뒤에 앉게 됐다. 아침부터 밤까지 한 달 이상 재판은 계속됐고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 이후 DJ는 수감생활 후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어떻게 인연이 이어지게 됐는지 궁금하다.
▲ 김 전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구명운동으로 1982년 석방된 직후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은 1985년 12대 총선을 4일 앞두고서다. 그의 귀국은 신민당 2·12 총선에서 당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귀국 직후 연행돼 가택연금에 들어갔다. 한 달 뒤인 3월부터 연금이 풀렸다. 4월1일, 나는 김 전 대통령 곁에서 재야와 김 전 대통령의 다리 역할을 해 달라는 재야의 요청으로 김 전 대통령의 비서로 동교동에 머물게 됐다.

- 동교동계에 영남 출신 인사가 속하게 된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 동교동에 영남 출신 비서는 처음이다. 하지만 내가 동교동에 들어간 이후 영남 인사들이 많이 들어왔다.

- DJ는 어떤 분이었나.
▲ 한마디로 ‘스승’이었다. 동교동에서는 김 전 대통령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난 왜 그렇게 부르는지 모르고 덩달아 ‘선생님’이라고 했다. 하지만 함께 지내다보니 왜 그렇게 부르는지 절로 알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은 항상 남의 모범이 되려 했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으니 항상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했고 항상 “배워야 해”라고 말씀하시며 주위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본인도 스승으로서의 위치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공부했다. 스스로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 전 대통령은 즉흥 연설을 해도 받아 적으면 그대로 원고가 될 정도로 논리정연하고 명쾌했다. 뛰어나게 타고나기도 했지만 철저하게 준비했다. 연설을 한다고 하면 메모를 하고 고치고 또 고쳤다. 굉장한 정성을 들였다. 모든 일에 혼신의 노력을 했다.
예전에는 ‘김대중’이라는 가정교사가 있어서 쉬웠다.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보고 ‘가자’하면 그게 정답이었다. 지금은 참 답답하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김 전 대통령은 상황을 정확하게 봤다. 시대의 양심과 민족이 가야 할 방향을 알고 계셨다.

- 어떤 것을 배워야 한다고 하신 것인가.
▲ 정치적 상황이나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이었다. ‘정도가 아니면 가지 말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가 불리한 입장에 처한 일이 있었다. 그 일을 다른 방향으로 알리는 것에 대해 논의했는데 김 전 대통령이 “무슨 짓이냐”고 호통을 쳤다. 사가들이 자신의 발자국을 따라올 텐데 사기 쳤다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분의 삶의 원칙이었다.
‘부자도 되지 말고 가난하게도 살지 말라’고도 하셨다. 부자가 되면 돈의 노예가 돼서 돈에 휘둘리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정치인은 돈의 정거장이 돼야 한다고 하셨다. 정치자금을 만들 수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자신이 아닌 국민에게 돌려줘야 하는 ‘정거장’이 되라는 것이었다.

- 동교동에서의 생활은 어떠했나.
▲ 24시간을 함께했다. 심지어 김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생활하는 안방에서 사무를 본 적도 있다. 동교동에서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는 사생활이 없었다. 다리를 굽히기 힘든 김 전 대통령의 목욕을 도와주거나 식사를 같이하고 잠도 같이 자다 보니 김 전 대통령이 ‘아’하거나 ‘어’해도 무슨 뜻인지 알 정도였다.

-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다 보게 되면 존경하기가 더 힘들었을 수 있지 않나.
▲ 인간적인 면이나 약점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 전 대통령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른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시는 분이셨다.

- 당시 DJ 모습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 김 전 대통령은 귀국 후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을 했다. 상도동계와 번갈아가며 매일 연설을 했는데 세 번에 한 번은 진한 감동을 줬다. 말이라는 게 진심을 담고 있어야 감동을 주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애절함을 가지고 있었고 매일 연설을 하는 중에도 들을 때마다 감동을 줬다.

- ‘사적인’ DJ는 어떠했나.
▲ 동교동에는 열댓 명이 머물렀다. 비서, 보좌관, 운전기사 외에도 교통사고 등으로 위장해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경호원이 항상 함께 하게 됐다. 일반 가정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주말이면 가족들을 위한 곳이 됐다. 아들들은 다 연애결혼을 했는데 며느리들을 잘 들였다.
이 중 김 전 대통령의 둘째 며느리, 김홍업 전 의원의 부인은 5공 시절 김 전 의원과 결혼했다. 부친이 감사원 부원장이었는데 딸이 야당 수장인 김 전 대통령의 아들과 결혼 한다고 하니 크게 반대했다. 김 전 대통령이야 아들들에게 “백인이든 흑인이든 좋은 사람 있으면 결혼해라. 사랑하면 됐지 뭐가 문제냐”는 분이었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결혼해라”라고 했다. 그러나 며느리 집안의 반대는 계속 이어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뭐 그런 것 가지고 그러냐”고 허락하고 나서야 맺어졌다.

- DJ가 좋아하던 것들은 어떤 것인가.
▲ 김 전 대통령은 꽃과 강아지, 손자들하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TV프로그램 중에서는 <동물의 왕국>을 즐겨보셨다. 창이나 판소리, 문학이나 연극, 영화 등 문화에 대한 갈망이 컸다. 부드럽고 여린 분이셨다. 불의에는 목숨을 걸 정도로 강직하게 대항하셨지만 개인적으로 부드럽고 온유한 분이셨다.
농담도 잘하셨다. 김 전 대통령이 농담을 하면 이 여사는 진담처럼 받아쳤다. 보는 사람들은 그게 더 재미있었다.

- DJ 하면 ‘책’이 떠오른다.
▲ 밤 10시쯤이면 동교동에 손님이 끊긴다. 그러면 김 전 대통령은 서재로 내려가 글을 쓰거나 책을 읽다 12시 전후로 올라왔다. 술도 안 드시니 365일 반복되는 습관이었다. 감옥에서는 아예 매시간을 책과 함께하셨으니 독서량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김 전 대통령이 구속될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김 전 대통령이 서재로 내려와 보라고 하셨다. 갔더니 노란테이프를 조금씩 자르라고 해서 자르고 책장의 책에 표시를 하라고 해서 표시했다. 알고 보니 감옥에 들어갈 때 가지고 들어갈 책이었다. 구속된다고 하니 책부터 챙기셨던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책을 읽을 때 “자네 관점을 가지고 책을 봐. 책에 나오는 내용을 맹종하려고 하지 말고 무엇이 맞는 말인지 무엇이 그른 말인지는 생각하면서 봐야 해”라며 자신만의 관점을 강조하셨다.
- DJ 최대의 업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IMF 극복, 사회복지 개선, 남북관계 개선, IT사업을 일으킨 것 등이 김 전 대통령의 업적으로 꼽힌다. 하지만 나는 김 전 대통령의 최대 업적은 ‘한류의 원조’라고 생각한다.
난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한류’도 문화사적으로 문제를 봐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오르기 전과 후, 한국 영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김 전 대통령은 집권 후 문화적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며 소재에 대한 제한 등 정책적인 족쇄를 풀었다. 문화진흥청을 세웠다. 문화 예산을 GNP 대비 1% 수준으로 늘렸다. 이를 통해 한류가 통할 수 있는 틀을 마련했다.
한류, 한국의 문화가 세계로 나갈 원동력, 바탕을 마련한 것, 그것이 김 전 대통령 최대의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 한류를 떠올리면 한일 문화개방이 연상된다.
▲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인들은 유교를 받아들여 주자학에 중국보다 더 독하게 빠져들었다. 기독교를 받아들여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세웠고, 공산주의는 김일성 국방위원장이 독하게 했지 않냐”고 했다.
한국인은 양서류 같다. 한대에서는 한대, 열대에서는 열대성으로 변하는 특이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일본문화 개방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문화를 받아들여서 더 큰 것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나쁜 것은 버릴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민족에 대한 자신감과 국민에 대한 믿음,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 있었다.

- IMF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금모으기 운동’과 관련,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 IMF 관리체제는 경제식민지와 같았다. 달러가 모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며칠 후 나를 불러 소비자단체와 만남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간담회가 시작되고 소비자보호원의 보고 후 전국 20여개 소비자단체장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했다. 기자들은 거기까지 보고 기사작성을 위해 다 자리를 빠져 나갔다.
단체장들의 말을 다 들은 김 전 대통령은 “사실 오시라고 한 것은 부탁을 하기 위해서”라며 “달러가 부족해 국난 위기에 처했는데 금은 달러와 교환이 쉽다. 장롱에 금붙이들이 있는데 이를 끄집어 내 달러로 바꿔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금모으기 운동’을 해달라”고 했다.

- 이 내용은 알려지지 않지 않았나.
▲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을 브리핑하기 위해 기자실을 찾았더니 이미 기자들이 다 가버린 상태였다. 순간적으로 기사가 나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대통령 당선자의 지시로 금모으기 운동을 한다는 것은 자칫 좋지 않게 비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금모으기 운동은 그해 11월 검찰에서 시작됐다 흐지부지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정확하지 않다.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이 금모으기 운동을 제안한 것이 본인의 생각이었는지 다른 사람의 조언이었는지 영원히 확인되지 않을 숙제로 남게 됐다.
김 전 대통령과 소비자단체와의 만남 후 금모으기 운동은 누가 시작했는지 알려지지 않은 채 시작됐고 IMF 위기 극복에 크게 기여했다.

- DJ의 유지는 무엇인가.
▲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범야권의 단합이다. 레드컴플렉스가 사라지는 등 국민 정서가 변했고 민노당도 변했으니 민노당까지 같은 틀에서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도 문을 열어야 하고 민노당도 문을 열어야 한다. 다만 개인이나 누구나 중심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김 전 대통령도 개인을 거론하는 분은 아니었다.
현실을 무시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민주당이 중심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덩치가 큰 이는 ‘겸양의 미덕’을 보여야 한다. 다 같이 하자고 하고 양보해야 한다. 통합의 기술적 방법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통합에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는 있을 수 없다. 범야권이 함께 해야 김 전 대통령의 유지가 살아난다. 정동영 의원, 한화갑 전 대표 따질 것 없다. 본인이 함께하지 않겠다고 해도 설득해야 한다.

- 민주진영에서 동교동계 인사들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보는가.
▲ 자연스럽게 후견인이 되거나 리더가 될 것이다. 두고 볼 일이지만 걸맞은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본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난 1996년에 국회의원에 당선돼 10년을 국회에서 보냈다. 그러나 사실 1985년에 이미 국회로 나갈 기회가 있었다. 재야에서 반대해 포기하고 김 전 대통령의 비서로 동교동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과 지낸 10여 년은 금배지 5선, 10선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김 전 대통령과 함께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설훈은 누구?>
▲1953년 경남 창원 출생
▲1983년 민주화청년연합 상임위원
▲1987년 평민당 마산지구당 위원장
▲1988년 평민당 성북지구당 위원장
▲1992년 김대중 총재 보좌관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수석부대변인, 도봉지구당위원장
▲2000년 새천년민주당 시민사회위원장
▲2001년 민주화추진협의회 이사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경선후보 상황실장
▲1996년~2004년 제15, 16대 국회의원
▲2000년~2004년 민족화해협력범국민연합회 공동의장
▲2004년~2005년 중국북경대학교 아태연구원 객좌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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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