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시청역 예술공간 가 보니…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2.16 11: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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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면 부수고, 그리면 찢고

[일요시사=사회팀] 서울시청역 지하 출입구 벽면에 ‘인권을 보호합시다’라는 큼직한 낙서가 나타났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등에 올라타 글을 쓰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행히 진짜이 아닌, 사실적인 조각품이었다. 제작자는 이 모습을 통해 인권의 현주소를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조각품이 훼손됐다. 설치 하루만에 발생한 일이다.




지난 9일 오전, 1호선 서울시청역 지하 출입구에 낯선 ‘낙서’가 등장했다. 출근길 바쁜 발걸음을 옮기던 시민들의 눈길은 순간 한 곳에 머물렀다. 그곳에는 단순히 낙서만 있는 게 아니었다. 5번 출입구 통로 앞에는 바닥에 엎드린 사람이 있었고, 그의 등에 올라타 낙서를 하는 사람의 모습이 연출됐다. 녹색 붓을 들고 위에 서 있는 남자가 쓴 글은 ‘인권을 보호합시다’라는 구호였다.

‘인권 보호합시다’

이를 본 시민들의 반응은 물음표 그 자체였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며 진짜 사람인지 확인해보거나, 멀리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비로소 ‘작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권을 보호합시다’라는 큰 글씨 밑에 “인권보호는 말로 하는 게 아닙니다. 나부터 행동으로 실천합시다”라는 문구를 보고서는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듯 보였다.

조각품 설치 다음 날인 10일 오후 서울시청역 5번 출입구로 향했다. 그런데 뜻밖에 광경을 목격했다. 한 노인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 조각품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육두문자를 날리고 있던 것. A씨는 조각품의 옷깃을 붙잡고는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당장 이걸 치워야 한다”고 고함을 쳤다.

시청역을 오가던 시민들은 그 소리에 놀라 자리에 멈췄다. 그리고 금세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A씨 주변을 애워쌌다.


A씨는 흥분상태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시민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게 인권이야?” “이거 다 필요없는 짓이야!” “박원순 시장이 이상한 짓을 하고 있어!”

이러한 소란을 확인한 역무원과 공익근무요원이 현장에 급히 달려와 A씨를 말렸지만 그는 역 관계자들에게까지 고함을 치며 얼굴을 붉혔다. 결국 서울시청 역장까지 나타났다. 그러나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A씨는 역 관계자들의 몸을 밀치며 오히려 더 크게 화를 냈다. 그리고 조각품을 발로 수차례 걷어차고 손으로 당겨 작품을 쓰러뜨렸다. 이로 인해 조각품 상의가 찢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역 관계자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 과정에서 노인과 육체적인 마찰이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A씨의 행위에 힘을 실어줬다. “저런 흉측한 걸 왜 여기다 설치해놔!” “아주 잘 됐다”

반면 청년들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떴다. 몇 몇 사람들은 노인들을 설득하려고 시도했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결국 경찰이 출동했지만 A씨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그의 흥분상태는 계속됐다. 상황이 악화되자 서울시 인권담당 공무원들까지 현장에 나타났다. 이들은 조각품에 대해 설명했다. 조각품의 표면적인 부분만 보지 말고 그 의미를 이해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씨뿐만이 아니라 지켜보던 노인들 간 몸싸움이 벌어지며 상황은 악화됐다. 대다수의 노인들은 조각품을 보고 ‘흉물’이라며 제작자와 서울시장을 비난했다.

‘인권의 날’기념 조각품 설치 두고…
노인-청년 신구 세대 간 갈등 표출


이렇게 수십여 분이 흐른 뒤에야 상황은 종료됐다.

처음부터 이 상황을 지켜본 대학생 정씨는 “어르신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조각품에 내재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설치된 공공기물을 파손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반면 직장인 최씨는 “취지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저런 모습(조각품)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다”며 “과격하긴 했지만 저 분(A씨)이 이해된다”고 말했다.

서울시 인권보호팀 관계자는 “세계인권선언 65주년을 기념하고자 설치된 조각품인데 이런 일이 발생하게 돼 안타깝다”며 “처음 보면 놀랄 수도 있지만 이 캠페인의 취지를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훼손된 조각품의 보수는 이제석 광고연구소 관계자들이 맡았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앰네스티(인권단체) 관계자들이 현장에 나와 가판대를 설치해 놓고 작품을 안내했다.

사실 이번 작품은 지난 10일 세계인권선언 65주년을 기념해 서울시와 앰네스티(인권단체)가 공동으로 기획한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실제 사람이 아닌 조각품으로, 인권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서울시가 인권의 날을 기리며 ‘이제석 광고연구소’ 이제석 대표에게 행사의 취지를 설명하면서 작품을 요청했고, 조각품 기획과 제작에 이제석 광고연구소가 참여했다. 세계적인 광고천재로 알려진 이제석 대표가 의미 있는 작품을 제작한 것이다.

조각품 제작 당시 이제석 대표는 작품의 의도에 대해 “일상 속에서 서로 인권을 존중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권 존중’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주고자 한 것.

그러나 제작 당시부터 말이 많았다. 특히 기성세대의 반대가 극심했다. 이들의 격한 반응은 시공 때부터 시작됐다. 시공 중 서울시청 역장이 멱살을 잡히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어쩌면 이번 사건은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이 대표는 “이번 사건 자체가 우리 인권의 현주소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권위주의가 나타난 상징적인 사건이다”라고 강조했다.

잘 정돈된 서울시청역에 날것의 느낌인 조각물을 설치한 건 나름 ‘파괴적 설치’였다. 이 대표는 제작에 직접 참여하며 많은 일들을 겪었다.

일례로, 시공을 반대했던 사람들은 이 대표가 작업복에 목장갑을 꼈을 때와 정장을 입었을 때 그를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랐다. 겉모습에 따라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 그는 제작 과정에서부터 한국 인권의 현주소를 뼈저리게 느꼈다. 보통 ‘인권침해’라 하면 외국의 경우 인종 문제가 대두된다. 반면 한국은 뿌리 깊은 권위주의가 문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해와 권위주의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인권을 말하면 종북 혹은 빨갱이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매우 편협한 사고다”라며 “극단적인 정쟁, 반대 사상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고 말했다. 이어 조 교수는 “만약 인권 조각품이 아니라 동성애자 1인 시위였다면 어땠을지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며 “인권에 대한 막연한 반감으로서 배경으로는 우경화도 한몫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 이번 사건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인권을 바라보는 한국사회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조각품 훼손이 오늘날 우리 인권의 실태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세계인권선언이란?

제2차 세계대전 전야의 인권 무시, 인권의 존중과 평화 확보 사이의 깊은 관계를 고려하여 기본적 인권 존중을 중요한 원칙으로 하는 국제연합헌장의 취지에 따라 보호해야할 인권을 구체적으로 규정할 목적으로 1948년 6월 국제연합인권위원회에 의해 선언문이 완성됐고, 그해 12월10일 파리에서 개최된 제3차 국제 연합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이에 따라 매년 12월10일은 ‘인권의 날’이다.


세계인권선언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상세히 명시하면서 인권과 기본적 자유가 모든 사람과 모든 장소에서 똑같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인정한 선언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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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