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공석 1년> '주인없는' SK그룹 상황은?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12.09 11: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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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없어도 회사 잘 돌아간다

[일요시사=경제1팀] 재계 상위권 기업의 총수들이 줄줄이 구속되거나 재판을 받으면서 국내 기업들이 '오너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실적 악화와 유동성 관리 실패까지 더해져 내년 기업 경영활동은 불투명하기만 하다. 그런데 SK그룹은 다르다. 최태원 회장의 부재에도 불구 계열사들이 양호한 실적을 이끌어 내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최 회장을 옹호하기 위해 그룹이 제기했던 경영공백 우려는 '엄살'로 보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자리를 비운 지 1년이 다 돼 간다. 최 회장은 SK그룹 펀드자금 중 약 45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 1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최 회장 측은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에 나섰지만 2심에서도 1심에서의 형을 그대로 선고 받았다. 최 회장은 현재 대법원에 상고,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12월18일 SK그룹은 그룹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이하 수펙스) 의장으로 김창근 부회장을 선임했다. 수펙스 산하 6개 위원은 전략위원장에 하성민 SK텔레콤 대표, 글로벌성장위원장에 구자영 SK이노베이션 부회장, 커뮤니케이션위원장에 김영태 SK(주) 사장, 윤리경영위원장에 정철길 SK C&C 사장, 동반성장위원장에 김재열 SK(주) 부회장, 인재육성위원장에 김창근 부회장을 선임했다.

수펙스 중심으로
임직원 똘똘 뭉쳐

최 회장 구속에 대해 SK그룹 측은 그룹 전반적으로 경영 공백이 크다는 입장이다. 이른바 '오너리스크'다. 오너리스크는 '오너 경영'의 한계다. 총수 한 사람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오너 경영의 경우 총수가 경영을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기업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최근 SK그룹 계열사들의 실적을 보면 최 회장의 공백은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SK그룹은 수펙스를 중심으로 오너 부재와 유례없는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악재 속에서 계열사들의 양호한 실적을 이끌어 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가장 주목을 받는 계열사는 SK그룹의 지주사 격인 SK C&C다. SK C&C는 기업규모만 놓고 보면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 다른 주력 계열사에 비할 바 못되지만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최고 핵심 계열사다. SK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는 최 회장-SK C&C-SK(주)-상장 계열사로 이뤄져 있다.

SK의 상장 계열사는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SKC, SK케미칼, SK하이닉스, SK네트웍스, SK건설, SK해운, SK, SK가스, SK컴즈, 로엔엔터테인먼트, 실리콘화일, 부산도시가스, 유비케어, SK브로드밴드 등 16개사. SK C&C는 SK(주)의 지분 31.82%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SK(주)는 SK텔레콤(25.22%), SK이노베이션(33.4%), SKC(42.5%), SK네트웍스(39.14%), SK건설(40.02%), SK해운(83.08%) 등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 C&C는 3분기 매출액 5549억원, 영업이익 598억원을 올렸다. 전년 동기에 비해 매출액은 1.8%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쳤고 영업이익은 18.7% 증가했다. 특히 SK C&C는 올 3분기 글로벌 사업에서만 123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체 매출의 22.23%에 해당된다. 전년 동기 글로벌 사업 매출이 766억원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61.1% 이상 높아진 금액이다.

계열사 대부분 승승장구…오너 존재감 실종?
주가도 구속 전보다 상승 "공백 우려는 엄살"

국내 SI 업계 경쟁사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실적이다. 독보적 업계 1위 삼성SDS의 경우 3분기에 매출액 1조7595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1449억원. 전년 동기에 비해 6% 상승했다. LG CNS는 지난해보다 8% 증가한 7157억원의 매출액과 영업이익 165억원을 기록했다. 삼성SDS와 LG CNS는 오너가 굳건히 버티고 있다.

주가도 상승 추세다. 최 회장 구속 전날인 지난 1월30일 SK C&C의 주가는 10만4000원. 4월16일 8만7600원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현재(4일) 13만1500원으로 껑충 뛰었다.

SK C&C는 투르크메니스칸 안전도시 구축사업과 방글라데시 정부네트워크 백본망 구축 사업 등 대형 글로벌 IT서비스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하반기 성장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중국 현지 공장 화재라는 대형 악재 속에서도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SK하이닉스는 3분기 매출 4조840억원, 영업이익 1조1640억원을 올렸다.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9% 늘어났고 영업이익은 흑자 전환했다. 영업외비용 반영 등에 따른 당기순이익은 958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앞서 2분기 매출 3조9330억원, 영업이익 1조1140억원을 넘어서는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2월 SK그룹에 인수됐다. 이후 실적은 꾸준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우시공장의 화재는 ‘전화위복’격이 됐다. 우시공장은 전세계 D램 생산량의 13% 가량을 제조해왔다. 그런데 화재로 인해 D램 수급에 비상이 걸렸고 이에 따라 PC용 D램 현물가격이 대폭 올랐다. SK하이닉스는 국내 낸드플래시 생산라인을 D램 생산으로 전환하면서 화재로 인한 출하량 차질을 최소화했다. 생산 물량은 그대론데 가격만 오른 효과를 본 셈이다.

공장 화재 악재
'전화위복'

SK그룹의 또 다른 주력회사인 SK텔레콤의 실적도 양호하다. SK텔레콤은 지난 3분기 매출 4조1246억원, 영업이익 5514억원, 순이익 5022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이 같은 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 1%, 영업이익 88.4%, 순이익 32.6%가 각각 늘어난 것이다.

통신시장의 포화 속에서도 SK텔레콤의 LTE 가입자는 9월 말 기준 약 1227만명을 기록, 전체 가입자의 45%를 넘어섰다. 가입자당 매출도 전분기에 비해 2.6% 오른 3만4909원을 기록했다. 평균 해지율은 지난 분기 2.27%에서 2.25%로 감소했다.

16개 계열사의 누적 실적을 봐도 매출은 소폭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급등했다. 올 3분기 유무형자산취득액은 8조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2.5% 감소했고 매출액은 135조7000억원으로 3.3% 감소했다. 하지만 영업이익 7조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4.6%나 끌어올렸다. 시가총액 또한 연초 이후 69조7182억원에서 78조5312억원으로 8조8130억원(12.64%) 증가해 10대그룹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SK건설의 해외사업도 우려와는 다르게 상승세다. 최 회장은 '기업 가치 300조원'이라는 비전 달성을 위해 해외 사업을 직접 챙겨왔다. 하지만 지난 1월 법정구속됐고 재계는 SK그룹이 중국·동남아·중동·중남미 등지에서 추진해왔던 해외사업과 이들 국가에 대한 투자가 올스톱 될 것으로 예상했다. 기존에 벌려놨던 해외사업들의 유지 여부도 미지수로 남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시총, 10대그룹 중
가장 높은 상승률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SK건설만 봐도 그렇다. SK건설은 지난 6월 12억 달러 규모의 칠레 석탄화력발전소 공사를 따냈다. 또 터키에서 사업비 9억5000만 달러 규모의 초대형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TSP 사업' 덕분이다.

TSP는 토탈솔루션 프로바이더(Total Solution Provider)의 약자로 고객에게 종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SK건설의 사업 모델이다. 그룹 계열사들의 역량을 모아 신규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기본설계 및 유지 관리까지 수입원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시공 중인 주롱아로마틱 콤플렉스 프로젝트의 경우 SK건설은 설계와 시공 등을 맡고 있다. 준공 후 관리는 SK종합화학이 수행한다. 터키 유라시아 터널 프로젝트와 베트남 해상공사 역시 SK건설이 수주했다. 지난 2일에는 6억8000만 달러 규모의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프로젝트도 수주했다.

중국 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중국 선전에 최첨단 건강검진센터를 건립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을 위해 중국 측 파트너인 비스타와 지난 5월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현재 중국 정부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SK그룹이 중국 헬스시장에 진출한 것은 지난 2004년 SK그룹의 중국 현지법인 SK차이나를 통해 한·중합작병원 'SK아이캉병원'을 개원한 이래 두 번째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9월 중국 국유기업 닝보화공과 합작사인 닝보SK를 출범시키고 고기능성 합성고무인 에틸렌프로필렌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베이징자동차그룹 및 베이징전공과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체결하고 올해 안에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합작법인은 내년 하반기까지 연간 전기차 1만대에 공급할 수 있는 배터리 팩 제조라인을 구축하고 2017년까지는 생산 규모를 2만대 분량으로 늘릴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은 지난 6월 말 중국 최대 정유회사인 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와 총 3조3000억원을 추자해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 나프타 분해설비 및 하위공정 공장을 짓기로 했다. 지난 5월에는 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와 각각 3400억원을 투자해 중국 충칭에 연산 20만톤 규모의 부탄디올 생산공장을 2015년 완공을 목표로 짓고 있다.

SK하이닉스 사상 최대 실적 기록
SK건설 해외 대형사업 연속 수주

SK그룹은 2014년 경영방침을 '위기 속 안정과 성장 추진'으로 결정했다. 내실을 다지겠다는 것. SK그룹은 계열사별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오너가 부재 중인 상황에서도 구조조정에는 속도가 붙고 있다.

SK컴즈는 투자 대비 이익 창출이 적은 싸이월드와 싸이메라 분사를 검토 중이다. 미미한 점유율(1.4%)를 유지하던 검색 서비스도 전문검색 서비스 업체에 이관해 관리 비용을 줄인다. 12월2일부터 13일까지 2주간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도 실시한다. 실본부장급 이상의 간부직원들은 일괄 사표를 결의한 상태다.

SK네트웍스는 '스피드메이트' 매각을 추진 중이다. 2009년 인수한 인도네시아 고무플랜테이션 사업 법인인 'PT인니조아'를 현지 자원개발 회사인 'PT존린'그룹에 매각하는 협상도 진행 중이다. 중국 구리광산 지분매각도 검토 중이다.


SK E&S는 인천종합에너지 인수를 위한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다. SK텔레콤은 ADT캡스 인수를, SK이노베이션은 호주 유나이티드 페트롤리엄 지분 인수를 검토 중이다.

최 회장의 재판으로 2011년부터 2년 연속 임원 인사를 제때 하지 못하고 해를 넘겼는데 올해부터 정상화하겠다는 방침이다. SK그룹은 이달 중순 정기인사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대대적인 물갈이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되지만 올해 실적이 좋았다는 점에서 임원들의 승진 규모가 클 수도 있다는 전망이 있다.

개편·인사
일사천리

이처럼 SK그룹은 최 회장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잘 나가고 있다. 하지만 '영어의 몸'인 최 회장은 그룹이 오너리스크를 겪지 않는다는 사실에 마냥 웃을 수 있을까? 같은 처지에 있는 한화그룹의 경우 김승연 회장의 지난 1년 공백에 따른 리스크를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매출이나 영업이익 측면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는 없지만 '이라크 재건' '태양광 사업' 등 굵직굵직한 사업들은 동력을 얻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김 회장 구속 이후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고 있지만 현상유지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SK그룹의 현 상황에 대해 "일부에서는 오너 부재라는 위기를 잘 넘기고 있다는 점에서 재계 모범사례로 봐야한다는 긍정적인 시선이 있다"면서도 "없을 때 더 잘하는 SK그룹에서 최 회장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고 평가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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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에서 프리랜서 아나운서 김나정에게 강제로 마약을 투약한 한국인 사업가 권모씨에게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다. 권씨는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일대에 서버를 두고 투자 사기, 마약 유통 등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6년간 수사망을 피하며 도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24일 경기북부경찰청 마약수사계는 아나운서 김나정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증거를 경찰에 제출했지만, 경찰은 해당 증거로는 강제성을 증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외 도주 대담한 행적 김씨는 지난해 11월12일 마닐라에서 자신의 SNS에 “제가 필리핀에서 마약 투약한 것을 자수한다”며 “죽어서 갈 것 같아서 비행기를 못 타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이후 그는 마닐라에서 여객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해 인천국제공항경찰대의 조사를 받았다. 사건은 주소지 등을 고려해 경기북부경찰청으로 넘어왔다. 이후 김씨 측은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던 법무법인 충정은 “김나정은 뷰티 제품 홍보 및 속옷 브랜드 출시를 위해 필리핀을 찾았다가 젊은 사업가 A씨(권씨)를 소개받았다. 젊은 사업가가 김나정의 사업을 적극 도와주겠다고 해 시간을 할애해 방문했을 뿐이다. 항간에 도는 소위 ‘스폰’의 존재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가 필리핀에서 만난 1995년 8월5일생의 사업가 권씨는 SNS에 ‘투자 리딩방’을 개설해 범죄수익을 벌어들인 범죄자다. 업계에서 일명 ‘재림’으로 불리는 그가 리딩방 총책으로 활동하며 발생시킨 투자 사기 피해액만 약 3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2019년 8월4일 필리핀으로 간 권씨는 이후 국내로 입국한 적이 없다. 유튜버 크라임넷 등 제보에 따르면 권씨는 드라마 <카지노>의 주인공 차무식의 실존 인물인 이상태씨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보호받아왔다고 한다. 검찰은 21년간 필리핀에서 도주 행각을 이어가던 이씨를 현지 교민 정보망을 활용해 검거했다. 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됐으나, 광주지검 목포지청(곽영환 지청장)은 해외 도주를 이어가던 이씨를 필리핀 현지에서 검거했다고 지난해 8월23일 밝혔다. 사업가로 변신, 김나정 앞에 나타난 권씨 취재 결과 70억대 사기단 우두머리로 확인 이씨는 2014년 공범과 함께 필리핀에서 불법 도박 사무실을 운영하겠다며 투자금 1억1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20년 2월 징역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구속 기소된 공범은 실형을 살았지만, 해외에 있던 이씨는 공소시효 임박에 따라 궐석재판으로 징역형이 확정돼 ‘자유형 미집행자’ 신분이 됐다. 자유형 미집행자는 징역·금고 등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잠적하거나 도주한 사람을 뜻한다. 이씨는 2003년 필리핀으로 출국한 뒤 세부섬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21년간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서 공갈·사기 범행을 11건(피해액 약 8000만원) 저질러 지명수배·지명 통보 조치가 내려진 인물이다. 목포지청은 검거팀을 꾸려 이씨 검거에 나섰는데, 필리핀 현지 교민 사이트에서 이씨 거주지를 특정하는 단서를 확보해 검거에 성공했다. 현지 주민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씨에 대한 제보를 받아 검거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획득했다. 결국 법무부, 필리핀 파견 검찰 수사관, 필리핀 이민청 수배자 검거팀과 국제공조로 세부섬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검찰은 “7000여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본섬인 루손섬이 아닌 곳에서 범인을 검거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현실판 차무식의 비호를 받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온 범죄자가 바로 권씨인 것이다. 권씨의 이름은 다른 사건에서도 언급된다. 2022년 SNS에 ‘투자 리딩방’을 만든 뒤 대체 코인 거래 사이트로 이용자 130명을 유인해 70억원대 투자 사기 행각을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힌 일당도 권씨가 총책이라고 진술했다. 그해 6월30일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전기통신금융사기 등 혐의로 투자 사기 일당 16명을 검거해 총판 관리팀장 20대 A씨 등 8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도주한 조직 총책인 권씨 등 핵심 간부 5명에 대해서는 인터폴 적색수배 조치하고, 국내에 체류 중인 나머지 조직원 1명은 지명수배해 뒤를 쫓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1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SNS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서 전문 투자 상담사를 사칭해 투자자 130명을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게 한 뒤 투자금 약 7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강제 투약 진실은? 총책인 권씨는 필리핀에 본사를 두고, 본사 운영팀과 총판 관리팀, 회원 모집책 등 역할을 나눠 치밀하게 조직을 운영했다. 우선, 인터넷에서 불법 수집한 개인정보를 활용해 국내 휴대전화 사용자에게 무작위로 문자메시지를 전송한 뒤 SNS에 개설한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 초대했다. 이들 일당은 “대체 코인 투자로 300~400%의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라거나 “VIP에게만 제공하는 투자 리딩이 진행된다”며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회원 모집책 20대 C씨 등 13명은 투자 리딩방에서 대체 코인에 투자해 큰 수익을 낸 전문가인 것처럼 1인 다역 행세를 했고, 이에 속은 투자자들이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C씨 등은 가짜 투자 전문가 자격증과 사업자 등록증을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게시하거나 피해자에게 보여주며 안심시켰다. 이들의 속임수에 넘어간 가입자 중에는 노후 자금 1억5000만원을 날린 60대 남성과 최대 2억5000만원의 투자금을 날린 50대 남성도 있었다. 또 가상 자산인 코인 시장에 처음 들어가 재테크를 해보려고 나선 대학생과 주부 피해자들도 포함됐다. 피해자는 모두 130명에 달한다. 1인당 피해 금액은 1000만원에서부터 2억5000만원에 이른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일당은 피해자들에게 처음 한두 차례는 소액으로 투자한 수익금을 그대로 돌려줘 신뢰를 쌓은 뒤, 큰 투자금을 받는 수법으로 범행을 이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 일당이 범행에 사용한 계좌 28개를 지급 정지하고, 1억2000만원 상당의 범죄 수익에 대해 법원 결정을 받아 추징·보전 조치한 상태다. 인터폴 적색수배를 받는 권씨는 필리핀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전된 보니파시오 지역 등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제보자에 따르면, “필리핀, 태국 등지에 권씨의 차명 부동산이 여럿 있고, 일부 한국 영사들이 지내는 집도 사실상 권씨의 소유”라고 한다. 현실판 차무식 돈이 곧 권력이자, 신분인 동남아에서 권씨가 경찰을 매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권씨는 수사망을 피해 사업가로 위장했고 다수의 여성과 향락을 즐겼다. 김씨도 부유한 사업가로 위장한 권씨를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충정 측은 “김나정은 술자리를 가져 다소 취했던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손이 묶이고 안대가 씌워졌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김나정이 연기를 흡입하게 했다. 김나정이 이를 피하는 모습을 보이자 급기야 어떤 관 같은 것을 이용해 김나정이 강제로 연기를 흡입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며 “김나정의 핸드폰에 손이 묶이고 안대를 가리고 있는 영상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나정에게 문제가 된 마약을 강제 흡입시키기 전, 총을 보여주고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증명할 자료는 따로 없으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 권씨는 다수의 범죄를 범해 수배 중인 자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자”라면서, “김나정은 권씨의 정체를 알게 됐고 후술하는 권씨의 협박이 허풍이 아니라는 생각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나정이 귀국 전 소셜미디어에 올린 마약 자수 관련 게시물은 ‘긴급 구조 요청’을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투약은 이번 단 한 번만 있었던 것이고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강제로 행해진 것”이라며 “김나정이 경찰과 본인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영상통화를 했고 이 과정에서 권씨의 관계자로 보이는 자가 권씨와 통화하며 김나정을 추적하는 영상을 녹화했다. 즉 김나정은 긴급히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마약 투약 사실을 자수한 것이지, 자의로 마약을 투약했음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후 자료를 제출받은 경찰은 약 3개월 동안 분석 작업을 했다. 또 경기북부경찰청은 김씨 측이 강제성을 주장하며 언급한 권씨에 대해 경찰청 본청 국제 관련 사건 담당 부서에 수사를 요청했다. 대검찰청은 2016년 필리핀 국가수사청과 초국가적 범죄 대응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022년부터 검찰수사관 2명을 현지에 파견해 국제공조·도피 사범 검거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필리핀 본사···치밀한 조직 운영 추정 범죄 수익만 3000억원 이상 다만, 지난해 경기북부경찰청은 권씨에 대해 “수배 중인 자라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씨가 인천국제공항 경찰단에서 2회 정도 조사를 받았고, (사건은) 주거지 관할인 경기북부경찰청으로 인계됐다”며 “사전 조사 후 1~2회 정도 소환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법에서 마약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투약하는 행위에 대해서 가중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마약 강제 투약도 일반적인 마약 관련 행위와 마찬가지로 마약 관리법 위반으로만 처벌된다. 지난 2019년 국회에서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임시 마약류를 다른 사람 의사에 반해 투약하거나 흡연 또는 섭취하게 한 경우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마약류관리법 개정안 발의가 이어졌지만 모두 폐기됐다. 법무부가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한 이후 20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다. 한편,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투자 리딩방 범죄조직들은 대부분 마약 유통에도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김미영 팀장’으로 불린 보이스피싱 총책 박모씨와 함께 필리핀 구치소에서 탈옥한 조직원들도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서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조직을 꾸렸다. 이른바 ‘비쿠탄 마약왕’으로 알려진 송모씨는 2022년 수원에서 필로폰을 소지한 채 붙잡힌 김모씨의 상선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대포폰 판매, 마약 유통 사업으로 수감 생활을 이어갔다.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 등은 비쿠탄 교도소 내에서 대포 유심칩으로 신분을 숨겨 텔레그램 ‘마약방’을 개설했다. 평소 이들은 주식 및 코인 리딩방 등을 운영해오면서 모은 수만명의 회원들을 마약방으로 초대해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했다. 이들은 수억원의 범죄수익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지 제보자는 “리딩방,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권씨도 똑같은 수법으로 마약 유통에 가담하고 있다”며 “그렇기에 김나정에게 마약을 쉽게 투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활동명 ‘재림’ 그러면서 “지난해 탈옥한 송씨도 필리핀 파사이 등에 있는 마약 공급책을 통해 한 달에 5kg 정도의 필로폰 유통을 지시했다”며 “송씨는 비쿠탄에서 만난 중국 마피아로부터 싸게 구입한 필로폰 등을 드로퍼(전달책)에게 전달해 한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송씨가 드로퍼에게 준 배달료는 한화 약 1000만원가량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