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연말 인사 관전포인트5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11.25 11: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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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줄 끊길라' 물갈이 공포에 숨도 못쉰다

[일요시사=경제1팀] 겨울. 직장인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계절이 왔다. 연말 인사를 코앞에 두고 있는 대기업들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올해는 장기 경기침체와 경제 민주화 열풍 때문에 '조용조용'하게 넘어가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하지만 주요 그룹들의 실적 악화와 총수 공백, 세대 교체 등의 요인들로 대규모 인사가 단행될 가능성이 짙다. 누가 남고 누가 떠날까.




재계가 연말 인사를 앞두고 잔뜩 긴장했다. 이달 말 LG그룹을 시작으로 주요 그룹들의 인사이동이 본격화된다. 유례없는 장기 경기침체와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불어 닥친 경제 민주화 열풍은 임직원들의 목숨줄을 흔들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그룹의 최고경영자 인사는 승진, 전보 등 60명에 달했다. 올해는 주요 그룹들의 실적 악화와 총수 공백, 세대교체 등의 많은 요인들로 작년 이상의 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포인트1> 오너 2·3세, 넓어지는 보폭

특히 오너 일가의 승진 인사가 관심거리다. 최근 1∼2년간 대다수 그룹의 2·3세 경영인이 승진했기 때문에 승진 인사 규모는 소폭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지만 보직 이동 등으로 3세들의 보폭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의 경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두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승진 명단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높게 점쳐지고 있다. 지난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회장단으로 승진한 만큼 올해 장녀 이부진 사장도 회장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겠냐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이부진 사장은 지난 2011년 사장에 올라 3년간 호텔신라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호텔신라의 면세점 부문을 한 단계 성장시키고 신라호텔 리모델링을 진두지휘하는 등 발군의 경영능력을 선보여 왔다.

이서현 부사장은 2010년 말 부사장에 승진한 뒤 3년 동안 인사이동이 없어 사장 승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최근 에버랜드가 이서현 부사장의 제일모직 패션 부문을 인수하고 건물 관리업을 에스원으로 이관하는 등 사업 구조조정을 단행한 만큼 이서현 부사장이 에버랜드 사장으로 옮겨가 패션사업을 이어갈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번 승진 명단에는 빠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연말 인사를 기점으로 경영 일선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그룹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지만 등기이사를 맡지는 않은 만큼 내년 주주총회에서 삼성전자 등기인사에 이름을 올릴지도 관심사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장남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역시 승진보다는 보직을 추가로 맡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말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의 합병으로 철강사업이 일원화되는 만큼 품질부문을 맡고 있는 정의선 부회장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양아들 구광모 LG전자 부장의 경우 올 3월 승진한 만큼 올해 임원 승진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조양호 회장의 한진그룹 3남매도 올해에는 조용하게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대한항공 상무는 올 초 이뤄진 정기인사에서 승진했다는 게 이유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아들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 또한 지난 2011년 승진해 이번 명단에는 빠질 전망이다.





한화그룹의 경우 김승연 회장의 부재로 인사 시기는 불투명하지만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략마케팅 실장의 그룹 임원 승진이 점쳐진다. 김동관 실장이 주력사업인 태양광 사업을 진두지휘하면서 후계자로서의 보폭을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의 장남인 정기선 수석부장의 임원 승진에 대한 관심도 높다. 올 6월부터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에서 일하고 있는 정기선 부장의 경우 이달 말 예정인 그룹 정기 임원인사에서 상무보로 승진하는 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인트2> 자리 비운 회장님, 안정이냐? 혁신이냐?

총수가 구속 등으로 공백 상태인 그룹들의 인사도 관심사다. 이재현 회장의 부재에 따라 실적 부진 등의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는 CJ그룹은 지난달 말 2014년 정기 임원인사를 발표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총 91명의 인사 중 55명이 승진했다.

앞선 10월 초에는 이례적으로 수시 임원인사도 단행했다. 이채욱 CJ대한통운 대표를 지주사인 ㈜CJ 대표이사로 겸직 발령한 게 대표적이다. 외부 인사가 지주사 대표를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룹의 주요 요직인 지주사 사업팀장에는 구창근 부사장을, 재무팀장에는 김재홍 상무, 인사팀장에는 이준영 상무, 홍보실장으로는 김상영 부사장, CSV경영실장에는 민희경 부사장, 인재원장에는 손관수 부사장, 인재원부원장에는 신영수 상무, 법무 TF팀장에는 성용준 부사장 등을 새로 임명했다.

CJ 출신 인사들 중에서는 이관훈 전 지주사 대표가 상담역으로, CSR팀장을 맡고 있던 권인태 부사장은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룹 홍보실장이던 신동휘 부사장은 CJ대한통운 전략지원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희비 엇갈리는 정기인사 시즌 성큼
경기침체·경제민주화로 폭풍 예고

정기 임원인사에서는 변동식 CJ오쇼핑 공동대표와 강석희 ㈜CJ 경영지원총괄 겸 CJ E&M 대표이사가 총괄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신규 임원 20명 중 1970년 이후 출생자가 10명에 달하는 등 젊은 인재 발탁도 눈에 띄었으며 노혜령 ㈜CJ 홍보기획담당 상무와 권미경 CJ E&M 영화사업부문 한국영화사업본부장 등 여성 임원도 2명이 배출됐다.

CJ그룹 관계자는 "그룹 위기 상황과 저성장 기조를 감안해 현금 흐름 중시 등 내실경영과 함께 글로벌 사업 강화를 통해 그룹의 지속적인 성장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이 구속 중인 SK그룹도 그룹 분위기 쇄신을 위해 매년 12월 중순 실시하던 인사를 12월 초로 앞당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연초 '따로 또 같이 3.0' 신경영체제 출범에 따라 다수 계열사 CEO 교체 인사를 실시한 만큼 연말 인사 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3.0체제 출범 후 SK그룹은 계열사별 독립적 인사권한을 부여, 계열사마다 인사시기 등에 차이가 있다.

김승연 회장의 부재가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한화그룹은 보통 2월 초에 정기인사를 하지만 이번에는 인사가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번 인사 역시 예년보다 늦춰지다가 비상경영위원회가 출범한 직후 4월 말에야 단행된 바 있다. 특히 김승연 회장의 파기환송심 선고가 내년 초로 예정되어 있어 그 이후 인사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인사 폭은 예년 수준인 5~6명의 사장단 인사가 예상된다. 재임기간이 3년 이상인 11명의 계열사 CEO 가운데 실적이 부진한 CEO가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효성그룹과 오너가 재판을 받고 있는 태광그룹은 인사 시기나 폭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포인트3> 사업구조 개편, 대규모 인사 예정

삼성그룹은 삼성디스플레이가 가진 삼성코닝정밀유리 지분 43% 전량을 미국 코닝에 넘기고 삼성SDS가 삼성 SNS를 흡수 합병하기로 하는 등 사업구조 개편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각 계열사 CEO를 포함한 대규모 인사를 단행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올해 승진과 전보 등의 대상이 되는 인원은 총 20여명 규모로 작년(17명), 재작년(17명) 수준에 비해 폭이 넓어 졌다.

TV 부문 1위를 이끌고 있는 윤부근 CE부문 사장과 스마트폰 부문 1위를 이끌고 있는 신종균 IM부문 사장의 부회장 승진 여부가 관심사다. 사장 재직 기간이 5년으로 상대적으로 짧아 부회장 승진이 부담스러운 경향은 있지만 실적만 놓고 보면 어렵지만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승진한 지 각각 2년, 3년이 된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과 강호문 부회장이 물러날지도 귀추가 주목된다. 삼성그룹에서는 부회장 승진 뒤 2∼3년이 지나면 현업에서 물러나는 일이 잦았다.

작년 승진한 박근희 삼성생명 부회장의 경우 최근 불거진 '보험왕' 탈세 파문이, 정연주 삼성물산 부회장은 이전에 맡았던 계열사 삼성엔지니어링의 실적 부진이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포인트4> 신상필벌 바탕, 예상 깬 인사도?

다음 달 정기인사를 앞두고 있는 현대차그룹은 품질경영에 대한 문책인사를 이미 단행했다.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 기술 부문을 책임지는 임원인 권문식 연구개발본부장을 전격 경질하고 김용칠 설계담당 부사장과 김상기 전자기술센터장 등도 사표를 수리했다. 올 들어 제기된 대규모 리콜과 품질 논란에 대한 문책성 인사다.

현대차는 박정길 전무를 설계담당 부사장으로 승진 발령했고 바디기술센터장엔 김헌수 상무를, 김상기 전자기술센터장 후임으로 박동일 이사를 상무로 승진 발령했다. 권문식 연구개발본부장 후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실적 악화에 총수 공백
세대교체 칼바람 예상

LG그룹에서는 LG전자 휴대폰 부문의 실적 악화가 최대 현안이다. 양대 사업본부인 휴대폰과 TV 부문에서 부진한 실적에 따른 문책성 인사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개발 등에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어 예상을 깬 인사가 단행될 가능성이 있다.

LG그룹은 지난해 일부 부회장의 2선 퇴진에 이어 구본준-차석용-이상철 부회장단에 대한 변화가 있을지가 관심사다. 재임 3년을 넘긴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과 김대훈 LG CNS 사장이 계속 대표이사직을 유지할지, 올해 좋은 성과를 낸 이웅범 LG이노텍 대표가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할지도 관심사다.

LG그룹이 공을 들여 영입한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견고한 실적을 바탕으로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포인트5> KT·포스코…, 선장 잃은 회사는?

이석채 회장과 정준양 회장이 각각 사의를 표명한 KT와 포스코는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예상되고 있다.

KT는 이석채 회장이 임기를 1년6개월 가까이 남기고 사임하면서 주요 임원진이 송두리째 바뀔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석채 회장 시절 외부에서 영입한 인사들이 대거 물갈이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임원들은 잔뜩 몸을 낮추고 있다. 더욱이 KT는 덩치를 줄이는 인적 구조조정도 예정하고 있다. 임원진이 줄어들고 외부 인사의 영입 등 연쇄 이동이 예상된다.

KT는 지난 18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8명으로 CEO추천위원회를 구성했다. 단일 후보의 윤곽은 연말에 나올 전망이다. 외부 인사로는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 방석호 전 정보통신 정책연구원장, 형태근 전 방통위 상임위원 등이, 내부 인사로는 표현명 현 사장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정준양 회장이 사의를 표한 포스코는 주주총회가 열리는 내년 3월 후임 회장을 선출하게 됐다. 매년 3월께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해온 포스코는 새 회장이 선임되면 후임 사장과 임원 인사의 방향과 폭이 결정돼 큰 폭의 인사 이동이 불가피하다.

포스코는 다음달 CEO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늦어도 내년 2월 전에 내정자가 나올 전망이다. 김준식, 박기홍 포스코 사장과 정동화 포스코건설 부회장, 이동희 대우인터내셔널 부회장 등 내부 인사들이 하마평에 오른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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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