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질 짠’ 국정원 요원들 왜?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1.18 14:16:34
  • 댓글 0개

어수선한데 때아닌 비밀 임종체험

[일요시사=사회팀] 최근 국가정보원 직원 수십 명이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효원힐링센터’에서 임종체험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영정사진을 찍고 죽음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수의를 입고 관 속에 들어가기도 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임종체험에 나선 이유가 뭘까.




국정원 직원들이 죽음을 체험하기 위해 효원힐링센터를 찾았다. 지난 12일 효원힐링센터 관계자를 만나 국정원 직원들의 ‘임종체험’ 사실을 확인했다. 국정원 직원 수십 명은 당산역 인근에 있는 효원힐링센터 4층에 모여 차례대로 영정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센터 강사로부터 죽음에 대한 강의를 듣고 5층에 올라가 준비돼 있는 관속으로 들어갔다.

“마음 풀고 갔다”

지난 6월 개원한 효원힐링센터의 임종체험자 수는 5000명을 넘어섰다. 체험 희망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임종체험을 위해 이 센터를 찾는 사람들은 주로 학생, 종교단체, 기업, 각종 동호회 등이다. 그런데 최근 의외의 기관이 이곳을 왔다 갔다. 바로 ‘국정원’이다.

국정원이 임종체험을 하고 유유히 떠났다고 밝힌 센터 관계자는 “일반인과 다름없이 임종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며 “국정원 직원 50여명이 왔다 갔다”고 말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영정사진을 찍고 강의를 듣고 유서도 썼다. 그리고 저승사자를 만났다.

센터 관계자는 당시 국정원 직원들의 임종체험에 대해 “마음이 굳은 자들이 마음을 풀고 갔다”고 말했다. 이어 “국정원 직원들은 자신들의 흔적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단체사진은 찍지 않았다”며 “다른 사람들에게 신원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이 센터를 방문한 날짜와 정확한 명단을 확인하고자 관계자에게 구체적인 자료를 부탁해봤지만 ‘지지난 주’ ‘50여명’이라는 정보 외에는 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기자가 방문한 11월12일 기준으로 따져보면 10월28일부터 11월2일 중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토요일은 단체가 아닌 개인 위주로 받기 때문에 국정원 직원들이 다녀간 날짜는 10월28일부터 11월1일, 즉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로 좁혀진다. 즉 평일에 찾아온 것이다.

직원 50여명 효원힐링센터 극비리 방문 확인
영정사진 찍고 관 속 들어갔다 유유히 사라져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국정원 측에 연락했다. 국정원 측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공보실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냐”며 “임종체험 장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이에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효원힐링센터 관계자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밝히고 들은 정보를 토대로 국정원 직원들이 다녀간 날짜와 인원을 물었다.

그는 “지지난주에 국정원 직원들이 왔다 갔다고 그쪽(센터)에서 말했냐”며 “그쪽에서 이미 그렇게 말했다면 날짜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했다. 그리고 다소 날이 선 목소리로 “신원을 밝히지 말라고 했는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국정원이 센터 측에 비밀 유지를 부탁했던 것이다.

국정원은 지난 대선기간 중 심리정보국 직원 70명과 외부조력자들과 함께 커뮤니티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정치적인 댓글로 대선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공직선거법위반과 국정원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이때부터 국정원의 신뢰도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부정선거’의 가장 큰 조력자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으로 ‘정치공작’에 나섰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국정원은 내란음모 사건을 오로지 녹취록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녹취 원본이 없다. 근거 자료도 불법으로 취득해 법적 문제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은 조작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확인에 당황


이런 정국에 국정원 직원들이 임종체험에 나섰다. 제 발로 저승사자를 만나러 온 국정원 직원들. 그들은 평일에 단체로 힐다잉(hilling-dying)을 체험했다. 그들은 관 속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무도 모르게 귀신처럼 다녀갔지만 꼬리는 길었다. 어수선한 정국에 국정원의 이러한 행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르포] 임종체험 해보니…

웰빙’ 열풍에 이어 ‘웰다잉(well-dying)’이 뜨고 있다. 이제는 ‘잘 죽는 것’도 준비하는 시대다. 여기 가상의 죽음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12일 ‘임종체험’을 하기 위해 효원힐링센터를 찾았다. 이날 기자는 성동구의 한 사회복지관 노인들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시작은 영정사진 촬영이었다. 노인들은 밝은 미소로 촬영에 임했다. 촬영 후 센터 측 서포터즈는 영정사진을 나눠줬다. 영정사진을 받아 든 노인들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에이 좀 더 웃을 걸∼” “아주 잘나왔네!” “이거 가져도 되죠?”

그리고 본격적인 임종체험에 앞서 죽음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강사는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 뒤 노인들에게 지금까지의 인생이 어땠냐고 물었다. 한 노인은 “생각해보니 인생이 길었다”고 답했다. 강사는 “인생이 짧아야 후회 없이 산 거다”고 말하며 “여생을 즐겁게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노인들은 매우 쓸쓸해 보였다. 알고 보니 대부분 독거노인이었다.

“아들한테 연락이 안와…이제는 기다리지도 않고, 자식들 잘 사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노인들은 울적한 마음을 뒤로하고 센터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관’이 준비돼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저승사자의 손을 잡고 계단 하나하나를 올랐다.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 마주했다. 그곳에는 수십여 개의 관이 정렬돼 있었다. 각자 자신의 관 옆에 앉아 영정사진을 펼쳤다. 엄숙한 분위기 속 지나온 인생을 회상하며 간단한 명상을 했다. 명상 후 노인의 죽음과 관련된 영상을 시청했다. 그리고 유서를 작성하고 죽기 전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남편이 술 퍼먹어도 자식들 키우면서 잘 살았어요.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까. 남은생 즐겁게 살다 가고 싶어요.”

“그저 자식들이 잘 살길 바라죠.”

“큰 아들이 애 못 낳고 작은 아들은 아직도 결혼을 못했어요. 손자를 보고 싶은데….”

몇몇 유서의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큰 어려움 없이 자랐어요. 남편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죠. 그런데 아들 둘을 교통사고로 잃어서….”

애절한 사연을 끝으로 내부 조명이 꺼졌다.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리고 강사의 지시에 따라 금태 두른 하얀 수의를 입었다. 묘한 음악과 함께 관 뚜껑이 열렸다.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관 속으로 들어갔다. 옆에 있던 저승사자가 관 뚜껑을 천천히 닫았다. 입관. 좁은 관속에 누운 순간 오만 생각이 교차했다.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답답함이 밀려왔다. 비록 체험이었지만 관 뚜껑을 빨리 열고 싶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저승사자들이 관 뚜껑을 열었다. 죽음에서 깨어난 것이다.

“아, 이런 느낌이구나….”

백문불여일견. 매우 뜻 깊은 시간이었다. 임종체험이 끝난 후 한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갈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이런 경험을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며 영정사진을 가슴에 품고 센터를 떠났다.


노인들을 인솔한 사회복지사는 “복지관에서 처음 시도한 프로그램이다”며 “기분이 묘했지만 관에 눕는 순간 가족들과 친구들이 생각나면서 삶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광>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