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성추문 낙마' 이참 전 한국관관공사 사장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1.18 14: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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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눈서 흐른 눈물은…억울? 참회?

[일요시사=사회팀] 한국관광공사 이참 사장이 전격 사퇴했다. 일본 성인업소에서 마사지를 받았다는 성접대 의혹을 받고 물러난 것. 그는 논란 속 결백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조직에 가해지는 압박과 부담을 감안해 사퇴했다고 밝혔다.




한국관광공사 이참 전 사장이 자신을 둘러싼 성접대 의혹에 대해 “성접대를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지난 15일, 사장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이 전 사장은 이날 오전 10시 관광공사에서 사임식을 열고 직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성접대 논란 속
끝내 사퇴…

이 전 사장이 지난해 설 연휴 기간에 외부 용역업체로부터 일본에서 퇴폐 향응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결국 사퇴했다. 이 전 사장과 일본 여행에 동행한 관광공사 용역업체 임원 인 이모씨는 자신의 안내로 일행이 도쿄 요시와라 소재 퇴폐 업소인 ‘소프랜드(Soap Land)’를 찾았다고 밝혔다. 이 임원은 1인당 75만원의 여행비용도 일본 현지 관광업체에서 부담했다고 폭로했다.

이 전 사장 측은 보도에서 언급된 여행은 “이참 사장이 설 연휴를 이용해 평소 잘 아는 지인들과 함께 휴가 차 일본 여행을 간 것”이라며 “현지 경비는 각각 일정액을 부담해 공동 집행했고 현지 테마파크 인근 명소를 둘러보는 것이 주요 일정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관광공사는 이 전 사장이 소프랜드를 갔는지 안 갔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 전 사장이 일본을 간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일본에서 퇴폐업소를 방문했는지가 중요한데 정작 이 부분은 해명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관광공사는 사건 최초 제보자인 이모씨가 관광공사 측과 사업 협력이 무산되자 이 전 사장을 음해하려 하고 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관광공사는 자료에서 “제보자로 언급된 이모씨가 관광공사와의 협력 사업이 중지되자  일방적으로 허위사실을 제보한 것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모씨가 운영했던 협력 회사는 관광공사 무인 정보 안내시스템인 ‘키오스크’의 시스템 개발과 운영을 맡았었다. 2010년부터 23곳의 키오스크를 운영하며 관광공사 5억원, 해당 지방자치단체 1억5000억원 등 총 6억5000억원 규모의 사업을 함께 진행했다. 그러나 키오스크는 올해 초 시스템 오류가 발생해 현재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모씨는 이 과정에서 관광공사에 추가 용역비로 1억5000만원을 청구했지만 거절 당하자 최근 해당 팀장을 사기죄로 형사 고발하기도 했다.

이 전 사장은 “2012년 연초 개인휴가를 내고 오랫동안 친분이 있던 지인과 함께 일본으로 온천여행을 다녀왔다. 여기에는 공사의 무인 안내 키오스크 사업 용역을 맡은 협력회사 임원(언론 제보자)이 동행했으며 현지 키오스크 업체 사람들을 만나는 일정이 포함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키오스크를 활용해 공사를 홍보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겠다고 봤기 때문에 자리를 함께 했다. 내 의욕도 강했고, 잘해나갈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협력회사 관계자와 동행했다”는 것이다.

또 “여행 중 일본 업체로부터 정당하지 못한 대접을 받은 바 없고 논란이 되고 있는 장소도 제보자가 말하는 ‘소프랜드’가 아닌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곳임을 확인한 후 저녁식사 전 간단한 휴식을 위해 방문했다. 요금 역시 제보자의 주장처럼 큰 금액이 아니었으며 회비를 가지고 있던 지인이 지출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일본 퇴폐업소 출입 성접대 의혹 제기
“마사지만…”결백 주장하다 결국 사퇴


이어 “현직에 있으면서 이 사실을 명확히 입증하고 법적인 절차를 밟아 심히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고 싶고 그럴 자신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로 인해 우리 공사 조직에 가해지는 압박과 부담이 대단히 커 보이고 이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이 전 사장은 “한국관광공사 수장으로서 관광산업, 그리고 조직을 위해 이제 물러나고자 한다. 아쉬움을 곱씹으며 차분히 생각해봤지만 이것이 최선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전 사장은 퇴임식 후 미소로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이 전 사장은 지난 2009년에 관광공사 사장으로 취임해 작년, 3년 임기에서 연임에 성공한 뒤 지난 7월까지 사장이 정해지지 않아 사장직을 지속해 왔다. 관광공사 측은 “이참 사장 취임 이래 당시 781만명이던 외래관광객이 올해 1250만명(예정)으로 60%가 증가했고, 숙박시설 확충, 관광벤처 사업, 프리미엄 여행상품 개발, 현장 중심 창의 마케팅 등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큰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차기 사장 선임은 현행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모형태로 진행하면 최소 2개월 정도가 걸릴 예정이다. 관광공사는 강기홍 부사장이 직무를 대행한다.

민주당은 이 전 사장 사퇴와 관련해 “혹시 논공행상용 자리재배치가 진행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지난 15일 이 전 사장 사퇴와 관련 서면 브리핑을 통해 “공공기관장에게 도덕성과 자질의 문제가 드러난다면 물러나야 마땅하지만 국민들은 유독 대선공신 논공행상 논란이 한창인 이때에 포스코, KT에 이어 한국관관공사 사장과 관련해서도 느닷없는 사고와 사퇴행렬이 이어지고 있는지 의아해 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 대변인은 “혹시 공공기관 인사 전반에 대한 대선 논공행상과 자리 나눠먹기 차원의 자리재배치가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다는 국민적 의구심과 일련의 사퇴행렬이 깊은 연관을 갖고 있는 것 아닌지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음에 또 어떤 공기업과 ‘좋은 자리’의 사장들이 논란 속에 물러나게 될까.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은 박근혜정부에서 벌어지는 아귀다툼에 주름살 하나 늘어날 뿐”이라고 비판했다.

고개 숙인 이참
불명예 퇴임

이 전 사장이 관광공사 자리에서 물러남에 따라 차기 사장직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 전 사장은 일본 퇴폐업소 출입 의혹으로 불명예스러운 퇴임을 했지만 재직 중 외래관광객 1100만명을 돌파하는 등 한국 관광 산업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특히 2009년 7월 취임 후 4년3개월 동안 역대 공기업 최장수 사장으로 재직해 왔기에 차기 사장직에 더욱 관심이 높다.




관광업계에 따르면 현재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인물은 대략 7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먼저 이름이 거론된 이는 유명 연예인 출신인 쟈니 윤(본명 윤종승)이다. 1936년생인 그는 올해 77세로 올 초 이미 ‘내정설’이 흘러나왔다. 그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의 재외선거대선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다만 관광 분야 경험이 전무한 것이 걸림돌이라 할 수 있다. 청와대 또한 사실무근이라고 했지만 차기 인선 작업이 늦어지면서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독일서 귀화한 뒤 방송 활약
MB 눈에 들어 ‘최장수 사장’


곽영진 문화체육관광부 전 1차관과 권경상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도 꾸준히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업무 연관성만 놓고 본다면 두 후보가 가장 유력하다. 곽 전 차관은 문화관광부에서 30년 넘게 근무한 것이 강점. 모철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도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점도 유력후보로 거론되는 이유다. 권경상 총장 또한 문체부 관광국장을 역임했다. 다만 두 후보 모두 관료 출신이라는 점이 걸린다. 최근 정부는 공기업 사장에 관료 출신을 배제한다고 방침을 굳힌 후 후보군에서 제외됐다는 소문이다.

업계 출신으로 송용덕 롯데호텔 대표와 강우현 남이섬 대표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두 후보 모두 공직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관광공사 내부 승진도 기대할 수 있다. 그동안 내부 승진으로 사장직에 오른 예가 없지만 업계와 내부 사정에 밝다는 것이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 이 외에도 최근 종합일간지 출신 여행전문기자도 후보군에 올랐다는 소식이다. 이에 대해 관광공사 관계자는 “먼저 이참 사장이 불명예 사퇴한 것이 매우 안타깝다”면서도 “후보인선은 한국관광산업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덕망있는 분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푸른 눈의
귀화 한국인

독일인인 이 전 사장은 한국에서 성공한 귀화 외국인의 표상으로 꼽힌다. 본명은 베른하르트 크반트(Bernhard Quandt)로, 독일 라인란트필츠 바트크로이츠나흐 출신이다. 그는 독일 구텐베르크 대학에서 불문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미국 트리니티 신학대학에서 상담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78년 통일교 관련 행사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뒤 한국의 매력에 푹 빠졌고, 한국에 정착했다. 1980년 교육방송 독일어 강의를 시작으로, KBS 1TV <지구촌 파노라마>의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며 방송과 인연을 맺었다.

1982년에는 통일교에서 만난 한국인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고, 1986년에 한국으로 귀화해 ‘독일 이씨’의 시조가 됐다. 독일인 남자로는 첫 번째, 유럽인 통틀어 스물다섯 번째였다. 귀화 당시에는 나라 ‘한’, 도울 ‘우’를 써 ‘이한우’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현재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이후 그는 하일(로버트 할리), 이다도시 등과 함께 대표 외국 방송인으로 활동하며 ‘외국인 배우 시대’의 문을 열었다. 1994년 KBS 인기 드라마 <딸부잣집>에 권차령과 결혼하는 외국인 남편 칼로마로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고, 1995년엔 백상예술대상 인기상을 수상했다.

그 뒤에도 MBC <제5공화국>, SBS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천국의 계단> 등 굵직굵직한 드라마에 출연하며 지금의 샘 해밍턴과 같은 큰 인기를 누렸다.

리포터와 CF모델 등으로도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연예인인 동시에 대학교수, 경영인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 공직 사회에 발을 딛기 시작했다. 2001년엔 한국사회에 참여한다는 뜻으로 참여할 ‘참’을 써 ‘이참’이란 이름으로 다시 개명했다.

차기 사장은…쟈니 윤 등 거론

그의 정치활동은 같은 소망교회 장로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변에서 시작했다.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던 시기에 서울시 홍보대사와 ‘아리수(서울시 수돗물)’ 홍보대사로 활동했고, 2007년 대선 당시에는 한반도 대운하 특별위원회 특별보좌관으로 이 전 대통령을 도왔다.

2008년 총선 때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를 신청하기도 했다. 2009년 7월 대한민국 공기업 최초로 한국관광공사에 외국계 한국인 사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그가 관광공사 사장에 임명되자 ‘고소영’ 인사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이 사장의 영입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변화? 낙하산?
엇갈리는 평가

‘관광’이라는 분야의 특성상 3년은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에 짧은 시간이지만 그는 취임 후 왕성한 활동을 보이며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놨다. 임기 기간 내 외국인 관광객 수가 매년 11∼13%의 ‘두자릿수’ 비율로 증가했다. 2011년엔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 달성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외국어에 능통하고, 색다른 시각에서 한국을 바라볼 수 있는 점도 이 전 사장의 장점으로 꼽혔다. 올해 초에는 대학생이 가장 닮고 싶은 CEO ‘공기업’ 부문 1위에 오르며 주목받기도 했다.

반면 ‘낙하산 인사’라는 꼬리표는 떨쳐내지 못했다. 관광공사가 2011년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가장 하위의 성적표를 받았음에도 지난해 그가 연임에 성공하자 안팎에서 비판이 일었다. 당시 관광공사 1층 로비에는 경영진을 성토하는 노동조합의 대자보가 몇 달째 붙어 있기도 했다.

2012년 국정감사에서도 이 같은 의혹이 불거졌다. 민주당 유승희 의원은 “4대강 홍보에는 지난 2011년보다 446% 증가한 30억원을 지출한 반면 한류관광에는 불과 8억원만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4대강사업이 MB정부의 대표적인 국책사업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전 대통령과 이 사장의 친밀도는 상당하다는 추측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는 3년 임기를 마친 뒤 1년 연임에까지 성공하면서 ‘귀화 1호 공기업’ 사장이라는 수식어 외에도 다양한 타이틀을 달게 됐다. 1973년 관광공사법 개정으로 총재 체제에서 사장 체제로 바뀐 후 40년간 역대 한국관광공사 사장 가운데 3년 기본 임기를 채운 전례는 이 사장을 포함해 단 3명뿐이다.

이 전 사장은 특히 역대 사장 중 유일하게 1년 추가 연임까지 채운 사장으로 모두 4년3개월 넘게 ‘최장수 관광공사 사장’으로 재직하는 기록도 세웠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이후 관광공사를 포함한 공공기관의 후속 인사가 미뤄지면서 올해 7월29일로 추가 임기가 끝난 상태지만 최근까지 사장직을 수행해왔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이참은?]

▲독일 출생
▲구텐버그대 불문학, 신학과 학사
▲트리니티대 대학원 성서상담학 석사
▲한독상공회의소 이사
▲해성 엔지니어링 대표이사
▲문화관광부 한국방문의해 추진위원
▲참스마트 대표이사
▲빅웰 회장
▲KTF 사외이사
▲기아자동차 고문
▲기획예산처 혁신 자문위원
▲예일회계법인 고문
▲한반도 대운하 특별위원회 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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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