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꼭 봐야 할 동양에 밟힌 슬픈 사연들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11.18 14: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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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현 회장님 밥이 넘어 가십니까"

[일요시사=경제1팀] 피해자 5만명에 1조5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피해금액. 동양사태의 결과물이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동양증권 여직원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당장 길바닥에 나앉게 생긴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도 보상 여부와 책임 소재는 불분명하기만 하다. 피해자들은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지난 9월 말 동양그룹 계열사인 동양, 동양네트웍스, 동양레저, 동양시멘트, 동양인터내셔널 등 5개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와 함께 동양그룹 기업어음(CP)과 회사채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 규모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동양그룹 계열사 CP와 회사채에 투자한 개인 자금 규모는 1조5500억원을 넘어서고 개인 투자자수는 5만명에 달한다.

피해자들은 주로 동양증권의 전화 권유로 해당 상품에 투자했으며 가입 시 채권의 조기상환청구권·CP의 원리금 상환 가능 여부·채권이 예금자보호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 등에 대해 동양증권 직원으로부터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피해자들은 집단 소송에 들어갔으며 나머지 피해자들도 줄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집단 소송
줄소송 준비 중

하지만 동양그룹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계열사들에 대한 대출과 회사채, CP 등 모든 채권채무가 동결되면서 당분간은 자금이 묶였고, CP나 회사채는 변제 순위가 낮은데다가 자본잠식 상태여서 보상 여부는 불문명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양사태로 피해를 입은 개인 투자자들의 사연이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남편의 사망 보험금을 날리게 된 주부부터 10년간 결혼자금으로 모은 돈을 날리게 된 사람 등의 사연이 이어지고 있다.


[남편 사망보험금]
[묻은 세아이 엄마]

세 아이의 엄마인 양모씨(이하 가명)는 생활고에 시달리던 중 남편으로부터 '마지막 선물'을 받았다. 사망보험금을 타 아이들을 키워달라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당장 세 아이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양씨는 남편의 사망보험금으로 동양 채권에 투자를 했고 빚까지 내 가게를 계약했다.

만기 날을 기다리던 양씨는 동양의 법정관리 신청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고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눌 수 없어 하루하루를 뜬눈으로 보내고 있다.

양씨는 인터넷 카페 '동양 채권 CP 피해자모임'에 글을 올리며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낼 때보다 더 미칠 지경"이라고 썼다. 남편 목숨 값 하나 못 지키는 자신을 얼마나 원망할까 싶어서 라고 했다.

8살 난 아이를 키우는 주부 박모씨도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지난 2006년 아이 돌 지나고 한 달 뒤 남편이 암 투병을 하다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살길이 막막해진 박씨는 남편이 아이를 위해 남겨놓은 유일한 재산인 아파트를 판돈과, 남편의 암 진단금, 사망보험금 등 약 2억원을 들고 집 근처 동양증권 영업소를 찾아 CMS 통장을 만들었다.




박씨는 담당 직원에게 "평생 살아가야 할 돈이며 우리 아이 공부할 돈이니 위험한 건 절대 권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채권이 뭔지, CP가 뭔지 잘 몰랐던 박씨는 동양그룹 위기설에도 "걱정말라"고 큰소리치는 직원의 말만 믿었다.


하지만 박씨가 빈털터리가 된 건 순간이었다. 박씨의 돈은 법정관리를 신청한 동양그룹 계열사 5곳에 분산 투자가 되어 있었다. 직원은 "몰랐다"는 말뿐. 일평생 살 돈 2억은 휴지조각이 됐고 박씨는 아이와 앞으로 살아갈 일이 두렵고 무섭기만 하다.

[결혼 자금 맡겼다 ]
[돈 없어 파혼할 판]

동양증권 CMA 통장에 1억원 가까이 넣어놓은 지난 8월 박모씨는 동양증권으로부터 "좋은 상품이 있다. 자리 하나 남았다"는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결혼 자금이라 걱정된다는 박씨를 직원은 "3개월짜리니까 괜찮다" "동양이 망하면 우리나라 망한다"고 설득, 박씨는 이자 6.3%에 5000만원을 넣었다.

고교 졸업 후 군대 다녀와서 아르바이트로 사회생활을 시작, 퀵 서비스, 음식점 배달 등을 하며 모은 5000만원이었다. 이 돈은 모두 날릴 처지가 됐다. 내년 2월 결혼 예정인데 빚을 져야 하나 하는 걱정에 막막하기만 하다.

사태가 이런데도 상품 권유를 한 직원은 가타부타 말도 없다. 오히려 "저도 피해자"라는 말만 들었다. 아직 여자친구는 이 사실을 모른다.

피해자 5만명 피해금액 1조5000억원 추산
보상여부·책임소재 불분명…입증이 관건

고등학교 교사인 김모씨는 근무 8년차에 대학시절부터 차곡차곡 모아놓은 돈 6500만원을 그저 시중은행보다 금리가 조금 더 좋다는 이유로 동양증권 CMA 통장에 넣어두었다.

그러던 중 동양증권 모 지점 직원이 동양그룹 계열사에 신탁이라는 것으로 넣어 6개월 혹은 3개월간 1000만원 이상의 자금을 묶어서 보관하는 제도가 있으니 이를 이용할 것을 권유했다.

내년에 결혼 예정이라 위험성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김씨의 요구에 직원은 "동양그룹은 30여년간 이어온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계열이 튼튼해 결혼자금으로 쓰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득했다.

직원의 말을 믿은 김씨는 어머니 노후연금 8500만원까지 같은 방식으로 신탁을 맡겼다. 만에 하나 위험성이 있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김씨의 말에 직원은 "망할 이유도 없지만 혹시라도 동양계열이 안 좋아지면 ㈜동양이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 돕는 관계에 있으니 원금손실의 위험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동양사태 후 김씨는 채권자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떼러 가서 "이래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직원의 조롱 섞인 소리를 들었다. 김씨는 요즘 일상생활도 불가능할 정도로 불안감을 느낀다. 계속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된다고 한다.

[지금도 속고 있는]
[  시골 어른신들  ]


추석에 고향에 내려간 한모씨는 아버지로부터 평소에 거래하던 동양증권을 통해 채권을 사 놓았다는 말을 들었다. 동양그룹이 상태가 안 좋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한씨는 동양증권 울산 지점에 전화를 걸어 아버지가 ㈜동양의 회사채 5건, 동양증권 회사채 1건, 동양시멘트 1건을 보유 중인 것으로 확인했다. 게다가 올해 4월 동양증권에서 판매한 전자단기신탁에 8000만원이 추가로 투자된 사실까지 확인했다. 팔십평생 모은 아버지의 노후자금이 몽땅 동양 채권에 투자된 것.

한씨에 따르면 담당자는 "어르신, 채권이라는 것은 회사가 부도나면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라는 두루뭉술한 설명으로 채권을 판매했다. 동양그룹이 법정관리로 가면 투자된 것들은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는 오히려 "동양그룹이 법정관리 간다고 누가 그러느냐"고 큰소리를 내며 따졌다.


하지만 결국 동양은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한씨와 그의 아버지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고 있다.

강화도에 사는 김모 할머니는 동양증권 골드센터 목동점에서 "좋은 상품이 있다. 빨리 나오시라"는 전화를 받고 74세 고령의 나이에 목동까지 나가 3000만원짜리 CP에 가입했다.

CP가 뭔지, 회사채가 뭔지 잘 몰랐던 김씨는 단지 이자를 조금 더 주는 고금리 예금상품인 줄 알고 가입했다. 그러다가 TV 뉴스에서 동양그룹이 위험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상품이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혼절, 뇌진탕 판정을 받고 앓아 누웠다.

김씨의 딸이 해당 지점에 2회 방문해 불완전판매에 대해 강력 항의 했지만 CP를 판매한 담당 직원은 "동양시멘트 주식을 담보로 잡고 있어 괜찮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며칠 뒤 동양시멘트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전국 방방곡곡서 ]
[자살소동 차라리…]

최모씨는 동양증권에 칼까지 들고 가서 자살 소동까지 벌였다. 최씨의 피해금액은 자그마치 2억원. 11월 만기인 전셋집에서 2억원을 올려 달라 해서 이사를 갈 요량으로 마련해 둔 돈이었다.

딸 또래 여성 직원이 집까지 찾아와 상품을 권유하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0월1일 그 '딸 같은' 직원에게 "소식 아시죠? 2억은 찾을 수 없는 거 아시죠?"라는 전화를 받았다.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이 직원에 "네가 책임지라"고 했더니 "책임 못진다"고 했다.

최씨는 지난 1일 오후 1시께 서울중구 을지로 2가 동양투자금융빌딩에서 투신자살 소동을 벌이다 119 구급대에 의해 구조됐다. 최씨는 남대문경찰서로 연행돼 자살 시도 동기 등에 대해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동양증권 제주지점 직원 고모씨는 "회장님 이러실 수는 없잖아요. 고객들이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한다"는 유서를 남긴 채 자살했다. 꼼꼼한 일처리로 동료와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받아온 고씨는 지난 9월 말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줄줄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후부터 큰 심적 고통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씨는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한 남편의 아내다.

피해자들 대부분 직원 권유로 상품 투자
평생 모은 재산 날리고 거리로 나앉을 판

고씨가 발견된 아반떼 차량 안에서는 냄비와 함께 번개탄 두 개가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고씨가 냄비 안에 번개탄을 피워 놓고 목숨을 끊었다고 말했다.

당시 제주지역 모 일간지에 의해 공개된 고씨의 유서 두 장에서는 고씨의 자살 원인을 추측해 볼 수 있는 구체적 정황이 담겨 있었다. 가족에게 남긴 유서에서 고씨는 "여보 정말 사랑하고 미안해. 애들 잘 부탁할게. 이런 선택을 하게 돼서 미안해. ○○(딸)야 ○○(아들)야 사랑한다. 엄마가 지켜줄게"라고 적었다.

나머지 하나의 유서는 현재현 회장에게 남겼다. 고씨는 유서를 통해 "동양회장님 이러실 수는 없는 거 아닌가요. 오늘 아침에 출근할 때도 믿었습니다. 정말 고객님들께 조금이라도 이자 더 드리면서 관리하고 싶어서 그룹을 믿고 권유했습니다. 하루속히 개인고객님들 (피해가) 전부 해결됐으면 합니다"고 전했다.

고씨의 가족들은 출격에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동양사태가 직원들의 희망까지 앗아간 셈이다.

[ 장애인 딸 위해  ]
[17년 모은 돈 날려]

개인 투자자 중 가장 큰 규모의 손해를 본 이는 장애인 딸을 둔 캐나다 교포 이모씨다. 이씨는 중증 장애를 갖고 태어난 딸을 치료하기 위해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딸은 캐나다에서 17년 동안 뇌수술을 비롯해 7번이 넘는 대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차도가 없었고 이씨는 자신이 사망한 뒤에도 딸이 혼자 생활할 수 있도록 목돈을 남겨놔야겠다고 생각하고 투자 상품을 찾던 중 동양증권 직원을 만났다.




이메일을 통해 상품 설명을 받던 이씨는 CP와 회사채에 투자하라는 직원의 말을 믿고 캐나다서 17년 동안 아끼고 아껴 모은 돈 29억원을 모두 투자했다. 이씨의 주장에 따르면 직원은 투자설명서나 상품안내서조차 보여주지 않고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상품을 소개했다. 동양그룹 계열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직전인 9월 중순에도 직원은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씨는 동양증권을 상대로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낸 상태. 불완전판매 입증이 관건이다.

개별·공동소송전
금감원 조정 우선

동양사태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을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동양사태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법원의 채권회수율과 불완전판매율에 의해 결정된다. 동양그룹 법정관리 신청 계열사는 법원의 기업회생계획에 따라 채권회수율이 확정된다. 불완전판매율은 금감원이 인정한 불완전 판매건수가 많아질수록 높아진다.

불완전 판매를 통해 1000만원을 투자했을 경우, 법원에서 채권회수율을 60%로 정하고 불완전판매율이 40%로 결정됐다면 투자자는 회사채 발행회사로부터 원금의 60%인 600만원을, 판매한 증권사로부터 나머지 금액인 400만원의 40%인 160만원을 돌려받는다는 얘기다.

문제는 개인 투자자가 불완전판매를 인정받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금융소비자연맹(이하 금소연)에 다르면 불완전판매에 의한 손해배상 공동소송은 투자성향, 투자이력 등 개인별 불완전판매의 정도가 다르다. 개별적으로 설명의무이행 정도가 다르며 더구나 원고인 피해 투자자가 불완전판매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민사소송은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승소 가능성이 희박하다.

같은 약관을 적용한 금융사 '근저당설정비반환' 공동소송은 약관무효라는 대법원의 위법 판결이 있었음에도 원고의 개별 입증에 어려움이 있고 증거 부족 등으로 피해소비자들이 1심에서 패소판결을 받는 실정이다.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불완전판매 행위를 조사할 수 없어 감사권이 있는 금융감독원이 감사와 조사를 해 불완전판매임을 밝혀주어야만 보상이 가능하다. 이 불완전판매비율의 조정안을 금융사가 수용하지 않아 소송을 제기하면 소송비 지원까지도 검토하고 있는 금감원에 피해신고를 해 절차가 간편하고 신속한 분쟁조정절차를 거친 후에 상황에 따라 소송절차를 취하는 것이 유리하고 효과적이다.

금감원은 규정에 따라 소송진행 중인 사안은 민원이나 분쟁조정 대상에서 제외된다. 소송을 먼저 제기하면 비용과 시간을 낭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금감원의 분쟁조정을 받을 수 없어 개별적 소송이나 공동소송 전에 반드시 금감원 조정절차를 먼저 밟는 것이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

강형구 금소연 금융국장은 "금감원은 투자자의 소중한 재산을 투자부적격 회사의 회사채·기업어음을 매입하게 한 것은 불완전판매로 인정하고 투자자 보호를 위해 역량을 총동원하여 이를 신속히 조사해야 할 것"이라며 "불완전판매 피해자들은 공동소송을 하기 전에 금융감독원에 반드시 피해신고를 해 분쟁조정을 거친 이후 상황에 따라 소송여부를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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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