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스포츠>패션쇼 뺨치는 여자골프 ‘갈라 디너파티’ 속으로~

멋지게 보여서 나쁠 건 없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하나·외환 챔피언십 개막을 이틀 앞둔 지난달 16일. 영종도 하얏트호텔에서 ‘갈라 디너’ 파티가 열렸다. 프로골프대회는 본대회에 앞서 전야제 성격의 파티를 여는데 이 자리에는 출전 선수는 물론 대회 스폰서와 프로암에 참가했던 VIP가 모두 모인다.

 

파티의 하이라이트는 선수들의 의상이다. 일주일 내내 폴로셔츠와 바지, 치마를 입고 생활하는 선수들은 이날만큼은 자신이 입고 싶은 옷으로 한껏 멋을 낸다. 레드카펫을 밟는 여배우처럼 치열한 스타일 경쟁이 벌어진다.
박희영(26·하나금융그룹)은 “프로암 파티는 선수들이 가장 예쁘게 하고 오려는 곳이다. 할리우드 스타처럼 신경 쓰는 선수가 많다”고 했다.

여자 골퍼들의 치열한 스타일 경쟁

선수들의 스타일에는 나름의 공식이 있다. 미국·유럽·아시아 등 전 세계를 돌며 대회를 치르는 선수들은 각 나라의 문화와 분위기에 맞춰 옷을 입는 데 가장 신경을 쓴다. 파티문화에 익숙한 서양에서는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오프 숄더 의상이 눈에 띄게 많지만, 아시아 대회에 출전할 때는 옷차림이 단정해진다. 하나·외환 챔피언십 갈라 디너에서 출전선수 78명 중 30명에게 베스트 드레서에 대해 물어봤다.
1위는 폴라 크리머(27·미국)였다. 크리머는 전체의 3분의1인 10표를 얻었다. 최근 미국의 한 온라인 사이트가 실시한 설문에서 LPGA투어의 섹시골퍼 1위로도 뽑힌 크리머는 몸매에 대한 자신감이 강하다. 패션에 대한 관심도 많아 “하루에도 몇 차례씩 옷을 갈아입는다. 프로골퍼가 안 됐다면 패션 관련 일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머는 대회장에 드레스용 트렁크를 따로 들고 다니면서 여러 벌의 드레스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입는다고 했다. 평소 팔과 어깨는 물론 다리가 시원하게 드러나는 파격적인 의상을 즐기지만 이날은 몸에 달라붙는 보랏빛 원피스에 단정하게 묶은 헤어 스타일로 동료 선수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박희영은 5표를 받아 2위에 올랐다. 박희영은 세련된 하늘색 민소매 원피스와 은색 하이힐로 우아한 멋을 냈다. 파랑, 주황, 녹색 같은 튀는 색깔의 골프웨어를 즐겨 입는 박희영은 프로암 파티 때도 튀는 스타일을 즐긴다.

지난주 열린 사임다비 말레이시아 프로암 파티에서는 가슴과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오프 숄더에 허벅지 밑으로 속이 훤히 보이는 시스루룩 스커트를 입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박희영은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옷을 입는다. 골프웨어는 아무리 여성스럽게 입어도 보이시해 보이기 때문에 프로암 파티 때 평소 입어보고 싶었던 여성스러운 옷을 다 시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3위는 나란히 3표를 받은 서희경(27·하이트진로)과 나탈리 걸비스(30·미국)였다. 한국 투어 활동 시절 ‘필드의 패션모델’로 불린 서희경은 필드 밖에서도 패션감각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희경을 베스트 드레서로 뽑은 폴라 크리머는 “서희경은 파티 분위기에 맞는 옷을 적절히 선택해 분위기를 살린다”고 했다. 서희경은 이날 S라인이 돋보이는 새빨간 드레스에 까만 에나멜 하이힐을 신고 강렬한 시선을 받았다.

서희경·걸비스 공동 3위


크리머와 함께 LPGA투어를 대표하는 미국의 섹시골퍼로 꼽히는 걸비스는 이날 평소의 섹시한 이미지를 벗고 노출이 전혀 없는 의상을 입었다. 호피무늬의 귀여운 원피스와 베이지색 구두로 가을 분위기를 냈다. 그러나 누드화보를 즐겨 찍는 섹시한 이미지가 너무 부각된 탓인지 박희영과 산드라 갈(28·독일) 등으로부터 표를 받는 데 그쳤다.
‘8등신 미녀’ 산드라 갈은 2표를 얻어 5위에 올랐다. 183㎝의 키에 늘씬한 몸매의 소유자인 갈은 코스 안에서 몸에 쫙 달라붙는 짧은 팬츠와 민소매 셔츠를 트레이드마크처럼 입는다. 그녀는 코스 밖에서도 긴 팔다리와 각선미가 드러나는 옷을 즐긴다. 갈은 “사람들은 나를 섹시한 이미지로 보는 경향이 많지만 사실 우아한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나 갈은 이날 빨간색 미니원피스와 빨간 립스틱, 빨간 매니큐어로 코디해 우아하기보다는 섹시했다.
한국 선수들도 이제 파티 문화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프로암 이후 골프웨어 복장 그대로 참석하는 ‘한국식 프로암 파티 문화’에 익숙했던 선수들은 미국 진출 초기 프로암 파티에서 촌스러운 스타일로 통했다. 티셔츠에 면바지 같은 파티와 격이 맞지 않는 옷을 입거나 본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과 과한 헤어스타일링으로 비웃음을 받았다.
 

프로선수 패션만큼은 KLPGA > LPGA
한국 선수들, 단정한 스타일이 대세

10㎝가 넘는 하이힐을 신고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도 자주 목격됐다. 하지만 이제는 몸에 맞지 않는 옷과 스타일보다는 자신의 개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과하지 않은 옷을 골라 입는다. 신지애(25·미래에셋)와 최나연(26·SK텔레콤), 지은희(27·한화)는 단정한 바지 정장 스타일을 즐긴다. 모자부터 신발까지 올 블랙으로 코디한 신지애는 “날씬해 보이는 검은색 옷을 좋아한다. 튀지 않는 색과 스타일이기 때문에 모자나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준다”고 했다. 신지애는 2년 전까지만 해도 프로암 파티 때 치마와 12㎝짜리 킬힐을 신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는 편안하고 무난한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최나연도 지난해까지 가끔 치마를 입었지만 올해는 바지만 고집하고 있다. 최나연은 “치마도 입고 굽이 10㎝ 넘는 구두도 신어봤는데 너무 불편했고 다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섹시한 스타일보다는 모범생 스타일이 나한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신발이나 안경, 클러치백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박인비(25·KB금융그룹)와 유소연(23·하나금융그룹)은 단정한 치마 정장을 즐겨 입는다. 가을 느낌이 짙은 자주색 니트 원피스를 입은 유소연은 “옷에 관심이 많아 프로암 때마다 그날의 의상콘셉트를 정하고 입는다. 방문하는 도시나 국가, 계절 등에 맞춰 컬러나 스타일을 생각하고 쇼핑도 자주 한다”고 했다. 박인비는 “튀는 스타일을 안 좋아해 검은색과 파란색 옷이 많다. 단정하면서도 무난한 옷을 즐겨 입는 편”이라고 말했다.
요즘 여자대회장에서는 같은 한국 선수라도 LPGA투어 소속 선수인지, KLPGA투어 소속 선수인지 사진기자와 카메라맨은 멀리서도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판단 근거는 두 가지라고 한다. 첫째는 LPGA투어 선수들은 KLPGA투어 소속 선수보다 경기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고, 둘째는 KLPGA투어 소속 선수들의 패션이 훨씬 멋지다는 것이다. 원색의 옷, 진한 메이크업, 짧은 치마로 무장한 ‘필드의 패션모델’은 대부분 KLPGA투어 소속 선수였다.

옷은 잘 입었지만 성적은 정반대

KLPGA와 LPGA투어를 모두 경험한 이일희(볼빅)는 “개인차가 있지만 두 투어의 패션 차이도 크다. LPGA에서는 이동거리가 긴 데다 한 번 삐끗하면 컷오프 당하는 전쟁터라 99.9%의 에너지를 골프에 쏟는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이동 거리가 짧고 분위기상 패션을 중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분위기란 예뻐야 좋은 조건으로 스폰서 등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한국에선 실력보다 외모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얘기다.
멋지게 보여서 나쁠 건 없다. 카메라맨들은 “LPGA투어에서 뛰는 선수보다 KLPGA투어에서 뛰는 선수가 패션이 좋아 화면도 잘 받는다”고 말했다.
경기 결과는 패션과 반비례했다. 이날 언더파를 친 32명 중 KLPGA 소속 선수는 4명이었다. 참가자 78명 중 KLPGA 소속 프로가 16명인 것을 감안하면 적은 숫자다.
털털한 반바지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경기에 나오는 스테이시 루이스(미국)는 “오후 1시(경기 전 외모)에 주목받는 것보다 오후 6시(경기결과)에 주목받아야 하는 게 선수”라고 말했다. 선수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기력이라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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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