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울린 르메이에르 사건 대해부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11.11 1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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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황제 경영…회장님 과욕이 화 불렀다

[일요시사=경제1팀] 서울의 중심 종로에서도 노른자위 땅으로 꼽히는 '피맛골 입구'에는 지하 7층에 지상 20층 건물로 연면적이 2만8000여평에 달하는 대형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 있다. 2003년 청진동 도시 환경 정비 사업 당시 대기업들의 대규모 공세를 이겨낸 건설사 '르메이에르'가 시행·시공을 맡은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이다. 지금 이곳이 잡음으로 시끄럽다. 회장 한 사람이 고객과 직원 모두를 죽였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무슨 일일까?




피맛골. 조선시대 서민들이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뜻의 '피마'에서 유래한 이 골목길은 서민 문화를 대표하는 장소로 꼽혔다. 자연스레 서민들 취향의 선술집·국밥집 등 술집과 음식점이 줄줄이 들어섰다.

하지만 1980년대 초 도심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된 뒤 2003년 '청진동 도시 환경 정비 사업'이 시작됐고 600년간 서민의 애환이 서린 피맛골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70년 전통의 청진동 해장국 거리의 명물 '청진옥'은 자리를 옮겼고 35년간 생선을 구워온 '삼성집'도 2008년 문을 닫았다. 비오는 날이면 빈대떡 부치는 냄새가 진동하던 거리도 더 이상은 없다.

의혹 휩싸인 피맛골
발원지 정경태 회장

지금은 서울의 전통 거리가 사라진다는 비판이 제기돼 수복재개발구역으로 지정, 종로 1가 교보문고 뒤쪽에서 종로 3가 사이에 일부가 남아 피맛골의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다.

서울의 중심 종로에서도 가장 노른자위 땅으로 꼽히는 '피맛골 입구'는 재개발 열풍이 불 당시 많은 대기업들이 눈독을 들였다. 그런데 도시 환경 정비 사업이 시작된 지 1년 만에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건설사 하나가 시행과 시공을 따냈다. 3년이 지나 지하 7층에 지상 20층, 연면적 2만8000여평의 대형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섰고 피맛골의 명소가 됐다.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이다.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은 피맛골 상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2004년 견본주택이 문을 열자 하루 평균 2000∼3000명의 방문객들이 몰렸다. 오피스텔 1100만∼1500만원, 상가는 1300만∼7500만원 등 평당 분양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지만 분양 현장은 북새통이었다. 하지만 2007년 건물 준공 후 6년여가 지난 지금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은 갖가지 의혹에 휩싸여 있다. 의혹의 발원지는 정경태 르메이에르 회장이다.

[정경태는 누구?]

지난 4일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입주자들로부터 분양대금 등을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정 회장을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 회장은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내 오피스텔과 상가 100여실의 분양 대금과 이를 담보로 대출받은 돈 등 450여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일고, 동국대를 나온 정 회장은 1988년 서른일곱 살의 나이에 종합개발컨설팅사 르메이에르를 차렸다. 르메이에르는 최고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정 회장이 직접 지었다.

92년에는 중국 랴오닝성 안산시 특구에 한국기업으로는 처음으로 공단을 조성해 주목을 받았고 96년에는 아예 건설사를 차리고 서울 신촌·사당·종로 건물이 대박을 터트리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2005년에는 호주 시드니의 호라이즌 골프장을 100억원에 인수하면서 스포츠센터 분양과 해외 레저시설을 연계해 레저·스포츠 쪽으로 사업 분야를 확장했다. 

450억 분양 사기에 3년간 72억 임금 체불
핑계·변명…이리저리 피하다 결국 쇠고랑

지금은 서울·부산 등 '목'이 좋은 자리에는 어김없이 르메이에르 건물이 들어서 있다.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을 포함해 동대문구 장안동 아파트, 신촌과 강남에 주상복합건물, 일산 백석동에 상가건물, 부산에 아파트 등 총 17채의 아파트 및 주상복합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도 월계2동 청사, 시흥5동 하수관 개량공사, 한국도로공사 구미지사 부속동 신축 공사, 대한체육회 선수촌숙소 신축공사 등 공공시설 공사까지 따내며 승승장구했다.

정 회장의 사업 신조는 "작은 부자는 노력이 낳지만 큰 부자는 신용이 낳는다"는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철학을 그대로 따왔다. 홈페이지에 나온 '사람을 생각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생각합니다' '세계 속의 성장을 생각합니다'라는 문구는 르메이에르의 경영이념이다.

하지만 이런 신조와 경영이념은 '빛 좋은 개살구'였다.

[분양사기 의혹]

르메이에르는 군인공제회에서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을 지을 자금을 빌린 뒤 채권자와 분양자들의 돈을 보호하기 위해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에 대한 소유권을 대한토지신탁에 맡겼다. 분양자가 분양대금을 대한토지신탁에 입금하면 소유권을 인정받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르메이에르는 이 돈을 자신들의 계좌로 입금하도록 계약서를 조작해 돈을 가로챘다. 원본 계약서에 적혀 있던 대한토지신탁의 계좌번호는 종이를 덧대 그 위에 도장을 찍는 방법으로 가렸다. 햇빛을 비춰보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 분양계약을 이끌어낸 영업사원들조차 이 사실을 몰랐다.

대한토지신탁은 돈이 들어오지 않아 소유권을 인정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상가와 오피스텔을 합한 전체 830개 호실 중 피해 호실만 100호실, 분양 피해자는 118명, 피해액은 무려 49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피맛골 상인들은 평생 고생하며 모은 전재산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분양 사기 피해자들은 계약서 조작의 배후에 정 회장이 있다고 믿고 있는 상황.

하지만 정 회장은 책임 회피에만 급급했다. 정 회장은 "분양이 줄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회장이 일일이 신경 쓸 수 없다"며 "영업사원들이 분양을 성사시키면 3%의 수당이 나가기 때문에 기를 쓰고 분양에 나선다. 영업사원들이 무리하게 상가 분양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직원 상습폭행·교류금지
모든 책임 임직원에 전가

하지만 영업사원들은 방송에서 "정 회장은 분양건에 대해 일일이 사인을 하고 지시를 내렸다" "450억원에 달하는 분양건은 일개 영업사원이 알아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직원들 가운데는 분양 사기 피해자들도 있다" 등 정 회장의 발언에 대해 반박했다.

분양사기 피해자 외에 수천만원을 내고 종로타운 스포츠센터 회원권을 구입한 피해자도 수백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르메이에르는 2007년 국내 수도권 골프장의 부킹서비스와 주중 회원 혜택, 호주의 골프리조트 이용료 할인 등을 내세우며 1인당 보증금 3000만원, 연회비 198만원으로 스포츠센터 회원권을 분양했다. 회원이 되면 신촌·사당 두 곳의 멤버십 스포츠센터를 정회원 자격으로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르메이에르 청평 수상스포츠타운'의 지중해풍 요트 등 수상레저시설도 회원자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달콤한 말로 회원들을 끌어 모았다.


정 회장은 이 스포츠센터를 담보신탁으로 수백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채무액을 상황하지 못하자 신탁회사가 스포츠센터를 공매 처분하면서 회원 600여명이 구입한 200여억원어치의 회원권이 사실상 휴지조각이 됐다.

[임금 체불 왜?]

정 회장의 횡포는 '구사대'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지난 3년간 임직원들은 임금 체불과 연대 보증, 스포츠센터 회원권, 오피스텔 물량 등을 강제로 할당받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

먼저 임금 체불 문제를 보면 르메이에르는 지난 2010년 11월부터 전 임직원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다. 2009년 워크아웃에 접어든 이래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고 이라크 유전 사업, 평창 동계올림픽 선수단 숙소 공사 수주 등이 예정되어 있으니 임직원들이 회사의 고통을 분담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렇게 3년간 유야무야 체불된 임금은 무려 72억원. 생활고에 시달린 직원 상당수가 빚더미에 앉았고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한 직원은 급여가 중단되자 종신보험을 해약한 바람에 사채를 끌어 항암치료비를 감당하고 있다. 또 다른 직원은 분양 광고 전단지를 돌리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정 회장은 직원들이 임금 지급을 요구할 때마다 "에너지사업, 석유사업이 잘 되고 있으니 곧 1000억원이 들어온다"는 말로 시간을 끌었다.

임금체불이 길어지자 400여명의 직원들은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했다. 직원들은 정 회장이 임금 체불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의 탄원서를 법정에 제출하기도 했다.

회사 사정이 악화되자 정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회사를 위해 대출까지 받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임직원들은 최대 19억원의 대출을 받고 수백억원의 연대보증을 섰다. 스포츠센터 분양권 피해자 중에는 르메이에르 직원도 다수 있었다.


[회사선 무슨 일이?]

정 회장은 '지독한' 황제로 군림했다. 르메이에르 임원들은 회장 비서실에 자신의 위치를 보고해야 했다. 정 회장은 비서실을 통해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두 시간 간격으로 각 부서장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정 회장은 부서 간 교류도 철저히 금지했다. 임원들마저도 타 부서 상황을 잘 알지 못했다. 특히 영업부로 들어가는 정보는 대부분 차단됐다. 분양 영업에 차질이 생긴다는 게 이유였다. 휴일도 없었다. 정 회장이 부르면 무조건 달려가야 했다.

영업본부장은 정 회장이 휘두른 폭력에 고막이 파열됐다는 주장도 있다. 정 회장이 조사를 받으러 검찰에 갔을 때도 자신에게 항의하는 직원을 향해 주먹질을 하는 모습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2만원짜리 공기청정기를 구입하고 TV 시청료로 나가는 지출까지 비서실과 회장의 결제가 있어야 가능했다. 볼펜을 구입할 때는 볼펜의 상태까지 일일이 확인했다고.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에 대한 논란이 시작되자 정 회장은 모든 책임을 임직원들에게 전가했다. 다 꾸며낸 얘기라는 것. 계약서 위조는 경리부에, 사기 분양은 영업부에, 임금 체불은 회사 대표이사에게 떠넘기려 했다.

정 회장은 "그런 회사가 대한민국에 어디 있느냐" "그게 사실이면 왜 거기(회사) 붙어 있느냐" "아무런 근거도 없는 중상모략이다"고 반박했다.

정 회장은 임금 체불이 시작된 지 한 달 전인 2010년 10월 당시 전무이사였던 서모씨를 대표이사 자리에 앉혔다. 이 때문에 직원들이 고용노동부에 제기한 진정의 피진정인은 서씨가 됐다. 서씨에 따르면 정 회장은 서씨에게 워크아웃과 관련해 법원에 출석하거나 채권·채무 연장 등에 대표이사 직함을 갖고 참여할 것을 지시했다. 아무 권한은 없이 대표이사 직함만을 갖는다는 각서까지 작성하게 했다는 게 서씨의 주장. 서씨는 피고인이 돼 형사 기소됐다.

정 회장은 "체불이 시작된 시기와 대표이사 교체시기가 우연히 맞아 떨어진 것이다"며 "오히려 서씨가 먼저 와서 대표이사를 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꼬불친 재산은?]

'돈을 돌려 달라' '임금을 지급해 달라'는 분양자들과 임직원들의 요구에 정 회장은 "돈이 없다"며 맞서고 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지난달 30일 조사차 검찰에 출석할 당시 외제차를 끌고 나타났다. 한 직원은 외제차를 팔아 밀린 임금을 조금이라도 달라고 소리쳤다.

그의 자택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고급 단독주택. 정원에 고가의 소나무가 심어진 이 주택의 시가는 40억원. 소유주는 정 회장이다. 정 회장은 회사 워크아웃 결정 직전 두 살이던 손녀에게 10억원에 달하는 부동산을 불법 증여했다가 국세청에 발각되기도 했다.

"책임져라" 요구에 
"돈 없다" 배째라

임직원들은 정 회장이 회사 자금을 횡령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르메이에르 전 직원들은 "10억 이상의 자금이 정 회장 개인의 통장으로 흘러들어간 사실이 포착됐다" "정 회장이 큰며느리나 사돈 쪽에 돈을 숨겨놓았을 것이다" "대출 실행이 되면 르메이에르 건설 법인 통장으로 돈이 들어왔는데 비서실을 통해서 은행가서 바로 정 회장 자신의 통장으로 돈을 옮겼다" 등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정 회장은 "그 돈은 본 적도 없고 만져본 적도 없다"며 "만약 의혹이 사실이라면 통장내역을 검토해서 조회를 해보면 바로 나오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2살 난 손녀에게
부동산 불법증여

사태가 이런데도 정 회장은 "지금이라도 어디서 돈만 빌릴 수 있다면 회생할 수 있다"며 썩은 동아줄을 놓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정 회장이 자신만만해 하던 평창 선수단 숙소 사업은 이미 지난 2011년 군인공제회에 밀린 이자를 갚지 못해 사업권이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부지에 대한 공매 공고가 신문지면에 몇 차례 났지만 유찰을 거듭했고 땅 값은 떨어져만 갔다.

분양사기를 입은 피해자들과 임직원들에게 미안한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피맛골을 터전으로 살아온 상인들의 절규는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고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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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