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울린 르메이에르 사건 대해부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11.11 1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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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황제 경영…회장님 과욕이 화 불렀다

[일요시사=경제1팀] 서울의 중심 종로에서도 노른자위 땅으로 꼽히는 '피맛골 입구'에는 지하 7층에 지상 20층 건물로 연면적이 2만8000여평에 달하는 대형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 있다. 2003년 청진동 도시 환경 정비 사업 당시 대기업들의 대규모 공세를 이겨낸 건설사 '르메이에르'가 시행·시공을 맡은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이다. 지금 이곳이 잡음으로 시끄럽다. 회장 한 사람이 고객과 직원 모두를 죽였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무슨 일일까?




피맛골. 조선시대 서민들이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뜻의 '피마'에서 유래한 이 골목길은 서민 문화를 대표하는 장소로 꼽혔다. 자연스레 서민들 취향의 선술집·국밥집 등 술집과 음식점이 줄줄이 들어섰다.

하지만 1980년대 초 도심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된 뒤 2003년 '청진동 도시 환경 정비 사업'이 시작됐고 600년간 서민의 애환이 서린 피맛골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70년 전통의 청진동 해장국 거리의 명물 '청진옥'은 자리를 옮겼고 35년간 생선을 구워온 '삼성집'도 2008년 문을 닫았다. 비오는 날이면 빈대떡 부치는 냄새가 진동하던 거리도 더 이상은 없다.

의혹 휩싸인 피맛골
발원지 정경태 회장

지금은 서울의 전통 거리가 사라진다는 비판이 제기돼 수복재개발구역으로 지정, 종로 1가 교보문고 뒤쪽에서 종로 3가 사이에 일부가 남아 피맛골의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다.

서울의 중심 종로에서도 가장 노른자위 땅으로 꼽히는 '피맛골 입구'는 재개발 열풍이 불 당시 많은 대기업들이 눈독을 들였다. 그런데 도시 환경 정비 사업이 시작된 지 1년 만에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건설사 하나가 시행과 시공을 따냈다. 3년이 지나 지하 7층에 지상 20층, 연면적 2만8000여평의 대형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섰고 피맛골의 명소가 됐다.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이다.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은 피맛골 상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2004년 견본주택이 문을 열자 하루 평균 2000∼3000명의 방문객들이 몰렸다. 오피스텔 1100만∼1500만원, 상가는 1300만∼7500만원 등 평당 분양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지만 분양 현장은 북새통이었다. 하지만 2007년 건물 준공 후 6년여가 지난 지금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은 갖가지 의혹에 휩싸여 있다. 의혹의 발원지는 정경태 르메이에르 회장이다.

[정경태는 누구?]

지난 4일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입주자들로부터 분양대금 등을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정 회장을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 회장은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내 오피스텔과 상가 100여실의 분양 대금과 이를 담보로 대출받은 돈 등 450여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일고, 동국대를 나온 정 회장은 1988년 서른일곱 살의 나이에 종합개발컨설팅사 르메이에르를 차렸다. 르메이에르는 최고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정 회장이 직접 지었다.

92년에는 중국 랴오닝성 안산시 특구에 한국기업으로는 처음으로 공단을 조성해 주목을 받았고 96년에는 아예 건설사를 차리고 서울 신촌·사당·종로 건물이 대박을 터트리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2005년에는 호주 시드니의 호라이즌 골프장을 100억원에 인수하면서 스포츠센터 분양과 해외 레저시설을 연계해 레저·스포츠 쪽으로 사업 분야를 확장했다. 

450억 분양 사기에 3년간 72억 임금 체불
핑계·변명…이리저리 피하다 결국 쇠고랑

지금은 서울·부산 등 '목'이 좋은 자리에는 어김없이 르메이에르 건물이 들어서 있다.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을 포함해 동대문구 장안동 아파트, 신촌과 강남에 주상복합건물, 일산 백석동에 상가건물, 부산에 아파트 등 총 17채의 아파트 및 주상복합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도 월계2동 청사, 시흥5동 하수관 개량공사, 한국도로공사 구미지사 부속동 신축 공사, 대한체육회 선수촌숙소 신축공사 등 공공시설 공사까지 따내며 승승장구했다.

정 회장의 사업 신조는 "작은 부자는 노력이 낳지만 큰 부자는 신용이 낳는다"는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철학을 그대로 따왔다. 홈페이지에 나온 '사람을 생각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생각합니다' '세계 속의 성장을 생각합니다'라는 문구는 르메이에르의 경영이념이다.

하지만 이런 신조와 경영이념은 '빛 좋은 개살구'였다.

[분양사기 의혹]

르메이에르는 군인공제회에서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을 지을 자금을 빌린 뒤 채권자와 분양자들의 돈을 보호하기 위해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에 대한 소유권을 대한토지신탁에 맡겼다. 분양자가 분양대금을 대한토지신탁에 입금하면 소유권을 인정받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르메이에르는 이 돈을 자신들의 계좌로 입금하도록 계약서를 조작해 돈을 가로챘다. 원본 계약서에 적혀 있던 대한토지신탁의 계좌번호는 종이를 덧대 그 위에 도장을 찍는 방법으로 가렸다. 햇빛을 비춰보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 분양계약을 이끌어낸 영업사원들조차 이 사실을 몰랐다.

대한토지신탁은 돈이 들어오지 않아 소유권을 인정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상가와 오피스텔을 합한 전체 830개 호실 중 피해 호실만 100호실, 분양 피해자는 118명, 피해액은 무려 49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피맛골 상인들은 평생 고생하며 모은 전재산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분양 사기 피해자들은 계약서 조작의 배후에 정 회장이 있다고 믿고 있는 상황.

하지만 정 회장은 책임 회피에만 급급했다. 정 회장은 "분양이 줄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회장이 일일이 신경 쓸 수 없다"며 "영업사원들이 분양을 성사시키면 3%의 수당이 나가기 때문에 기를 쓰고 분양에 나선다. 영업사원들이 무리하게 상가 분양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직원 상습폭행·교류금지
모든 책임 임직원에 전가

하지만 영업사원들은 방송에서 "정 회장은 분양건에 대해 일일이 사인을 하고 지시를 내렸다" "450억원에 달하는 분양건은 일개 영업사원이 알아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직원들 가운데는 분양 사기 피해자들도 있다" 등 정 회장의 발언에 대해 반박했다.

분양사기 피해자 외에 수천만원을 내고 종로타운 스포츠센터 회원권을 구입한 피해자도 수백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르메이에르는 2007년 국내 수도권 골프장의 부킹서비스와 주중 회원 혜택, 호주의 골프리조트 이용료 할인 등을 내세우며 1인당 보증금 3000만원, 연회비 198만원으로 스포츠센터 회원권을 분양했다. 회원이 되면 신촌·사당 두 곳의 멤버십 스포츠센터를 정회원 자격으로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르메이에르 청평 수상스포츠타운'의 지중해풍 요트 등 수상레저시설도 회원자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달콤한 말로 회원들을 끌어 모았다.


정 회장은 이 스포츠센터를 담보신탁으로 수백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채무액을 상황하지 못하자 신탁회사가 스포츠센터를 공매 처분하면서 회원 600여명이 구입한 200여억원어치의 회원권이 사실상 휴지조각이 됐다.

[임금 체불 왜?]

정 회장의 횡포는 '구사대'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지난 3년간 임직원들은 임금 체불과 연대 보증, 스포츠센터 회원권, 오피스텔 물량 등을 강제로 할당받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

먼저 임금 체불 문제를 보면 르메이에르는 지난 2010년 11월부터 전 임직원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다. 2009년 워크아웃에 접어든 이래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고 이라크 유전 사업, 평창 동계올림픽 선수단 숙소 공사 수주 등이 예정되어 있으니 임직원들이 회사의 고통을 분담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렇게 3년간 유야무야 체불된 임금은 무려 72억원. 생활고에 시달린 직원 상당수가 빚더미에 앉았고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한 직원은 급여가 중단되자 종신보험을 해약한 바람에 사채를 끌어 항암치료비를 감당하고 있다. 또 다른 직원은 분양 광고 전단지를 돌리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정 회장은 직원들이 임금 지급을 요구할 때마다 "에너지사업, 석유사업이 잘 되고 있으니 곧 1000억원이 들어온다"는 말로 시간을 끌었다.

임금체불이 길어지자 400여명의 직원들은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했다. 직원들은 정 회장이 임금 체불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의 탄원서를 법정에 제출하기도 했다.

회사 사정이 악화되자 정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회사를 위해 대출까지 받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임직원들은 최대 19억원의 대출을 받고 수백억원의 연대보증을 섰다. 스포츠센터 분양권 피해자 중에는 르메이에르 직원도 다수 있었다.


[회사선 무슨 일이?]

정 회장은 '지독한' 황제로 군림했다. 르메이에르 임원들은 회장 비서실에 자신의 위치를 보고해야 했다. 정 회장은 비서실을 통해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두 시간 간격으로 각 부서장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정 회장은 부서 간 교류도 철저히 금지했다. 임원들마저도 타 부서 상황을 잘 알지 못했다. 특히 영업부로 들어가는 정보는 대부분 차단됐다. 분양 영업에 차질이 생긴다는 게 이유였다. 휴일도 없었다. 정 회장이 부르면 무조건 달려가야 했다.

영업본부장은 정 회장이 휘두른 폭력에 고막이 파열됐다는 주장도 있다. 정 회장이 조사를 받으러 검찰에 갔을 때도 자신에게 항의하는 직원을 향해 주먹질을 하는 모습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2만원짜리 공기청정기를 구입하고 TV 시청료로 나가는 지출까지 비서실과 회장의 결제가 있어야 가능했다. 볼펜을 구입할 때는 볼펜의 상태까지 일일이 확인했다고.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에 대한 논란이 시작되자 정 회장은 모든 책임을 임직원들에게 전가했다. 다 꾸며낸 얘기라는 것. 계약서 위조는 경리부에, 사기 분양은 영업부에, 임금 체불은 회사 대표이사에게 떠넘기려 했다.

정 회장은 "그런 회사가 대한민국에 어디 있느냐" "그게 사실이면 왜 거기(회사) 붙어 있느냐" "아무런 근거도 없는 중상모략이다"고 반박했다.

정 회장은 임금 체불이 시작된 지 한 달 전인 2010년 10월 당시 전무이사였던 서모씨를 대표이사 자리에 앉혔다. 이 때문에 직원들이 고용노동부에 제기한 진정의 피진정인은 서씨가 됐다. 서씨에 따르면 정 회장은 서씨에게 워크아웃과 관련해 법원에 출석하거나 채권·채무 연장 등에 대표이사 직함을 갖고 참여할 것을 지시했다. 아무 권한은 없이 대표이사 직함만을 갖는다는 각서까지 작성하게 했다는 게 서씨의 주장. 서씨는 피고인이 돼 형사 기소됐다.

정 회장은 "체불이 시작된 시기와 대표이사 교체시기가 우연히 맞아 떨어진 것이다"며 "오히려 서씨가 먼저 와서 대표이사를 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꼬불친 재산은?]

'돈을 돌려 달라' '임금을 지급해 달라'는 분양자들과 임직원들의 요구에 정 회장은 "돈이 없다"며 맞서고 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지난달 30일 조사차 검찰에 출석할 당시 외제차를 끌고 나타났다. 한 직원은 외제차를 팔아 밀린 임금을 조금이라도 달라고 소리쳤다.

그의 자택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고급 단독주택. 정원에 고가의 소나무가 심어진 이 주택의 시가는 40억원. 소유주는 정 회장이다. 정 회장은 회사 워크아웃 결정 직전 두 살이던 손녀에게 10억원에 달하는 부동산을 불법 증여했다가 국세청에 발각되기도 했다.

"책임져라" 요구에 
"돈 없다" 배째라

임직원들은 정 회장이 회사 자금을 횡령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르메이에르 전 직원들은 "10억 이상의 자금이 정 회장 개인의 통장으로 흘러들어간 사실이 포착됐다" "정 회장이 큰며느리나 사돈 쪽에 돈을 숨겨놓았을 것이다" "대출 실행이 되면 르메이에르 건설 법인 통장으로 돈이 들어왔는데 비서실을 통해서 은행가서 바로 정 회장 자신의 통장으로 돈을 옮겼다" 등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정 회장은 "그 돈은 본 적도 없고 만져본 적도 없다"며 "만약 의혹이 사실이라면 통장내역을 검토해서 조회를 해보면 바로 나오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2살 난 손녀에게
부동산 불법증여

사태가 이런데도 정 회장은 "지금이라도 어디서 돈만 빌릴 수 있다면 회생할 수 있다"며 썩은 동아줄을 놓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정 회장이 자신만만해 하던 평창 선수단 숙소 사업은 이미 지난 2011년 군인공제회에 밀린 이자를 갚지 못해 사업권이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부지에 대한 공매 공고가 신문지면에 몇 차례 났지만 유찰을 거듭했고 땅 값은 떨어져만 갔다.

분양사기를 입은 피해자들과 임직원들에게 미안한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피맛골을 터전으로 살아온 상인들의 절규는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고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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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없는 민주당 막전막후

브레이크 없는 민주당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정부를 겨냥한 더불어민주당의 공격이 거침없다. “정치 보복은 없다”고 단언한 이재명 대통령이기에 국민의힘에서는 크게 반발했다. 민주당은 ‘정치 보복’이 아닌 ‘내란 종식’이라고 받아쳤다. 사분오열로 흩어진 국민의힘이지만, 대통령 취임 후 한 달도 되지 않은 이재명정부를 공격하는 때에는 손발이 척척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주도로 ‘채상병 특검법·내란 특검법·김건희 특검법’인 이른바 ‘3대 특검’이 가결됐다. 이후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를 의결함으로써 수사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지난 3년 동안 이어진 가결-거부권 무한 굴레가 이 대통령 취임 후 속전속결로 해결됐다. 허니문 없이 본게임 돌입 3대 특검은 모두 윤석열정부를 겨냥하고 있다. 해당 법안들은 본회의서 재석 198명 중 찬성 194표, 반대 3표, 기권 1표로 가결됐다. 내란 특검법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내란 외환 행위, 군사 반란, 내란 목적 선동을 수사한다. 김건희 특검법은 윤 전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비롯한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 ▲명품 가방 및 금품수수 의혹 ▲공천 개입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등 국정 농단 의혹 등의 수사를 골자로 한다. 마지막으로 채상병 특검법은 2023년 7월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사망한 해병대원 채모 상병 사건 수사를 방해 및 은폐했다는 의혹을 규명하는 내용이다. 당시 수사 외압 과정에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임 전 사단장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태 공범 이모씨와 골프 모임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사건의 마지막 퍼즐이 김건희씨로 지목됐다. 특히 채상병 특검은 전 정권에서 민주당 등 야당이 여러 차례 본회의에 올려 통과시켰지만 윤 전 대통령의 거부권에 막혀 번번이 무너졌다. 1년9개월 동안 제자리걸음이었던 특검법이 이재명정부에서 단번에 통과되자 본회의를 지켜보던 해병대 예비역 회원들이 일제히 자리서 일어나 거수경례하기도 했다. 지난 10일 3대 특검은 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날 오전 이 대통령은 이를 심의·의결한 뒤 자신의 SNS를 통해 “세 건의 특검법은 모두 윤정부가 거부권을 반복 행사하며 지연됐던 것”이라며 “멈춰있던 나라를 정상화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우원식 국회의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3개 특검법안에 대한 특별검사 임명 요청 서류에 결재했다”며 이 대통령에게 요청서를 보냈다고 밝혔다. 요청서를 받은 이 대통령이 특검 후보 추천을 공식 의뢰하면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서 특검 후보자를 각 1명씩 추천하게 된다. 속전속결 속 민주당 3특검법 모두 통과 반성 없는 국힘 ‘이 대통령 때리기’ 올인 내란 특검에 60명, 김건희 특검에 40명, 채상병 특검에 20명의 파견 검사가 투입되는 등 대규모 특검이 예고된 가운데, 민주당과 혁신당은 법조계 인사들 중 후보자를 물색해 빠른 시일 내 추천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정쟁에 함몰되는 대통령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기본원칙적 교훈과 경고를 드린다”며 곧바로 날을 세웠다. 앞서 민주당 단독으로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의결되고, ‘대통령 재판 중지법’까지 잇따라 추진되자 국민의힘은 “대선 다음 날 민생도, 외교·안보도 아닌 첫 입법 행위가 ‘사법부 장악법’이라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 경악스럽다”며 “괴물 독재 국가의 출발점”이라고 비판했다. 신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여야가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협치는 사라지고 또다시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허니문 기간도 없이 곧바로 싸움이 번진 것은 여당이 의석 다수를 차지한 여대야소 정국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한국 역사를 돌이켜 보면 대선과 총선이 ‘심판론’처럼 작용하면서 여소야대와 여대야소 현상이 번갈아 나타났다. 대표적인 여대야소 예로 민주화 이후 치러진 13대 총선이 있다. 1990년 노태우정부 시기 당시 민주정의당과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이 뭉치는 이른바 ‘3당 합당’으로 200석이 넘는 초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하지만 지역주의 고착화와 계파 갈등의 이유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혔다. 초반부터 어깃장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지난 17대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과반이 넘는 152석을 얻었다.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121석에 그치면서 여대야소 정국이 펼쳐졌지만, 당시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었던 만큼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0년 만에 정권을 교체했다. 대선이 치러진 직후에 열린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기세를 몰아 153석을 얻어 여대야소 정국을 이어갔다. 이후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꾼 뒤 2012년 4월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친박(친 박근혜)계가 당권을 장악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같은 해 12월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여대야소의 틀을 갖췄지만 여권 내 계파 갈등, 쟁점 법안 등으로 실질적으로는 여소야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박정부가 레임덕에 접어들면서 새누리당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고 결국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123석, 새누리당이 122석을 얻었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뒤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얻어 여대야소 정국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와 부동산, 집값 상승 등으로 5년 만에 정권을 고스란히 넘겨줬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심판론 성격으로 치러진 21대 총선에선 민주당이 180석을 얻으면서 그야말로 압승을 거뒀고 결국 3년 만에 여대야소 정국으로 돌아왔다. 이처럼 대한민국 정치 역사상 여당이 더 많은 의석수를 차지하는 건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유독 이번 정권에서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진영이 이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부터 ‘의회 독주’를 넘어 ‘의회 독재’ 프레임을 씌우며 견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5월 유세 현장에서 국민의힘은 “이번 대선은 자유민주주의 선진 대국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전체주의 1인 독재국가로 추락하느냐의 기로에 있다”며 ‘이재명 포비아’ 여론을 띄웠다. 이낙연 전 총리가 상임고문으로 있는 새미래민주당은 “이재명 독재 정권 탄생 저지가 필요하다”며 국민의힘과 국민통합공동정부 운영 및 제7공화국 개헌추진 협약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대선 하루 전날이던 지난 2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회 독재를 이재명과 민주당이 시작하면서 베네수엘라 지옥문을 반쯤 열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베네수엘라의 비극이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한때 남미의 모범 국가였던 베네수엘라가 반미 포퓰리즘과 경제 파탄, 사법 장악과 독재의 길을 걸으며 국민의 삶이 무너지고 자유가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잊지 말자” 윤 심판론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 역시 “예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도 독재한다고 말을 들었지만, 유신정우회를 만들어서 입법부를 장악하려고 했던 정도였다”며 “사법부를 장악하려 드는 것은 이재명 후보가 아마 가장 심할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 이 대통령 당선 이후 국민의힘은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과 대장동 재판이 사실상 중지된 것을 두고는 “정치 권력에 사법부가 무릎 꿇고 정치적 면죄부를 주면서 법 앞에 권력이 있다는 걸 선언한 것”이라며 “사법부는 이재명 괴물 독재 국가의 공범이 된다는 걸 기억하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자신의 SNS에 “유권무죄가 상식이 되어버린 세상, 권력이 있으면 면죄부를 받는 세상. 가히 ‘이재명 독재’ 세상이 도래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독재 프레임을 주장해 온 국민의힘에 국민 40%가 힘을 실어준 데에는 지난 3년간 민주당이 보여준 ‘협치 없는 정치’ 때문이라는 반박이 나온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금까지 봐온 이재명이란 사람은 당 대표 때의 정치 스타일도 그렇고 업무 방식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강하게 밀어붙이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며 “지금 민주당에서 누가 감히 이 대표를 견제하겠나. 국회의장도 민주당 출신이다. 제어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당연히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선 이후에도 국민의힘은 반성은커녕 당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집안싸움이 한창인 와중에도 민주당의 법안 처리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로 의회 독재라고 비판하니, 국민의 피로감도 덩달아 높아지는 형국이다. ‘민주당의 의회 독재가 우려되나’라는 질문에 여당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국민의 선택을 독재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윤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행태를 알리기 위해서라며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탄핵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민주당에 힘을 ‘몰빵’해준 것은 다름 아닌 국민이며, 야당이 된 국민의힘은 원색적인 비난을 멈추고 여당 견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회 독재? 윤 심판은 국민의 뜻” 여대야소 처음 아닌데…야 맹공 민주당 양부남 의원 역시 대선 전 토론 프로그램 <국민맞수>를 통해 “의회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서 의회 민주주의로 당을 지도했을 뿐이고 앞으로 하려는 것도 민주주의”라고 설명했다. 양 의원은 “이낙연 전 총리나 바른미래당 손학규 전 대표 등 몇몇 사람이 의회 독재라는 주장을 하고 김문수 후보도 ‘방탄 괴물 독재 국가’를 운운한다”며 “이재명 (당시) 후보를 괴물 독재로 지칭하는 자체가 국민 의식 수준을 우습게 보는 것이고 정치 엘리트 기득권의 기만이자 오만이며 교만”이라고 직격했다. 이날 토론에 함께 출연한 국민의힘 홍석준 전 의원이 민주당의 예산 폭주, 행정부 장악 등을 예로 들자 “독재와 개혁을 혼동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양 의원은 “민주당이 하려는 사법제도 개혁이라든지 기재부 개혁 등은 나름 합리성 이유가 있는 것”이라며 “이런 개혁을 독재로 호도하는 것은 정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국민 생각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도 이 주장에 힘을 실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우리나라 국민 성숙도를 봤을 때 의회를 장악했다고 독재 정치를 하다가는 그 정권도 혼이 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KBS <전격시사>에 출연해 ‘내란 극복’을 축소할 것을 주장하며 “내란 극복이라는 것을 너무 광범위하게 적용해서 하다가는 결국 보복이라는 말도 나올 수 있다. 국민과 대화, 특히 자기와 반대되는 측 사람과 대화를 활발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과거 여대야소 정국에서는 여당이 고삐를 꽉 쥐고 있었음에도 하루하루 순탄치 않았다. 지금처럼 의회 독재든, 계파 갈등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야당이 호시탐탐 무너뜨릴 기회를 노렸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대통령을 배출한 거대 여당이지만 계속해서 발목 잡힌다면 문재인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효능감 문제에 부딪힐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번엔 다르다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과거의 여대야소와 지금의 여대야소는 다르다”고 말했다. 최 평론가는 노태우정부 당시 3당 합당을 예로 들며 “과거에는 여대야소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국민투표를 통해 민주당 계열에 표가 몰렸다. 그리고 민주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며 “윤석열이란 선장이 자격이 없으니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견제론이 나왔고, 그 결과 총선과 대선 모두 윤석열 심판론으로 치러졌다. 방향타를 국민이 만들어준 것”이라고 진단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 대통령 재판, 올스톱 일단 푼 사법 족쇄? 법원이 오는 18일로 예정됐던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파기환송심 사건에 대해 기일을 추후에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이같이 밝히며 “헌법 제84조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헌법 제84조에 따라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진행 중인 재판에 적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리스크였던 대장동 배임 사건 역시 재판부가 재판을 연기했다. 이로써 이 대통령의 다른 재판 역시 추후 지정될 가능성이 커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임기 중 재판이 정지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법원은 대장동 배임 사건 재판부는 이 대통령과 함께 기소됐던 더불어민주당 정진상 전 정무조정실장에 대해서는 계속 재판을 진행할 방침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