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발 '군란' 막전막후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11.12 10:44:13
  • 댓글 0개

정보기관 두고 피 말리는 고지전

[일요시사=사회팀] 군 기밀 정보의 보고인 기무사 수장의 갑작스런 경질을 놓고 남재준 국정원장과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간의 파워게임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박근혜정부 육사 전성시대의 두 주역인 남 원장과 김 실장의 힘겨루기는 자칫 파벌 싸움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어 정국은 지금 폭풍전야다. 또 두 장성을 컨트롤하고 있는 청와대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지 이들의 복잡한 역학구도가 피 말리는 고지전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단행된 중장급 이하 장성 인사에서 장경욱(육사 36기) 당시 기무사령관이 경질된 것과 관련 이른바 '군란(軍亂) 파동' 가능성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기무사 둘러싼
파워게임 고개

군 관계자 및 복수 매체 보도에 따르면 군 정보기관의 요체인 기무사의 새로운 수장으로는 육군본부(이하 육본) 소속 이재수(육사 37기) 인사사령관이 낙점됐다. 이 사령관은 지난달 26일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조직 장악에 나섰다.

그런데 기무사 재편 과정에서 장 전 사령관이 물러난 모양새가 심상치 않았다. 김대중정부 이후 기무사령관의 중도 경질 사례는 전무했고, 김영삼정부 역시 1993년 군 사조직인 '하나회'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김도윤(육사 22기) 당시 기무사령관을 내친 것 빼고는 칼을 빼든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김 전 사령관은 전화 한 통에 스스로 옷을 벗었지만 장 전 사령관은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교체된 상황이라 뒷말은 더 했다. 급작스러운 교체의 배경을 둘러싸고 정치권 및 언론계에선 이른바 '박지만 보고서'가 언급됐다.

'박지만 보고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육사 37기) EG회장의 동향 및 정치적 불안요소 등을 담은 보고서로 소개됐다. 장 전 사령관을 비롯한 군 정보라인이 일종의 '충성 경쟁' 차원에서 "박 회장의 이런 점들을 조심하십시오"라고 청와대에 직보한 게 오히려 박 대통령의 노여움을 샀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기자가 만난 한 군 관계자는 '박지만 보고서'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신임인 이 사령관과 박 회장이 육사 동기이고, 친분이 있다는 점 때문에 박지만의 이름이 나온 것 뿐"이라며 "'박지만설'은 확인되지 않은 소설로 판명났다"고 전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한 관계자 역시 "제정신이라면 그 보고서를 청와대에 내밀었겠냐"며 "보고서가 있다고 해도 그 실체를 밝혀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만에 기무사령관 중도 경질…육사 파워게임
군인사 주도권 놓고 '남재준 vs 김장수' 대립각

그렇다면 장 전 사령관은 왜 부임 6개월여 만에 경질된 것일까.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부적절한 인사 개입이지만 그 내막엔 남재준(육사 25기) 국정원장과 김장수(육사 27기)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간의 파워게임이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남 원장이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장 전 사령관의 '항명'을 '김장수 라인'인 김관진(육사 28기) 국방부장관이 제압한 게 사건의 본질이란 것. 때문에 남 원장과 김 실장의 오랜 라이벌 구도가 정계 안팎에서 회자되고 있다.

남재준 인사청탁
김장수 묵묵부답

육사 선후배인 둘의 관계가 껄끄러운 라이벌로 굳어진 배경에는 군 인사권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이 꼽히고 있다. 남 원장과 김 실장은 서로 각각의 측근들을 중용하기로 유명한데 '육사 선배인 남 원장이 참여정부 때 자기 사람들을 내친 김 실장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소문은 여러 언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사건은 지난 2004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 용산구 국방부 서문에 있는 장교 숙소 '국방 레스텔' 지하 주차장에선 10여부의 괴문서가 발견됐다. 한 달 전 있었던 육군 장성 진급 심사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투고였다.

이에 군 검찰은 군 장성 진급 비리 수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수사 과정에서 군 검찰은 남 원장(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인사 개입을 의심할 만한 정황을 포착했다. 육본 인사참모부 캐비닛에서 비밀 문건을 발견한 것이다.

관련 보도 등에 따르면 육본의 인사관리처장은 남 원장의 지시로 준장 진급 대상자 17명의 서류를 위조했다. 대신 남 원장과 가까운 사이의 인물들은 대거 진급 대상자로 내정됐다. 때문에 남 원장이 육군 내 비밀 사조직을 가동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남 원장은 자신에게 씌워진 모든 의혹을 부인하며 전역지원서를 제출했다. 메머드급 인사 비리와 관련해 자신의 결백을 강조하기 위한 제스처였다. 이 때 남 원장의 후임으로 내정된 신임 육군참모총장이 바로 김 실장(당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었다.

2005년 4월 계룡대에서 열린 육군참모총장 이·취임식에서 남 원장은 김 실장과 정치적인 거래를 성사시키고자 했다. 자신과 가까운 몇몇 간부들에 대해 "구제해 달라"며 사실상의 진급 청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김 실장은 남 원장의 인사 청탁을 "내가 왜 구제해야 하냐"며 거절했고, 이어진 진급 심사에서 남 원장이 지목한 간부들을 배제했다. 선배인 남 원장의 입장에선 두 기수나 낮은 후배에게 잊지 못할 수모를 당한 셈이다.

이후 김 실장은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국방부 장관으로 영전했다. 참여정부 시절 '꼿꼿장수'란 별명을 얻은 그는 국방·안보 분야에서 독보적인 능력을 인정받으며 퇴임 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비례대표로까지 영입됐다.

하지만 김 실장이 두 번의 정권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던 것과 달리 남 원장은 권력의 중심에서 배제됐다. 이른바 '김장수 라인'이 뜨면서 상대적으로 덜 유연한 '남재준 사람들'이 일종의 박탈감을 느꼈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지난 대선 과정에서 김 실장은 박근혜 캠프의 국민행복추진위 국방안보추진단장을 맡아 내부에서 활동했지만 남 원장은 국방안보특보라는 일종의 명예직을 맡아 외부에서 자문을 해주는 역할에 그쳤다.

더구나 국방부의 수장인 김 장관 역시 '김장수 라인'에 근접했다는 평가가 나오자 일부 언론은 '김장수 대세론'을 공공연히 했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자 먼저 치고나간 사람은 남 원장이었다.

칼을 간 남재준
김장수 겨눴다?

박근혜정부 초대 국정원장으로 내정된 남 원장은 검찰이 주도한 봄·여름 정국에서 유독 존재감을 드러냈다. NLL 파문,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태 등 굵직한 공안 사건은 물론이고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 폭로에도 개입하면서 난맥상을 드러낸 박근혜정부의 '호위무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가다. 

특히 여권 입장에서 '신의 한수'로 불린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참여정부 시절 국방부 장관을 지낸 김 실장에게까지 여파를 미쳤다. 막후에서 재기를 준비한 남 원장의 '화려한 귀환'은 '김장수 대세론'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며 '공안 드라이브'를 걸던 남 원장에게 뜻밖의 변수가 생겼다. 남 원장과 공조 체제를 구축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기무사의 수장이 급작스레 교체된 것이다.

무엇보다 그 시점이 오묘했다. 김 실장이 방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출국한 날은 10월23일이었는데 기무사령관 인사가 단행된 날은 10월25일이었다. 국방·안보분야 인사와 관련해 사실상의 승인권자인 김 실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군내에서 가장 중요한 권력기관의 수장이 교체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군 관계자는 "전임인 장 전 사령관이 전·현직 장성들을 대상으로 사생활을 뒷조사하는 한편 동향보고를 명목으로 수집한 정보를 청와대에 직보하는 등 인사에 개입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즉 이번 경질은 장 전 사령관이 지휘계통을 무시했기 때문에 벌어진 문책성 인사란 설명이다.

청와대 직보에 '불끈' 김관진이 장경욱 쳐내
국정원 틀어쥔 남재준 vs 기무사 장악한 김장수

그러나 기무사의 첩보 수집은 통상 업무란 점과 청와대 직보 역시 절차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군 안팎의 관심은 기무사가 직보한 '내용'에 쏠렸다. 이 과정에서 확인되지 않은 첩보가 생성됐고, '박지만 보고서'와 같은 각종 '설'이 난무했다.

기무사와 관련한 온갖 의혹들이 꼬리를 물었던 지난 1일 김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에 나와 작정한 듯 불씨를 지폈다. 이번 경질의 배경을 묻는 질문에 대해 "장 전 사령관은 원래 대리 근무 체제였다. 관찰해보니 기무사를 개혁하고 발전시킬 만한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었다"고 말한 것.

공식석상에서 현직 장관이 인사 대상자를 특정하며 노골적으로 깎아내린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자 참고 있던 장 전 사령관도 포문을 열었다. 그는 지난 2일 언론을 통해 김 장관의 '편파 인사'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직격탄을 날렸다.

장 전 사령관은 인터뷰에서 "올 4월 군 장성급 인사 당시 김 장관의 인사 절차와 방식에 대해 내부 불만과 비판 여론이 많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확인 결과 상당 부분 맞는 얘기였기 때문에 청와대에 그런 여론과 분위기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또 "장관의 독단 등을 견제하는 것은 기무사의 고유 임무이고 과거 사령관들도 청와대에 보고를 해왔다"는 해명으로 이번 인사가 '보복성 인사'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 김 장관 측은 맞불을 놨다. 지난 3일 한 언론을 통해 "김 장관이 장 전 사령관에게 그간 음성적으로 해왔던 군내 동향보고를 철폐할 것을 지시했으나 장 전 사령관이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이다.

아울러 김 장관 측은 "기무사가 수집된 정보로 다른 기관과 거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기무사령관의 역할은 국방부장관의 지휘권을 보장하는 데 충실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장 전 사령관을 아는 인사들은 여전히 그가 김 장관에게 '찍어내기'를 당했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장 전 사령관의 청와대 직보는 김 장관을 흔들기 위한 정략이 아닌 특정 인맥의 인사 전횡을 견제하기 위한 소신에 가깝다는 것. 실제로 장 전 사령관이 물러난 이후의 상황을 보면 이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3일 김 장관은 기무사 개혁이란 카드를 꺼내들었다. 개혁의 골자는 기무사의 광범위한 군내 동향 수집 및 음성적인 윗선 보고 관행 철폐였다. 하지만 이번 기무사 개혁의 방점은 국방부장관이 군 정보라인을 직접 컨트롤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따라서 장 전 사령관의 옷을 벗긴 뒤 그의 참모와 부하들까지 차례로 방출한 것도 결국은 정보라인을 장악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되고 있다. 장 전 사령관은 합참 정보생산처장, 합참 군사정보부장 등을 거친 대표적인 '정보통'이다.

그리고 기무사 개혁을 부르짖는 김 장관 뒤에는 '김장수 라인'이 존재한다. 남 원장에게 국정원을 내준 '김장수 라인'이 군내 정보라인까지 뺏길 경우 정국의 주도권을 완전히 내줄 수 있어 사전에 이를 장악했다는 것이다.

김기춘 묵인
독주는 없다

여기서 청와대의 스탠스가 눈길을 끈다. 이번 인사는 표면적으로 김 장관이 주도했지만 청와대 인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는 게 중론이다.

전직 장성급 출신 관계자의 진술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기무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이 함부로 끌어내리는 자리는 아니다"라며 "청와대의 승인 없이 장 전 사령관을 찍어내긴 힘들 것"이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일각에선 "'김장수 라인'의 적통인는 박흥렬(육사 28기) 청와대 경호실장의 역할론도 제기된다. 현역 시절 '인사통'으로 이름 높았던 박 실장의 명성을 고려한 추측이다.

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은 역시 '남재준 견제론'이다. 좀처럼 권력의 독주를 허용하지 않는 박 대통령이 남 원장의 힘이 비대해질 것을 우려, 이번엔 김 실장 쪽에 힘을 실어줬다는 해석이다. 바꿔 말하면 청와대가 남 원장과 김 실장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나 군 안팎에선 이번 인사 파문을 시작으로 '남재준 사람들'과 '김장수 라인'이 전면전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김 실장에게 아직 앙금이 남아 있는 남 원장 쪽에서 먼저 선전포고를 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국정원이란 방대한 조직을 갖고 있는 남 원장은 '인사권' 면에서 김 실장보다 월등하다. 최근 국정원의 숨은 실세로 꼽히고 있는 해병대 준장 출신 P씨가 대표적인데 남 원장은 앞으로 군 장성 출신을 꾸준히 요직에 앉힐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같은 맥락에서 보면 청와대가 왜 계속 김 장관을 유임시키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 관계자는 귀띔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