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금의환향 류현진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1.12 10: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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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다! 내년도 올해처럼만 ‘고고씽’

[일요시사=사회팀] ‘괴물투수’ 류현진 선수(26·LA 다저스)가 메이저리그 데뷔 첫 해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금의환향’했다. 한국인 메이저리거 최초 포스트시즌 선발승. 192이닝 동안 154개의 삼진으로 타자들을 요리하는 등 눈부신 활약으로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류현진의 내일이 기대된다.




메이저리그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난달 29일 귀국한 류현진은 시즌을 마치고 지난 1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다저스에서 보낸 한 시즌을 돌아보고 다음 시즌 각오를 밝혔다. 그는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푹 쉬고 싶다”면서도 “내년 시즌에도 10승과 평균자책점 2점대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겨우내 잘 쉬고 열심히 운동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의 귀환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 팀내 3선발 입지를 굳힌 류현진은 내년 목표를 올해와 마찬가지로 두 자릿수 승리와 아쉽게 달성하지 못한 2점대 자책점으로 잡았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다른 새로운 목표는 없다. 프로 들어와서 9년째 처음부터 똑같이 처음 목표는 10승에 2점대 내년도 변함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빅리그 첫 해 가장 힘들었던 점은 동부지역 원정경기였다며 시차 적응 부분을 보완하겠다고 말한 류현진은 세인트루이스를 잠재운 포스트시즌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라고 말했다.

“승리투수 되고 나서는 어느 때보다 좋았었고 0승 2패로 끌려가는 3차전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입국 당시 본인의 첫 시즌을 놓고 99점을 준 이유에 대해서는 “100점을 다 주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동부에서 시차 적응에 대한 부분 때문에 1점을 뺐다. 등번호가 99번이라서 그렇게 준 것도 있다”고 답변하며 미소를 지었다.


또한 류현진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크게 차이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 야구가 힘이 좋은 점은 있지만 야구는 결국 똑같은 야구다”며 빅리그 도전에 앞서 가졌던 본인의 생각에 변화가 없음을 알렸다.
또 그는 앞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선수들에게는 동료들과의 친화력, 그리고 한국에서 하던 방식의 운동방법을 조언했다.

팬과 미디어, 야구 관계자 등의 투표로 뽑는 메이저리그 올해의 신인상 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류현진은 당분간 국내에서 휴식을 취한 뒤 개인 훈련을 소화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국 언론은 류현진이 정상적인 신인은 아니라고 높이 평가했다. 류현진은 지난 6일(이하 한국시간), 미국야구기자협회가 발표한 2013 메이저리그 ‘올해의 신인’ 최종 후보 3명에 들지 못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스포츠 전문 매체인 <SB내이션>은 류현진이 보통 신인과는 다르기 때문이라 분석했다.

이 매체는 류현진의 탈락 소식을 전하며 “류현진은 한국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7년이나 했다. 정상적인 신인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메이저리그 첫 해에 훌륭한 활약을 했음에는 변함이 없다고 보도했다.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 눈부신 활약
뜨거운 환영 받으며 위풍당당 귀국

류현진은 26살로, 30경기에 선발로 나와 192이닝을 던지며 14승 8패, 평균자책점 3.00, 탈삼진 154개를 기록했다고 소개했다. 이어서 퀄리티스타트(6이닝 3실점 이하)는 22회로 팀 내 2위였고 퀄리티스타트 비율 역시 73%로 내셔널리그 8위였다며 높이 평가했다. 특히 30경기 중 19경기에서 2점 이하로 실점했음을 강조했다.

메이저리그는 ‘신인’이란, 이전 시즌까지 130타석 이하로 들어선 타자, 50이닝 이하로 투구한 투수, 그리고 메이저리그 등록 일수가 45일 이하인 선수로 규정하고 있다. 즉, 규정상 다른 리그에서 얼마나 선수생활을 했는지는 메이저리그 신인 자격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류현진은 한국에서의 경력이 결국 걸림돌로 작용하며 신인왕 최종 후보에서 제외됐다. 지난 2000년과 2001년, 사사키 가즈히로와 스즈키 이치로가 연속으로 신인왕을 석권하며 미국 기자들 사이에서 ‘신인왕 자격’에 관해 논란이 일었다. 2001년 이치로 이후 중고 신인왕의 명맥은 끊겼다. 2003년 마쓰이 히데키, 2012년 다르빗슈 유도 뛰어난 성적을 올렸지만 신인왕 투표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지난 9월에도 미국의 <CBS스포츠>는 “류현진은 26살의 나이, 그리고 10년 가까이 되는 한국에서의 경력 때문에 투표에서 불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

“신인 같지 않다”
 미 ‘류뚱’극찬

류현진은 귀국 후 친구들과 즉흥적으로 기획한 게릴라 경기를 펼쳤다. 라인업까지 직접 손본 감독 데뷔전을 치른 것이다.

류현진은 지난 8일 오후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HJ99와 팀조마의 게릴라 자선 경기에서 HJ99 감독 겸 선수로 출전했다. 경기 전 류현진이 바쁜 일정으로 늦는 바람에 해프닝이 있었다. 4번 타자로 나선다는 보도와 다르게 그의 이름은 전광판에 1번 타자로 올랐다. 류현진이 경기장에 도착한 뒤에야 다시 라인업이 꾸려졌다. 감독으로서 직접 타순을 정한 것이다. 류현진은 자신의 이름을 4번에 새겨넣었다.

선발 1루수로 경기에 나선 류현진은 번뜩이는 수비 변경을 보였다. 친형 류현수가 6실점하며 난타당하자 직접 마운드에 올랐다. 기가 죽은 형을 다독이며 마운드에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1회초 1사 만루에 공을 넘겨받아 두 타자를 가볍게 처리하고 이닝을 마무리했다. 와인드업도 제대로 하지 않고 가볍게 공을 뿌렸지만 조마조마팀에겐 너무 빨랐다.

‘구원 투수’ 류현진은 4회초 3루수로 자리를 바꿨다. 연달아 실책이 발생해 실점하자 류현진이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류현진 ‘감독’의 작전은 적중했다. 5회초 3루쪽으로 타구가 오자 공을 잡아 ‘빙글’ 돌며 2루로 송구했다. 보기 드문 왼손 3루수의 수비 장면이었다. 결국 이 수비는 병살로 연결됐다. 자신의 작전이 적중하자 류현진은 환하게 웃었다.

마지막 7회초는 ‘화룡점정’이었다. 비록 자선 경기였지만 그의 승부욕은 뜨거웠다. 팀이 15-13으로 역전에 성공한 7회초 다시 마운드에 섰다. 6회말 조마조마팀 공격이 끝나자 가장 먼저 경기장으로 나와 어깨를 풀었다.
‘마무리 투수’ 류현진은 2루타를 허용했지만, ‘여유만만’이었다. 미소는 유지하고 구속은 조금 올렸다. 류현진은 남은 타자들을 손쉽게 범타 처리하고 감독 데뷔전에서 자신이 경기를 끝냈다.

이날 류현진은 ‘승리’와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추운 날씨에도 경기장을 찾아준 팬들에게 직접 치킨을 선물하는가 하면 시간이 날 때마다 사진 촬영과 사인을 해 줬다. 류현진 특유의 장난기 많은 모습에 관중석에서 연신 웃음이 터졌다.

선발 자원이 풍부한 LA다저스에 입단한 류현진이 시즌 전 가장 많이 듣던 이야기가 있다. “안정적인 4~5선발의 자리만 꿰차도 성공적인 시즌일 것이다.”

사이영 듀오인 커쇼와 그레인키를 시작으로 하랑과 카푸아노, 릴리까지 이미 5명의 검증된 선발 투수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평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류현진은 LA다저스의 3선발로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기록
‘괴물급 신인’으로 우뚝
10승-2점대 방어율 유지

류현진은 시즌 초반 그레인키의 부상으로 커쇼와 함께 원투펀치의 역할로 높게 평가 받기 시작했다.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며 급부상한 것.


물론 출발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무려 10피안타를 맞으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현진은 괴물이었다. 두번째 경기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6 1/3이닝 3피안타 2실점의 성적을 올리고 메이저리그 첫 승을 달성했다.

1회에 맥커친에게 투런홈런을 먼저 맞으면서 잠시 흔들리나 싶던 류현진은 이후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 안정적인 경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 얻은 자신감을 통해 이후 치러진 4경기에서 패배없이 2승을 추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동산고 4번타자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했다. 4월14일 열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은 류현진 선수를 전설의 타자 ‘베이브 루스’와 비슷한 별명을 만들어준 경기였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지명타자 제도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프로 투수 선수는 타격의 기회가 거의 없다. 류현진 역시 한화이글스에서 뛰는 6년 동안 단 한번도 타석에 들어선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경기를 통해 숨겨왔던 타자로서의 본능을 여지없이 폭발시켰다.

한국인 출신
역대급 메이저리거

작년 시즌까지 애리조나의 부동의 에이스로 군림해온 이안 케네디를 상대로 3타수 3안타(2루타 1개 포함), 1득점까지 기록한 것은 생각지도 못한 류현진의 재발견이었다. 이를 통해 시즌 2승을 달성한 것은 물론 ‘베이브류스’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 최고의 경기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재밌는 사실 하나는, 시즌 이 끝난 후 각 팀의 1~3선발의 타율을 합산한 결과, 커쇼와 그레인키, 류현진의 LA다저스가 압도적인 선두를 보여줬다고 한다.(그레인키 0.347의 타율로 투수 중 타율 1위, 커쇼 10타점으로 타점 1위, 류현진 2루타 3개, 3루타 한 개의 장타기록은 투수 중 유일)

한국에서는 완투를 밥먹듯이 하며 최고의 투수로서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던 류현진. 메이저리그에서는 단 한번도 완투를 하지 않았다. 5월 29일에 열린 LA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는 류현진이 올 시즌 가장 완벽했던 모습을 보여주었던 경기였다.

9이닝 2피안타 무실점. 1995년 당시 토네이도 열풍을 불러 일으킨 LA다저스의 노모 선수가 데뷔 해에 기록한 완봉승을 제외하고 아시아 출신의 루키가 데뷔 시즌 완봉승을 하는 것은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던진 113구를 통해 류현진은 확실하게 자신의 이름을 메이저리그에 각인 시켰다. 그리고 이후 경기에서 공 개수에 상관 없이 감독 이하 코치진에게 믿음을 주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국인 투수로서 메이저리그 최대의 성과를 낸 선수들로 박찬호, 김병현 선수를 빼 놓을 수 없다. 그런데 대투수들조차 해내지 못한 기록이 바로 플레이오프 선발 승리다.

류현진이 데뷔 첫 해 이루어낸 것 중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리그 챔피언십 결정전 3차전에서의 결정적인 승리의 견인차 역할로 4회까지 노히트 피칭을 하는 괴물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108개 7이닝 3피안타 1사사구 4탈삼진 무실점의 기록을 보여주며 앞서 이야기한 완봉승 이후 최고의 피칭을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나 최강 원투펀치인 커쇼와 그레인키가 출격한 앞선 두 경기에서 뼈아픈 2패를 당하며 상당히 침체된 분위기를 가져가던 LA다저스에게 반전의 기회를 마련해준 경기라는 점에서 더욱 대단한 경기였다.

위대한 업적…
플레이오프 선발

그동안 류현진이 큰 경기에서 약한 것이 아니냐는 주변의 시선을 받아왔다. 하지만 150km 가 넘는 강속구를 통해 최근 경기에서 시즌 내내 약점으로 지적되어 왔던 1회 실점 부분을 봉쇄하는 모습을 보이며, 투수로서의 능력을 입증했다. 류현진의 잠재력이야말로 그가 괴물로 불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류현진은 인천 출신으로 동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6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순위(전체 2순위) 지명을 받아 한화이글스에 입단했다. 당시 등번호는 15번이었으나 한화 이글스에서 15번을 달고 오랜 기간 활동했던 투수 구대성이 미국 메이저 리그 뉴욕 메츠에서 한화 이글스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99번으로 변경됐다. 그 때 그는 별 생각 없이 99번으로 변경했으나 이후에는 소속 팀의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재현을 위해 99번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재현하지 못했다고 한다.

“야구는 똑같다. 한미 차이 없다”

프로 야구 데뷔 첫 해인 2006년 다승, 평균 자책, 탈삼진 1위로 투수 3관왕에 오르며 신인상과 최우수 선수상을 동시에 석권했다. 신인이라고 하기엔 믿기 힘든 뛰어난 활약으로 '괴물' 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데뷔 첫 해 한국시리즈에도 등판했다.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2006년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에 선출되어 활동하기도 했지만 아시안 게임에서는 부진했다. 2006년 4월12일 잠실 LG전에서 선발(첫 등판)로 나와 10개 탈삼진을 잡으며 프로 데뷔 첫 승을 거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 국가 대표로 참가해 예선전인 캐나다 전과 결승전(대 쿠바)에 선발 등판했고, 캐나다전 완봉승을 포함, 17 1/3 이닝 동안 10피안타 13탈삼진 2실점(평균 자책 1.04)의 뛰어난 성적으로 야구 국가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했고, 2009년 3월6일 벌어진 아시아 라운드 첫 경기 대만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3이닝 피안타 1개 탈삼진 3개 무실점으로 승리를 거뒀다. SK와이번스의 김광현과 LG트윈스의 봉중근과 함께 한국 프로 야구 3대 좌완 에이스로 꼽힌다. 그러나 사실 그는 공을 던질 때 외에는 오른손잡이다. 야구선수 중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좌투우타이다.

2010년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대표로 출전했으며 대만과의 결승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철벽 마운드를 구축,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큰 공헌을 세웠다. CJ 마구마구 일구상 최고투수상, CJ 마구마구 프로야구 투수부문 골든글러브, 스포츠토토 올해의 투수상, 조아제약 프로야구 대상 최고 투수상, 제16회 2010년 아시안 게임 야구 금메달, CJ 마구마구 프로야구 최다탈삼진상, CJ 마구마구 프로야구 방어율1위투수상, 정규이닝 최다 탈삼진 기록상을 수상하고 방어율 1.82 전적 16승 4패 탈삼진 187개 등을 기록했다.

2012년 11월9일 메이저리그 포스팅 시스템 기간이 종료된 결과 2573만7737달러33센트(한화 약 279억8978만원)의 포스팅 응찰액을 받았으며 최고 금액 입찰팀은 LA 다저스로 밝혀졌다.

마침내 같은 해 12월 10일, LA다저스와의 협상 끝에 계약 기간 6년 동안 총액 3600만달러(한화 약 390억원)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메이저리그 2013 시즌 성적은 14승 8패 평균자책점 3.00을 기록하면서 한국인 데뷔 최초 10승 투수가 됐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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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