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코레일 성로비 문건 공개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11.06 12: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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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아닌 룸살롱서 은밀한 비즈니스

[일요시사=경제1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스폰서 검사 파문부터 별장 스캔들까지,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성접대 문제. 공기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번에는 코레일(한국철도공사) 간부들이 거래처로부터 수차례 성접대를 비롯한 향응을 받아왔다는 ‘성접대 문건’이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사무실 테이블이 아닌 술자리 테이블에서 은밀한 비즈니스가 이뤄지는 현실을 집중 파헤쳐봤다.




코레일 해외사업단 직원들이 속칭 ‘쩜오’라는 풀살롱(풀코스 룸살롱) 형태의 성매매 업소를 드나드는 등 여러  거래처로부터 접대를 받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는 이 같은 주장이 구체적으로 담긴 ‘접대 문건’과 더불어 수백만원의 돈이 오간 계좌 송금 내역, 접대를 받은 다음 날 코레일 직원들이 거래처에 보낸 이메일을 <단독>으로 입수했다.

기름쟁이들의
접대(?) 문화

코레일이 추진하던 해외사업과 관련해 대리인 관계를 유지해오던 K씨는 2011년 말부터 지난해 4월까지 코레일 해외사업단 소속 H부장과, N차장에게 회당 수백 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했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국민권익위원회 부패 방지국에 제출했다.

K씨와 코레일 거래처인 S사 등이 사실상 코레일 일부 직원들의 ‘물주’ 역할을 하면서 식사 및 술 접대, 마사지 비용 등을 계산하고 수 십만원에 이르는 택시비까지 챙겨줬다는 것이다. K씨는 이 과정에서 이들에게 2차 성접대까지 제공했다고 폭로했다. 

K씨는 ‘코레일 해외영업팀 직원들에게 제공한 향응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서’라는 제목의 탄원서에서 “관례적이라고 치부되었던 위법 사실을 밝혀내겠다”며 “향후 코레일 직원들이 계약상 우위에 있다는 이유로 하청 및 관련업계에 향응·접대를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탄원 경위를 설명했다.


문건에 따르면 K씨와 N차장은 2011년 12월 중순 업무관계로 대전 코레일 본사에 방문한 뒤 간단한 술과 식사자리를 갖고 2차로 하우스 비어집에 들렀다. 출장을 다녀온 H부장이 합류했고, 세 명은 3차 유흥주점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일행은 국산양주 17년산 3병을 마셨고, K씨는 일정 상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후 주점 영업부장이라는 사람이 K씨에게 전화를 걸어와 “당시 술 값 150만원을 송금해 달라”고 요구했다.

해외사업단 간부들 거래처서 수차례 술접대
한번에 수백만원씩…계약 빌미로 향응 요구

이 영업부장은 그러나 “코레일 H 부장을 잘 알기 때문에, 다음 방문 시 현금결제를 해도 된다”고 제안했고, K씨는 보름 뒤 N차장과 H부장, 코레일 하청업체인 S사 박모 과장과 다시 방문한 날 150만원을 영업부장에게 현금으로 지급했다. 

이날엔 “아가씨가 2명만 준비됐다”고 하여 H부장, N차장 옆에만 여성 접대부가 앉은 상태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때 양주 4개와 안주 및 여성 접대부 비용을 포함한 100만원이 넘는 금액은 S사 법인 카드로 결제했다. K씨는 문건에서 “이후 코레일과 S사는 20억원의 수의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다.

원스톱성매매
‘풀살롱’으로

접대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난해 1월 6일 K씨는 H 부장, N 차장과 서울에 위치한 모 종합상사를 업무 협의차 방문한 뒤, 이곳 관계자 3명과 인근 식당으로 이동해 30만원 상당의 술과 식사를 했다. 식사비는 모 상사 측에서 법인카드로 계산했다.


이후 K씨와 H부장, N차장, 모 상사 관계자 1명 등 4명은 오후 9시경 나머지 일행들과 헤어진 뒤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이들은 서울 강남 청담동 등지로 고급형 바를 찾아 헤매다 선릉역 뒤편에 위치한 속칭 ‘쩜오’라 불리는 풀살롱을 소개받아 들어갔다. 

쩜오는 상위 15% 여성 접대부들이 상주하고 있는 고급 룸살롱을 말한다. 텐프로보다는 접대부들의 미모가 떨어지는 대신 술값을 낮췄다. 그럼에도 가격은 200만원 정도로 비싼 편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들어간 곳은 이러한 ‘쩜오’ 여성 접대부 200여명과 룸 40여개가 갖춰진 곳으로, 한 빌딩 내에 주점과 모텔이 함께 있어 음주와 성매매가 동시에 이뤄지는 풀살롱이었다.




K씨는 “4명이 각각 아가씨를 초이스(선택) 하여 술자리가 이어졌다”며 “만취한 상태여서 병당 25만원짜리 국산 양주 17년산 5병을 마셨고, 접대부 착석비 각 5만원, 밴드비용 2시간 20만원, 2차(성매매) 비용 각 30만원 등 총 300만원 가량이 나왔다”고 말했다.

당시 N차장과 H부장은 “역시 서울 강남은 물이 다르다”라며 “우리는 한 배를 타야 되니 아가씨들을 데리고 나가는 것도 함께 해야 이후에 함께 죽을 수가 있다”며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고 K씨는 설명했다.

K씨는 이후 여성 접대부들이 옷을 갈아입고 나올 동안 “현금 결제 시 30만원을 할인해 주겠다”는 주점 측의 조언에 따라, 주점 앞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오후 11시 49분께 주점 계좌로 270만원을 송금했다. (관련사진 2.)

K씨가 결제 후 돌아오자 코레일 직원들은 모텔로 바로 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여성 접대부들과 함께 성매매 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고 한다. 이들은 K씨에게 “일(성매매)보고 나서 서로 연락해서 소주 한잔 더 하시죠”라고 말했으나 K씨가 이를 거절하자 그대로 모텔 방으로 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N차장은 월요일인 9일 오전 K씨에게 메일을 보내왔다. N차장은 메일에서 “주말은 잘 보내셨는지요! 저희는 새벽에 택시타고 내려왔다”라며 “다 같이 나왔으면 소주 한 잔 더 했을텐데 그 점이 조금 아쉽다”라고 적었다. (관련사진 3.)

한 달에 한번꼴
전신마사지까지

접대는 그 후에도 한 달에 한번 꼴로 이뤄졌다고 문건에 적시돼 있다. 같은 해 1월 31일 N차장은 업무 협의 차 대구로 출장을 온 뒤 K씨를 만났고, 둘은 회원제 마사지 숍에 들러 전신 아로마 마사지를 받았다.

1인당 7만5000원 가량의 마사지 요금은 K씨가 결제했으며, 이후 한우집에서 10만원 상당의 식사를 하고 근처 바에 들러 여성 접대부 2명을 착석시킨 뒤 양주 2병을 마셨다. 이날 K씨가 N차장 접대를 위해 쓴 돈은 130만 원가량이다.

2월 18일에 K씨는 N차장, H부장과 함께 마사지 숍을 다시 찾아 3명의 마사지 비용을 결제하고 술을 사줬다.


또 3월 31일 N차장과 S사 사장이 대구를 방문해 간단한 미팅을 가진 후 K씨의 안내로 횡성한우 집에서 특수부위(설화)로 식사를 했다. 자리를 옮겨 근처 바에서 고급 양주인 맥켈란 1병과 글렌피딕 2병 등 128만원 상당의 술을 마셨다. 이날 술값은 S사 사장이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이후 술이 취한 N차장은 “여자 있는 곳에서 술을 더 먹자”고 했고, K씨는 U호텔로 N차장을 데려다 준 뒤 현금으로 추가비용을 지불했다. 

유흥주점서 마사지까지 풀코스
풀살롱 접대부와 2차 성매매도
접대 후 수십억 수의계약 맺어

4월28일에는 K씨와 S사 사장, N차장, H부장이 마산역에서 만나 업무협의를 한 뒤, S사 사장이 예약한 참복 코스요리 집에서 30만원 상당의 식사를 했다. 이후 K씨와 N차장, H부장은 대구로 넘어와 바 VIP룸에서 접대부 3명을 착석시킨 뒤 술을 마셨다. 고급 양주 보관 술을 비롯해 추가로 고급양주 2병을 마셨고 92만원 상당의 술값이 청구됐다.

이날 또 K씨는 “대전에서 오송 간 오고가는 한 달 택시비가 많아 나온다”는 코레일 직원들의 푸념에 현금 40만원을 N차장에 전달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K씨는 “코레일 직원들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슈퍼갑’ 지위를 이용해 하청업체로부터 상습적인 접대를 받아왔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일벌백계하여 대한민국 공직사회에 부당한 향응접대 관행을 일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향응수수 인정
성매매는 부인


국민권익위는 K씨가 접수한 사실관계 확인서를 토대로 코레일 직원들의 ‘한국철도공사 임직원 행동강령’ 16조(향응수수) 위반 혐의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달 코레일 대전 본사로 조사관 2명을 파견해 관련자들을 대면 또는 서면조사했으며, 이 과정에서 코레일 직원들은 일부 향응수수는 인정했지만 성매매 의혹은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레일 홍보실 관계자는 “현재 국민권익위에서 접수된 민원 내용에 대해 사실 확인 중이며 정확한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며 “결과가 나온 뒤 비위 사실이 입증되기 전까지 사안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어 이 관계자는 “당사자들은 1차를 간 것은 맞지만 성매매를 하는 2차까지는 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두 사람 중 한 명은 사건이 불거지기 전에 말레이시아로 해외 파견을 나갔고, 나머지 한 명은 정상적인 근무를 하고 있다. 현재 당사자들도 굉장히 힘들어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아직은 민원에 불과한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며 “K씨는 코레일과 해외 사업추진과 관련해 에이전트를 맡고 있다가 계약 사항 위반으로 해지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후 K씨가 앙심을 품고 청와대, 감사원 등에 코레일과 관련한 민원을 넣고 다닌다”며 “수차례 민원인이 제기한 내용에 대해 ‘사실과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고, 코레일 측에서도 K씨를 상대로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 업무방해죄로 고발 조치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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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