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18홀 59타’의 역사

‘꿈의 스코어’ 77년 알 가이버거가 최초

근대 골프사에서 18홀 라운드에서 60타 아래 꿈의 스코어에 다가간 선수들이 있다.
PGA투어 역사상 가장 낮은 59타는 1977년에 알 가이버거에 의해 기록됐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당시엔 유명한 선수였다. 아놀드 파머, 잭 니클라우스 등과 동시대인 60~70년대에 선수 생활을 했다. PGA 통산 11승에다 66년 메이저 대회인 PGA챔피언십까지 차지했다. 라이더컵 미국 대표로도 2번이나 선발됐다.
최소타 기록으로 따지면 58타도 있다. 2010년 일본프로골프투어 JGTO에서 이시카와 료가 기록한 최저타수다. 그러나 이 기록은 최저타라고 하기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거리도 6545야드로 짧은데다가 파70코스에서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가이버거는 PGA투어의 7200야드가 넘는 파72코스였다.
이시카와는 파70에 12언더파니까 58타가 나오고, 가이버거는 파72에 13언더파, 59타를 기록한 것이니 가이버거가 1언더파를 더 쳤다는 계산이다.
가이버거의 기록이 만들어진 때는 35년 전이었다. 77년 6월 10일 테네시의 콜로니얼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대니토마스멤피스클래식 첫날에 그는 평범한 이븐파를 쳤다. 대회 이틀째인 11일 가이버거는 2개의 버디와 3개의 파로 순조롭게 출발했다. 대기록의 조짐은 6번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파5홀에서의 이글을 포함해 내리 4번의 버디를 잡으며 11번째 홀에서만 이미 8언더파를 기록했다. 또 다른 2번의 버디로 10언더파에 이르자 갤러리가 환호하기 시작했다. “59, 59!” 가이버거는 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했다. 그리고 자신감에 넘치는 모습으로 침착하게 스윙을 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이버거는 무려 13언더파, 59타를 쳤다. 갤러리는 환호했다. 골프 역사상 최초로 60타가 깨졌다.
가이버거 외에도 지금까지 59타를 친 PGA투어 선수는 총 5명이다. 91년 칩 백과 99년 데이비드 듀발이 역시 59타를 쳤다. 2010년에는 스튜어드 애플비와 폴 고이도스가 각각 59타를 쳤다.

이시카와 료, 비공인 58타
59타 미국 PGA투어 선수 총 5명
두 번의 역사 쓴 애니카 소렌스탐

그러나 이 두 사람은 파70과 파71코스에서의 11언더와 12언더파였다. 엄밀한 의미에서 파72코스, 13언더파 최저 타수는 가이버거와 칩 백, 데이비드 듀발 세 사람으로 좁혀진다.
하지만 77년 당시의 대회 상황을 감안하면 가이버거가 세웠던 기록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골프 역사가들은 평가한다. 70년대 당시 PGA대회에서의 7200야드는 최장 코스였다. 가이버거의 기록이 있던 날의 기온은 남부 지방에 가까운 뜨거운 여름 날씨였다. 게다가 70년대의 골프 클럽은 감나무 재질이었고 헤드 크기도 200cc 조금 넘는 데 불과했다.
드라이버 샤프트조차도 그라파이트 재질이 나오기 전의 스틸 샤프트였다. 그런 클럽으로 7200야드에서 11개의 버디와 1개 이글, 6번의 파를 기록할 수 있는가를 상상하면 그 기록이 얼마나 어려웠던 것인가를 알 수 있다. 가이버거가 ‘미스터 Mr.59’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얻은 것도 다 이유가 있고, 그래서 ‘미스터 59’는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반면 LPGA투어에서는 아직까지 단 한명만이 59타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01년 애니카 소렌스탐이 스탠다드핑레지스터에서 기록했다.
애니카의 기록도 처음부터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첫 홀부터 버디를 잡더니 4홀 연속 버디를 엮으며 전반을 4언더파로 끝냈다. 신기록 행진은 후반 홀부터 시작됐다. 10번 홀부터 신들린 샷으로 8번의 버디를 기록한 것이다. 한 홀 만을 남겨놓고 이미 59타였다.
마지막홀을 파로 마감한 애니카는 65-59-69-68타, 최종 27언더파 261타라는 대회 역사상 최저타로 우승했다. 2위 선수도 놀랄만한 기량으로 애니카를 쫓아갔지만 2퍼센트 모자랐다. 2타차인 25언더파로 애니카에게 우승을 허용한 선수는 다름 아닌 박세리였다.
애니카는 LPGA 역사상 전무후무한 59타로 명실공히 ‘골프 여제’로서의 기량을 과시하고 세계 골프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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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폴 적색수배’<br> 황하나 근황 포착

[단독] ‘인터폴 적색수배’
황하나 근황 포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마약 투약 혐의로 인터폴 적색수배를 받은 황하나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해 1월31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황씨를 형사 입건했다. 앞서 황씨는 2023년 9월, 영화배우 고 이선균을 협박한 유흥업소 실장 김모씨 등과 함께 내사를 받아왔다. 지난해 2월 과천경찰서는 황하나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간이시약 검사 등을 통해 마약 투약 여부를 확인했다. 수사를 받던 황씨는 돌연 태국으로 출국했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마약과 성매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추가 혐의가 드러나자 태국에 있는 황씨를 검거하기 위해 인터폴 적색수배와 현지 영사 조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폴 적색수배 중인 황씨는 지난 1년 사이 캄보디아로 이동했다. 유튜브 채널 ‘크라임넷’을 운영하는 제보자 A씨에 따르면 현재 프놈펜 소재 한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한국인 남성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지난해 태국으로 도주한 황씨는 자동차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는 현지인 N씨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있다. N씨는 태국 상류층을 뜻하는 ‘하이소(High-Society)’로 분류되는 유명인사다. 황씨의 지인이자 한국에서 모델 활동을 했던 여성 Y씨는 “(자신과 함께) N씨가 클럽, 유흥업소 등에서 황씨와 파티를 즐겼다”고 알려왔다. 태국에서 상위 10% 미만에 속하는 재벌인 하이소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파티를 즐길 뿐더러, 전관예우 등에 따라 현지 경찰의 수사가 어려운 대상이다. 황씨가 N씨의 비호를 받아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왔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Y씨를 비롯한 다수의 제보자는 황씨가 태국, 캄보디아 등을 오가며 성매매, 마약 유통 등에 가담했다고 전했다. 황씨는 한국에 있던 Y씨 등을 불러 현지 남성과의 성매매를 유도하기도 했다. 이 밖에 황씨는 과거 방송인으로 활동했던 에이미(이윤지) 등 유명인들과 어울리며 여유로운 삶을 이어갔다. 현지 정보망에 따르면 황씨는 하이소들과 함께 했기에 경찰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하이소의 권력이 얼만큼인지 나타내는 실제 사례도 있다. 스포츠음료 ‘레드불’ 공동 창업주의 손자 오라윳 유위티야의 뺑소니 사망사건이다. 오라윳은 2012년 9월 방콕 시내에서 술과 마약에 취해 페라리를 과속으로 몰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근무하고 있던 경찰관을 치어 숨지게 한 후 도망쳤다. 그러나 경찰은 사고 후 스트레스로 술을 마셨다는 오라윳 측 주장을 인정하고 음주 운전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오라윳은 불기소됐고, 이후 마약 복용에 따른 처벌도 면했다. 경찰 추적 중에도 호화 생활 동남아 오가며 ‘환락 파티’ 2022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코카인 불법 복용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마약법 개정으로 만료됐다고 현지 검찰총장실 대변인이 밝혔다. 1979년 제정된 마약법을 보면 코카인 불법 복용자는 6개월~3년 징역에 처하고 공소시효는 10년이다. 오라윳의 공소시효는 그해 9월3일에 만료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2021년 12월 발효된 새로운 마약법에 따르면, 코카인 복용은 징역 1년에 공소시효는 5년이다. 이에 따라 오라윳의 코카인 불법 복용 혐의는 자동 기각됐다는 것이다. 오라윳은 이를 틈타 해외로 도주했다. 불기소 결정 뒤 반정부 집회가 열릴 만큼 반발은 심했다. 결국 총리 지시로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검찰과 경찰의 조직적 비호가 있었다는 정황도 포착했다. 검·경은 뒤늦게 부주의한 운전에 의한 과실치사에 코카인 불법 복용 혐의도 추가했다. 하지만 오라윳의 행방은 묘연하다. 검찰은 경찰이 오라윳을 체포해 데려오기 전까지는 마약 복용 혐의로 기소할 수 없다고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현재 오라윳에게 남은 혐의는 과실치사뿐이며 공소시효는 2027년 9월3일인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를 종합하면, 황씨는 동남아로 도주하기 전 마약을 투약한 것과 더불어 지인에게 마약을 권하기도 했다. 황씨의 지인 J씨는 취재진과 전화 통화에서 “황하나가 나에게 좋은 거 있는데 해볼래?”라며 팔에 주사로 된 약물을 주입했다. 그는 “좋은 거라길래 설마 했는데, 속이 울렁거리면서 구토를 하게 됐다”며 “정신을 차려 보니, 주변에 주사기들이 놓여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J씨는 “마약을 투약한 것 같다”고 경찰에 자수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이어 황씨는 지난해 3월19일 취재진과 통화에서 “술은 왜 마셔요? 마약이 더 좋은데”라며 “왜 기자들은 내 기사만 쓰는지 모르겠다. 다른 약쟁이들도 많은데, 좀 취재하고 기사를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황씨의 아버지 황재필씨는 “딸이 적색수배된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카카오 메시지를 읽었지만, 묵묵부답이다. 태국 재벌 ‘하이소’ 조력 “나 잡아봐라” 수사망 피해 한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로 전환된 황하나에 대해 출국금지 명령이 내려지지 않은 것이 의아하다”고 말했다. 적색수배가 내려진 황씨가 이번에 귀국하게 되면, 앞으로 1년 이상 태국에 재입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이자, 동방신기 출신 박유천의 전 약혼녀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두 사람은 2018년 9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수차례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를 받았다. 황씨는 2019년 11월 항소심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면서 석방됐다. 앞서 여러 차례 마약 투약으로 처벌받은 이력도 있다. 2015년 5~9월 자택 등에서 필로폰을 세 차례 투약했다. 2018년 4월에는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 없이 사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집행유예 기간 중인 2021년 7월9일 재차 마약을 투약해 1심 판결로 추징금 40만원에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9년에 마약 투약죄로 선고받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동종범죄 재범에 이종범죄까지 저지른 대가로 가중처벌을 받은 것이다. 당시 마약 혐의와 함께 2020년 11월, 시가 500만원 상당의 명품 신발 등을 훔친 혐의도 받았다. 기소된 이후 세 차례 반성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2021년 10월28일 2심 판결서 검찰은 황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구형했다. 황씨는 최후 진술에서 “휴대전화도 없애고 시골로 내려가 열심히 살고 제가 할 수 있는 성취감 느끼는 일을 찾아 열심히 살아보겠다”면서 “지난 3~4년간 수면제나 마약으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제가 너무 하찮게 다뤘고 죽음도 쉽게 생각하며 저를 막 대했다”고 눈물을 흘리며 변론했다. 그해 11월15일 2심 판결서 재판부는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8개월을 선고했다. 추징금은 4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태국서 이동 이후 2023년 이선균 마약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황씨를 포함해 총 8명이 마약을 투약한 단서를 포착하고, 일부는 형사 입건해 내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당시 황씨는 내사자 신분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내사 대상에 오른 인물 1명과 성명불상자 1명을 공갈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사실도 파악했다. 다수의 제보자들은 “황하나는 이선균이 협박당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이선균을 협박해 금품을 뜯은 전직 영화배우 박모씨와 유흥업소 여종업원 김씨의 협박 행각이 검찰 공소장을 통해 드러났다.